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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목양! 그 소중한 권리와 의무
성경 에스겔 34장 1-6절
찬송 442장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다 목자들이었습니다. 모세나 다윗도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움 받기 전에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이렇게 목자가 이리저리 양떼를 몰고 다니며 목양하는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무너무 익숙하고 살가운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일컬어 이스라엘의 목자라 말씀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을 향해서도 너희는 내가 내 백성 위에 세운 목자들이라 말씀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물론 이런 말씀을 들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까요? 목자는 어떤 사람이며 그가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맞습니다. 목자는 양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열심히 양의 뒤를 따라 다니며 꼴을 먹이고 악한 짐승들에게서 양들을 보호하는 일이 바로 목자가 하는 일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목자가 하는 이런 일은 매우 낭만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꿈꿉니다. 나도 저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목자의 겉모습만 생각하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드넓은 초원을 한가로이 떠돌며 짐승 떼를 돌보는 목자들의 삶! 얼마나 낭만적이고 여유가 넘치는 삶처럼 보입니까? 그럼 목자들의 속사정은 어떨까요? 그들의 속사정도 그들의 겉모습만큼이나 낭만적이고 여유가 넘치는 모습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타락하여 심히 부패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생이 다 그러하듯, 이 땅에서 목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너무 힘들고 고단한 일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들판에서 양들과 함께 지내며 사는 목자들을 생각해보십시오. 낮에는 뙤약볕 아래서, 밤에는 추위에 떨면서, 쉴 틈 없이 양떼를 돌보고 지켜야 합니다. 왜요? 양떼를 노리는 악한 짐승들이 사방에 우글거리기 때문입니다. 또 목자들은 결코 한 곳에 머물러 살 수 없습니다. 늘 푸른 풀과 물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녀야 합니다. 밤에는 양떼 곁에서 함께 자야 합니다. 그 잠자리가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겠습니까? 이렇게 목자의 삶은 낮에나 밤에나 늘 긴장의 연속입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이런 일을 평생 하며 살아야 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기꺼이 이 일을 하겠다고 나설까요? 글쎄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나누다 보니 목양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생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며 짐승을 돌보는 일은 어찌 보면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힘들고 고단한 일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만나는 목자들은 절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굳건하게 걸어간 위대한 사람들의 발자취를 우리는 목자들의 모습 가운데서 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일컬어 목자라 말씀하실 때,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위에 세우신 목자들을 생각할 때도, 우리는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멘입니다. 죄로 심히 오염되고 부패한 이 땅에서 누가 목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걸어가는 목자들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인생입니까? 이런 목자들을 닮고 싶으신가요?
여기서 우리는 다시 묻습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무엇 때문에 목자들은 양을 돌보는 그 큰 수고를 기쁘게 감당합니까? 예, 양들을 통해 유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양은 목자에게 너무너무 많은 선물을 안겨줍니다. 털을 내어주고, 젖을 내어주고, 가죽을 내어주고, 심지어 자기의 살과 피를 내어줍니다. 한마디로 양들은 자기의 전부를 목자를 위해 내어줍니다. 이를 통해 목자들은 목숨을 부지할 수 있고, 삶을 부요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들은 그 많은 수고와 괴로움과 아픔을 넉넉하게 견디며 양떼를 돌보는 삶을 살아갑니다.
맞지요? 이 일을 생각하며 다음 질문에 대답해보십시오. 양들이 목자들을 위해 있습니까?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있습니까? 당연히 양들이 목자들을 위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양들이 목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들을 위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그 말씀을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목자들에게 예언하라 그들 곧 목자들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 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 떼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겔34:2-4)
가만히 들어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시는 하나님의 관심이 어디 있습니까? 목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 관심이 온통 양 떼에게 있습니다. 앞서 나누었던 목자와 양떼 이야기에 따르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양떼보다 목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실 것 같습니다. 왜요? 목자가 양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양떼가 목자를 위해 있는 것이 마땅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목자보다 양 떼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실까요?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여기 에스겔서가 말씀하는 양떼는 짐승의 떼가 아닙니다. 그들은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양떼입니다. 한 분 삼위일체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말할 수 없이 큰 은혜와 사랑으로 돌보며 기르시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입니다. 그들을 일컬어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 양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양떼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 기르시는 일은 누구의 일입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왜요? 그들이 하나님의 양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일을 누군가에게 맡기셨습니까?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몇몇 사람들을 구별하여 목자로 세우시고 당신의 양 떼를 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잘 돌보라 하셨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키고 보호하라 하셨습니다. 그들이 살지며 건강하도록 잘 먹이라 하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목자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세우신 목자의 모습은 완전히 다릅니다. 보통 목자들과 달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 세우신 목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결코 자기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양떼를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에스겔서에 나오는 목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와 정반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사명과 의무를 철저하게 무시하고 거절하였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양떼를 이용하려고만 할 뿐 양떼를 위해 자기를 내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사랑으로 양떼를 잘 돌보려하기는커녕 무자비한 폭력과 착취를 일삼기만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양떼인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선한 목자의 돌봄을 받지 못한 양들은 이리 저리 흩어져 들짐승들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자들 가운데 누구 하나 양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에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겔34:4-6)
