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의 주제를 두 마디로 요약해 보고 싶습니다. 히브리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방황하는 백성들”입니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방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독자들은 현재 고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안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0: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교회 다니는 분 중에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히브리서 10:32~34). 유대인 회당에 돌아가려 했다기보다는, 이방인의 신전으로 돌아가려 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겪는 힘든 상황들을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마음이 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으로 답을 하시겠습니까? 이것을 답하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채찍(경고)과 당근이 같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1장은 당근에 해당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8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라고 말씀합니다. 약속의 땅으로 가던 그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16절을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으로 가는 그 천상의 여정 그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장은 믿음의 선배들의 믿음의 행동들을 전부 기록하지 않습니다. 일부만 기록합니다. 잘한 것 다 기록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행동들을 기록하는데, 그 기준이 존재합니다. 그 기준은 전진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22절을 보면 요셉이 잘한 일은 한 가지입니다. 애굽에 머무르지 않고 죽어서 뼈라도 본향(귀향)에 묻히는 것입니다. 즉 약속의 땅 진입입니다. 24~28절을 보면 모세도 잘한 것은 애굽을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9~40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믿음의 선조들과 똑같이 약속의 땅 여정에 함께 하는 히브리서 공동체가, 교인들이 그들과 비교해서 결코 뒤처지거나 못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의 장에 기록된 선조들이 이들이 못 따라갈 영웅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리어 그 소위 믿음의 선조들보다 더 나은 사람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선조들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다릅니다. 여러분들은 그 약속이 성취되는 일을 완전히 경험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그 일부가 성취되는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겪고 고초를 당합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것이 완전히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약속된 것의 실현을 우리 삶 속에 경험하고 있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는 경험은 약속의 땅 받는 것, 즉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2절을 보면 “너희가 이른 것은”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미 천상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이르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 언제 이 여행이 시작되었습니까? 히브리서 1:6절을 보면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은 “코스모스”가 아닙니다(히브리서 10장). 히브리서 2:5절(“장차 올 세상”, “오이쿠메네 멜루사”)과 같이 “오이쿠메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맏아들로서 들어가는 세상은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맏아들로 천상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22~23절을 보면 천상의 예루살렘에 장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복수 “장자들”로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놀랍게도 “그리스도의 운명 공유”입니다. 그리스도의 운명을 성도들이 공유하게 됩니다. 천상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천상 성소에 진입해서 등극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와 같이 고난받지만, 결국은 영화롭게 되어서 천상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흔들리지 않는 나라” (히브리서 12:28), 즉 왕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공동통치자, 즉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우리 없이도 충분히 혼자 통치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뜻을 대행하는 자로 세우십니다. 이것이 왕권을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이 왕권을 받는 일의 의미를 히브리서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히브리서 12:28~29절이 “왕권”,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는 것을 말씀하는데, 그다음에 히브리서 13:1~3절은 그 왕권 받음을 무엇으로 표현합니까?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느니라 너희도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 그리스도의 통치자가 된다는 것은, 이 통치권을 단순히 가지고 있는 일이 지위를 자랑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통치권은 형제를 사랑하고 손님을 대접하고 갇힌 자를 생각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맏아들로서 천상의 예루살렘에 들어간 자로서, 그곳에서 왕권을 받은 자로서, 이런 일들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3:13~14절을 보면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곳, 그 약속의 땅이 어디인지 알게 됩니다. 그곳은 중심부가 아닙니다. 모두가 선망하는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겪으시고 치욕을 짊어지신 영문 밖입니다. 우리가 약속의 땅을 일부 이미 경험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약속의 땅은 현재적으로 어디에서 경험이 됩니까?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신 곳으로 갈 때 가장 주변부 그리고 가장 낮은, 그리고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서 희생의 역할을 감당할 때 경험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상속”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6:12절을 보면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기업”이라는 말이 “상속”의 의미입니다. 히브리서 9:15절의 “영원한 기업의 약속”에서 “기업”이 “상속”의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가 상속자이듯이 우리도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우리 역시 상속자입니다.
히브리서 1:6절을 보면 “장자” 호칭이 등장합니다. “장자” 호칭은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성경과 유대 문헌을 보면 “장자” 호칭은 처음에는 이스라엘입니다. 출애굽기 4:22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가려 할 때 주어집니다.
다음에 “장자”라는 호칭이 언제 주어집니까? 예레미야 31:9절을 보면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새로운 출애굽, 귀향, 홈커밍(homecoming) 때입니다. 히브리서의 “장자” 역시 천상 순례, 천상의 세계에 들어갈 때, 귀향, 홈커밍(homecoming) 때에 “그리스도 장자”, “그리스도인이 장자들”로 표현합니다.
그러면 천상의 순례, 천상의 세계에 들어가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상속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히브리서 12:28절을 보면 하나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 즉 왕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즉 그리스도의 제의입니다.
하늘 성소로 나가는 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영문 밖에 있습니다. “영문 밖”이 제의의 시작점입니다. 화려하고 대단하여서 모두가 선망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 겪으시고 치욕을 짊어진 영문 밖입니다.
히브리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그 백성의 이야기입니다. 누가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까? 누가 그 땅에 들어가서 땅, 즉 왕권을 상속받습니까? 누가 그리스도의 완전한 제의에 참여합니까? 그리스도와 공동의 운명체인, 장자들인 저와 여러분인 줄 믿습니다. 위로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맏아들, 백성들은 방황하지만 방황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믿으십시오. 믿음은 곧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래 참는 일의 다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소망일 수 있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주변에 도움과 위로의 손을 뻗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