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수애장판8권을 들고 정류장으로 향했던 나...
이 만화를 알고 있는 폐인들이 많아서 좋았던 나...
그럼 이 만화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누가 정하지?
인간과… 그 밖의 생명의 값어치를 누가 정해주는데?
'기생수'를 읽고
생물들은 때로는 서로를 이용하고, 때로는 죽인다.
그러나 이해하는 것은 무리다.
…아니, 상대를 자신이라는 「종」의 잣대로 재면서 다 파악한 기분을 내서는
안된다.
다른 생물의 마음을 아는 체하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다른 생물들은 아무것도 인간의 친구가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설령 전혀 이해할 수 없어도 존중해야 할 동거인임에는 틀림없다.
다른 생물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외롭기 때문이다.
환경을 보호하는 것은 인간 스스로 멸망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에는 인간 개인의 만족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그게 전부니까.
인간의 잣대로 인간 자신을 비하해 봤자 의미는 없다.
기생수 中
'기생수'라는 만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동기녀석이 이 만화가
엽기적이라고 말을 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일본만화
50선에 들어 있는 것도 읽어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만화가 나에게 가장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은 환경보호에 관한 작가의
생각이다. 환경보호라는 것이 인간 자신의 보호를 위해서 행해지고 있다는 것.
모두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살리기 위해서 환경보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패러사이트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인간
자신의 바램이었을른지도 모른다. 인간의 과다한 팽창은 인간 자체의 생존에도
위험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그 누군가가 인간의 존재에 대하여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런 위험이 패러사이트라는 기생생물을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일본 만화에서 악의 화신으로 등장하는 천재
사이코 박사들이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만화의 줄거리에 대하여 조금은 언급을 하는 것이
좋겠다.
이야기의 시간은 현실이며 무대는 일본의 어느 대도시이다. 어느 순간에 뱀과
같이 생긴 이상한 생물체(?:내가 보기에는 뱀이라기 보다는 기생충같이
생겼다.)가 인간의 몸속으로 잠입해 인간의 뇌를 대신하여 사람의 몸을
조종한다. 이 생물체를 인간의 몸에 기생한다고 하여 '패러사이트'(기생동물
혹은 기생충)라는 이름이 붙고 이 '패러사이트'에게는 인간을 먹어치우라는
본능적인 메시지가 내려진다. 주인공은 이런 패러사이트에게 감염되었지만
뇌는 먹히지 않아서 자신의 팔에 패러사이트를 기생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 오른팔과 함께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소중한 것들
즉 가족, 사랑 등을 위해 패러사이트들과 싸운다.(물론 그 외의 싸움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설정은 후에 가서
인간이라는 한가한 생물,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이라는 대안으로 바뀌게
된다.) 모든 싸움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기생생물들은 지하로 잠적하고
인간의 도시는 다시금 인간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의 평화를 찾게 된다.
기생수(寄生獸)라는 만화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첫째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이 내뿜는 독과 인간이라는
종이 파괴하는 생태계의 질서를 고려해본다면 도리어 인간을 자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라는 종이 기생수(寄生獸)는 아닐까?
인간이라는 종은 개체 하나를 떼어놓고 보았을 때는 극히 약한 존재이지만,
인간들이 모여 군집을 이루고 사회성을 획득하는 경우, 인간을 이겨내는 것은
거의 없다. 자연의 경우도 그러하다. 이 만화에서 기생생물은 자연을 대표해서
인간과 싸우는 대리인의 자격일는지도 모른다. 이는 시청에서의 공방전의 경우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싸움은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고
시청 내에 있는 기생생물은 고토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죽음을 맞이한다. 결국
인간의 승리임을 나타내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생생물의
대표성은 특히 고토의 경우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토는 자연의 파괴, 오염의
원흉인 어리석은 인간들에 대해 위대한 야성, 위대한 대자연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후기 작가의 말 중에서). 하지만 이러한 고토 역시 인간에 의해서
사라지고 만다. 물론 엄청난 우연이라는 것을 가장하듯이 말이다. 인간이 버린
폐기물, 염화수소 같은 유해 독극물을 포함한 이 폐기물을 주인공이 주워,
임기응변으로 고토의 약점을 찌르고 이로 인해서 고토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물론 다시 부활하려고 하지만 다시 한번 인간에 의해서 영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연 역시 인간의 과도한 개발에 시달려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 아니할까? 인간은 결국 자연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기생수일뿐이다. 하지만 대안은 있다. 그것은 주인공인 신이치와 그의
오른팔에 기생하고 있는 오른쪽이의 공존관계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이 역시 패러사이트로서 인간인 신이치의 오른팔에 기생하지만
냉엄하고 이기적인(물론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의 이야기다.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냉엄하고 이기적인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성격을
지니고 있어, 자신과 자신의 숙주인 인간의 위험에만 행동을 하고 자신의
호기심에 대하여서만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런 오른쪽이도 조금씩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해가게 된다. 결국 인간인
신이치와 기생생물인 오른쪽이는 서로를 도우면서 살아가는 공존의 태도를
취하게 된다. 결국은 책의 마지막처럼 '의지하며 산다… 언젠가 생명이 다할
때까지….'라는 말이 사실로 다가오는 경우인 것이다.
