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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8월쯤에 온라인 전시를 시작한 것 같은데 기사가 생각보다 많이 퍼지지 않은 거 같아요.
기사 원문은 http://darbarnensover.aftonbladet.se/chapter/english-version/여기서 (스웨덴 사이트라서 영어로 지정을 안 하면 스웨덴어로 나와요)
그 외 번역본이 http://www.huffingtonpost.kr/2015/10/05/story_n_8242558.html (허핑턴포스트)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35778 (위키트리)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9953562&code=61131111&cp=nv (국민일보)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 자는 곳
by Magnus Wennman
소년은 자기 침대가 그립다고 했다. 소녀는 눈이 까만 자기 인형이 보고 싶다고 한다.
다른 소년 하나는 베개가 적처럼 느껴지지 않던 때를 그리며 잠을 청한다.
시리아 전쟁 발발 근5년. 그간 200만명이 넘는 아이들이 전쟁을 피해 시리아 내에서 난민이 되거나 국경을 넘었다. 아이들은 친구, 집 그리고 침대를 두고 떠났다. 한 때는 존재했지만 모든 것이 사라진 지금, 아이들이 보여주는 자신의 잠자리.
라마르(Lamar), 5살
<세르비아 호르고스> 바그다드 고향집에 인형도, 장난감 기차도, 그리고 공도 모두 두고 왔다. 라마르는 집 이야기를 하면 두고 온 장난감 이야기를 한다. 폭탄 때문에 모든 게 달라졌다. 폭탄이 집 근처에 떨어졌을 때 라마르 가족은 음식을 사러 나가던 참이었다. “집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으니까..." 라마르 할머니 사라(Sara)가 이야기 했다. 터키에서 작은 고무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보려 하기를 두 회, 결국 성공해서 헝가리의 굳게 닫힌 국경 앞에 도착했다. 라마르는 이제 담요를 깔고 숲 속에서 추위에 떨며, 겁에 질리고 슬픈 채로 잠을 잔다.
마흐디(Mahdi), 1.5살
<세르비아 호르고스/로제크> 마흐디는 이제 한살반이다. 마흐디가 지금껏 겪은 거라곤 전쟁과 피난 밖에 없다. 사방에서 난민 수백명이 오르고 내리는 통에도 깊이 잔다. 난민들은 헝가리를 통과하지 못하게 국경을 폐쇄한 것에 항의하고 있다. 국경 맞은 편에는 경찰 수백병이 늘어서있다. 헝가리 총리 Viktor Orban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국경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단다. 상황은 더욱더 절박해지고 있다. 이 사진을 찍은 다음날 경찰은 난민들에게 최루탄과 물대포를 쐈다.
압둘 카림(Abdul Karim), 17살
<그리스 아테네> 압둘 카림 아도는 이제 수중에 돈이 하나도 없다. 남은 유로를 다 털어 아테네로 가는 페리 표 샀기 때문이다.
이제 압둘 카림은 하루에 수백명의 난민들이 쏟아 드는 오모니아 광장에서 매일 밤을 지낸다. 이곳에는 피난민들에게 버스, 항공권, 가짜 여권 등을 제공하고 큰 돈을 벌고 있는 밀수꾼들이 있다. 하지만 압둘 카림은 아무데도 갈 수 없다. 전화기를 빌려 시리아 집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는 했지만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차마 말하진 못했다.
“울면서 저를 많이 걱정하고 계세요. 더 이상 걱정시켜드릴 수 없죠.”
그는 광장 가운데 담요를 펴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리고 눕는다.
“제가 바라는 건 딱 두 가지에요. 침대에서 다시 자는 거, 여동생을 다시 안아보는 거.”
