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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5장,
서울 댁은 오늘도 육지에 나가려고 준비를 한다.
자꾸만 꿈에 누군가가 나타나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다.
또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며 잠에서 깬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를 그렇게 애타게 불렀는지 자신을 오라고 손짓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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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보름동안을 거의 매일이다시피 육지인 통영으로 나가 그저 할 일없는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한
다.
눈에 들어오는 것 하나하나 살펴보고 행여 어떤 기억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
지만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다.
서울 댁은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
수많은 군중들 속에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하건 어떤 행동을 하건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도 없다.
오늘도 시간을 보며 부두로 나간다.
“아지매!
오늘도 통영 가시는 갑소?“
매일 부두로 나가는 서울 댁을 보며 아는 척을 하는 사람들이다.
뒤로 돌아 세워 놓으면 딱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찬다.
참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과거를 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딱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는 섬사람들이다.
자신들과는 많이 다르고 무언가 사연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그 모든 과거를 잊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들 것인가를 생각하며 동정을 하는 사람들이다
영우엄마는 오늘도 육지에 나가는 서울 댁을 보며 긴 한숨을 내 쉰다.
요즘 들어 잠시도 집에 붙어 있지 않고 저렇게 매일을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가는 서울 댁이 참으로 안
쓰럽다.
그렇다고 어떤 기억을 찾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기억해 내는 것이 없는 서울 댁이 안타깝지만 자신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라보고 지켜보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배가 들어오는 시간 영우엄마는 부두에 나가본다.
나갔다 들어올 때마가 어깨가 축 처져서 들어오는 서울 댁의 모습이 처량하다.
나가서 마중이라도 해 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까 하는 생각으로 멀리서 배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영우엄마의 짐작대로 서울 댁은 몹시 지친 표정으로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몸짓으로 배에서 내린다.
“서울 댁아!”
힘없이 걷고 있는 서울 댁은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고개를 들어 영우엄마를 바라보며 힘없이 웃는다.
“아주머니가 여기는 웬일이세요?”
“내 시방 니를 기다리고 있는 거이 아인가?”
“저를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봐라!
니 이렇게 힘이 없이 올까 싶어서 니를 마중 나왔다.“
“정말 저를 위해서 나오신 거예요?”
“안 그카몬 내가 여그를 와 나왔겠노?
오늘도 아무것도 떠오르는 거이 없제?“
“........................”
“그런다고 그케 실망하덜 마라!
조금씩 좋아질 거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거이다.
요즘 니를 보믄 딱하고 안쓰러버서 마음이 짠하다.“
“고맙습니다.
그래도 아주머니가 이렇게 저를 생각해 주신다는 것을 아니 기운이 솟습니다.“
두 여인은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이제 어느 곳을 가더라도 편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서는 서울 댁은 세상에 가장 편안한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세상사람 모두 부모와 형제들이 있건만 자신만은 그 어디에서도 부모 형제들이 없는 모양이라는 생
각을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자신은 기억을 잃어버렸다고 해도 부모나 형제가 있으면 자신을 찾을 것이라는 생
각을 하니 애초부터 고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서글프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머니!
저는 아마 고아로 살아온 모양입니다.“
“그러지 않을 거이다!
서울 댁의 모든 것을 보면 우리네 촌사람들보다 많이 배우고 세련된 것을 보면 필경 좋은 환경에서
자란 거 같다 아이가.
아마 서울 댁을 애타게 찾고 있을 가족이 있을 것 같다.“
“........................”
서울 댁은 늘 힘을 주는 영우엄마가 고맙다.
“요즘도 꿈을 자꾸 꾸나?”
“네!
그러나 잠을 깨고 나면 누군지 제가 누구를 애타게 부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누군가 애타게 저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것이 누구인지 어디인지 전혀기억이 나는 것이 없어
더욱 안타깝고 답답합니다.“
“그럴거이다.
허지만 서울 댁아!
무엇이든 급하게 맘먹지 마라.
기회가 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 거이 아니겠나?“
“그것이 언제가 될지..........
언제까지 이 답답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아무런 생각하덜 말고 어여 드가서 푹 쉬소.
그라믄 머리가 조금은 개운해질 거이고 새로운 생각도 떠오를 거이다.“
영우엄마는 서울 댁이 방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간다.
서울 댁은 그런 영우엄마를 참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다.
그러나 자꾸만 허전해지고 답답하다.
그 남자가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바다에 나가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그 남자의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자
신이 잡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향해서 그리움이 쌓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댁은 영우엄마의 성화로 다시 갯벌로 나간다.
