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제비
“여보, 당신은 내가 뽑아준 차가 마음에 안 드나?”
“안 들다니요? 출근하려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요?”
“요새 당신 표정이 여엉 별로 라서......”
“으응 연구실 예산이 절반으로 삭감됐어요, 실적이 없다고......”
박교수는 대학연구실 미스 김이 며칠 전부터 ‘부모들이 결혼 날을 잡아야 된다고 닦달하는데 어쩌면 좋으냐.’ 고 오래 지속된 자기와의 불륜관계 청산을 빌미로 결혼자금을 요구하는 듯 은근한 협박이 가슴을 죄어와 삭감 되지도 않은 애먼 예산을 방패막이로 뱉었지만 속마음은 편치 못하다.
‘그래 돈을 먹으려는 년에게는 돈이 최고 보약이지. 한 입 처넣어 막는 수밖에 그래야 이 자리도 유지 되지’ 그러자면 마누라의 자금줄에 기댈 수 밖에.
“개새끼들 당신 연구비 예산 떼어다가 다른 놈 주머니를 채울라꼬 그라제?”
“으-응! 그런 거는 아이고, 곽여사 당신은 너무 오버하지 말아요.” 박교수는 상념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당신 조금 참아봐라. 나도 요즘 힘들거덩. 포목점도 옛날 같잖코 장사꾼 상대 일수놀이도 여엉 별론기라. 더구나 강군 그 새끼조차 뱃떼지에 기름이 낀까네 말도 안 듣고 지랄 안하나. 이번에 뽑은 당신 차 값 월부 넣기도 어렵다 카이”
고급 승용차 사주었는데 웬 불평이냐는 뜻으로 들려서 박 교수는 말머리를 돌린다.
“왜요? 강군이 당신이 지시하는 배달일도 거부하나요?”
“나쁜 새끼! 껄뱅이를 살려 논까네 요새는 삐딱하다 아이가. 당신 친구 중에 아는 형사 없나?”
점포 배달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형사? 형사는 왜요?”
“요새 제비족 단속이라 카던데 그거로 몰아서 한번 혼구녕을 내 주면 애를 안 믹이고 잘 할 꺼 아이가”
“음! 내 한 번 알아보지만 너무 닦달하지 말고 적당히 구슬러요”
“그래! 형사 좀 알아보고......, 여보 힘내라”
‘형사는 무슨’ 아는 형사도 없지만 알아 볼 마음도 없다.
도무지 다이어트란 단어와는 담을 쌓은 땅딸보 마누라가 자기 엉덩이를 툭툭 치며 자식 대하듯 하는 버릇도 이제는 사양하고 싶지만 부부관계를 언제 했는지 감감함에 조금은 죄스런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당장은 미스 김 입을 막는 목돈이 필요하다.
“우선 앉으시죠.”
“아! 예”
의자 다리가 체중을 받쳐 주기에 역부족일 만큼 엉거주춤한 자세로 커다란 둔부를 얹는 곽여사는 제 깐에는 남산 같은 몸을 커버하려고 코디에 신경을 썼겠지만 레이스달린 검정원피스에 검고 넓은 챙의 모자가 경찰서 민원실에 왔는지 상가에 왔는지 모를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데다 역겹도록 진하게 바른 붉은 립스틱은 부조화의 극치다.
민원실장은 아침부터 이상한 차림새의 민원인과 만남을 어떻게든지 빨리 끝내고 싶은 표정이다.
“무슨 일로 오......”
“순경 아저씨! 요새 제비족 소탕 기간이지예?”
“제비족 소탕기간이 아니라 서민생활 침해사범 일제......”
“그기 그거 아잉교.”
정색을 하면서 나서는 곽여사는 남의 말허리를 잘도 자른다.
“그럼 용건을 자세......”
“내가요! 못된 제비족한테 걸려 가꼬 고생 엄청 하거든 예......”
“아! 제비족 문제라면 강력반 소관인데 제가 유능한 형사강력팀장을 소개시켜 드릴 테니 절 따라오세요."
대꾸할 여유도 주지 않고 앞장서서 형사계로 성큼성큼 걸으며 격에 맞지 않는 상담자와 빨리 헤어질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듯 발걸음이 가볍다.
형사계 사무실은 조용한 민원실과는 달리 난장판이다.