아흐마드 (Ahmad), 7살
<세르비아 호르고스/로제크> 잠에서도 아이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공포가 꿈에서도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아흐마드는 시리아 이들리브에 있는 집이 폭격을 당할 때 집안에 있었다. 파편에 머리를 맞았지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동생은 살아남지 못했다. 아흐마드 가족은 지난 수년간 전쟁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살 곳이 사라지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피난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아흐마드는 헝가리의 굳게 닫힌 국경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아스팔트 길 위에 다른 수천명의 난민들과 함께 누워있다. 피난길에 오른지 16일째. 아흐마드 아버지는 그간 버스정류장, 길바닥 그리고 숲에서 잠을 자며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쉐흐드(Shehd), 7살
쉐흐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최근에 쉐흐드가 그린 그림은 다 “무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항상 보는 게 무기니까요. 어디를 가나 있죠.”라고 쉐흐드 엄마는 쉐흐드가 잠든 사이 말했다. 쉐흐드는 헝가리로 가는 길바닥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이제 쉐흐드는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는다. 피난을 떠나며 크레용이나 종이를 챙겨오지 못했기 때문. 쉐흐드는 이제 놀지도 않는다. 피난길에 오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매시간 혹은 그날 있었던 위험 혹은 닥쳐올 위험에 대해 어른들처럼 근심을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쉐흐드 가족은 피난 생활을 하며 음식 구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날은 가로수에 열린 사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이렇게 힘들 걸 알았다면 시리아에서 목숨을 걸고 사는 편을 택했을 거라고 한다.
샴(Sham), 1살
<세르비아 호르고스/로제크> 제일 앞쪽, 그러니까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가르는 국경에 가면, 4미터 높이의 철문이 있다. 샴은 엄마 품에 안겨 누워있다. 조금만 더 가면 그토록 절박하게 가려는 곳, 바로 유럽 땅이다. 어제 마지막으로 허가를 받은 난민들이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떠났다. 샴과 샴 엄마는 늦었기 때문에 다른 수천명의 난민들과 함께 굳게 닫힌 헝가리 국경 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압둘라(Abdullah), 5살
<세르비아, 벨그라드> 압둘라는 혈액병을 앓는다. 압둘라네는 지난 이틀간 벨그라드 중앙역 앞에서 잠을 잤다. 압둘라는 시리아 다라(Daraa)에 있는 집에서 여동생이 죽는 걸 봤다. “아직도 충격 받은 상태죠. 밤마다 악몽을 꿔요.”라고 엄마가 이야기 했다. 압둘라는 아프고 지친 상태지만, 엄마는 약을 사줄 돈이 없다.
줄리아나(Juliana), 2살
<세르비아 호르고스> 기온은 34도. 불안한 몸짓을 하며 잠결에 뒤척이는 줄리아나 얼굴 위로 파리가 기어다닌다. 줄리아나네 가족이 세르비아 땅을 걷기 시작한지 이틀째. 세달 전부터 난민 수가 급증했다. 줄리아나 엄마는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는 딸 위에 자신이 두르고 있던 얇은 숄을 덮어준다. 가족이 쉬고 있는 곳에서 몇 미터 떨어진 도로에는 난민들 발걸음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8월 말이면 헝가리는 난민들의 외침을 막아버릴 철조망을 두르기로 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며칠 간은 더 국경도시 호르고스를 통과할 수 있다. 줄리아나 가족은 저녁이 오면 길을 떠날 것이다.
아흐메드(Ahmed), 6살
<세르비아 호르고스> 아흐메드는 자정이 지나서야 풀밭에서 잠이 들었다.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관리당국을 피해 헝가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둘러앉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흐메드는 6살이지만 걸어서 통과해야 했던 여정길에서는 항상 자기 짐을 혼자 메고 걸었다. “굉장히 씩씩해요. 가끔 밤에 울 때도 있지만...”라고 아흐메드 삼촌이 말했다. 삼촌은 아흐메드 아버지가 고향인 시리아 북쪽 데이르-에-조르라는 곳에서 공격으로 사망한 이후 아흐메드를 돌봐주고 있다.
