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실 부실 오는 토요일
8년 전에 가서 찾지 못한 도중리 석인상을 찾기 위해 구미로 갔다.
분명히 날씨는 흐리다 하였는데 중간 중간 맑고 비오고 흐리고 하늘이 지역마다 가지 각색이다.
2 시간을 달려 도착한 도중리 8년 전에는 도중리 마을이 완전히 없어지는 중 이었는데 지금은
공장지대로 바뀌어서 연기나는 공장은 없지만 마을 전체가 없어져 적막강산이다.
여기서 석인상을 찾기란 어렵다...그래서 도움을 받아서 찾았는데 의외로 찾기 쉽다.......
여 석인상은 마을 뒤 조그마한 전각안에 있었고 남 석인상은 마을 가까이 있는 개울 건너편
철 난간속에 있었다.
그러나 마을 전체가 공단에 포함되므로 이전 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100 m 정도 떨어 져 있지만 지금은 이전 하면서 서로 가까운 곳에 있다.
석인상은 2인상으로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인데 여인상은 전각속에 있다.
입구에 2~3분 걸어서 약간의 언덕을 오르면 있다.
남석인상은 덩치가 있고 눈은 부리부리하고 코는 크게 되어 있지만 손은 공수를 하였다.
여 석인상은 남자와 달리 머리에 관모는 쓰지 않았고 뒷머리 길게 늘어 뜨렸다.
필자의 생각은 두 석인 상 모두 남자로 보이고 관모를 쓴것은 혼인을 한 사람이고
머리를 늘어 뜨린 것은 총각의 개념으로 보이지만 머리를 땋지 않아서 약간의
남자로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서 발췌----경상북도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 도리리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상 2기.
[형태]
두 석상 모두 양식 수법이 비슷하나, 석상 중 기와집 내에 있는 하나는 관모가 없고 크기가 약간 작으며 높이는 155㎝ 정도이다. 맞은편 능선 북사면의 1기는 입상이며, 얼굴이 몸체에 비하여 크고 몸은 가는 편이다. 높이는 200㎝ 정도이다. 이 석상들은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지대를 삼고 그 위에 세워진 입상인데, 지대석 상면은 평평하게 인공을 가하였음이 뚜렷하다.
두부에는 관대가 넓은 문인 관모를 썼고, 양쪽 귀는 짧으며 상호는 원만 풍려한데, 양 미간과 코, 입 등은 불상의 상호 각부와는 달리 이형적이며 마치 장승의 얼굴과도 같은 인상이다. 의문의 표현은 없으며 양손을 가슴에 모아 패를 잡고 있는데 이러한 석조 조각은 조선시대의 문인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동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는 사각형 석주의 양식을 하고 있으며, 석괴(石塊)와도 같은 신상을 주고 있다.
실측치는 능선 북사면의 1기는 전체 높이 200㎝, 상 높이 160㎝, 머리 높이 42㎝, 관모 높이 30㎝, 어깨 폭 45㎝, 가슴 폭 21㎝, 머리 두께 41㎝이다. 나머지 한 석상은 전체 높이 155㎝, 머리 높이 42.5㎝, 가슴 폭 20㎝, 어깨 폭 38.5㎝이다.
[특징]
마을 수호신으로 숭앙되어 매년 정월대보름에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이러한 호신석의 봉사(奉祀)는 이곳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대부분이 조선시대 석상들이며 이곳의 석상도 물론 조선시대의 것으로, 두 석상 모두 양식 수법이 같다.
[의의와 평가]
전체적으로 고졸하며 불상같이 보이지 않는다. 조각 형태로 볼 때 묘에 세우는 문인상과 비슷하며, 조성 연대는 조선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