밤을 꼬박새운 당직반은 야간에 끌려와 범행을 부인하는 절도, 폭력 피의자와 언성을 높이고 이제 막 출근한 형사들은 자판기 커피를 들고 어제 잠복이야기로 시끌벅적하고 오늘 근무자는 사건 인수인계로 어수선한데 실장을 따라 들어오는 곽여사의 괴기한 차림에 사무실이 일순 조용해지며 호기심 어린 눈길이 모아진다.
밤샘근무 피로를 라면 국물로 속을 풀던 강력반장은 양미간에 내천(川)자를 그리며 우선은 곽여사에게 의자를 권하고 민원실장의 짧은 부언을 듣는다.
휴지로 입을 딱은 강력반장에게 그녀는 부끄럽다거나 본인체면, 이웃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덩치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두서없는 말을 봇물처럼 토해내자 참고인, 피해자, 피의자, 형사 할 것 없이 모두 질시의 눈총을 보낸다.
“내가 예, 시장에서 포목점을 크게 하고 있거든 예. 그런데 예......”
시간이 조금 흐른 후 강력반장이 민원실장을 찾았다.
“실장! 그기 사건씩이나 된다고 강력반에 데려 왔능교?”
“무슨 말씀이신지?”
“아! 그 곽씨라는 뚱뚱한 여자가 일수놀이를 겸해서 포목상 하는데 그 앞에서 노점 하는 강 씨라는 사람에게 자기 손으로 트럭도 사주고 점포도 전세로 얻어주고 했다는데 그기 갈취폭력이 되겠능교? 잘 들어 보고 접수하지......”
“아-아니. 그 여자 말이 그 놈 공갈에 빼앗겼다고 하던데......”
“공갈은 무슨! 여하튼간에 형사과장에게 형사계에서 할지 조사계에서 할지 물어보고 할 테니 일단 사건 접수부는 나중에 처리하도록 합시다. 황형사에게 진술을 들어 보라하고 내가 얼핏 들으니 길바닥에서 장사하는 강 씨라는 사람이 불쌍해서 술도 한잔씩 사주기도 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자신을 여관에 데려가 강제로 범하고는 그 사실을 대학교수하는 자기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공갈협박을 해서 차랑 집이랑 얻어주었다고는 말 하지만 그 여자 덩치를 보소 범했는지 당했는지, 그 여자 어디를 보고 따 묵겠든교, 여엉 찜찜한데......”
‘따 먹다니 어디 그게 과일인가?’
“마! 강력반에서 껀수 한 번 올려 보이소”
딱 맞아 떨어지는 갈취사건은 아니라는 듯 말을 아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나갔다.
오후 무렵
강력반 황형사가 형사기동차에서 수갑 채운 수척한 중년남자를 앞세우고 들어오고 뒤따라 도착한 택시에서 내린 곽여사가 뿔테 안경에 양복 차림의 남산골샌님 같은 남자를 뒤딸리며 가슴을 쫙 하니 펴고 보무도 당당한데 모두 들으라는 듯이 고함을 질렀다.
“마! 강씨 저놈을 이판에 콩밥을 멕이야 정신 차리능기라. 내가 지한데 해 준기 얼만데 나를 깔보고 공갈을 쳐. 이 새끼 법이 무서븐거를 걀켜 줘야 한다카이”
“여보! 소리가 너무 커요. 좀 조용......” 언행이 그녀의 남편인 듯 싶다.
“들으몬 어때요, 이런 사건은 신문방송에서 떠들어야 제비족 새끼들이 정신을 채리능 기라”
제비족에게 당한 여자치고는 매우 당당한데 오히려 남자가 무안하여 고개를 숙이고 있다. 민원인이나 경찰관들도 킬킬거리며 뚱뚱이와 홀쭉이 둘 사이의 역학관계에 호기심을 갖고 추론해 보는 눈치다.
조금 사이를 두고 포대기에 애기를 업은 부인이 민원실에 들어왔다. 버스에 내려 달려 왔는지 숨이 턱에 닿아 손바닥으로 땀을 훔치며
“순경 아저씨, 금방 온 우리 아저씨 어데로 갔능교?”
“저어 장사한다는 강씨 말인가요?”
