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갑선물
한 주 후면 회갑을 맞는 그가 병원에 입원한 것은 얼마 전 산을 오르다 바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허리를 수술받기 위해서였다. 그간 문병을 온 수많은 친지들은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그만하기가 다행이라는 인사를 했고 그 또한 고맙다고 답을 해왔다. 그런 그가 한 친구가 문병와 같은 내용의 인사를 하자 “네가 나처럼 다쳤어도 그따위 인사를 하겠느냐”며 화를 낸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이처럼 신경질적으로 변한 데는 한 아주머니에게서 헬기 비용을 내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이었다. 옆자리 환자를 돌보는 아주머니가 주스를 건네며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은 어디를 다쳐 이렇게 입원하신 건가요?”
“얘기하자면 길어집니다.”하고 뜸을 들인 그는 자기처럼 불행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사설을 풀기 시작했다. 2000년에 아내와 사별했고, 2002년 목디스크 수술을 받았으며, 2005년에 사업에 실패해 재산을 모두 날린 후 큰아들 네 집으로 들어가 산다면서, 그간의 큰 사건들과 보름 전 춘천의 용화산을 오르다가 바위에서 굴러 떨어져 허리를 다친 추락 사고에 대한 얘기를 마친 그는 자신을 끌어올린 119구조대에 대한 감사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선생님처럼 뚱뚱한 분 끌어올리느라 구조대원들 고생 많았겠네요. 살 좀 빼셔야겠어요.”
“웬걸요. 헬기로 날랐습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숨을 고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정중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제가 그때 생각한 것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라는 거였습니다. 제가 이 나라가 아니고 북한땅에서 사고를 당했다면 그들이 저를 헬기로 구출했겠습니까? 백만 명 넘는 백성들을 굶겨 죽인 그들이 저 하나 죽는다고 눈 하나 까딱할 리 없지요. 회사 접고나서 요 몇년간 단 한 푼도 세금을 내지 못한 저를 구하려고 헬기를 띄울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너무 고마워 눈물이 났습니다.”
이 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의사로 근무하는 며느리가 퇴근길에 들렀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아버님, 또 그 얘기세요? 헬기 한 번 더 타시면 소설 쓰시겠어요.”
이야기를 다 들은 아주머니는 잠시 뜨악해하다가 그에게 말했다.
“아직은 청구서가 안 날라 왔겠네요. 제 친구도 도봉산에서 다쳐 선생님처럼 헬기로 이송했는데 두 달 뒤 헬기사용 청구서가 날라 와 오백만원을 냈대요. 하긴 오백만원도 싸지요. 말씀 듣고 보니 대한민국은 역시 위대한 나라네요.”
그가 문병 온 친구에 화를 낸 것은 친구가 해온 그저 그런 인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들에 손을 벌리지 않고는 그 큰 돈을 낼 수 없는 그의 처지가 화가 나서 더 했다. 친구에 성질을 부려 미안하다며 세 해전 회사를 접기까지 낸 세금이 얼만데 그까짓 헬기 한 번 탔다고 비용을 대라니 이게 어디 위대한 대한민국이 할 일이냐고 울분을 쏟아냈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 옛날 같지 않다 해도 회갑의 본 뜻이 변하지 않는 것은 120세를 살지 않는 한 또다시 같은 갑(甲)을 맞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식들이 챙겨주지 않으면 혼자라도 해외의 명산을 다녀오리라 마음먹은 그가 허리를 다쳐 병상에서 회갑을 맞자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만 실패하지 않았다면 회사식구들을 다 불러 식사 한 끼 크게 낼 생각이었는데 이젠 다 꿈같은 소리가 되어버렸다.
요 며칠 그가 부쩍 웃음을 잃어버린 것은 헬기사용료가 걱정되어서만은 아니었다. 매일 저녁 찾아오는 아들이 회사일로 바쁘다며 찾아오지 않은 것이 벌써 나흘이 지났다. 힘든데 오지 말고 전화나 하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리하는 아들에 그가 더 서운해 하는 것은 오늘이 일생에 딱 한 번 맞는 회갑이어서였다. 아들이 찾아오면 회갑잔치비용이라 생각하고 헬기사용료를 내달라고 말할 참이었는데 어찌 눈치를 챈 것인지 밤 10시가 다 되도록 전화 한 통화 없었다. 며느리도 아침에 잠깐 들렀을 뿐 퇴근길에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자식들이 다 이 모양인데 어느 나라가 자식들보다 먼저 나서 자기를 돌보겠나 싶어지자 그는 자식농사 헛 지었다는 생각에 눈을 붙이지 못했다.
“아버지, 저예요. 국회감사준비로 요 며칠 집에 못 들어갔어요.”
국책은행에 다니고 있는 아들이 이제 퇴근을 한다며 전화를 해왔다.
“오늘 장모님 생신이라 이제 거길 가야해요.”
양력으로 세는 장모생일과 음력으로 세는 아버지 생일이 마침 겹쳐 어디라도 한 곳 밖에 갈 수 없을 터라면 장모생일에 가는 것이 요즘 세태이기에 여느 때 같으면 그래 알았다 하고 그냥 넘겼을 그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너 오늘 무슨 날인지 알고는 있느냐?”
“네, 알지요. 오늘 아버지 회갑이시지 않아요."
"그래 알고 있으면서 전화 한마디 ...?"
"섭섭하셨어요? 올해는 병상에 계시니 아무데도 못가시지잖아요?"
"그래서?"
" 빨리 나셔서 몸 만드셔요.올해 준비한 해외여행 프로그램은 내년에는 꼭 가실 수 있도록 말에요.”
"ㅡ"
“ 그런데 아버지, 그때 헬기가 119에서 보낸 거였죠? 산림청이 아니죠? ”
서운함이 풀리지 않은 그는 시큰둥하게 답을 했다.
“그건 왜? 그래, 119다. "
“아버지, 그러시면 됐어요. 걱정하실 것 없어요. 119는 공짜래요. 산림청 헬기는 산불진화용이어서 119헬기보다 훨씬 커 반을 대야 하지만, 119 헬기는 무료래요."
“아니, 그게 정말이냐? 어디서 확인했는데 믿을 만한 거냐?”
“그럼요. 아버님이 119에 근무하시는 제 친구에게 물어 확인한 거예요.”
이 말을 듣고서야 화가 풀린 그는
“그래 알았다. 아버지 이제 두 다리 쭉 뻗고 잠 좀 잘 수 있겠구나. ” 하며 전화를 끊었다. 보잘 것 없는 일개 국민을 구해준 대한민국에 얼마동안 투정을 부린 스스로가 부끄러웠던지 그는 혼잣말로 뇌까렸다.
“그러면 그렇지.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역시 우리나라가 최고지.”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생각난 듯 먼저 간 집사람을 불러냈다.
“여보, 방금 아들 녀석 전화 들었지? 오늘 회갑선물 정말 멋진 것 받았구먼. 아들 잘 키워주어 고맙소.”
*위 글은 방송대국문과의 2012년 1학기 '서사문학의 이해와 창작'과목의 과제물로 제츨한 것으로 몇 군데 가필정정했습니다.
첫댓글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말미에 반전을 보니 솜씨가 대단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