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열쇠의 행방
“후아암….”
가브리엘은 자신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보기가 굉장히 힘든 시계였지만, 이제 새벽 두시가 되었다는 걸 알아챈 뒤 문 앞에 기대어 놓았던 목검을 찾았다.
목검은 문 옆 그물침대에 누워있던 네이른이 그물침대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가브리엘은 혹시 네이른이 깨지 않을까 싶어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목검을 집어들었다. 조심스레 네이른을 넘어서 문밖으로 나오면서 가브리엘은 목검에 묻은 담뱃재를 털어냈다.
어둡고 좁은 복도를 지나 올라가는 계단에 도달하자 아니나 다를까 윌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은 거의 떠지지 않았지만.
이쪽, 아르네드에서는 보는 것이 쉽지 않은 흑발을 멋지게 기른 윌리엄슨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음…, 왔냐?”
그가 비교적 유쾌하게 물었다.
그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뒤돌아섰다.
뒤에서 볼 때는 마치 여자아이 같았다.
물론 머리카락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늘고 긴 흰 손가락에 군살 하나 없이 길고 얇은 다리가 뒷모습은 영락없는 여자아이였다. 뒷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한 남자가 앞으로 돌아오는 순간 깜짝 놀랄 정도랄까. 아니 앞모습을 봤대도 남자인 것을 눈치 못 채는 경우도 다반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한마디로 말해, 도저히 뱃일을 해봤을 녀석이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뭐 하냐?”
단 두 가지, 그가 뱃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은 두 가지 뿐이었다.
험한 입과 간간히 나는 소금기 섞인 바다냄새가 그 두 가지였다.
계단을 올라가고 나면 그 위에 갑판으로 통하는 선실문이 있었다.
윌은 문을 밀었다.
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젠장! 어떤 바보가 문 위에서 자고 있는 모양이야!”
과연 그랬다.
가로세로로 교차되어 창살처럼 되어있는 선실문의 구멍구멍으로 사람의 살갗이 드러났다.
“어떤 바보인지는 몰라도 정말 문제는 문제로구만.”
가브리엘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어떤 바보인지는 몰라도…….”
철컥!
그 위에 있던 건 데이비드였다.
“그래, 어서들 오시게. 바보한테 무슨 볼일이 있어서 오셨는가?”
둘은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아아, 난 정말 오기 싫었는데 어떤 친절한 바보가 검술을 배우자고 다른 바보한테 부탁했다지 뭐야? 어쩔 수 없이 따라왔지.”
“그래? 그 바보가 나한테도 그랬는데 말이지, 그게 누구였더라?”
“자, 자…,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은 내 앞에서는 가려서 하도록 해라.”
이 시시껄렁한 농담을 시작한 사람이 그 둘에게 말했다.
“음, 좋아. 검은 챙겨왔겠지?”
둘 다 어깨에 맨 기다란 가죽 가방을 보여주었다.
윌은 벌써 가죽 끈에서 삐져나온 검자루를 쥐고 있었다.
오른손에 있던 목검을 왼손으로 고쳐쥐려던 가브리엘이 갑자기 검을 떨어트렸다.
갑자기 고통이 오른손을 압박해 왔던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손목이 아팠다.
“윽, 이게 왜이래?”
손목이 타버릴 것만 같은 묘한 고통이었다.
정말로 타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채워진 팔찌 때문에.
가브리엘의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검 카오루지스의 표면에 새겨진 문장이 새겨진 팔찌였다.
본디 하얀색이었던 그 팔찌는 빨갛게 타오르며 이상한 소리를 냈다.
가브리엘은 그 팔찌를 벗어던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팔찌에 손이 다가가는 순간, 왼손은 세차게 뿌리쳐졌다.
그 팔찌를 유심히 보던 데이비드가 정색을 하며 가브리엘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걸 어디서 구했지?”
그는 저도 모르게 동공이 커져 있었다.
가브리엘은 의혹을 가지며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제가 이런 걸 차고 있다는 것도 잘 몰랐어요, 하지만 10살 때 부터인가, 그때쯤부터 이런게 있었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어요.”
“다시 말해, 어느 순간 갑자기 네 손에 있었단 말이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럴 겁니다.”
“아니, 틀림없이 그래. 내가 보증하지. 이건 네 아버지의 물건이야, 본래 내가 그에게 부탁해서 세상에 만들어진 것이다. 나침반이지.”
“나침반?”
이렇게 생긴 나침반은 없었다.
세상 어디를 돌아다녀 봐도 N극과 S극도 없고 바늘도 없는 나침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소유자가 원하는 게 가까이 있을 때, 어느 쪽인지를 가르쳐 준단다. 이 공명, 네가 원하는 게 가까이 있는 듯하구나. 네가 원하는 게 뭐지?”
그가 원하는 건 라오스의 열쇠였다.