시라즈(Shiraz), 9살
<터키 수르치> 시라즈는 태어난지 3달만에 고열에 시달렸다. 의사는 부모님에게 시라즈가 소아마비고 “곧 죽을 아이”에게 돈을 많이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전쟁이 터졌다. 시라즈 엄마 레일라는 시라즈를 이불에 싸서 코바니에서 터키로 국경을 넘어온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 말을 하지 못하는 시라즈는 난민수용소에서 목재 요람을 받았다. 밤이고 낮이고 시라즈는 그 요람 안에 누워있다.
모하메드(Mohammed), 13살
<터키 나집>. 모하메드는 집을 참 좋아한다. 고향 Aleppo에서는 시내를 누비며 집 구경 하기를 좋아했다. 이제 모하메드가 좋아하던 건물들은 대부분 산산조각이 나 사라졌다. 병원에 누워있는 모하메드는 건축사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룰 날이 올까 생각해 본다. 전쟁을 겪으며 느낀 희안한 점이라면 ‘두렵다는’ 감정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이라면 그 말을 믿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모하메드가 말했다.
이만(Iman), 2살
<요르단 아즈락> 이만은 가슴 부위에 염증이 있고, 폐렴을 앓고 있다. 병원에서 보내는 3일째. 거의 잠만 잔다. 평상시에는 행복한 아이지만 지금은 지쳤다. 건강할 때는 사방팔방 뛰어다닌다. 모래에서 노는 걸 참 좋아한다고 19살 된 이만 엄마 올라는 이야기 한다.
길리스탄(Gulistan), 6살
<터키 수르치> 눈을 감고 있는 것과 잠을 자는 것은 다르다. 6살난 길리스탄은 그 차이를 잘 안다. 길리스탄은 눈을 감고 잠자는 척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정말 잠이 들면 악몽이 시작되니까 여기서 잠을 자기 싫단다.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코바니 집에 있는 베개가 그리워요. 길리스탄은 가끔 엄마를 베개 삼아 기대어 눕는다.
타맘(Tamam), 5살
<요르단 아즈락> 5살 타맘은 자기 베개를 무서워한다. 밤마다 잘 시간이면 운다. 타맘의 고향 홈스에는 밤마다 공습이 있었다. 집을 떠나 잠을 잔지 2년이 지났지만 베개가 두렵기만 하다.
이스라(Esra) 11살, 이스마(Esma) 8살, 시드라(Sidra) 6살
<레바논 마지달 안자르> 셀람(37)은 이스라, 이스마 그리고 시드라를 재운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밤에 공격 당할 걱정은 없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슬픈 게 있다면 아이들이 아버지 꿈을 자주 꾸고, 굉장히 슬퍼하며 잠에서 깬다는 것. 아이들 아버지는 납치 후 실종됐다. 시드라는 아빠가 사탕 사가지고 오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마람(Maram), 8살
<요르단 암만> 8살 마람이 막 하교를 하고 집에 도착했을 때 로켓 한 발이 집에 날아들었다. 마람은 지붕 조각에 깔렸다. 엄마는 야전병원으로 마람을 데려갔고, 거기서 헬기를 타고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왔다. 머리를 다쳐서 뇌출혈이 왔다. 처음 11일 동안 마람은 혼수 상태였다. 이제 의식은 회복했지만 턱이 깨져 말을 하지 못한다.
라리아(Ralia) 7살, 라하프(Rahaf) 13살
<레바논 베이루트> 라리아와 라하프는 베이루트 거리에서 지내고 있다. 고향은 다마스쿠스인데 수류탄 공격으로 엄마와 오빠를 잃었다. 아빠와 함께 1년 동안 거리 생활을 하고 있다. 둘은 상자 위에서 서로 꼭 붙어있다. 라하프는 “나쁜 오빠들”이 무섭다고 한다. 언니가 그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라리아는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모야드(Moyad), 5살
<요르단 암만> 모야드는 엄마랑 시금치 파이를 만들려고 밀가루를 사러 나갔다. 손을 꼭 잡고 Dar’a에 있는 시장에 가던 길이었다. 둘은 누군가가 폭탄을 설치해놓은 택시 곁을 지나다 참사를 당했다. 모야드 엄마는 즉사했다. 모야드는 머리, 등 그리고 골반에 파편이 박힌 채 요르단으로 이송됐다.
