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개선 프로젝트' 네이버 등 창업자들이 만든 기부 펀드 건축가와 협업해 노후된 놀이터 재건축… 군산 조촌동에 '놀이터 삼각지대' 만들어
녹슨 미끄럼틀,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 바닥, 버려진 담배꽁초…. 전북 군산시 조촌동에 사는 초등학생 재영이가 작년까지 집 앞 놀이터를 가기 꺼린 이유였다. 재영이뿐 아니다. 윤아는 "개똥이 많아서 까치발을 들고 간 뒤론 가기 싫어졌다"고 했고, 소이는 "대낮에도 술 마시는 아저씨들이 있어서 놀이터 가기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놀이터로 달려간다. 지난해 12월 군산동초등학교 근처에 깨끗하고 근사한 '놀이터 삼각지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군산시가 세이브더칠드런, 벤처 기부펀드인 C프로그램과 손잡고 '놀이터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물이다. C프로그램은 2014년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정주 넥슨 창업자,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이재웅 쏘카 대표 등 1세대 벤처 5인방이 사회 기부를 위해 공동 출자해 만든 펀드. 기획 단계부터 놀이터의 주인이 될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디어를 모았고, 건축가 고기웅(45)이 설계와 디자인을 맡았다.
◇벤처 자선기금으로 탄생한 놀이터
지난달 30일 조촌동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넓은 공터에서 우르르 뛰어다니며 공을 차거나 놀이기구에 올라타고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오면서 연신 깔깔대고 웃었다. 이곳이 특별한 건 시작부터 아이들이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C프로그램 신혜미 프로젝트 매니저는 "초등학생, 학부모 등을 다양하게 인터뷰했고, 특히 아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려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바라는 건 화려한 놀이기구가 아니었다. 녹슨 시설 없이 깨끗한 곳, 마음 편하게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놀이터를 원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계단을 오를 때 미끄럼 방지 같은 장치가 있으면 좋겠어요." "공을 찰 공간이 넓었으면 좋겠어요." "녹슬지 않은 그네나 철봉이 필요해요."….
담당자들은 먼저 공공 놀이터 실태 파악이 급하다고 봤다. 전국 최초로 시(市)에서 관리하는 공공 놀이터 74개 전체를 돌며 환경 진단을 벌였다. 진단 매뉴얼을 만들고 시민 조사원 50여명을 뽑아 현장 조사를 실시했다. 노창식 군산시 아동정책계장은 "개선이 시급한 조촌동 놀이터 3곳을 놀이 구역으로 묶어 우선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며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기구보다 청결하고 안전한 놀이터를 원한다는 '유지관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이 프로젝트의 큰 소득"이라고 했다.
◇건축가가 설계…아이들 상상력 펼칠 공간으로
날것 그대로의 아이디어를 설계로 옮긴 고기웅은 '해우재'와 '판교주택' 등으로 주목받은 건축가. 경북 의성군 방과 후 놀이터 '도리터', 강원도 영월군 연당별빛 지역아동센터, 충남 공주시 로보카폴리 안전체험공원 등을 비롯해 전국 놀이터 10여곳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고씨는 "놀이터 설계를 한번 시작하니 사명감 같은 게 생겼다"며 "조촌동 삼각지대는 놀이터 세 곳의 성격과 연령대를 다르게 해 유아부터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뛰어놀 수 있게 고려했다"고 했다. 그래서 탄생한 놀이터가 ▲자전거도 타고 공놀이도 실컷 할 수 있는 '플레이 필드' ▲활동량 많은 초등학교 아이들 대상의 '모험의 언덕' ▲어린이집 유아들을 위해 작은 놀이대를 만든 '부메랑'이다. 걸어서 20분이면 놀이터
세 곳을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전국 어린이 놀이시설 통계에 따르면, 전체 7만2271곳 중 절반인 3만6051곳이 주택 단지 내에 있다. 고씨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는 대부분 건설사에서 만드는데 전문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이라며 "공공시설인 놀이터를 민간이 절반이나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