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강한 사랑: 아가서 7] 하나 되는 사랑
아가서 7장 강해
요절: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10절)
신랑은 두 줄로 돌아가는 무희들 가운데서 춤추는 술람미 아가씨를 보고 있습니다. 신랑이 합창단에게 ‘슬람미 여인이 어떠하냐?’ 는 질문에 합창단이 답하는 내용입니다. 이 춤은 결혼식을 위한 춤입니다. 합창단은 슬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이어서 신부도 자신의 사랑을 신랑에게 내어주는 노래로 화답합니다. 다음에 아름다운 사랑의 밤이 이루어집니다. 사랑에는 절정이 있습니다. 남녀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에덴이 기쁨이 가득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가정의 기쁨은 부부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한 몸을 이룰 때 행복합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약점과 단점으로 부끄럽지 않습니다. 하나가 될 때 생명이 탄생합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어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어 주어야합니다.
1. 신부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감탄합니다
“귀한 자의 딸아 신을 신은 네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네 넓적다리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 꿰미 같구나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 망대 같구나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 같고 코는 다메섹을 향한 레바논 망대 같구나 머리는 갈멜 산 같고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 빛이 있으니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이었구나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1-9)
슬람미 여인에 대한 합창단의 칭찬입니다. 슬람미 여인은 귀한 자의 딸입니다. 신을 신은 발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허벅지는 둥글어서 숙련공의 손이 만든 구슬꿰미같이 아름답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꿀벅지입니다.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술잔과 감미롭습니다. 허리는 백합화를 두른 밀단같이 아름답습니다.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습니다. 목은 상아 망대 같습니다. 눈은 헤스본 바드랍빔 문 곁에 있는 연못처럼 말고 그윽합니다. 코는 다메식을 향한 레바논 망대같이 오똑합니다. 머리는 갈멜 산 같습니다. 드리운 머리털은 자주색 비단이나 삼단같이 치렁치렁 늘어져서 왕이 그 머리카락에 매혹됩니다. 왕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하고 감탄합니다. 어찌 그리 화창한지 나를 즐겁게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신부를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계속하여 신랑이 여인을 칭찬합니다. 여인의 키는 종려나무 같습니다. 그 유방은 열매송이 같습니다. 신랑은 종려나무의 종려송이 같은 여인의 유방을 잡기 원합니다. 여인의 유방은 포도송이 같습니다. 입김은 사과 냄새 같이 향기롭습니다. 입술은 좋은 포도주 같습니다. 포도주는 사랑하는 신랑을 위해서 미끄럽게 흘려 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합니다.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는 신부가 신랑의 아름다움을 묘사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답으로 합창단과 신랑이 신부의 아름다움을 묘사합니다. 사랑은 상호적인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아름다움을 알고 노래해야합니다.
2. 신부는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습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10,11)
여기서부터는 신부가 신랑에게 화답합니다.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에게 속하였다고 말합니다. 나는 너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신랑이 신부를 사모하니 여인은 사랑하는 신랑에게 우리가 들로 가서 동네에서 함께 잠을 자자고 합니다. 여인은 신랑이 자신이 사랑한 것을 깨닫습니다. 신부는 신랑이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있는 것을 압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아담은 아내에게 갈비뼈를 내어주었습니다. 아내는 아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었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가장 귀하게 보고 가치 있게 보는 것입니다. 나를 주는 것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자신을 주는 사랑은 하나 되게 합니다. 그 사람에게 속하게 합니다.
하나가 되어 새로운 창조를 만듭니다. 자녀를 낳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 보면 세종은 백성을 사랑하여 훈민정음을 만듭니다. 그 과정에 아들도 잃고 신하들도 잃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깨달아야 우리가 주님께 속할 수 있습니다.
3. 신부는 그녀의 사랑을 신랑에게 줍니다
“우리가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 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 꽃이 피었는지 보자 거기에서 내가 내 사랑을 네게 주리라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12,13)
신부는 일찍이 일어나서 포도원으로 가서 포도움이 돋았는지 꽃술이 퍼졌는지 석류꽃이 피었는지 보자고 합니다. 사랑의 꽃이 피는 그곳에서 여인은 자신의 사랑을 신랑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자신의 마음과 몸을 주고자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드리겠다고 합니다. 마치 메밀꽃이 피어있는 물레방앗간에서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가 아름다운 사랑을 갖는 것과 같습니다. 신부는 아름다운 사랑의 밤을 보내고자 합니다. 그곳에는 사랑의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냅니다. 그들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이것은 여인이 사랑하는 신랑에게 주고자 쌓아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주신 주님께 나의 모든 것을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합니다. 그럴 때 내면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나를 주는 사랑이 있을 때 사랑의 절정이 경험됩니다. 가족과 성도 간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를 위해서는 자신을 희생해야합니다. 나는 희생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주는 사랑을 가르칩니다. 상대방에게 다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는 환희가 없습니다. 내가 주는 사랑을 하면 기쁨이 있고 자유함이 있습니다. 나를 내어줄 때만 나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상대방은 이것을 보고 감동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내어줌을 통해서 아름다운 공동체가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새로운 창조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십니다.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우리가 주님과 사랑으로 하나 되고 성도들과 하나 되어 많은 새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
천안 UBF(말씀사랑교회)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