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트
가드너
국내에서도
번역된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열린책들 출간)의 영국작가 존 르까레의 원작 소설을, [시티 오브 갓]의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영화화해서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콘스탄트 가드너]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릴러 영화다. 그러나
스릴러 구조는 대중적 흥미를 유지시키기 위한 장치고, 진정으로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서구 제국주의의 비양심적 행위로 죽어가는, 아프리카에
대한 고통스런 고발이다. 감독은 브라질 출신답게, 서구적 시각이 아닌 아프리카인의 시각에서 영화를 만들려고 했고, 그러한 균형 잡힌 시각이, 이
작품을 흔한 인도주의적 영화에 머무르지 않게 한다.
[시티
오브 갓]에서도 확인한 바 있는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역동적 연출 감각은, 무게 있는 주제의식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아름다우면서도 끔찍한
케냐의 풍광이 넘치지 않게 딱 알맞은 분량으로 들어가 있는 것도 좋다. 검은 피부의 아프리카인들이 즐겨 입는 화려한 색감의 옷들, 그리고 그들이
살고 있는 메마르고 건조한 대지와 서구의 외교관들이 거주하는 푸른 나무로 뒤덮인 정원의 대비도 좋다.
영국의
외교관 저스틴(랄프 파인즈 분)은 인권운동가 테사(레이첼 와이즈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다. 저스틴은 정원 가꾸기가
가장 큰 관심사일 정도로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이지만,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테사는 사회의 비리와 부패를 척결하고 인류애에 관심이 많다. 케냐 주재
영국대사관으로 발령 받은 저스틴. 테사는 그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결혼하자고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도
테시다.
케냐에
온 두 사람은 테사의 임신으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지만, 테사는 임신 중에도 케냐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AIDS로 죽어가는 사람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이들을 위해 흑인 인권운동가인 아놀드 박사와 함께 열심히 사회활동을 한다. 그러나 [콘스탄트 가드너]는 시간적 순서를 따라
일목요연하게 전개되지는 않는다. 영화적 전개는 스릴러 장르의 공식을 따른다. 영화의 앞부분은, 비행기를 타고 아놀드 박사와 함께 떠나는 테사,
이틀 후에 돌아오겠다는 그녀를 배웅하는 저스틴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복된 차량, 힘없이 돌아가는 바퀴, 화초를 가꾸고 있는 저스틴에게 그의
동료이자 친구인 외교관 대니가 찾아와 테사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리고 비로소 플래시백으로, 저스틴과 테사가 처음 만날 때부터
케냐로 오기까지의 과정이 전개되고, 그 뒤부터는 아내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한 저스틴의 노력을 보여준다.
[콘스탄트
가드너]는 스릴러 장르의 외형을 취하고 있으며 그 이면에는 저스틴과 테사 부부의 사랑 이야기가 깔려 있지만, 결국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은
아프리카의 비참한 실상을 고발하는 정치영화를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비참한 환경을 이용한 거대 제약회사의 음모와 비리, 정치권에 압력을 넣고
매수한 외교관들의 협조로 아프리카의 비극을 이용해서 돈벌기에 급급한 거대기업과 서구사회의 추악한 이면을 보여주는 게 감독의
목적이다.
끔찍하게
절단되고 짓이겨진 시체로 발견된 아내의 죽음, 그 죽음에 얽힌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비리의 핵심에 한 발자국씩 접근하는 저스틴은, 우리들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영화의 전반부에 저스틴을 온화한 성격으로, 화초 가꾸기를 즐기는 외교관으로 묘사한 것도 이유가 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아내의 죽음으로 인해 비로소 사회의 비리에 눈을 뜨고,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진실을 밝히면서 세계인의 양심에
호소한다.
저스틴
역의 랄프 파인즈는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년)에서 온몸에 붕대를 감은 영국인 환자로 등장해서 과거의 사랑을 추억하는 연기를 했었다. 그는
[제약 산업이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로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약 산업 전체에 대해 많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하며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식인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테사
역의 레이첼 와이즈는 [미이라](1999년) [어바웃 어 보이](2002년) 등의 영화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그 외에도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 등 많은 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콘스탄트 가드너]에서의 그녀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고 투쟁하는 테사 그 자체로 보일 정도로 레이첼 와이즈는 캐릭터에 몰입되었다. 그녀는 촬영 도중 UN의 세계 식량
프로그램 TV 광고를 찍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마가디 호수 주변에서 아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장면이었다. 영화 속에서처럼 실제로 레이첼
와이즈는 임신한 몸이었다.
레이첼
와이즈와 랄프 파인즈는 이미 이스트반 자보 감독의 [선샤인](1999년)에서 함께 공연한 적이 있고,, [콘스탄트 가드너]로 영국 독립협회상
남녀 주연상과 영국 비평가협회 남녀 주연상을 나란히 수상했다. 레이첼 와이즈가 연기한 테사는 인권운동가이자 자선활동가이며 난민국제단체의 대표였던
이벳 삐에르빠올리를 모델로 해서 창조된 캐릭터다. 그녀는 1999년 60세의 나이에 차량 전복사고로 알바니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원작자인
존 르까레에 의하면 1970년 중반에 작가는 이벳을 알게 되었는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얌체 짓도 포악한 언쟁도 마다하지 않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녀가 그랬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누구나 알듯이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한 식량과 돈, 아픈 사람들을 위한
약품, 노숙자들을 위한 거처, 국적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서류를 확보하기 위한 그녀의 본능적인 요구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콘스탄트
가드너]에서 저스틴이 맞서 싸우는 비리의 핵심은 거대 제약회사다. 거대 제약사들은,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에 소요되는 엄청난 비용과
연구비 등으로 높은 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심장병, 발기부전, 대머리 등 이윤이 많이 남는 서구사회의 높은 질병에만
관심을 갖고, 상대적으로 약을 찾는 사람이 적고 이윤이 얼마 남지 않는 저개발 국가의 질병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가령 세계적으로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있는 사람은 약 5억 명에 달하며 20초마다 한 명이 말라리아로 사망하고 있지만 서구 제약회사는 이런 질병을 치료할 신약개발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또 거대 제약회사들은 실제로는 연구개발비보다 마케팅, 홍보, 관리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르
까레의 원작소설은 케냐 정부의 부정부패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해서 비난했었기 때문에, 이 소설은 케냐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러나 영화에서
영국 외교관들의 비리에 대한 강도 높은 묘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케냐 주재 영국대사관에서는 촬영에 적극적으로 협조했고, 케냐 정부도 과거의
부패한 정권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강조하며 촬영을 도왔다. 그 결과,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의 노숙자들이 거주하는 쓰레기 매립장, 나이로비의 가장
빈곤한 지역인 품와니의 산부인과, 나이로비의 가장 큰 슬럼가인 70만평 규모의 키베라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촬영되었다. 판자조각과 진흙, 녹슨
철로 만든 이 슬럼가의 낡고 더러운 거주지에 약 1백여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콘스탄트
가드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 영화를 통해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학연하게 드러난다. 모든
이야기가 비극으로 종결되면서 거대 제약회사의 비리가 폭로되고, 그 배경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이 천진한 모습으로 뛰어 노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여주면서 아프리카의 비참한 실상을 인류애에 호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