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신고를 받고 얼음골 산사에 가서 주검과 주검의 발견 동기를 대강 알고 온 박재걸 형사는 주검이 거의 자살로 판명되어 꼭 필요치는 않으나 의례상 주검의 발견 동기를 최초 발견자에게 들어보아야 하겠기에 성철을 찾아와 조사를 했다.
그러나 얼음골에서 조사한 주검에서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주검에서는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 하나도 안 나왔다.
생김이라든가 차림새로 보아 노숙자나 정신병자 같지는 않고 더욱이 얼음골 산사에서 십이삼 일을 묵었고 그렇게 묵고 있는 동안 스님들이나 불목하니가 이상한 점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고 늘 조용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 같았고 불목하니에게는 자기가 입던 아직도 꽤 입을 만한 옷을 주고 떠날 때는 절에 시주도 생각보다 많이 하는 등 따뜻하고 선한 사람 같았다는데 신분증은 고사하고 하다못해 그 흔한 신용카드나 명함도 한 장 없이 주머니는 텅텅 비어 있었고 돈만 몇 푼 나왔다.
경찰은 주검을 운반하여 면 소재지에 있는 보건소에 안치하였으나 시체의 신원을 파악할 수가 없어 연고자에게 연락할 수도 없다.
그래서 일단 무연고 처리를 했으니 정말로 연고자를 찾지 못해 경찰에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점도 없지 않았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우선 부검 의뢰하기로 하였다.
사인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부검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검하는 과정에서 D.N.A 검사를 하면 신원이 밝혀질 것이고 그러면 연고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그렇지만 주검에서 나온 소지품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한편으로는 D.N.A 검사결과 신원이 밝혀져도 연고자가 안 나타날 것 같은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도 막을 수 없다.
어쨌든 보건소에 안치되어 있던 주검을 부검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라 함)로 보내고 재결(성철을 만난 형사의 이름)은 계장과 의논하여 언론에 알려 뉴스에 싣게 했다.
그것이 정해진 절차이기도 하지만 혹시 뉴스를 본 청취자 중에서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하면서
그날 저녁 KBS, MBC, SBS등 T.V 방송에서 저녁 뉴스에 그 기사를 실었다.
「어제 오전 강원도 영월군 수내면 00리 얼음골에 있는 00산사 뒤에 있는 야산에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붉은색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약을 먹고 숨져 있는 것을 산사 근처 00마을에 사는 신성철이라는 사람이 올해 대학 입학시험을 보는 딸을 위해서 불공을 드리러 가는 처를 따라갔다가 처가 불공을 드리는 동안 토끼 발자취를 따라 산사 뒤편에 있는 야산에 올라갔다가 발견하고 산사에 사는 불목하니와 같이 수내면 소재지에 있는 파출소에 신고 했다.
숨진 사내는 몸에 아무 상처도 없고 주위의 환경으로 보아 약을 먹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며 소지품에서는 신원을 확인할 만한 증거물이 없어 경찰에서는 연고자를 찾고 있다.」
대략 이와 같은 내용으로 보도되고 주검을 처음 발견한 남자와 경찰에 같이 신고한 불목하니가 주검을 발견하게 된 동기에 대해 간단히 인터뷰하는 것과 그리고 멀리서 죽은 사람의 윤곽만을 잡은 그림이 비추어졌다.
입은 옷과 신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혹 T.V를 보는 청취자 중에 옷과 신발로 죽은 사람을 알아보는 이가 있어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T.V를 보고 있던 영희는 뉴스를 보며 순간적으로 불길한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했다.
자기 남편인 박기철은 50여 일 전에 외국 여행을 떠났고 자기가 비행장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려고 게이트를 나가는 남편을 배웅까지 하고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그런 방정맞은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 사건이 발생하여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시달리던 기철(영희의 남편)은 재판으로 형이 확정되어 2년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교도소에서 형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이번에는 비리 사건에 연루된 협의로 여러 날 검찰의 조사를 받다 무혐의로 풀렸다.
형사사건으로 2년 동안 징역을 살고 비리 사건의 연루된 혐의로 20여 일 가까이 검찰에 시달리다 돌아온 기철은 심신이 피폐해져 우울증 환자가 다 되었다.
그런 기철을 데리고 보약을 먹인다.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하는 영희의 지극한 도움과 정성으로 남편인 기철은 차차 기운을 차리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정상인의 생활을 시작하고 3개월쯤 지나 유럽 쪽으로 외국 여행을 하며 망가진 심신을 추스르고 돌아와 직장에 복귀하겠다고 하며 외국 여행을 계획했다.
기철이 외국 여행을 계획할 때 영희도 동행하겠다고 하였으나 기철이 이번 여행은 심신을 추스르기 위해 가는 것이니 자기 혼자 가는 것이 자기의 지나온 생을 뒤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하여 새 출발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고집해서 할 수 없이 그러면 다음에는 꼭 둘이 같이 여행하자고 약속하며 남편이 혼자 여행하겠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기철이 여행을 떠나는 날 비행장에 나가 환송하며 나쁜 기억은 모두 외국에서 떨어버리고 심신이 모두 건강해져서 돌아오라고 하며 손을 흔들며 보냈다.
그런데 뉴스를 보며 혹시 그 주검이 기철이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을 한 것이다.
아마 나이가 기철과 비슷한 오십 대 중반이라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한 모양이다.
