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등 6학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을 때,처음으로 엄마의 왼손가락 끝이 떨렸습니다.
겨울이라 추워서 그러나보다 넘기셨지만 떨림 현상이 계속있었고 몇주 후 여의도 성모병원에선
우울증이란 진단으로 입원을 권유하셨어요.
두달간 입원하셨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던지,우울증 약만 잔뜩 받곤 퇴원하셨죠.
38살이란 나이에 파킨슨진단은 너무 생소했는지 검사도 못 받으셨었네요.
서울대학 병원에서 파킨슨 진단을 처음 받은 날 엄마는 집에 오셔서 하염없이 우셨어요.
불치병이라 제가 혼자 될까봐 너무 블쌍하다고,엄마 없이 어린 네가 어찌 살아가냐고,.또
본인 삶이 너무 불쌍하고 어의 없다고..계속 우셨어요.
전 .. 당장 엄마가 돌아가시는 줄 알고 매일 묵상과 기도로 울면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그 때문인지 사춘기도 조용히 보냈고 학창시절 공부도 꽤 잘해서 모범생으로 졸업했어요.
온통 머릿속엔 무조건 잘 커야 한다는 소명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야 엄마가 덜 슬플테고, 그래야 아빠가 긴 방황을 끝내고 돌아 오셨을 때 더 죄스럽고 미안한 마음이 드실것이다 ..하면서요.
엄마를 깊이깊이 사랑하셨던 아빠는 발병이후 술에 빠지셨어요.
밤마다 소리지르고 ,울고불고,..엄마와 전 저녁9시에 아빠가 귀가 하지 않으시면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불안에 떨며 밤을 보내야 했죠.
6년이 지나서야 맘을 잡으셨고 ,저도 대학졸업 후 직장인이 되었죠.그 6년이 제 생에가장 잊고 싶은
암흑기였습니다.매일밤 19층 아파트 창문에 걸터 앉아 발끝이 시려오는 아픔을 느껴야만
방안으로 내려왔을 정도예요.발밑 가로등이 너무 따뜻해 보여서 제가 위로 받고 있다는 생각에
다음날을 생각 할 수 있었어요.그 때는 절실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너무 어린 아이였네요.^^;
대학 생활 내내 결혼 생각은 안 했었는데,전 외동딸이고 엄마를 끝까지 모시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그러다 첫사랑에 빠졌고,사랑 할 수록 빨리 헤어져야 한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처음부터 제 상황을 알고 있었던 그 사람은 절 더 꼭 안아 주었죠.
너무 신기한건 제가 결혼을 한다는 사실이 부모님껜 큰 행복이였다는 거예요.
전 책임감 없이 의무를 져 버린단 생각에 괴로웠는데 말이죠.
제가 부모가 된 지금에야 그분들의 맘을 이해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간이 흘러 제가 ,엄마의 발병했던 그 나이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절망감도 더 이해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아빠의 방황이 어떤 심정이였는지도
이해가 됩니다.너무도 젊은 나이에 감당 할 수 없는 슬픔을 당하신 두 분이, 지금 제 옆에
저와 함께 동행하고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도 기쁩니다.
엄마의 병환이 이젠 많이 깊어지셨어요.올 4월이면 환갑을 맞이하십니다.
"1년만 더 살게 해 주세요.."
했었던 22년전 기도가 지금껏 마술을 부리나 봅니다.어린 절 두고 먹먹한 가슴이셨던 그 날이 흘러
남편도 있고 두 아이도 키우고 있는 다 큰 딸을 보고 뿌듯해 하십니다.
작년 말에 음식을 삼키는데 어려움을 느끼셔서 결국 위장관 수술을 받으셨어요.미각이 있는데 음식을 드실 수
없는 괴로움과 상실감에 저희 가족 또다시 좌절감을 느꼈지만 그 수술을 통해 약물이 정확히 투여 될 수 있어
활동시간이 좀 더 늘어났습니다.겨울 방학을 맞이한 손주들이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시고 손도 흔들어 주실 수 있고,젖은 양말을 갈아신켜 주시려 이리저리 넘어 지셔도 마냥 즐거워 하십니다.
