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총각 때 나는 정말로 많은 여학생을 친구로 두었다.
밤 세워 군입대 송별파티를 할 때 마다 상대 여학생 그룹도 바뀌었다.
그래도 그 당시 성에 대해서는 무식할 정도로 순진했다.
얼마나 순진했느냐고 ?
그때까지도 고추(?)는 쉬야 만 하는 것 인지 알았었는데,
결혼하여 첫날밤을 치르고 나서야 "아하,
고추(?)는 쉬야 만 하는것이 결코 아니었구나 !!" 하고
알았을 정도로 성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했더랬다.
그러니까 까마득히 오래전, 국교,중학 9년을 함께 자란
이웃동네 흥수에게 나와 같은날 입대영장이 나왔다.
그리하여 청춘이 더가기 전에 즐긴다고 이틀이 멀다 하고
입대 송별파티를 언제나 흥수와 더불어 열었다.
영장받고 입영하는 순간까지 아마도 열번 정도
여학생들과 합동 송별파티를 밤세워 한것같다.
그날도 나와 흥수,창식,학수,종근,태율,(대고(대구대건고)4명, 타교2명)6명이
여학생 6명과 금호강강변의 정자 건너편 산중턱에 있는
정문정에서 큰방을 싼값에 하룻밤 전세내어 밤세워 놀았다.
하양을 나가다가 하양다리에서 우회전하여 한참을 내려가면
금호강변 산중턱에 외따로 있어 아무리 떠들어도 상관없었고
방값도 너무 쌌다.
정자에 앞뒤로 문짝같이 둘 있어 정문정이라 했다던가......
500여년전 정문정을 건립한 선생께서 하늘에서 내려다 보신다면
까무라칠 일이었다.
여튼 촛불 한자루 켜놓고 태율가 갖고온
건전지용 휴대전축을 틀어놓고 흥수네 다락 창고에서 훔쳐온
45도 안동소주 됫병(2리터짜리)에다 꽈배기 과자를 안주삼아
주거니 받거니 했다. 45도 안동소주가 어찌나 독했던지
됫병 한병으로도 12명을 해롱해롱하게 하고도 남았다.
기분으로 언제나 싸구려 샴페인도 한병 썩이고...
그리고는 그 당시 유행하던 트위스트,막대기 밑으로 빠지는 림보....
한참을 그렇게 신나게 노는중에 종근이가 화장실 나가다가
술도 취하고 캄캄도 해서 그만 실족을 해 돌부리에 머리가 깨졌다.
그 당시 장발이 유행이라 모두가 긴머리였는데,
종근이는 긴머리 뒷통수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정문정 관리인집에 구급약을 부탁하니 약은 없고
아쉬운데로 된장을 바르면 소독도 된다며 한주먹을 주었다.
내가 의사라도 된양 된장을 갖고와 하느작 거리는 촛불 아래에서
종근이의 피많이 묻은 오른쪽 뒤통수에 콱 찍어 바른 후
헌 광목 쪼가리로 질끈 동여메니 영낙없는 운동회때의 백군 같았다.
장발에 흰띠를 두르니 어쩌면 박수무당과 흡사하기도 했다.
여학생들의 염려스런 눈총에 종근이는 아픈 내색조차 못한 채
자못 씩씩한 양 된장 냄새 풍기면서 잘만 놀았더랬다.
초저녁 부터 시작한 파티라서 새벽 3시경쯤 끝나고
관리인 집에서 주는 엄청 큰 이불 한 채에 12명이 얼키고 설켜서 눈을 붙였다.
그런데 칠흑같이 캄캄한 그밤의 그 이불 속에서
애타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이야 귀신도 모르고 있었다.
보드라운 여학생 손이 이불 밑에서 살며시 다가와
흥수의 손을 잡고 오래도록 서로 손에 땀을 흘린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서로가 이성에 굶주린 탓이었는지 누군지도 모른채
서로의 손만으로 꼭 쥐어도 보고,간지러도 보고,손가락도 걸어보고,
쓰다듬어도 보고, 심지어는 낙관을 찍듯 상처가 날 정도로
흥수의 손등을 꼬집기도 했단다.
너무 긴장한 탓에 피로가 몰려와 손가락을 건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모두들 정신없이 노느라 지쳐 깊은 잠에 빠졌다가
동창이 밝고서야 간 밤에 별일이 없었는듯 모두들 부시시 일어났다.
