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미시사(微視史)란 분야가 있다.
사전적 풀이는 거시적인 역사적 구조보다는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 또는 그렇게 탐색되어 기술된 역사를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거창하게 들려서 무척 어렵게 느껴질 테니 내 방식으로 풀이를 한다.
미시사란 이순신, 세종대왕, 안중근 같은 큰 사람들이 남긴 발자취가 아니라 나같은 잔챙이들이 살았던 기록을 말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켜 흔히 장삼이사(張三李四)라 하고 이런 사람들의 흔적이 바로 미시사다.
장삼이사는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란 뜻으로 실제 중국에는 우리의 김이박처럼 장씨와 이씨가 가장 많다고 한다.
장삼이사와 비슷한 뜻으로 초동급부(樵童汲婦)란 말도 있는데 나무하는 아이와 물 긷는 여인네를 말한다.
초동급부는 요즘은 거의 안 쓰는 말이지만 내 어릴 적에 나는 틈틈히 땔나무를 하러 산엘 갔었고 엄니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러 오셨다.
머리에 인 물동이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손으로 닦으며 마당으로 들어서던 엄니의 모습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아직도 선명하다.
결국 미시사는 무명으로 살다 간 내 어머니처럼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사람들 이야기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영웅호걸들의 삶만이 역사인 것은 아니다.
오늘은 내 친구의 미시사를 말하려고 한다.
고향에서 국민학교 6년을 같이 다녔지만 한 반인 적이 두어 번 있었나? 더구나 학교는 같아도 옆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딱히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다.
내 엄니와 친구 엄마의 친정이 같은 마을이여서 외갓집이 한동네라는 공통점은 있었다.
엄니들끼리야 오일장에서 종종 봤겠으나 나는 친구집을 방문한 적도 몇 번 없었다. 게다가 내가 국민학교 졸업 후에 바로 고향을 떠났기에 오랜 기간 소식이 끊겼다.
서른을 막 넘긴 후였을까. 한 친구 결혼식장에서 이 친구를 만났다. 거의 20년 가까이 지난 후였다. 그는 신랑과 큰집, 작은집으로 사촌지간이었다.
그때 친구 엄마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반갑게 나를 붙들더니 당신 아들 얘기를 했다.
"우리 영철이 장개 좀 가게 여자 있으면 소개 좀 해라."
내 친구 영철이는 가명임을 밝히면서 이제부터 영철이라 하겠다. 영철이는 장남인데 여동생만 넷이기에 유일한 아들이다.
그러니 엄마는 아들 결혼을 조금 서둘렀을 것이다. 나는 친구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모, 저도 아직 결혼 전이라요. 영철이도 언젠가는 인연이 되는 짝이 생길 테니 너무 걱정 마십시오."
그때서야 친구가 중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보령으로 이사갔다는 것을 알았고 그곳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때부터 조금씩 친해졌다. 서른 살 이후에 영철이의 결혼 수난사가 시작된다.
그래서 오늘 미시사는 이 친구와의 우정이 아니라 영철이의 결혼 이야기다.
영철이는 여러 번 선을 봤지만 결국 짝을 만나지 못하고 40살을 넘겼다. 부모님 속은 더욱 타들어 갔다.
아래 여동생들은 막내까지 전부 결혼을 했으나 장남인 아들만 마흔 살이 넘도록 짝을 찾지 못하니 오죽했겠는가.
내가 40대에 접어들면서 외국 생활을 시작했기에 이후의 이야기는 몇 년 전에 들은 것들의 기록이다.
영철이는 여자 앞에만 앉으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다. 감정이 격해지거나 당황스러울 때도 그런다고 했다.
이것이 결국엔 열등감으로 작용했는지 부모님이 나서지 않으면 영철이는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의 아들 결혼 시키기는 더욱 치열해졌다.
국내 여자와 연결이 안 되니 결국 외국으로 눈을 돌렸다.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처음 연변 아가씨와 접촉했으나 잘 안되었던가 보다.
영철이는 부모님 성화에 못 이겨 러시아로 떠났다. 러시아 여자를 만나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러시아로 함께 갔던 다른 남자들은 전부 짝을 데리고 왔는데 영철이만 혼자서 돌아왔다.
