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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광은 공주가 직접 자신을 초빙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자 바로 부복을 하고 경학의 교육자 역할을 자처했다.
심재설(김만)이 교재로 채택한 『맹자』 강론에 대한 교육과정을 듣자 그는 당황했다.
국왕의 동생이자 공주라는 사람이 첫 수업 교사로 나설 것이며, 소자(小子), 소녀자(小女子)에게 먼저 강의를 해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심지어 맹자가 제 선왕 앞에서 말했다는 이야기부터 설명하려고 하는데 자신이 따로 만류하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더욱 그랬다.
첫 수업날..
대문 밖에서 재설(신라 공주 김만)은 확성기 비슷한것을 만들어서 크게 떠들었다.
"학생들 어서 오시오!"
"고맙소, 고맙소, 학생들은 신라국의 미래요. 주변의 벗들을 많~이 데리고 오시오! 수강료가 없으면 말을 하시오, 누구든 도와 주겠소!"
국왕의 여동생이 큰 글씨로 현수막 같은것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홍보가 크게 안될 수 없었다.
금관경의 사신(仕臣)과 사대사(仕大舍)들 역시도 공주가 저러는데 아랫사람들 풀어서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어서 오시오. 그대들에게 수업을 가르칠 강사로 나 김만이 <논어>나 <효경> 대신 <맹자>를 가르치는 이유는 간단하오. 관직을 얻기 위한 학문이 아니니 때문이며 인(仁)과 효(孝)도 중요하지만 이 불국토가 어찌 다스려지고 있는지 또한 알 필요가 있소."
같이 듣고 있던 김인광은 뭔가 불안불안한 느낌이 들었고 소자와 소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골품이 다른 이들까지 섞어서 강론하는게 어째서인가? 또한 남녀가 유별한데도 말이다.
"제선왕 문왈(齊宣王 問曰)
제 선왕이 물었다.
탕 임금은 걸을 부수고 무왕이 주를 쳤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있는가?
맹자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제 선왕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시해하는 것이 옳은가?'를 물었소. 자,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오?"
"옳지 않은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국주(國主)를 감히.."
한 소녀가 대답했다.
공주는 미소를 지었다.
"맹자는 인을 해치는 자는 적이라고 하고 의를 해치는 자른 잔이라고 하니 잔적殘賊한 사람을 보잘것 없는 이라고 불리며 보잘것 없는 이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임금을 죽였다는 소리는 아직 듣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맹자는 또한 나라에 백성이 가장 귀중하며 토지가 그 다음이며, 군주는 그보다 못하다고 했다.
서라벌에서 나라에 주인 행세하는 보잘것 없는 자가 인과 의가 없는 잔적이라면 그를 죽였을 때 이는 왕을 시해했던 것인가? 아니면 한낯 보잘것 없는 이가 죽은 것인가?"
듣는 이 모두가 놀라움을 넘어서 겁을 먹을 수준의 발언이었다.
"무엇을 놀라는 것인가! 헌덕왕은 애장왕을 시해했고, 신무대왕은 김명(민애왕)을 시해하고 왕이 되었으니 이몸이 공주가 되기까지 잔적을 죽이고, 임금을 죽인 역사가 있질 않는가? 단지 옥좌 하나를 노리는 탐욕스러운 작자들이 백성을 잊고 권력만 탐하고 있으니 그대들은 그걸 어찌 모르는것인가!"
의도적인 이야기였다. 애장왕에 대한 부분은 불쌍해서 언급했고 민애왕은 아무래도 왕통과 관련있기에 김명이라고 불렀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놀랄 부분이긴 했다.
"금관경으로 내려간 이유는 단지 남쪽을 순행하면서 놀기 위함이 아니다. 그대들은 나라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도 하소연 할 세력이 없으니 일부 유력자들이 이용하려 할 것이다. 허나! 앞으로 하소연 할 생각이 있다면 내게로 오라! 또한 공부하라! 또 공부하라!
그대들은 신라국의 미래다!"
신라국의 미래! 그 말에 수업을 듣고 있던 이들에게는 가슴 속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을 얻었다.
김인광은 어째서인지 공주가 말한 일부 유력자들이라 함은 자신을 말하는 것 같았다. 내심 불교계와 교류하면서 민심을 얻고 세력을 만들고자 했는데 아무래도 그 모든 과실은 이 여자가 따겠구나하고 생각했다.
'여왕이 될 자질이 있는 인물이구나!'
역사 속에서 두명의 여왕이 있었지만 세력을 모아 반란을 모의하는 여왕은 들어본적 없었다.
김만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앞으로 역성혁명을 위한 학습을 적극적으로 해서 의식 혁명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10년 정도 지나면 그가 귀국할터인데... 그에게 만들 노래가 있다.'