또 다시 육지에 나가서 서성이며 해매이고 다닐 서울 댁을 붙잡고 갯벌로 함께 데리고 나온 영우엄마
다.
“오늘은 낙지를 잡아보자.
요즘 낙지 값이 참말로 좋다 안카나.
돈을 만지는 재미를 붙여보는 것도 참말로 좋지 않것나?“
“네!”
그러나 서울 댁은 돈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 남자가 그동안 모아 놓은 돈만 하더라도 생각보다 상당한 액수가 된다.
그 남자의 하나 있는 아들은 어디에 있는지 연락도 닿지 않고 한 번도 본 적이 없기에 있는지 없는지
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사망신고와 더불어 자연히 통장의 모든 돈과 그의 재산은 자연히 노춘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
는 서울 댁이 관리를 한다.
이제 그 누구도 서울 댁이 노춘자라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다.
주민등록증역시 서울 댁의 사진으로 되어 있고 마흔 다섯의 나이로 되어 있다.
서울 댁은 자신이 노춘자라고 알면서 살아간다.
서울 댁은 갯벌에 나가서 모든 것을 잊고 영우엄마를 따라 낙지 잡는 것에 열중하며 모든 근심을 잊
는다.
이대로 그냥 살다 죽어가는 것이라고 체념을 한다.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그저 영우엄마라는 사람이 있으니 외롭고 허전할 것도 없다는 생각
을 한다.
외로움이 무엇인지 허전함이 무엇인지 느낄 사이도 없이 영우엄마를 따라서 부지런히 일을 하고 돈
을 벌자는 생각을 한다.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조차 없다.
그렇다고 돈을 써야할 곳도 없는 서울 댁이다.
나들이를 할 일이 없으니 고급의상도 필요치 않다.
그렇다고 누구하고 외식을 할 사람도 없으니 값비싼 음식점에 들어가 우아하게 외식을 할 일도 없다.
어쩌다 영우엄마하고 육지에 나가 중국집에서 자장면이나 탕수육을 사 먹는 것이 두 여인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강인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낙지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면 자연히 돈이 손에 쥐어진다.
영우엄마의 수고로 서울 댁이 가져가지 않아도 영우엄마를 통해서 돈이 들어오는 것이다.
“어떠드나?
이리 돈을 손에 쥐면 기분이 안 존나?“
“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아주머니가 너무 수고를 많이 하시는 것이 미안하지요.“
“우리 것을 하는 끝에 해주는 거인에 미안스러버할 거이 읎다.
돈이란 많아도 또 갖고 싶은 거이 아니것나?“
“네!
그렇지요.
아마 돈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지요.“
서울 댁은 그렇게 영우엄마의 말에 맞장구를 친다.
이제 서울 댁은 남의 말에도 기분을 맞추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긴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잊자고 생각하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을 한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자신의 백지 같은 생각 속에 무엇을 끄집어 낼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나 서울 댁은 밤이 되면 무섭다.
악몽에 시달리고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두렵다.
또한 그 누군가가 자꾸만 자신을 부르는 모습에 더욱 그리움이 커져간다.
이 세상에 자신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인가?
또한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애타게 찾아다니고 있는 것인지도 알고 싶다.
그러나 잠에서 깨어나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되짚어 보려고 해도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도 저녁을 먹고 티비 앞에 앉아 있다.
오지 않는 잠을 자기보다는 그렇게 티비라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머리가 아프지 않고 좋다는
생각이다.
티비에서 보는 대도시의 모든 것들이 생소하다.
매일 보는 것이지만 참으로 생소하기만 한 영상들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정말 저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현실감으로 다가오질 않고
있다.
화면으로 눈이 가 있지만 그저 무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늘 생각은 자신도 모르게 허공을 해매이고 있다.
언제나 그 무엇을 따라다니는 사람처럼 허공을 맴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가고 있다.
가로등이 없는 섬에는 밤이 되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컴컴하다.
잠이 오질 않아도 집 밖으로는 나갈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그 남자하고 함께 있을 때는 남자를 의지하고 캄캄한 길을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예
꿈도 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끔 달이 훤한 보름날에는 그래도 훤히 보이는 길이고 바다가 있지만 지금처럼 그믐이 다가오는 밤
이면 더욱 어둡다.
서울 댁은 한참을 밖을 내다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밖에 누군가 자꾸만 부르는 것만 같다.
그러나 선뜻 나서지지 않는 것은 어둠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이리라.