동네에서는 아무래도 남자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수근댔다고 한다. 고자라고 수근대는 소리에 열불이 난 엄마가 영철이를 앉혀 놓고 그랬다고 한다.
"니 정말, 고추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영철이라고 왜 동네의 그런 분위기를 몰랐겠는가. 엄마의 이 말에 영철이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엄니, 나라고 왜 결혼하고 싶지가 않겠어유. 그런데 코 큰 여자한테는 자X가 안 서는 걸 어떡해유."
부모님은 베트남 쪽을 알아 봤고 결국 영철이는 피부가 까무잡잡한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했다. 당시 친구 나이 마흔 둘이었다.
이듬해 베트남 아내는 딸을 낳았고 영철이는 고자가 아님을 증명했다. 그런데 베트남 아내가 딸이 첫돌 무렵에 집을 나갔다고 한다.
영철이는 미친듯이 아내를 찾아 다녔지만 행방이 묘연했다. 뒤늦게 위장 결혼이었음을 안 친구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부모님이 딸을 맡아서 키우던 중에 딸이 사고로 죽었다. 사고사였음에도 경찰과 동네 사람들은 영철네 가족을 의심했다.
용의자로 경찰 수사를 집중적으로 받았고 죽은 딸은 부검을 했다고 한다. 딸이자 손녀를 잃은 영철과 부모님은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
어쨌든 무혐의로 결론이 났고 영철도 피폐해진 마음을 다시 추스렸다. 이후에도 영철 부모님의 장남 결혼 시키기는 멈추지 않았다.
결혼 중개업소의 주선으로 영철은 우즈베키스탄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때 내 친구 나이 마흔 다섯 살이었다.
그쪽 사람답지 않게 코가 높지 않은데다 까무잡잡한 동양적인 외모의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23살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이 둘을 낳고 산다.
큰아들과 딸이 모두 혼혈 다문화 가족임에도 아빠 쪽을 많이 닮은 한국인이다. 2019년에 나는 이 친구 집에서 1박 2일을 머물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었다.
말수가 없는 편인 영철이한테 들은 것보다 적극적인 어머니가 대부분 들려줬다. 내 엄니와 친정이 한동네라 나는 어릴 때부터 이모라고 불렀다.
"그동안 내 사연을 말하자면 한 트럭으로는 모자란다."
한국 말을 통 배우려 하지 않았던 베트남 며느리에 비해 우즈베키스탄 며느리는 부지런히 한국어 공부를 했다고 한다.
성격도 밝고 싹싹해서 시부모의 귀여움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내가 그집에 머물며 느낀 바도 그래 보였다.
부모님이 연세가 들어서 친구 농장에는 외국인 노동자 손을 빌려야 했고 지금 우즈베키스탄 사람을 고용하고 있다.
영철 아내와 언어가 같으니 갈등도 별로 생기지 않고 여러모로 편하다고 했다.
내가 방문했을 때 일하는 사람이 우즈베키스탄 부부였는데 친구의 농장에서 일한 지가 10년 가까이 된다고 했다.
처음엔 남편만 일했으나 영철의 주선으로 나중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아내까지 데려와 부부가 함께 지내고 있단다. 아주 든든한 직원이다.
영철은 한 번 결혼에 실패했으나 지금은 아내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이래서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나 보다. 그것이 비록 외국 짚신일지라도 말이다.
영철이 또한 처갓집에 아주 잘한다. 우즈베키스탄 장인 장모를 두 번이나 한국에 초청해서 한국으로 시집온 딸이 효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사돈끼리도 사이가 아주 좋단다.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함께 관광도 다니며 돈독하게 지내니 영철과 아내는 얼마나 흐뭇할까.
일요일인 어제 아침에 영철이한테 전화가 왔다. 친척 혼사가 있어 서울 가는 길인데 잠시 볼 수 있겠냐고 했다.
내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만남은 다음으로 미뤘지만 미안한 마음에 모처럼 길게 통화를 했다.
아내가 요즘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대전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고 했다. 환갑이 훨씬 지난 영철의 큰아들은 올해 고2다.