심재설이 생전에 음반제작을 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 시대에는 자기보다 더 전문가가 있었다. 꼭 기용해서 선전 쪽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자신이 역사를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기에 이 시대 유능한 인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금관경 지역 백성들을 선동하는 동시에 그들의 말을 경청하려 한 부분은 미래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나라의 서남쪽에 바지를 붉게 물들인 도적들이 주와 현을 두력하고 서라벌 모량리까지 왔다는 적고적이 탄생할 유력한 지역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기에 심재설의 머릿속에는 이 붉은 바지를 자기 세력화 시키고 싶었다.
금관경이 수도와 가깝기도 하지만 오래전 김헌창은 웅천주를 기반으로 무진주·완산주·청주·사벌주 4주 도독과 국원·서원·금관의 소경 사신 및 여러 군현의 수령들을 위협해 자기의 소속으로 삼았다고 한다.
신라 멸망까지도 신라와 함께했던 지역었으나 골품이라는 차별적 요소는 문제가 많았다.
"앞으로 금관경 내에서는 골품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다."
김해는 변한시대부터 교통의 요충지. 통일신라기 해안가에는 소금생산을 전업으로 하는 집단이 생겨나고 있었으니 소금 판매부터 판로를 넓혀서 혁명을 위한 군자금으로 만들 준비를 했다.
물론 현 국왕과 그 다음 국왕 차례를 기다리면 진성여왕은 자동으로 즉위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다가는 궁예, 견훤 같은 이들이 나라를 조각낼 것이며 차라리 먼저 선수 치는 것이 나았다.
금관경의 병사들 조련부터 확실히 시킬 것을 명령했고 관리들은 어느정도 반역에 동참하고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여론의 과반이 현 국왕이 자질 없는 필부 이하라는 것이 퍼져나갔고 공주가 금관경에 있는 것 만으로도 차후 국왕이 될 경우 혜택이 생길 수 있었다.
"오라 오라 오라 오라
슬퍼라 슬퍼, 우리들이여 공덕 닦으러 오다"
백성들이 일할 때, 군사들이 훈련할 때 부르는 풍요風謠라는 노동요라는데 너무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짧고, 너무 단조로운 곡이다. 골품에 구애받지 않고 단결하라는 가사가 있어야 한단 말이다."
빨리 10년 정도 지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강왕 10년
당의 사신으로 갔던 김인규는 금관경에 있던 공주가 보낸 문서를 통해서 귀국 과정에서 풍랑이 있을 수 있으니 수월하게 이동이 가능한 해로를 언급한 내용과 지도를 같이 보면서 감탄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최치원 또한 실제역사보다 빨리 귀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귀국길에 금관경을 들린 그는 참 충격적이게도 전쟁준비라도 하듯 군사훈련과 학생들의 공부 권유, 길거리 상인 앞에서 경전 강독을 하는 등의 변화된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최고운 왔는가?"
"보잘것 없는 소신의 귀국을 공주께서 도왔다 들었나이다."
"허허허. 여기저기 떠도는 삶을 살다보면 육로와 해로는 잘 알게 되더군."
물론 과거 삶에서 그러했던 것이었고 이 시대를 공부하면서 배운게 있었기에 최치원의 귀국을 앞당기고자 하였다.
"그대가 쓴 시와 문장은 여태 내 관심사와 통하는게 있네. 지금 금관경이 이리 변한건 내가 어리석은 국왕에게 역심을 품고 변화시키고자 한 바이기 때문일세.
지금의 신라는 어찌 제대로된 나라라 할 수 있겠나? "
"그건 설마.. 역모..."
"맞네. 역모라네. 오직 골품 하나로 관직을 얻을 수 있으며, 백성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있으니 나라라 할 수 없네. 이곳의 백성들이 잃을 것은 족쇄뿐이고 그들이 얻을 것은 불국토라네! 만약 바꾸고 성공한다면 역모가 아닌 혁명이며, 대업일세."
최치원은 자신이 당에서 읽은 유교경전에서 나온 혁명이라는 말에 가슴이 뛰었다.
"소신이 어찌 도우면 되겠나이까?"
"노래를 하나 만들어주게. 백성들이 부를 노래는 단지 불국토를 노래할 뿐 그들의 울분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네. 대략 가사는 이러하네."
[깨어라! 평민(平民)의 군대! 골품(骨品)을 벗어 던져라!
일어나라, 굶주림의 노비들아
토지의 불행한 땅에 새 불국토를 펼칠 때
어떠한 상한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하네.]
과거 심재설이었던 시절의 감성이 묻어나오는 이 가사는 아무래도 시대가 신라말이니 골품이니 불국토니 하는 말을 붙일 수 밖에 없었고 나머지 부분은 최치원에게 더 집어넣게 해서 2,3절까지 만들게 하였다.
'내가 드디어 서라벌에서 인터내셔널가를 작사 작곡했구나!'