이런 악은 하나님의 양떼를 맡아 기르는 목자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입니다. 자기 소유의 양떼에게도 이렇게 할 수 없거든 하나님의 양떼를 맡아 기르는 목자들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돌보는 양떼는 한 분 삼위일체 천지의 대주재이신 하나님께서 아주 특별한 사랑으로 돌보고 기르시는 양떼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시면서까지 사랑하고 위하시는 양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고 섬겨야 할까요? 절대 짐승 떼를 돌보는 보통 목자들처럼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거나 섬길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양떼를 이용하여 자기 욕망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기꺼이 양떼를 위해 자기를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짐승 떼를 돌보는 보통 목자들 가운데서도 양떼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선한 목자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에스겔서를 보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세우신 목자들 가운데 이렇게 사는 사람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어떻게 다른 이들도 아니고 하나님의 양떼를 맡아 기르면서 이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이 행한 일들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악행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께 이렇게 큰 슬픔과 아픔과 손해를 안겨드리고도 그들이 책망 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는 참으로 염치없는 일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을 향해 분노하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자기만 먹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떼를 먹이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겔34:2하)
당연히 이 말씀은 오늘 우리 시대 하나님의 교회를 향해 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다시 새겨듣도록 합시다. 성경이 말씀하는 목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 위에 세우신 목자들은 짐승을 돌보는 보통 목자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입니다. 물론 짐승을 돌보는 목자들도 자기 소유인 짐승을 사랑하고 위합니다. 최선을 다해 돌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그들을 돌볼 뿐입니다. 그가 돌보는 짐승들이 자기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면, 얼마든지 그들은 짐승들을 버릴 수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왜요? 그가 양떼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양떼가 그를 위해 있으니까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들은 그럴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절대 자기 유익을 위해서 양떼를 돌보지 않습니다. 거꾸로 기꺼이 양떼를 위해 자기를 내어줍니다. 양떼를 위해서라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가 돌보는 양떼는 자기 양떼가 아니라 온 세상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잘 돌보라고 맡겨주신 하나님의 양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돌보는 하나님의 양떼는 하나님께서 너무너무 사랑하고 위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들을 사랑하시는지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양떼는 그만큼 소중하고 귀한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더 잘 알기 원하신다면, 우리의 참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떼를 위해 기꺼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보십시오.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목숨을 내어주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양떼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합니까? 그 귀하고 소중함을 다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우리는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값으로 지불하시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는 온 우주보다 더 귀하고 소중합니다.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광활한 이 우주보다 하나님의 자녀 한 사람, 하나님의 양 한 마리가 더 귀하고 소중합니다. 그러니 이 양떼를 돌보고 섬기는 사명을 받은 목자들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사명을 받은 것입니까? 그런데 이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사명을 내던지고 자기 욕망을 위해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를 이용하거나 착취한다고요?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내 주위를 돌아보십시오. 저 먼 옛날 에스겔 선지자의 시대처럼 오늘 우리 시대 또한 온통 자기 유익만을 위해 사는 목자들로 넘쳐납니다. 자기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의 교회와 양 떼를 이용하고 착취하려고만 할 뿐, 양떼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일은 절대 할 수 없는 거짓 목자들로 온 세상이 가득합니다. 이렇게 참 목자를 찾아보기가 심히 어려운 이 시대에 예수님을 닮은 목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입니까? 이런 목자와 함께 사는 교회와 성도들은 얼마나 행복하고 복될까요?
저는 하나님의 교회인 우리 교회에서 이런 목자로 살고 싶습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자의 자리를 끝까지 잘 지키고 싶습니다. 그 일이 제게 아무리 큰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그 뒤에 오는 영광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만 이런 마음과 소원을 가졌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 두신 목사직(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를 낳고 기르고 돌보는 직분)을 저와 함께 감당하고 계시는 수많은 분들을 보십시오. 이분들 또한 저와 똑같은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 목사님,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그리고 가장들과 엄마들, 교회학교 선생님들을 보십시오.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순천새중앙교회을 일컬어 복되고 아름다운 교회라 합니다. 물론 이 말씀을 이렇게 하고 있는 저 또한 주님의 십자가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 고백하며 부끄러움으로 입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십자가 앞에 엎어져 울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제 마음이 꼭 그 마음입니다. 맞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죄를 회개하지 않을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저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하나님의 양떼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며 섬기는 목자들이 정말 많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목양의 비밀을 따라 목양하는 그런 목자들이 정말 많이 계십니다. 새중앙교회를 섬기시는 목사님들, 장로님들, 집사님들, 권사님들, 가장과 엄마들, 교회학교 선생님들, 모두가 다 이런 분들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 교회는 너무너무 아름답고 복된 교회입니다.