그동안 중학생 딸까지 할머니가 함께 살며 뒷바라지를 했으나 엄니 건강이 안 좋아져서 아내와 교대를 했다고 한다.
고3 수험생도 아닌데 뭐 벌써부터 이리 유난이냐고 할지 모르나 영철이한테는 금쪽 같은 자식이다.
서울대는 아닐지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은 꼭 보내고 싶다는 부부의 소박한 뒷바라지가 눈물겹다.
아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에 오지만 당분간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을 거라고 했다.
아들도 예전에는 아빠한테 전화 한 통 없던 녀석인데 할머니가 아프다니 전화를 자주 하면서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통화 내용이 아빠 안부가 아닌 전부 할머니 걱정뿐이어서 서운할 법도 한데 아주 기특하다고 했다. 공부도 곧잘 한다고 하니 이런 효자가 따로 없다.
친구는 우즈베키스탄 여자와 결혼하면서 농장도 잘 되었고 두 자식까지 얻었으니 늦복이 터진 셈이다. 친구의 늦복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다.
아직까지 이 친구한테 물어보지 못한 것이 있는데 나중 만나면 꼭 물어볼 참이다.
"니가 코 큰 여자한테는 자X가 안 선다는데 정말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친구는 당황해서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니 니, 그그 그 말, 어어 어데서 드 들었냐?"
여기까지가 오늘 나의 미시사의 끝이다. 내 친구의 행복은 이제부터 시작일 테고,,
첫댓글 영철씨의 미시사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늦장가 들어서 그나마 초혼에 실패하고 딸까지 잃은 대목에서 가슴 아프다가
재혼에 성공하였다니 제 속이 다 시원하고 흐뭇합니다.
영철씨의 귀한 아들이 꼭 입시에 성공하길 바랍니다.
긴 글을 단숨에, 그것도 매우 공감하며 읽게 써주시는 우리 현덕님, 엄지 척! ^^
ㅎ 언제나 긴 글을 좋게 읽어주시는 달항아리님시네요.
저도 오늘 이 글을 단숨에 써내려 갈 수 있었던 것이 내 친구와의 우정에 앞서 아들을 향한 부모님의 간절한 소망이 제 가슴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이런 것이 미시사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친구 아들의 공부 뒷바라지가 마치 제 일처럼 느껴져서 오늘 미시사의 마지막은 큰아들 이야기였네요. 종종 후속 편을 써보도록 핳게요.
달님의 편안한 밤을 빕니다.ㅎ
영철씨 미시사 결국은 좋은 짝을 만났네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네요^^~
그나저나 우리아들도 마흔인데 아직
결혼 할 생각을 안하니 우야믄 좋을까요?
요요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동안 고생을 많이 한 제 친구가 행복하기를 바란답니다. 분명 그럴 거구요.
글구, 요즘 마흔 살은 옛날 서른 살보다 더 어리게 인식합니다. 때가 되면 아드님도 짝이 나타나겠지요.
제 친구처럼요.ㅎ
하하하
코 큰 여자한디는 뭣시 어짠다고롸!
여기까지 읽고
이 대목을 까묵을까봐 일단 써 놓고
이어달리기합니다ㆍ
아! 활자 친근자이신 윤슬님시군요.
저도 윤슬님 따라서 여기에서 반전 없는 이어달리기를 하겠습니다. 댓글은 다시 아래로 이어집니다.
글자 수는 꼭 세지 않아도 됩니다.ㅎ
재혼에 성공해서
괜시리 제가 좋네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어요.^^
파란여우님께서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내 친구가 재혼 초에는 조마조마할 때도 있었는데 잘 풀린 것을 알고 너무 기뻤답니다.
행복은 종종 확인하지 않아도 믿음이 있으면 굳건할 테지요. 고운 밤 되시길요.
영철씨의 미시사를 유현덕님의 필력으로
써내려가는 중간중간에
해아래의 인생사를 보는 듯요
한 번 실패 후
다시
재혼해서 만나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영철씨
저도 따라 응원합니다
아들이 대학에
꼭 인서울하기를 빌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제가 실패한 인생이라서 그런지 이런 삶에 유난히 눈길이 많이 간답니다.