“예, 우리 남편은 아무 죄도 없어 예. 다 사모님 시킨 대로 했어 예, 우리 아저씨는 착합니데이. 내 모리게 마음고생 억수로 하던 눈치 던데. 아이고, 우리 집은 인쟈 절단 난기라 우야꼬, 우짜몬 좋노”
형사계로 가는 실장 뒤를 그녀가 눈물 콧물을 훔치며 따른다.
사건 배당부에 날인을 받으러 온 실장에게 강력반장이 “실장 조금 이상하기는 한데 저 친구가 수차례 여관에서 관계하고 차도 집도 사 달라고 한 것을 모두 시인했어요. 우리가 사건 맡을 께”
“그럽시다. 여기......”
날인을 하면서도
“그런데 뭔가 좀 찜찜해요” 여운이 남는다 이 말이지.
수갑을 풀고 철 의자에 앉은 강 씨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데 곽여사가 다가가 머리를 툭툭 치면서
“야! 강군! 인쟈부터 내한테 공갈 안치고 시키는 말 고분고분 들을끼가? 아이몬 콩밥 묵도록 해 주까”
“......”
“아주머니! 왜 가만있는 피의자를 건드려요, 그 옆에서 떨어져 민원인 대기실에 가 있어요.” 황형사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아따! 형사아저씨 피해자가 나쁜 제비족 훈계 좀 하능기 머가 그리 잘 못 됐능교? 그라고 아주머니가 먼교, 하고 좋은 사모님 소리를 두고 내 참!”
황형사가 입엣 말로 “사모님 좋아하시네. 꼴에......”
흔히 취급하는 사건 중에서 공갈로 재물을 갈취한 능글능글한 제비족과 자기 몸을 더럽혀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풀죽은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고 역할 바뀐 모양새다. 한쪽 구석에서 곽여사 비위를 건드릴까 두려워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우는 애기를 토닥거리는 강씨 부인이 측은하게까지 보인다.
다음 날 아침
황형사가 민원인 통지서를 보내려고 들렸다가 어제 사건을 입에 올린다.
“실장님, 그 어수룩한 제비 안 있습니까. 어제 밤에 합의하고 나갔습니다.”
“합의요?”
“예, 고소한 여자가 남편과 같이 와서 고소를 취하하고 그 친구를 데려 갔습니다. 검사지휘가 불구속으로......”
“데려가요?” 그림이 영 안 맞다.
“제가 조사를 해 보니 그 여자가 남편 묵인 하에 강씨를 데리고 논 것 같습디다. 어려울 때 차 사주고 점포 얻어주는 대가로 데리고 즐겼는데 강씨가 근래 장사가 잘 되어 찻값이랑 전세를 변제해 주었고 강씨 마누라도 은연중 눈치를 채고 그 짓을 그만 두었으면 하는 눈치고 해서 근래는 만나자는 것을 거절했더니 고소한 것 같애요”
“한 마디로 제비를 길렀다 이거네요”
“남편은 대학교 연구실에서 밤낮을 보내니 남편 보기도 힘들지요. 지가 경제권을 쥐고 흔드니 남편은 꼼짝을 못해요. 강씨도 어질어 빠져서 형사라 카니 교수에게 지은 죄가 있어서 안 한 것도 전부 시인한 겁니다. 젠장! 그 여자 손에 형사가 놀아 난 꼴이지 뭡니까. 아마도 이제부터는 말 잘 듣는 착한 제비가 될 겁니다”
실장은 실소하며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천정을 본다. '아~ 착한 제비'
첫댓글 계속되는 지기님의 꽁트 읽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박교수도 곽여사 도움으로 미스 김
입 막았겠죠?
긴 문장은 줄을 한번 씩 바꾸고,숨을
쉬어야 할 때는 쉼표를 한번 씩
찍어 주시면 더 재미를 느끼겠어요^^
동방님! 그러네요.
문장이 세로로 너무 길다 보니 좀 헛갈리기도 하네요.
다음부터는 참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댓글 감사드려요.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꽁트가 완전 잼있네요.
근데 박교수는 연구실 미스김의 은근한 보상요구를 어찌해주었는지 궁금하네요.
역시 세상에 모든 것이 공짜는 없는기라~
점슴 먹고 난후 조금은 나른해지고
자부럼도 오는 시간에 픽션(?) 같은 글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담편은 또 언제죠?
너무 독촉하지 마세요. ㅋㅋㅋㅋ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기,승,전,결의 묘가 더해져야 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