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소소한 행복
장마와 불볕더위의 여름을 등지고 9월이 문을 열었다.
이별과 만남의 교차점에서 바람 들어온 창문은 닫았다.
가을의 길목 초입에 9월을 부르는 풀벌레 우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파란 하늘은 끈 풀린 헬륨 풍선처럼 자꾸 올라간다.
조석으로 내린 찬 서리는 길섶에 쪼그려 앉은 민들레를 괴롭힐 때다.
찬 이슬 머금은 풀잎 향기에 마음 빼앗김이 행복 그 자체다.
햇살이 점점 그리워질 계절,
하얀 갈대 무리가 발레리나처럼 춤출 가을이 만연하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 앞에 자신을 갈무리하기 좋은 시절이다.
가냘픈 손 흔들며 반겨주는 코스모스 핀 가을 속으로 나가고 싶다.
풍성한 가을날,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아름다운 열매 맺길 바랄 뿐이다.
약한 자의 아픔을 보듬는 따뜻한 사람이 주변에 더하면 좋겠다.
갈바람 불어도 봉지 씌운 과일을 광주리에 담은 아저씨처럼,
해지기 전 마른 고추 거둬들인 아줌마같이 가을걷이하듯 말이다.
아침을 숨차게 달리고 돌아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에 젖는다.
갈증을 해소하고 빨리 욕실로 들어가고 싶지만 멈춘다.
빗자루 들고 기쁨으로 골목길을 쓴다.
인정해 준 사람은 앞 건물 사장님뿐이다.
가끔 창문을 열고
‘목사님, 우리 집 앞을 깨끗하게 청소해 줘서 고맙습니다.’
‘뭘요?’ 대답하지만 지속할 힘을 얻는다.
그 어르신은 교회 차가 들어온 것 보면 주차 봉을 옮기신다.
환한 얼굴로 맞아 주시기에 저절로 허리를 굽힌다.
가까운 사람과 이웃끼리 미묘한 갈등이 생기기 쉽다.
수학보다 풀기 어려운 현실에 작은 섬김이 좋은 윤활유다.
사실은 문제보다 이웃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
먼저 이웃의 삶에 더하고
내 인생의 감정을 빼는 미적분은 쉽게 답이 나온다.
아니 무슨 일이든 착한 마음으로 내민 손이면
삶의 어려운 방정식도 풀리는 법이다.
심력도 단련되어 웬만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갯벌처럼 길게 누워 편히 잔다.
땀에 젖은 운동복 제대로 벗어 놓기 쉽지 않다.
빨래하는 아내 위한 배려에 옷과 양말을 가지런히 세탁기 앞에 놓는다.
남편의 매너다.
매일 운동해도 음식을 절제하지 않으면 도로 묵이다.
아내가 단팥빵 하나를 계단에 뒀다.
어릴 때 그토록 먹고 싶었던 빵이지만 침상에 올려놨다.
결국 아내가 먹었다.
가끔 막대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서 유혹해도 손대지 않는다.
지난달 선교사님께 김부각을 선물받았다.
그도 어머니 입맛 다시라고 드렸다.
‘생각보다 맛있다’며 두 봉지 돌려주시며 빈 상자까지 가져오셨다.
파지 한 장이라도 모아 이웃에게 드린 아들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고 협력하면 쉽다.
배 집사님께서 월요일 오전 교회에 들리셨다.
막판 더위에 냉수 한 컵 드렸더니 시원하게 마셨다.
옷 보따리 내놓은 내 딸 건물을 못 찾으셨다.
핸드폰으로 검색한 사진을 보이며 설명해 드렸다.
아껴둔 오꼬시 한 봉지를 건넸다.
‘맨날 목사님께 받아 죄송하다’ 말씀하셨다.
아니다 며칠 전, 집사님께서 더 나은 생고기 비빔밥을 사셨다.
괜한 인사였다.
잘 들려 가셨는지 전화로 확인하자 그 작은 일에 목소리가 밝았다.
김 권사님께 안부를 물었다.
아들 며느리 덕에 제주도로 사둔 어른과 여행 잘 다녀오셨는지?
전화 한 통을 감사하게 여긴 것 보면 나이가 드신 모양이다.
시내 가는 길목에 홀로 계신 이웃 할머니에게 롤 케이크를 드렸다.
‘목사님! 간식을 또 주세요.’
행복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수요일 아침, 빙모 상을 당한 목사님의 부고가 떴다.
장례식장이 용인이라 찾아가 문상하기 어려웠다.
대부분 짧게 조의 표하고 그도 먼 산 불 보듯 무심한 동역자도 계셨다.
하지만 부의금을 송금하고 마음 담아 위로 글을 썼다.
‘가을을 여는 아침 안개와 빗줄기,
배롱나무의 꽃 만개한 날,
이 시대의 아픔 속에 인고(忍苦)의 세월을 보낸 분,
그토록 가족 사랑에 헌신한 어르신을 떠나보내는
상실의 아픔이 유족에게 크리라 사료됩니다.
백세 시대, 나그네의 인생길에서 많은 수고와
슬픔으로 마감하심이 무상하고 허전하여
그 서운함에 많은 눈물 흘린 줄 압니다.
정말 마음 따뜻한 분께서 닻줄 거둔 항구의 배처럼
원치 않게 떠나보낼 채비하지만 유족의 고통은 많을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의 크신 위로가 유가족에게 임하길 기원합니다.
무엇보다 영혼을 담았던 옥체를 끝까지 잘 모시길 바라오며,
장례 절차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순적하게 진행되길 기도합니다.
조석규 목사님! 힘내세요. 이상래 목사 올림.’
김분례 할머니 돌아가신 후 그분께 전달한 요플레를 두고 기도드렸다.
두암동 국 권사님 생각이 났다.
‘권사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소식 전합니다.
잘 계시는지 늘 궁금합니다.
수요 예배 마치고 운행 다녀오면서 요플레 봉투 대문 위에 두었습니다.
작지만 드시고 힘내세요.
편한 밤 보내시고요.’
‘목사님 반갑네요.
지난여름 더위에 고생 많으셨지요.
이제 문자 봤어요.
집에 오셨으며 얼굴 보고 가시 제..
잘 먹겠습니다.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목사님 생신 때가 기다려집니다.
사모님께 안부 전하세요.
많이 보고 싶네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갈바람 부는 날,
머문 곳에서 하나님 사랑 전하는 작은 자로 더 섬기고 싶다.
작은 새소리가 아름답고, 작은 꽃이 예쁘다.
가난 아이가 큰 기쁨인 것처럼 시간이 가고,
날이 가고, 달이 가고, 계절이 가고, 해가 가도
행복한 삶에 기쁨을 찾으면 또다시 베풀리라.
2023. 9. 2.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