활동시간이 되시면 세수도 하시고,화장도 하시고,옷도 갈아 입으시고 ,농담도 하십니다.
영어를 잘 하는 손녀 딸에게 일본어도 뽐내시구요..*^^*
작년엔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엄마의 바로 윗 오빠인 외삼촌도 돌아가셨어요.외삼촌도 파킨슨이였는데,
폐렴 합병증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충격에 엄마도 나빠질까봐 장례얘긴 비밀로 했었는데 결국 알게 되셨구요.
그런데..한동안 침묵하시더니.."나도 준비됐어~"하시며 꽃들을 어루 만지시더니 조용히 잔디를 걸으시곤
힘든 내색을 전혀 안 하시더군요.
엄마의 그 마음을 헤아리기란 ..지금 저에겐 너무 어려운 것 같아,가슴에 담고만 있으려구요.
훗날 저도 알게 되겠죠.제가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 했듯이,앞으로 살아 낼 시간들 또한 제게
교훈이 되고 ,희망이 되고,추억 할 수 있는 여유가 되겠지요.항상 먹먹한 아픔을 안고 살고 있지만 이 또한
삶의 에너지가 되네요.지금껏 혼자가 아니였다는 것.엄마,아빠가 늘 계셨다는 사실이 절 참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본인은 아파서 짐만 되는 건 아닌지 늘 걱정하셨지만, 제 마음은 늘 벅찬 사랑을 받고 있다는 고마움에 한없이 감사
하고 있다는 걸 우리 엄마가 꼭 아셨음 좋겠어요.
어려서 했던 약속 중 .크면 엄마,밍크 코트 사 줄께..했던 약속을 올 겨울에야 지켰어요.
정작 입고 외출도 못 하시는 지금에서야 받으셨는데도 한 없이 행복해 하시네요.
비행기 한번 타 보고 싶다고 하셨던 소원도 풀어 드렸는데 정작 호텔 밖엔 한 발자국도 못 나가셨어요.
그래도 친척분들 오시면 비행기 탔다고 자랑하십니다.
늘 모자란 딸을 이렇게 감싸주시는데 ,전 또 오늘도 엄마생각 하는 시간이 짧아졌네요.
제가 살면서 제 딸에게도 제가 받은 사랑,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첫댓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읽으니 눈물나네요 ㅠㅠ 아픈 딸 걱정하시는 엄마한테 투정부리는 나인데,,
갸륵한 딸이군요 나를 눈물짖게 하는 딸이여.............
아멘. 파병 환우의 주위에 분들이 특히 가족들이 '편안한길로'님과 같은 마음과 보살핌을 환우들에게 주신다면 현실은 병으로 아프지만 마음은 건강한 사람들 이상일 것입니다. 환자인 아내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파병보다 더한 MSA란 병명의 아내에게 치료로서 내자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고 외로울 때 저에게는 주예수님이 참 위로가 되셨지요.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말하더군요, 5년만 더 살고 싶다구, 결혼 적령기가 된 아들딸이 결혼하는 것을 보구 싶다는 거지요. 어머님은 손주까지 보셨군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가슴이 저려 오는 글 입니다..ㅠㅠ
편안한길로님~! 효심에 숙연해집니다 .더 행복하시길 빌며, 지극한 효심에 감동하여 어머님병증이 사라져 더 행복한 여생이 되시길 빕니다.
눈물이 정말 끝이 없이 흐르네요...잘 견뎌오셨고 지금 행복하시니깐 정말 부럽습니다^^
저희 아빠에게도 희망의 끊을 놓지 않겠습니다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글이군요 진인사 대천명의 자세로 사신것 같고요 앞으로도 행복한 일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흐믓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것 같아 기분이 좋으네요. 밍크코트를 입고 거리를 나서지는 못해도 이사람저사람에게 자랑 짐작이갑니다.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속을 이해한다더니 참 잘하셨어요 ^-^ 짝 ~짝 ~짝 ~ 박수를 보낸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