참으로 망측하고 방정맞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기철이 외국 여행을 떠난 후부터 저녁에 엄마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안 됐다며 가능한 대로 일찍 집에 들어오고 어떤 때는 T.V도 같이 보던 아들이 마침 오늘도 엄마와 같이 T.V 앞에 함께 있었는데 그 아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영희는 아들애를 바라보았다.
아들 밑에 딸아이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대학교 2학년인 딸애는 아직도 철없이 구는 때가 많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아들애는 아버지가 형무소 가기 전에는 철없이 굴었는데 그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는 철이 들었는지 아빠와 엄마를 배려하는 마음이 많이 생긴 것 같다.
T.V를 보던 아들애도 영희를 바라보며 계면쩍게 웃는다.
혹시 아들애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이 아닌지?
그러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영희는 확신한다.
한편 주검을 국과수에 보내고 난 후 박재걸은 ‘죽은 사람이 약을 먹었다면 약병이나 약봉지 같은 것이 있을 터인데 주검에서는 그런 것이 안 나왔으니 주검 있던 주위에 어디엔가 분명히 있는 것을 우리가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찾아보라 약병이나 약봉지를 찾으면 자살이 더욱 확실해지고 혹 신원을 알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는 계장의 지시를 받고 동료 형사와 같이 얼음골 산사를 다시 찾았다.
아침 일찍 경찰서를 떠났으나 거리도 있고 교통도 불편하여 11시쯤 얼음골에 도착해서 주검이 있던 자리에서 계장이 말한 증거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쉽싸리 포기를 할 수 없어 약병이나 약봉지 같은 것을 찾아 주검이 있던 자리 주위를 샅샅이 찾아 헤맸지만 끝내는 찾지 못하고 절로 내려온 시간이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였다.
절에서는 조사 나온 형사들이 점심때가 지나도 내려오지 않고 조사를 하고 있어 밥 먹을 때가 되었을 때 지나가는 길손이라도 그냥 보내면 죄짓는 것 같은데 자기들의 잘못은 아니라도 자기들의 절 뒷산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조사 나온 형사들을 모른체하고 자기들만 점심을 먹을 수 없어 기다리고 있다가 형사들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점심을 준비하여 승방으로 부른다.
실은 스님들도 겨울철에는 탁발이 잘 안 되어 절의 형편이 좋지 않아 점심 겸 저녁을 먹고 있는 것이지만 절에서 점심을 먹지 않으면 면 소재지에 나갈 때까지 음식을 먹을 곳이 없어서 스님들이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재걸도 그러한 사정을 알기에 미안함이 없지 않지만, 절에서 정성으로 정하여 염치를 불고하고 동료와 같이 승방으로 들어갔다.
승방에는 이미 주지 스님과 스님이 기다리고 있다.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도 자연 주검에 대한 것이다.
그 사람이 언제 절에 왔고, 어디서 왔다고 했고, 절에서 무슨 일을 했고, 언제 어디로 간다고 떠났나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 왔는지, 언제 떠났는지는 확실히 아는데 어디서 왔는지는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겠다는 것이 스님들의 이야기다
그 사람이 어느 날 어두워 가는 저녁때 절에 도착하여 묵기를 청할 때 너무 늦은 시간이라 거절을 못 하고 불목하니 방에 같이 재웠는데 다음 날도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거의 방에만 있더니 저녁때 주지 스님을 찾고 얼마간의 돈을 놓으며 며칠만 더 묵겠다고 했다.
절에 객 방이 없어 불편할 것이라고 하니 어제같이 그냥 불목하니와 같이 지내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불편하게 하면서 우리 절에 머물 것까지 있겠느냐며 여기서 4Km 정도 나가면 마을이 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금방 영월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하니 웃으며 돈을 놓고 나갔다.
절에 머무는 동안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방에 머물거나 가끔 경내를 산책하는 것이 고작이고 무슨 말을 물어도 희미하게 웃기만 하고 식사도 스님들보다 훨씬 적게 먹고 늘 조용했으며 다만 밤에 잘 때는 무슨 나쁜 꿈을 꾸는지 가끔 헛소리를 했고 때로는 땀도 흘렸다는 것이 불목하니의 말이다.
스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재걸은 아무래도 주지 스님의 얼굴이 눈에 익다.
지난번 주검을 조사하러 왔을 때는 현장조사와 사건 처리로 여유가 없어서 주지 스님을 자세히 볼 시간이 없었는데 오늘 이렇게 같이 앉아서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있으니 자연 주지 스님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였다.
그러나 어디서 무슨 일로 만났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자연히 주지 스님에게로 눈길이 자주 가게 되고 자기가 그렇게 느껴서인지 주지 스님도 재결에게 자주 눈길을 주는 것 같다.
하지만 눈에 익다는 것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어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몇 마디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다 지금 가도 퇴근 전에 경찰서에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동료 형사의 말에 점심 식사 고마웠다고 인사를 하고 스님들과 헤어졌다.
얼음골을 나와 비탈길을 올라 산등성이에 서니 겨울이라 해가 짧아 저녁때가 다되어 서쪽 산으로 넘어가는 새 발만큼 남은 해로 붉은 노을이 섰다.
노을이 아름답다며 동료와 같이 그 노을을 바라보던 재걸은 순간적으로 잃어버렸던 기억이 떠오르며 주지 스님의 얼굴이 지나갔다.
그래 그 사람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떻게 스님이 되어 지주까지 되었나?
전연 짐작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때의 일이 떠오른다.
십육 년 전인 1990년 재걸이 춘천에 있는 강원대학교 일학년인 여름의 일이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
지키미님!
무혈님!
구리천리향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