일부러 어려운 길로 돌아서 갈 필요는 없겠으나 남녀 인연만큼 마음대로 안 풀리는 일도 없지요.
내가 좋으면 그쪽이 싫다하고 그쪽은 호감을 갖고 다가오는데 나는 별로라서 물러서고 싶기도 하니까요.
결혼 없이 혼자서도 잘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결혼 문제로 부모 속을 그렇게 끓여야 했던 친구의 애타는 마음을 저는 감히 가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저의 인생 스승 같기도 하지요. 친구 아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다하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봅니다.
순식간에 쫘~악
유현덕님의 글,
넘 편하고 재밌게 읽었어요.
미시사(微視史)라
어~!!
내 삶의 흔적도 누군가가 기록으로 남긴다면..
불현듯
별 희안한 상상의 나래를...ㅎㅎ
마스카라님 안녕하세요.
긴 글을 편하고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저도 생각 나는 대로 술술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으나 일부러 가지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틈틈히 일기를 쓰면 그것이 바로 본인 미시사이면서 나중 자서전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일기를 씁니다.ㅎ
평화로운 밤 되세요.
지구는 하나
우리들도 하나~!!
짚신 짝이 쪼까 멀리있었지만
제대로 맞는 짝 찾아서
잘살고 계시니 천군만마 얻은 영철님
부디 아들도 소원대로
인서~~~~울 하길 저도 응원합니다
영철님 심성이 참 곱겠어요
ㅎ 응원 대장 정아님시네요.
지구는 하나, 우리들도 하나라는 정아님 댓글에서 열려 있는 마음의 소유자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이 속을 많이 끓기는 했어도 귀한 손주를 얻은 마음에 보상 받은 기분일 걸로 봅니다. 정아님 말씀처럼 영철이의 심성이 곱습니다.
부부가 나이 차이가 많음에도 여전히 깨소금 냄새 풍기는 금슬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응원 감사합니다.
늘 그렇듯이 유현덕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이처럼 재미있는 글은 유현덕님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ㅎ 수피님 늦은 밤에도 오셨군요.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썼는데 수피님께서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글 쓴 보람이 있습니다.
행여 제 글이 재밌었다면 제가 아는 것만, 보고 겪은 것만을 쓰기 때문일 겁니다. 수피님 감사합니다.
제 아들도 오십이 넘어가는데 아직 그런데 외국 색시 말만 해도 밥 숟갈도
안 들고 금식 하는 바람에 그 마저도 막혔지요 저러고 혼자 살겠지요 뭐
저는 영철씨 어머니처럼 적극적이지도 못하고 아들이 제 말에 따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이젠 마음 비웠어요
영철씨가 잘 되었다니 제가 다 기쁩니다 현덕씨 고마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제 친구 같은 경우에도 부모님 성화로만 되었다기보다 영철이가 호응을 했기에 가능했지요.
주사위를 열 번 던졌는데 계속 꽝이다가 딱 한 번 맞춘 행운이라면 그것도 운명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죽하면 외국 여자하고 살까 싶기도 하지만 영철이의 차선책이 행복의 열쇠였기를 바란답니다. 운선님의 귀한 아드님의 선택을 저는 존중합니다.
평화롭고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에 마흔 둘 이면 늦긴 늦었네요.
수난사..
과정은 힘들었지만 모두 이겨내고 해피엔딩으로
달려 가고 있으니 그게 다 친구 분의 노력 덕분이겠지요.
좋은 친구와의 우정 영원하시길 빕니다.
멋진 글.."미시사" 잘 읽었습니다.
김포인 선배님 다녀가셨군요.
친구의 파람만장한 결혼이야기에서 저는 구경꾼에 불과하지만 그가 겪었던 일들이 얼마나 신산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연변, 베트남, 캄보디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친구 말로는 관광이 아닌 오직 결혼을 위해 입국했던 나라가 6개국이라 했는데 나머지 나라는 생각이 안 나네요.