그래도 나는 어젯밤 종근이 깨진 머리에 된장을 쳐바른 돌파리 의사였기에
밝은 햇빛 아래서 헌 광목을 풀고 오른쪽 뒷통수 장발에 덕지 덕지 엉겨붙은
된장을 떼어내고 상처를 살펴봤다.
그런데 민간 요법도 무시할것이 못 되는 것이 된장 덕분에
신기할 정도로 깨진 푯대하나 없이 너무 말끔히 아물어 있는것이 아닌가.
그러나 하룻밤 사이에 푯대하나 없이 완치된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그때 종근이가 하는말이 왼쪽 뒷통수도 아프단다.
그래서 왼쪽 뒷통수의 길고 긴 장발을 헤치고 살펴봤다.
아뿔싸 !!!! 이를 어쩌나 !!!! 거기에 펜촉만큼 큰 상처가 검붉게 보였다.
정작 깨진 대가리는 왼쪽인데 된장은 오른쪽에 쳐 발라 놓았으니 !!!!
모두들 똘똘 굴렀다. 방바닥엔 빠진 배꼽 12개가 주인을 잃고 굴러 다녔다.
깨진 상처는 된장한번 못발랐지만 그럭저럭 자연치유가 되어있었다.
곧이어 여학생들이 떼지어 모두 화장실로 가고 난후에
학수가 목에 힘을 주고는 그 허스키한 목소리로 자랑스레 떠들었다.
" 너희들은 간밤에 꿈도 못꿀 일을 나는 했다.
어젯밤 이불속에서 어느 여학생과 오랫동안 손가락 걸고 무언의 약속을 했다.
표시를 하려고 그 여학생 손등을 피멍이 들 정도로 세게 꼬집어 놓아서
오늘 손등에 멍이 든 여학생은 내것이다, 아 이 기분!! 하하하 "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옆에 있던 흥수가 버럭 소리질렀다.
" 아나, 이것따 !!!, 아고 나는 몬 사라..." 하며
자기의 피멍 든 손등을 학수의 눈앞에 바짝 갖다 대었다.
흥수의 손등을 꼬집은 장본인은 여학생이 아니라 바로 학수이었다.
재미로 읽어주세요..
첫댓글 어쩌다가 삶의이야기방에서 제가 쓴글이 하나있었어..같고왔어요 59년님들 잘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47 머스마들은 대부분이 아실겁니다....
동학님 학창시절 추억의 시간으로 잠시 다녀온 기분은 어떤가요
잘 보고갑니다...^^*
동학님 참 순진도 하셨군요 오늘도 저는 고딩 칭구 21명 만나 한잔 하며 옛날 이야기를 했지요아 덕성여고 개성여고 야기하며 추억을 느껴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
안주
우리들의 어린시절,, 공감이 갑니다
글 솜씨가 대단하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깔깔~깔~~~배꼽빠지는 소리~~~ㅎ ㅎ ㅎ글을 좀 쓰시네요 친구님~~ㅎ ㅎ
그시절에는 일대일이란 아예 꿈도 못꾸던 시절이라 59들이 알면 거짓말인줄 알것쥬?
그때도 아이돌을 꿈꾸는넘은 있었다.
겨울방학 어느날 부모님이 동생들 데리고 큰집제사 가는날 우리를 초대해서
밤이 늦도록 키타로 비틀즈 노래를 목이터져라 불러대던 친구는
내리 3년을 대학에 떨어진뒤 북한으로 넘어갔는지 감감 무소식~~ㅎ ㅎ
그시절 사내친구들은 여학생 앞에서 어쩜 그리도 순진한지~~직접 고백한번 못해보고
죄없는 편지지에 사랑고백 한번해보고 툇짜 맞았다고 해병대 자원입대하는 그것도 가장쎈 UDT라나 뭐라나~~ㅎ ㅎ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들~
건전지용 휴대전축... 우리는 야전이라 불렀는데 ㅎㅎ 어릴적 추억들이 새삼 또올려집니다.
동명아우님은 좀 바쁘셨나봐요.
한며칠 뜸 했었지???
자주 드나들던 사람이 보이지않음 무지 궁금하여짐~~~누나마음~~ㅎ ㅎ ㅎ
옛날에 어릴적 우리도 한마을에 살던 남자 여자 친구들과옛날이여
한방에서 윳놀이도 하고 부모들 모르게 놀던생각이 꿈과같이
다시한번 생각이 납니다 순진한 어린시절 그때가 그립네요 아
ㅎㅎ그때가 참 즐거우셨죠?좋은 추억 잘 간직하세요 ㅎ글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