물론 그 혼자 감동한건 아니었다. 가사를 듣고 최치원은 온몸을 떨었다.
그간 6두품의 설움이 터져나와서 지금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이 광경과 엄청난 가사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충심을 바쳐 꼭 노동요를 완성하겠나이다!"
새로운 노동요와 공주가 선동하고 있는 신분타파의 목소리는 금관경을 넘어서 신라 전체를 흔들었고 선종(善宗)이라는 법명의 승려 또한 이 기묘한 선언들에 소름을 느꼈다.
"흐흐흐 내가 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만은 내게는 보이는구나. 새로운 세상이 오고 있어! 신천지가 오고 있단 말이야! 허허허"
들려오는 말 자체가 역모와 다름없이 '계급이 어쩌구' '혁명이 어쩌구' 하는 소리를 하는게 지금 국왕의 여동생은 상상을 초월하는 역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역모에 대해서 사실상 불교에서 요구하는 계율 자체를 지키지 않던 애꾸눈의 선종 시각에서는 흥미를 넘어서 흥분을 더해가고 있었다.
"중놈 노릇은 끝이다! 속세 속으로.. 아니 난세로 나선다!"
실제 역사 이상으로 세상이 변화해가자 다급한 곳은 왕성 주변의 귀족들이었고 또한 헌강왕 자신도 이런 변화상에 대해서 이제야 평범한 일이 아니라는걸 눈치챘다.
"그럼.. 만이가 놀러간게 아니라 짐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모략이었던것인가!"
그는 탁자를 크게 치며 화를 내었다.
"공주의 지위를 박탈할 것이니라! 또한 역모에 가담한 자는 경중을 따지지 않고 참형이다!"
"형님.."
"어허! 왕제는 어찌 사적인 호칭을 하는 것인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상대등 김위홍은 국왕의 변화에 감탄하면서도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을 애써 숨기는 중이었다.
늦어도 너무 늦은 국왕의 각성이었고 왕성 밖에는 최치원이 보낸 격문에서 왕의 비행과 공주와 김위홍이 연관된 추문을 사실인양 퍼트리고 있었다.
'물론 어느정도 자신이 조카를 건드린 적 있는건 사실이었다. 헌데 이걸 공주가 인정했다고? 유교 경전을 공부한 이들에게 이 부분은 약점이 될터인데 그걸 일부러 노출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위홍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공주의 속에는 심재설이라는 이가 있었고 심재설은 현재 삶을 살면서 공주의 대외적인 이미지 같은건 크게 신경쓰지 않는 점이라는 것이다.
더 우선시 하는 것은 아무래도 선전 선동을 통한 혁명이었고 과거 삶에 대한 분풀이었다.
엉뚱한데 분풀이하고 있던 셈일 수 있으나 옥황상제께서 이왕 이렇게 살려주신 몸 하고 싶은건 다 해볼 생각이었다.
금관경을 시작으로 강주, 양주의 많은 지역을 얻은 시점에서 참모로 김인광, 최치원, 선종은 여러 국명을 제시하였다.
"변한국 어떻사옵니까?"
"해동국은 어떻습니까?"
"'마하진단'(摩荷震檀)을 줄여서 마진(摩震) 어떻습니까?"
'어? 이 애꾸눈 이 새끼 궁예네?'
어쩌다보니 참모로 삼고 있지만 실제 역사를 생각하면 이 사람은 윗사람에게 배신을 할 인물이었고 이승에서는 자신을 野人時代라는 극에 출현한 배우가 고자로 만드는 것 하나 때문에 유튜브에서 좋아요와 댓글 하나당 불지옥에서 목욕하는것 1회씩 하고 있던걸 기억하니 아무래도 이 인물의 말을 수용하고 싶진 않았다.
"과거의 여러 국명들은 결국 신분이 존재하고 본인이 했던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소. 또한 대국에게 낯선 국명을 쓰는 것도 좋지 않고 쓴다면 계림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으니 <계림 회의>라는 라는 것으로 앞으로 모든 백성들의 조직을 이끄는것이 어떠하오?"
"과연.. 당국 또한 신라를 계림으로 부르기도 했사옵나이다."
"국왕이 있는 수도의 별칭도 계림이니 진골놈들을 조롱하는 느낌이 드니 소승 또한 공주님의 의견에 찬성이오."
"국명을 정한 김에 공주 보다도 회의장으로 불러주시면 좋겠소. 회의 장소는 지금은 금관경에 만들어진 임시궁에서 하고 있으니 말하는데 앞으로 회의 내용을 필시하는 것은 본 회의장이 맡겠소."
그렇게 계림회의의 서기장 취임까지 즉석에서 이루어졌으니
이는 헌강왕 11년(885)이면서 계림 회의 원년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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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올린거 여기에 안올렸다는거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첫댓글 군주제 할 거야 안 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