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570호]
사는 게 지랄 맞을 때면 풍물시장에 간다
박제영
풍물시장에 가면
이놈은 녹슨 쇠 같고 저년은 낡은 징 같고
이놈은 해진 북 같고 저년은 휜 장구 같고
하여튼 고물 같은 연놈들이
초저녁부터 거나해서는
쇠 치고 징 치고 얼씨구 절씨구
북 치고 장구 치고 지화자 좋을씨구
신명 나게 풍물을 치는 거라
박 형도 한 잔 받어
사는 게 뭐 있남
쇠 치고 한 잔 징 치고 한 잔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왕년에는 말이야 왕년에는 말이야
왕이었던 시절 안주로 씹다 보면
쇠가 되었다가 징이 되었다가
암깽 수깽 얽고 섥고
북이 되었다가 장구가 되었다가
묶고 풀고 으르고 달래고
왕이나 거지나 밥 먹고 똥 싸고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을씨고
그랴 사는 게 뭐 있남
사는 게 참 지랄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풍물시장에 간다
- 『시인시대』 2017 봄
*
- 환장하게 덥다. 날씨가 아니라 사람이 말이야... 형의 일기 읽다가 문득 이것이 '궁상'이냐 아니면 '궁벽'이냐 생각하다가...형이랑 '궁둥이' 깔고 앉아 그냥 퍼질러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다는 생각하다가... 요즘 왜 이렇게 환장하게 더운지 모르겠다. 형.
- 사는 게 다 궁상이고 궁벽인 거다. 그러잖아도 나 요즘 술로 산다. 곧 드러누울 일만 남은 거지. 땀나는 날 많아도 구시렁거리지 말고 살어. 사람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그 다음엔 눈앞에 뵈는 게 죄 더워져... 살기 싫어지는 거지...
한때는 연애시도 참 잘 썼던 형인데, 시가 돈이 안 된다며 소설로 돌아선 유문호 형.... 이제는 시를 끊은(시가 술이야! 담배야!) 그(의 시)가 그리운 날은 필경 내 삶이 고단하거나 지랄맞은 날입니다. 그런 날은 그냥 풍물시장에 갑니다. 그렇고 그런 사람들끼리 그냥 탁주 한잔 걸치고 에라! 속의 지랄 풀어내고 나면 한 시름 또 건너는 거지요. 아무렴요.
추신. 이번 주에 달아실시선 05 『순수의 시대』(전윤호시집)가 드디어 나옵니다. 아시겠지만 엄청 좋은 시집입니다.^^
2017. 9. 18.
월간 태백/달아실출판사
편집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쾌지나 칭칭 나네~
유문호님과 전윤호님은 어떤..사이인가요 ㅎㅎ 제가 모르는 분들이기도 하고 박제영님 글에 등장하는 두 이름인데 흐름상 동일인물 같아보이기도 하구요 ^^*
유문호시인, 전윤호시인 모두 박제영시인과 친분이 있는 시인이니 그런 사이이겠네요.ㅎㅎ
동일인물은 아닙니다.
저도 유뮨호시인의 시는 잘 접해 보진 않았네요.^^*
아래 주페 형님이 답을 주셨네요.^^ 두 분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