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체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수용소에서 주인공 슈호프가 겪는 일상을
휴매니즘측면에서 그려 낸 명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반과 나 자신을 비교 했을까?
요즘 생활이 수용소 생활이나 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이반은 수용소에서 5시에 일어나야 한다.
몸이 아파도 기상시간을 어기면 끌려 가서 벌을 받아야 한다.
식사시간, 작업시간도 엄격히 지켜야 한다.
영하 30도가 넘는 혹한 속에서도 작업은 해야한다.
온몸이 쑤실 정도로 심한 노동을 하더라도
저녁 식사시간이 지나면 휴식과 잠자는 시간이다.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다.
오늘은 수용소생활10년째 마지막날 내일 아침이면 수용소에서 풀려 나는 날이다.
어제 나는 4시24분이 잠이 깨었다.
누가 깨워서 일어난 게 아니고 저절로 그 시간에 잠이 깬 것이다.
예전에 1기사 당직시엔 당직시간이 4시부터 8시까지므로
집에 왔어도 3시반에는 꼭 눈이 떠졌다.
다시 누우면 5시가 훨씬 넘을 것이고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잠시 앉았다가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를 켰다.
전날 정리한 내용들을 한번 훑어 보고는 6시에 가방을 챙겨 ㅈ비을 나섰다.
가방 안에는 책 몇권과 안경 수험표가 들어있었다.
벡스코역에 도착하니 방금 차가 떠났는지 기다리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6시14분에 호포행 지하철을 승차했다. 시험장엘 가려면 서면에서 환승해야 한다.
차 안에서도 예상문제를 한 문제라도 더 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 보았다.
'안광이 지배를 철할 정도'로 봐야 하는데 나이가 든 탓인지 안광의 세기도 약해졌고 게다가 난시까지 겹쳐 상이 흐릿해지니
오랫동안 볼 수가 없었다.
하단역에서 하차 하여 시험장까지 걸어갔다.
시험장에 도착하니 입실이 8시반까지인데 7시34분이었다. 교실에는 수험생들이 몇명 와 있었다.
아직 한시간이나 남았으니 가방속에서 책을 꺼내 펼쳤다.한 문제라도 더 맞추기 위해서다.
8시 반이 되니 감독관이 두 명 들어왔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나눠 주고 본인임을 확인하였다.
9시부터 1교시가 시작되었다. 시험지를 펼치자 머릿 속이 하얘졌다. 지난 한 두달간 다른 일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정리가 제대로 안된 탓이다. 75분간 시간이 삽시에 흘러갔다. 마음이 쪼리니 오줌이 마려웠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더니 나 말고도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였든지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다시 2교시가 시작되었다. 2교시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완전히 알고 있는 문제는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12시에 시험을 끝내고 수거한 핸드폰을 받아 밖으로 나왔다. 교문 밖에는 학부형들이 많이 와서 수험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 졌다. 전략을 다시 세워서 재도전을 하든지 아니면 포기를 하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집에 도착하니 1시 반이었다.
밥솥에서 밥을 몇 숟갈 퍼내 김치국물에 말아 먹고
테니스 가방을 챙겨 2시반에 집을 나섰다. 아침에는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더니만 오후에는 햇빛이 쨍쨍 내려쬐었다.
버스를 타고 토곡에 있는 테니스장으로 향했다. 코트에는 먼저 도착한 회원들이 몸을 풀고 있었다.
3게임을 하고 나니 온 몸에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한 두게임 더 하고 싶었지만 새벽미사를 가지 못했으므로 저녁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 코트장을 빠져 나왔다.
집에 오니 병원근무를 마치고 나온 집사람이 성당 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8시45분,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글라스에 따랐다.
시원한 맥주를 한 전 마시니 하루가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다.
참고로 이반 데비소비치의 하루 줄거리를 네이버 세계문학사 작은사전에서 퍼왔다.
새벽 5시, 언제나처럼 기상 신호가 울렸다. 두껍게 성에가 얼어붙은 유리창을 통해서 짤막한 음향이 희미하게 흘러 들어왔다.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늦잠을 자는 일이 한 번도 없었으나, 오늘은 웬일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 몸이 쑤시고 오슬오슬 추운 게 몸살이라도 난 모양이다. 오늘만은 날이 새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그는 생각한다. 반장과 부반장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명령을 수령하러 본부로 가는 것이겠지.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그들 104 작업반은 '사회주의 촌락' 건설장으로 가기가 쉽다. 허허벌판 눈 덮인 작업장,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열심히 곡괭이를 휘둘러야 한다. 침상 위 옆자리의 침례교 신자 알로샤와 침상 아래의 전직 해군 중령인 부이노프스키가 일어나는 소리였던 것이다.
밖으로 나갔던 부이노프스키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기운을 내라! 영하 30도는 내려갔는걸!" 하고 외친다. 슈호프는 늦잠을 잔 것이 당직 간수 타타르에게 들켜 본부로 가서 훈훈하게 타오르는 페치카 옆에서 마루 청소를 했고, 그것이 끝나자 식당으로 갔다. 식당은 바야흐로 아수라장이다. 어떤 죄수가 성호를 긋고는 죽을 먹었다. 아마도 우크라이나 사람인가 보다. 러시아인은 성호를 잊은 지 이미 오래다. 식사를 끝낸 슈호프는 숟가락을 방한화에 꽂았다. 몸이 아팠다. 의무실로 가서 진단을 받았으나 퇴짜를 맞고는 막사로 돌아왔다. "104 작업반, 막사 앞으로 집합!" 하는 반장 추린(수용소 생활 19년의 고참)의 명령이 떨어 졌다.
슈호프도 그 대열에 끼었다. 오늘은 새 작업장의 벽돌을 쌓는 일이다. 반장 추린은 일을 잘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을 사랑했다. 그는 부농의 아들로 태어나 적군에서 쫓겨나 체포된 인물로서, 투지와 강한 신념으로 작업반을 잘 이끌어 갔다. 줄을 지어 엄중한 감시를 받으며 걸어가는 슈호프의 머리 속에는 갖가지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슈호프, 그는 독 · 소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돌아왔으나 스파이 혐의로 체포, 반국가죄 58조에 해당한다는 죄목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지금까지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8년을 보냈고 앞으로 2년만 지나면 석방되는 것이었으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고 체념과 주저 속에서 생활했다.
슈호프의 일이란 것이 남의 심부름도 하고, 장갑을 짜주기도 하고, 얼마간의 잔돈을 얻으면 먹는 일과 담배를 사 피우는 일이 고작이다. 정직하며 순진한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칠 줄도 모르고, 남의 것을 빼앗을 줄도 모르는 순수한 농민이었다. 잔재주도 없고 자기보다 약한 자를 잘 도와주는 마음씨 고운 사람이다. 작업장에 도착한 그는 반장을 도와 언제 몸이 아팠었느냐는 듯이 열심히 일을 한다. 수용소에도 뇌물이 있고 고발이 있고······ 그러나 영하 30도를 넘는 추위 속에서도 훈훈한 인심이 있다. 슈호프는 오후에도 열심히 작업을 했다. 몸도 아주 거뜬해졌다. 우울하고 불유쾌한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며, 어쩌면 거의 행복하기까지 한 하루였다. 그렇게 슈호프는 자기의 형기가 시작된 날로부터 꼭 10년(3,653일)을 하루같이 보낸 것이다. 사흘이 더 가산된 것은 그사이에 윤년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