서울 댁은 그대로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 자리에 눕는다.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다.
이제는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자리에 눕는다.
그러나 쉽게 잠들지 못한다.
늘 그러했듯이 서울 댁은 한 시간 가까이 뒤척이다 잠이 든다.
그렇게 얼마나 잠이 들었을까?
또 다시 꿈속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라고 외치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을 부르는 소리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으로 가려고 애를 쓰지만 자꾸만 제
자리 걸음을 할 뿐이다.
“어.............어어 엄마!”
서울 댁은 자신의 음성에 놀라서 잠에서 깬다.
처음으로 자신이 엄마라고 부르며 잠에서 깬 것을 느낀다.
“엄마?
내가 분명히 엄마라고 했지?“
아무리 생각을 해 보려고 해도 자신을 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모습이었는지 기억을 해 낼 수가
없다.
분명히 엄마였을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인지 과연 자신이 살았던 곳이 서울이었는지 좀처럼 실날같은 작은 단서도 잡히
지가 않는다.
아직 아침이 밝으려면 멀다.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이미 잠은 멀리 달아나고 다시는 와 줄 것 같지도 않고 잠을 자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처음으로 엄마라는 단어가 꿈속이지만 자신이 외쳐 부르던 단어다.
“엄마!”
입을 열어 다시 엄마라는 단어를 불러본다.
“엄마, 엄마!”
서울 댁은 엄마의 그림자라도 찾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어나 집안을 서성인다.
멀리 여명이 터 오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보지만 무엇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본다.
그리고 바다로 나간다.
물이 가득 들어와 있는 바다는 참으로 잔잔하다.
잔잔한 아침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마음을 달래본다.
저 바다 건너엔 어떤 삶들을 살아가고 있을 것인가?
가족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엄마!
가만히 입속으로 불러본다.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대상이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 댁은 그렇게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간다
아침을 하고 싶지도 않고 밥을 해서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시간이 정지된 듯 그렇게 생각이 정지가 되어 버린다.
자신이 살아가는 삶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가야 할 특별한 이유도 의무도 보람도 없는 무의미한 자신의 삶이고 존재라는 생각을 하니 모든
것에 맥이 풀어진다.
그러나 달리 해 볼 수 있는 도리가 없다.
서울 댁은 장비를 챙겨들고 바위근처의 바다로 간다.
무슨 일이든 몸을 움직여 잡념을 없애고자 다시 거북손을 딴다.
아침도 먹지 않고 그저 몸을 움직인다.
그렇게 얼마를 일을 하다 보니 배가 고프다는 느낌이 든다.
멀리서 영우엄마가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갑자기 사람을 보니 반갑고 벅찬 가슴에 영우엄마를 목청껏 불러본다.
“아주머니!”
“니 여그 있을 줄 알았다.”
영우엄마가 다가오면서 하는 말이다.
“집에 가니 느 없다 아이가?
주방을 보니 밥 해묵은 흔적도 읎고 필시 아침도 묵덜 않고 이리 왔는갑다 하고 묵을 거를 챙겨갖고
안 왔드나?
배고프제?“
“네!
그러지 않아도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 어서 묵어라!
시방 시간이 맺신줄 아노?
벌써 한 낮이 아인가?
을매나 배고 고프겟노?“
영우엄마는 김치와 장아찌를 곁들인 밥을 가지고 나온 것이다.
서울 댁은 그런 영우엄마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그래도 아직은 자신을 생각해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마음의 의지가 되고 위안이 된다.
밥을 먹으면서 그래도 아직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다시 일손을 놀리며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매달리며 힘겨워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일을 한다.
피곤해 지고 바다가 허락하는 날까지 그렇게 바다에 매달리며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저 자신의
마음을 단순하게 하고자 한다.
스스로 기억이 날 때까지 그렇게 기다리며 살아보고자 한다.
때때로 쓰러질 듯 힘겹고 고통스럽지만 모든 것을 이겨내자고 다짐을 한다.
이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면 아무리 벗어나고자 발버둥을 친다고 해도 벗어 날 수가 없을 것이리
라.
문득 바다를 바라보며 엄마를 그려본다.
자신의 마음과는 달리 그렇게 바다를 보며 엄마를 생각해 보곤 한다.
그런 서울 댁을 바라보는 영우엄마의 마음도 안쓰럽다는 생각을 한다.
도움을 줄 수 없는 그저 바라보는 것이 전부인 것이 더욱 안타깝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서울댁의 그리움이 짠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즐감하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