어떠세요? 저와 함께 이 거룩한 자리에 나아가 우리를 목자로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시원하게 해드리지 않으시렵니까? 그리하여 참 목자의 사명을 다하고 하늘 영광 가운데 들어가신 예수님, 온 세상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뒤를 함께 따라가지 않으시렵니까? 맞습니다. 목양하는 일은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어떤 경우에는 양떼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이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를 목양하는 일입니다. 진리가 이러하므로 우리 모두는 주저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서 목자로 살겠다며 함부로 나설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나님께서 맡기시니 기꺼이 감당하는 길로 나아갑니다. 내가 돌보고 섬기는 양떼가 하나님의 양떼이기에, 예수님처럼 그 길을 굳건하게 걸어갑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우리 모두 다 이렇게 영광스럽고 보배로운 사명,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들 가운데서 목자로 살아가는 이 아름다운 사명을 함께 감당합시다.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함께 손잡고 이 길을 굳건하게 걸어갑시다. 지금 다시 눈을 들어 우리의 선한 목자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양떼를 위해 목자로 사는 인생보다 더 아름답고 복된 인생이 없습니다.
이제 목자에게서 눈을 돌려 양 떼를 생각해봅시다. 모든 양 떼가 다 마찬가지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양 떼가 가진 가장 큰 특권 가운데 하나는 바로 목양 받을 권리입니다. 목양을 통해 당신의 양떼를 살찌우고 건강하게 양육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어떤 일보다 더 간절히 바라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하나님의 양떼인 교회와 성도들에게서 이 권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라면 절대 이 권리를 빼앗겨서도 안 됩니다. 누구라도 감히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에게서 목양 받을 권리를 빼앗는 자가 있다면, 그가 누구든 크고 두려운 심판을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 떼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도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 먹이가 되지 아니하게 하리라(겔34:10)
아멘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악한 목자들에게서 당신의 양떼를 지켜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또 여기에 더하여 친히 우리의 목자가 되어주시겠다고까지 말씀해주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34:11-15)
이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당신의 양떼를 먹여 배부르게 하고, 지켜주어 강건하게 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그 거룩한 소원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그 소원이 내 마음 깊은 데로 전해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절대로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목양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절대 목양 받을 권리를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 곧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한 마음으로 받으십시오. 절대 내가 받고 싶은 말씀만 골라 받으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목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고 싶은 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꼴이 내게 최고의 양식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는 초장과 시냇가가 내게 최고로 복된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이 일을 사모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여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들으려 하지 마시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며 사십시오.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십시오. 내가 나를 아는 것이 더 정확합니까?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나를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는 것이 더 정확하고 바릅니다. 진리가 이러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을 거절하고 다른 그 무엇을 구하러 다니는 양 떼의 모습만큼 비참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가운데 이와 같은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목양을 받는 양의 모습이 아닙니다. 스스로 목자가 되어 설치는 악한 양의 모습일 뿐입니다. 이런 양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는 목자를 통해 항상 필요한 양식을 풍성하게 공급받아 살지고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양떼가 아닙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쉴만한 물가와 푸른 초장을 떠나 광야와 사막을 헤매며 다니는 양떼일 분입니다. 그렇게 다니며 어떤 꼴도 먹지 못해 메마르고 피골이 상접한 채 죽어가는 양 떼의 모습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다시 말씀드립니다.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목양 받을 권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그 권리를 지켜 가십시오. 오직 그 길만이 내가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교회 안에 목사와 교사로, 장로와 집사와 권사로, 가정모임을 섬기는 지도자로, 교회학교의 교사로, 각 가정의 엄마와 아빠로, 세움을 입은 형제자매 여러분! 절대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교회와 양떼에게서 목양 받을 권리를 빼앗지 마십시오. 그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신실하게 감당하도록 하십시오. 또 그 복음과 말씀을 전할 때, 무엇을 더하거나 빼려 하지 말고 온전하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와 양떼를 목양하기 위해 공급해주시는 양식과 꼴이 바로 이 복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양떼는 순전하고 풍성한 꼴을 공급받을 권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 식구들 가운데 누구도 이 권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우리 교회와 지체들 모두에게 이 은혜와 복이 항상 충만하여 넘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땅에 있는 교회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자들은 다 예수님을 본받아 목양에 힘쓰는 사람들입니다. 이 진리를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5:2-4)
목양은 목양 받는 사람에게나, 목양하는 사람에게나 참 행복한 일입니다. 다시 한 번 다짐하고 결단합니다. 아무도 우리에게서 이 행복을 빼앗아가지 못하도록 합시다. 새중앙교회의 담임목사인 저 또한 절대 이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방해나 훼방이 있다 할지라도, 어떤 위협이나 협박이 있다 할지라도, 어떤 유혹이나 미혹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목자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갈 것입니다.
2024년 새해가 다가옵니다.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오직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모이기에 힘쓰도록 합시다. 온 교회가 함께 일어나 예수님처럼 목양하고 목양 받는 아름다운 교회와 성도로 자라가도록 합시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실 때,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얼마나 좋아하고 기뻐하실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