3월 첫째 주 메시지 눈물의 기도가 소망이다
누가복음 19장 강해 사부 눈물의 기도가 소망이다
말씀 누가복음 19장 41-누가복음 19장 44절
요절 누가복음 19장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는 예수님은 세 번 우셨습니다. 첫째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죽음에 시달리며 슬퍼하는 인간들에 공감하며 우셨습니다. 둘째는 예루살렘 사람들이 받을 심판을 생각하며 우셨습니다. 셋째는 십자가에 죽으시고자 결단할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둘째 번 우신 예루살렘 성이 받을 심판을 생각하고 우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의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눈물의 기도를 받고도 회개한 자들을 쫓아내고 더 완악해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눈물을 생각하고 회개하고 변화여 심판에서 영생으로 옮겨지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눈물의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눈물이 맺는 열매)
41,42절을 보십시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평화에 관한 일이 숨겨졌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40년 후에 로마에 의해서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큰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그들이 평화의 왕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뜻입니다. 예루살렘에 평화의 왕 하나님이 계셔야 예루살렘은 평화롭습니다. 평화의 왕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룰 그리스도를 기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어주지 않자 그들은 실망하여 로마총독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로마 사람들의 손을 빌려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죽임으로 일차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죽이는데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그들이 40년 후에 200만이 죽을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생각하며 우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라도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회개하면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서도 그들의 죄사함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여,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주십시오. 그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자신의 고통으로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양들이 회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들이 진정한 평화를 얻기를 바라는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그들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많은 여인들이 예수님이 불쌍하여 울며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서 울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님 자신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을 위해서 울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의 기도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였습니다.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남자만 3천명이 회개하였고,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을 때 오천 명의 회개하였습니다.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무하자 많은 제사장의 무리들도 회개하였습니다. 당시에 예루살렘의 인구가 10만 정도라고 하는데 예루살렘의 5분의 일이 회개한 것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세계선교가 이루어졌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사람을 살리는 가장 큰 힘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서 망할 것을 알았습니다. 백만이 넘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갈 것을 알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강같이 흘렸습니다. 예레미야의 눈물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의 눈물로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들이 회개하고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 기도를 받으시고 하나님은 5만 5천명이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성경이 정리되고 성경이 기록되고 유대인의 정체성이 보존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나오고 세계 구원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모니카는 탕자 어거스틴을 위해서 울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에 빠지고 허랑방탕하여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모니카는 그를 위해서 금식하며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들 때문에 날마다 눈물을 멈추지 못하던 모니카에게 암브로시오 주교는 이런 말씀을 건네며 위로하셨습니다. “눈물의 아들은 결코 멸망하지 않습니다.” 그 말대로 어거스틴은 회개하고 기독교 교리의 뼈대를 세우는 큰 일을 하였습니다.
저의 목자들도 저의 변화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변화된 것입니다. 저도 아버지와 큰 형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눈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마가목자는 오요한 주니어목자가 취업이 되지 못할 때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 기도하는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그 눈물을 받으시고 오요한주니어 목자의 취업을 이루어주셨습니다.
지금 캠퍼스에 제자들이 없습니다. 이들을 위해서 세기 목자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받으실 줄 믿습니다.
(의인을 핍박하는 자는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43,44절을 보십시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파멸을 예언하였습니다. 원수들은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심지어 자식을 땅에 메어칩니다. 성전은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정적인 예언은 실현되지 않기를 바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예언을 하고 하나님은 40년동안 심판을 하지 않으시고 기다렸습니다. 40년 동안 회개하기를 기다리셨습니다.
아까본 것처럼 예루살렘 사람들은 회개하였습니다. 인구의 오분의 일이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회개하였으면 예루살렘은 심판을 받지 않아야하는 것이 아닐까요? 요나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40일 후에 망할 것이라는 회개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은 왕에서부터 집에서 키우는 개까지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의 오분의 일이 회개하였는데도 심판을 받았습니다. 숫자가 적어서 일까요?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10명의 의인이 없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왜 예루살렘은 심판을 받았을까요?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러자 사도를 제외한 모든 성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습니다. 심지어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 후에는 사도들까지도 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진정한 의인이 없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난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사도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을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선교에 앞장 섰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방인 선교를 하지 유대인들은 이방 땅까지 따라와서 돌로 쳐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구제헌금을 가지고 가자 그를 잡아 돌로 쳐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들을 떠나서 로마로 갔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는 진정한 의인이 없었습니다. 의인들을 쫓아낸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돌보심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드디어 ad 70년에 그대로 예루살렘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때 로마 사람들은 예루살렘 주위에 흙으로 성을 쌓아서 그들을 굶어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너무 배가 고파 자식을 삶아먹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렸을 때는 성전의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성전으로 피난하였는데 오히려 그들이 다 죽었습니다. 20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북한은 예수님을 믿는 목사들을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다 남한으로 쫓아냈습니다. 한경직 김준곤 곽선희 김선도 김홍도 목사님들이 북한에서 내려오신 분들입니다. 그러자 북한은 황폐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홍수와 가뭄에 시달리고 농사를 지으면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새벽 별보기 운동, 천리마 운동을 하고 고난의 행진을 하며 열심히 일하지만 굶어죽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남한에는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이 많았고 교회가 많아졌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계선교를 앞장서서 하고 있습니다. 고통하는 나라의 구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한에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세계 경제 십위 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한국이 일본을 앞서게 되었습니다.
지금 전쟁으로 고통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있습니다. 지진으로 고통하는 튀르기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안전할까요? 우리나라도 언제 지진이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얻고 지진과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의인이 많아야 합니다. 남한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교회에 다니는 많은 사람이 타락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한 목회자의 타락을 용인하는 교계를 보고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전쟁 대신 코로나를 주셔서 교회를 많이 정화하셨습니다. 만 개의 교회가 없어졌지만 교회는 더 거룩해졌습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을 따르고 거룩함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사는 운동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공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야 합니다. 세계선교를 하고 가난한 나라를 돕고 가난한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그래야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돌보심을 얻을 것입니다. 아멘
(결론 한국교회의 소망과 안타까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 한국에 예수 믿는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교사를 파송한 수로 하면 2위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구제 사역도 미국을 제외한 이 위입니다. 아직도 한국 교회에는 울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한국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어린이, 청소년을 찬하보다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새벽 자매와 김예성이 세례 받은 것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김상미 목자님이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의인이 되고 후배들을 의인으로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 그들을 위하여 울며 중보기도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보살펴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3월 첫째주 메시지 눈물의 기도가 소망이다
누가복음 19장 강해 사부 눈물의 기도가 소망이다
말씀 누가복음 19장 41-누가복음 19장 44절
요절 누가복음 19장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누가복음 19장 강해 사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