항상 좋은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재미지게 잘읽었네요ㅎㅎ
그당시 한창 노총각들 외국여성과 맞선보고 결혼했지요
영철씨가 가정을
잘이루고 산다니
좋으네요
친구와의
우정도 흐믓해요
저희 남편 강원도
산골 친척네
두가구 한집은
태국여성과 해서
잘살고 있고
한집은 캄보디아여성과
했는데 자녀도 안낳고 몇년살다
재산다팔아 캄보다아가서
사업한다더만
모두털리고
혼자 귀국했어요
사기당한거 같아
안타까웠어요
문선이님께서 재미지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본문에는 쓰지 않았으나 내 친구도 도망간 아내를 찾아 베트남까지 갔더랬습니다.
그동안 쏟은 돈도 돈이지만 배신감에 안 갈 수가 없었나 보더라구요.
그럼에도 친정에서는 자기들도 모른다 발뺌을 하고 베트남 경찰까지 한통속,, 결국 신변위협을 느껴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네요.
결혼은 한국인끼리 해도 실패할 확률이 있는데 외국인과의 결혼은 더하겠지요. 그래도 제 친구처럼 잘 사는 커플도 있으니 기쁘게 응원을 합니다.
요즘도 지역 자치단체에서 노총각들 결혼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이 있다니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덕분에 미시사(微視史)란 역사장르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례로 드신 친구분의 개인사가 파란만장하네요.
그래도 비록 국적이 다르지만, 종국에는 진정한 인연을 만났으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노심초사하셨을 부모님들에게도 효도를 하고 본인의 행복도
쟁취하셨으니 미지의 제가 다 기쁩니다.
3월 잘 보내시고, 활기차고 행복한 4월 맞이하세요.
아하~ 우린님이 미시사를 알게 되셨군요.
어쩌면 역사에는 기록되지 않았을지라도 이 세상을 유지하고 받치는 고임돌은 이름 없이 살다간 무명의 사람들이었다고 봅니다.
모진 핍박과 전염병, 흉년, 기근에도 할머니가 아버지를 낳고 엄마가 아들을 낳으면서 손자까지 면면히 생명을 이어왔으니까요.
그들이 바로 미시사의 주역들입니다.
우린님도 행복한 봄날 되시길요.
참 재미나고
웃음이 절로 머금어지는
글
유현덕님.
얼마만에 읽어보는
제대로 된
글인지 ......
최고십니다.
와우~ 페이지님 반갑습니다.
저는 글을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면서 쓰기도 하지만 저를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제가 가장 인생이 안 풀리는 사람이라 생각했다가도 내 친구 영철이 같은 인생을 보면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지요
글로든 댓글로든 소통한다는 것이 이렇게 페이지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답글다는 마음일 겁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TV 다문화 고부열전 프로그램을 너무 많이 봐 온 터라 '까무잡잡이면 어때요? 신랑신부 사이 좋으면 그만이지' 이렇게 받아주고 싶었는데 도망가버리고 마지막 귀착지가 우즈베키스탄으로 정착했으니 잘 된 일이지요.
친구 영철씨는 무슨 운을 타고 났기에 나이 마흔 다섯까지 ?? 여복이 없다고 해야 하나 염복이 없다고 해야 하나? 참나 원.
내 친구는 러시아 같은 서양 여자보다는 동양 여성에게 더 호감이 가는 편인가 봅니다.
베트남까지 가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모셔왔는데 그만 달아났으니 얼마나 배신감이 들었겠는지요.
그래도 우즈베키스탄 여성을 만나 날라가버렸던 행복을 다시 찾았으니 이런 것을 전화위복이라 할 만합니다.
60중반을 향해가는 영철이가 지금도 금슬을 유지하는 것은 그의 곱고 부드러운 성품이라 생각하네요.
흰구름도사님, 항상 좋은 날들 되세요.
친구분의 장가들기가 참 고단했겠지만 끝이 좋으니 다 좋은거죠.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리진님의 댓글을 이제서야 봤습니다.
이런 것도 대기만성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뒤늦게 터진 여러 복들 누리는 영철이가 참 보기 좋답니다.
희망은 이래서 늘 품고 살아야 나중에라도 내것이 되는 모양입니다. 너무나도 좋은 봄날입니다. 리진님의 봄날이 행복하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