인간이라는 종, 아니 지구상에 사는 어느 종이건 간에 자신의 생존, 자신의
후손을 위해서는 방해가 되려 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이러한
설명을 '이기적인 유전자'라는 책에서 모토를 얻어와 설명을 한다. 이것이 두
번째 주목해야 할 것이다. '타무라 레이코'라는 여성 패러사이트가 가장
고민했던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생생물이란, 기생생물에 있어 인간이란
과연 뭘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레이코는 자신의 아이(완전한
인간이다.)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는다. 물론 싸우고자 하면 싸울
수도 있었고, 도망가자고 해도 도망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 자신의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만 하는 것인가?
자신은 패러사이트로서 인간과는 다른 존재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낳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다는 것은 '이기적인
유전자'에 넣어봤을 때 패러사이트 자체가 인간이지 않고서는 어불성설인
것이다. 레이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나. 기생생물과 인간은 한
가족이다. 우리는 인간의 「자식」이다.'라고. 결국은 인간과 기생생물로
대표되는 자연은 밑줄친 인간이라는 말 대신 지구라는 말로 대신되는 것의
자식이라는 것이다. 결국 공존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구의 자식이라는
입장에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이면서도 기생생물의 입장에 서 있었던
시장인 히로카와에 대한 것이다. 그는 시장으로 입후보하고 당선되면서
인간이면서도 기생생물에게 식당(말이 식당이지, 기생생물이 인간들에게
걸리지 않고 인간들을 먹어치울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그는 기생생물이
인간보다 더 위에 서게 되는 먹이피라미드가 형성되어 지구는 다시 평형을
되찾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환경보호도, 동물애호도 모두 인간의 편의만을 생각한 비뚤어진 사고방식인
것을. 왜 인정하지 않나? 인간 한 종의 번영보다 생물 전체를 생각해!! 그래야
만물의 연장이다. 정의를 위한다고 떠들어대는 인간!! 이 이상의 정의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인간에 기생하여 생물 전체의 균형을 지키는 역할을 맡은
우리에 비하면….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충…. 아니… 기생수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최근 들어서 많아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뭐 위의 것보다 과격하지는 않아도 환경보호라는 것이 결국은
인간의 입장에서만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히로카와처럼 인간보다 위에 있는 존재로 기생생물을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인간과 자연은 공존해야 할 대상이지 서로에게
자신의 위치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는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다.
결론을 말하기에 앞서서 이 글은 전적으로 나의 글일 뿐이다. 결국 내가 이
만화를 읽으면서 내 자신의 눈으로 판단하고 내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알아낸
것뿐이다. 이 점을 주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인간과 자연의 싸움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도깨비 공주'에서 보아왔던
소재이다. 하지만 하야오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그 자연이라는 것이 동물로
대변되는 것이지만, '기생수'에서는 기생생물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사용한다.
또한 하야오의 결론은 결코 공존에 있지 않다. 자연과 인간은 끊임없이
대립하는 존재로서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기생수'에서의 결론은 공존에
있다. 결국 인간과 자연은 지구라는 것의 자식이다. 인간과 자연은
공존함으로서만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서로 기대면서 마지막 그 순간까지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길에서 만나 알게 된 생물이
문들 돌아보니 죽어 있었다.
그럴 때면 왜 슬퍼지는 걸까.
그야 인간이 그렇게 한가한 동물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게 바로 인간이 지닌 최대의 강점이라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생물.
이 얼마나 멋진 일이야!!
첫댓글 오.. 바로 이거야.. 기생수를 보며.. 내가 느꼈던 감동이...ㅡㅜ
후....이따가 다시 읽어야지........내가 젤 궁금해하고 읽고 싶어하는 만화! ㅡ.ㅡb
기생수 왈-_-b 나두 이따가 다시 읽어야지
애장판은..비싸서.....
조류독감으로 생매장되는 오리들... 그걸 모자이크 처리없이 내보내는 방송... 무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내가 한가해선가... 소름이 끼치던데... 전생에 오리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