그 열쇠 찾기에 협조하여 열쇠를 찾으면 데이비드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의 아버지라는 것은 존재가 너무 막연했다.
또한 그런 무리한 내용이라면 나침반도 찾기가 힘들 것이 분명했다.
이 나침반의 존재와 그 용도는 몰랐지만, 어렴풋이 그는 알고 있었다.
감으로 알 수 있는, 그런 것들처럼.
“라오스의 열쇠요…….”
가브리엘이 잠깐 생각하는 듯싶더니 대답했다.
“그래, 그럼 이 근처에 있을거다. 라오스의 열쇠는 아니더라도, 뭔가 관계가 있는 물건이. 분명 열쇠는 아닐거다. 그건 바다 한가운데 방치될 정도로 흔해빠진게 아니니까. 아마 그것과 관계된 지도나, 뭐 그런 것이겠지……. 좋다. 오늘 훈련은 없다, 대신…….”
그가 이물쪽으로 걸어갔다.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정적속에서 들려오는 것은 잔잔한 파도소리와 데이비드의 발장단에 맞춰 삐걱거리는 갑판바닥 소리뿐이었다.
이물에 다 도착하자 그는 검 두 자루를 그들에게 한자루씩 던져주었다.
가브리엘이 받은 검은 이미 일전에 한 번 본적이 있는 것이었다.
검신에 특별한 가공이 되어 있던 그 검이었다.
무색투명한 검신을 가로지르는 두 선이 끝에서 구부러지며 그려져 있는 무늬는 굉장히 섬세했다.
“이제 우리는 라오스의 열쇠를 구하러 가기 위한 열쇠의 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찾으러 간다. 우리와 함께 가기 위해 고든에게도 말하기로 했다. 너무 걱정은 말거라. 나와 고든이 있는 한 너희들에게 큰 위험은 없을 테니까.”
조금 뒤 ‘레뮤얼들의 배’ 에서는 조그만 쪽배가 내려졌다.
거기엔 네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허리 춤에 세 자루의 단도를 꽂아 넣고 배를 가로지르는 벨트로 고정시킨 검집에 꽂힌 대검을 오른손으로 쥐고 있는 모자를 쓰고 꽁지머리를 뒤로 묶은 한 남자와, 별다른 무장 없이 고작 검 한 자루씩 들고 있는 두 소년과 왼손으로 노를 젓는 외팔뚝이였다.
배는 똑바로 나아갔다.
이젠 잔잔하던 파도마저 사라졌다.
파도가 사라지고 썰물 때가 되자 여태껏 보이지 않던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배는 곧 그 땅에 닿았고 네 명 모두가 배에서 내렸다.
땅의 바닥에는 어떤 통로가 있었다.
빈약해 보이는 두 소년은 멀찍이 떨어졌고, 팔 하나가 없는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왼손뿐인 손을 휘두르며 뭔가를 속삭였고, 문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움직였다.
“이제 조심해라, 여기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훗,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닌가요? 우린 동업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입니다. 상대의 안위를 걱정할 여유가 있으면 자신을 지키지 그러십니까?”
가브리엘이 비꼬듯이 데이비드의 충고에 대꾸했다.
“그래? 자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라고 보겠네만, 우리는 동업자이기 이전에 선장과 선원이고 아버지와 아들 아닌가?”
“이 세상 어딘가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부자가 있다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일이겠죠.”
“자, 다들 그만 싸우시죠. ……갈림길입니다.”
“그래, 좋네. 헤어져서 가도록하지. 윌 넌 날 따라오거라. 그리고 고든, 너에게는 가브를 부탁하마.”
그가 짧게 해결했다.
가브리엘은 솔직히 놀랐다.
그가 당연지사 자신을 데려갈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데이비드는 좀 전의 말다툼으로 자신의 생각을 바꿀 정도로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뭔가 원래부터 이렇게 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밖에 없었다.
윌은 굉장히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쉬더니, 질투 반, 부러움 반이 섞인 애매한 표정으로 가브리엘을 보았다.
부스럭.
아까도 생각해온 일이었지만, 이 지하 동굴은 -지하 동굴이 옳은 표현인지는 가브리엘 자신도 몰랐다. 바다에 가라앉아있던 땅속의 어느 공간이었으므로. - 굉장히 이끼가 많았다.
“이크.”
넘어지려던 가브리엘을 고든이 잡아주었다.
그대로 갔다간 얼굴에 이끼로 범벅을 했을지도 몰랐다.
“휴, 고마워요.”
“흠, 인사는 고맙지만… 앞을 보라구. 너무 태평한 거 아냐?”
가브리엘은 무심코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커다란 괴물이 있었다.
내용이 너무 많아서 반씩 잘라야 겠습니다;;
무려 한글로 6페이지나 된다는;;
어쩃든 댓글좀 많이 달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