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데이
오늘은 남편과 아들에게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남편도 2달 가까이 재택근무 중이라 서재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아들도 작업실에서 작업한다고 식사 시간 외에는 거실로 나오는 일이 드물다. 그러다보니 나도 서재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 서재에 커피 배달하고 아들 작업실에 좋아하는 복숭아 아이스티도 챙겨주면서 오전을 보낸다. 가끔 휴식 시간에 거실로 나와서 베란다 화초를 돌보는 일로 남편은 머리를 식히는 것 같다.
글을 쓰다가 가슴이 답답해지면 베란다로 나가서 겨울에도 싱싱함과 푸릇푸릇함을 자랑하는 상추를 돌본다. 텃밭을 가꾸면서 지내는 남편 덕분에 싱싱함을 만지고 보고 느끼면서 날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비가 연일 내렸다. 눈으로 변하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눈은 오지 않았다, 주말에 보현산에서 눈과 원없이 놀아서 아쉬움은 없다, 아직도 내 몸에서는 눈의 향기가 나고 있으니까. 햇볕이 구름에 가려져서 비에 갇혀서 숨어 있으니, 텃밭의 상추가 시무룩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쑥쑥 자라는 모습에 행복했는데 요즘은 조금 안타깝다. 그래도 기다리면 햇볕이 환하게 웃으며 찾아올 것을 알기에 기다린다. 착하게. 가끔 비가 그친 틈을 타서 ‘까꿍’하면서 나오기도 하고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숨었다 하면서 술래잡기를 하기도 한다. 사랑초가 겨울에도 꽃을 피우며 베란다를 향기고 채우고 있다.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꽃이다.
아들과 산책하러 나갔다. 작업실에서만 있어서 일부러 가자고도 한다. 어지간하면 동행한다. 26살이 되었는데 언제나 막둥이다. 속도 깊고 곁에서 딸 노릇까지 해준다. 요리를 잘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색다른 요리를 선보인다. MZ세대들이 좋아하는 젊은 요리를 해주니까 우리도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 늘 그랬듯이 햄버거와 치킨을 미리 예약했다. 산책하러 나가는 근처에 햄버거집이 있어서 아들과 함께 갈 때는 햄버거와 음료를 사서 온다. 오늘은 치킨도 함께 주문했다. 남편도 재택근무 하면서 준비하는 시험이 있어서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다. 기분 전환할 겸 이벤트를 준비했다.
아들과 산책하러 나가는 시간이 즐겁다. 그다지 말이 없어도 좋다.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고 힘이 되고 그냥 행복해지는 호르몬이 퐁퐁 솟는다. 햄버거와 치킨을 사 들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매화를 보았다. 날씨 탓인지 꽃이 많이 피지는 않았지만, 매화 향기가 코끝에 닿았다. 매화를 보았으니 봄이 온 것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꽃에 입술이 가까이 되었다. 가녀린 잎이 파르르 떤다. 반갑다고 대견하다고 인사했다. 나도 봄처럼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26살 청년도 매화 향기에 빙그레 웃는다. 매화나무와 아들이 참으로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집으로 콧노래 부르며 아들과 손잡고 걸었다. - 2024년2월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