왈라(Walaa), 5살
<DAR-El-IAS>. 왈라는 집에 가고 싶다. 알레포 집에는 자기 방이 있었으니까. 집에서는 잠자리에서 운 적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 난민수용소에서 왈라는 매일 밤 운다. 밤이 끔찍하기 때문에 베개에 머리를 올려놓기도 끔찍하다고 한다. 왈라네는 밤중에 공격을 당했다. 낮이면 왈라 엄마는 왈라에게 베개를 겁낼 필요가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왈라에게 자주 베개로 작은 집을 만들어 준다.
아미르, 20개월
<ZAHLE FAYDA> 아미르는 난민으로 태어났다. 아미르 엄마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트라우마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미르는 아직까지 말을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어요.”라고 엄마 샤하나(32)는 말한다. 가족들은 비닐 텐트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 아미르에게는 장난감이 없지만 바닥에 있는 것 아무거나 가지고 논다. “말은 못해도 많이 웃긴 해요.”라고 엄마는 말한다.
파라, 2살
<요르단 아즈락> 파라는 축구를 좋아한다. 아빠는 잡동사니를 뭉쳐 동그란 공 모양을 만들어준다. 임시로 만들어준 공은 오래 가지 못한다. 아빠는 매일 밤 내일은 아이들이 신나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진짜 공을 가져다 주겠노라고 다짐하며 파라와 큰언니 티삼에게 잘 자라고 인사한다. 아빠는 암만 노력해도 다른 꿈에는 닿을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꿈만은 포기할 수 없다.
파티마, 9살
<스웨덴 노르베리> 매일 밤, 파티마는 배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파티마는 엄마 그리고 두 형제와 함께 시리아 정부군이 참혹하게 무고한 이들리브 시민들을 학살하던 시기에 탈출했다. 레바논 난민수용소에서 2년간 있었지만 악조건을 견디기 힘들어 리비아로 떠났다. 거기서 사람들을 넘치도록 가득 태운 배를 탔다. 만삭인 한 여자는 배 갑판 위에서 12시간 동안 땡볕 아래에서 진통을 하다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아이는 사산아였고, 배 밖으로 던져졌다. 파티마는 이 모든 것을 목격했다. 배로 물이 서서히 차고 있던 중 이탈리아 해안경비대 눈에 띄어 구조됐다.
Magnus Wennman은 World Press Photo Award 상을 2회, Sweden의 올해의 사진가 상을 4회 수상하였다. 올해 그는 유럽을 가로지르는 여정길에 오른 수많은 난민을 만났으며, 수많은 난민 캠프를 방문했다. “When the night comes”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이다.
Fotografis와 Aftonbladet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위해 UNCHR을 지원하고자 합니다.
UNHCR이 전쟁을 피해 집을 등진 아이들을 돕는데 도움을 주실 분들은 이 전시회의 모금활동에 기부를 하거나 729 80번으로 FLYKT150라고 문자를 보내면 UNHCR에 문자 1건당 150 코로나를 기부하실 수 있습니다. 기부하고 싶은 금액만큼을 123 90 01 645으로 Swish(모바일 송금 애플리케이션 이름) 하실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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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 올리기 전에 나의 조악한 번역을 프랭이나 냉이 누군가에게 -_ㅠ 검수 받아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소심함이 엄습했지만;; 하루이틀 일은 아니니까 뭐... 쿨럭....
정말 안타깝다는 마음 뿐이네요. 애기들 보니까...
많이 퍼날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