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 거금도 박치기의 제왕 김일 기념체육관(金一記念體育館)
2024.9.1(일) 전남 고흥 예술의 섬 연홍도 섬트레킹을 마치고 거금도 백리섬 섬길(해안가 바닷가 드라이브 코스) 일정중
김일 기념체육관의 탐방시간을 갖는다(11:15~11:30)
김일 기념체육관(金一紀念體育館)은 기념관(紀念館), 야외 공원과 함께 김일 선수 고향에 2009년 조성되었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대명사이며 『박치기의 제왕』인 프로레슬링 전 WWA 세계 챔피언인
『김일』선수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993년에 조성한 체육관으로 전시관과 체육관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를 추모하는 박치기 대회와 프로레슬링 대회가 매년 열린다.
전남 고흥군 금산면 거금중앙길 40
입장료,주차료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 휴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임자의 희망이 무엇이오 ?
김일 선수는 제 고향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 말하자
전국의 섬 중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오게 한 은인이라 말할 수 있다.
김일(金一) 기념체육관 표지석과 기념체육관 전경
힘들고 어렵던 시절 박치기 한방으로 전 국민의 한을 씻어주고 웃음과 희망을 주었던 박치기왕 김일
우리들의 영웅을 이곳에 영원히 기리다.
2012.12. 고흥군수
세계 참피온의 위용
허리에 두르는 참피온 벨트가 화려하다.
김일 선수는 184센티미터의 거구로서 각종 씨름대회에 우승을 한 이름난 장사이다.
운암 김일(雲岩 金一 ) 동상
운암 김일(雲岩 金一, 1929~2006) 선수는 역도산의 제자로 장영철, 천규덕과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이다.
박치기왕으로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및 30여 년간 3,000여 차례 경기를 했다.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고,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수도치기(샵)
역도산, 천규덕 선수 특기
코브라 트위스트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 이노끼 선수의 특기
박치기 완성 동작(헤드 버그)
박치기전 기본동작
김일 기념관(내부 전시실 공사로 관람 중지)
기념관에는 평생 3,000여 번의 링 위에서 뿌린 땀과 정열
그리고 김일 선수의 역사가 담긴 우승 트로피와 우승컵, 챔피언 벨트, 기념패,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일체육관 내부 상단에는 김일선수의 사진이 걸려 있다.
김일 유품전시실
<영원한 챔피언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약력>
장영철, 천규덕과 함께 한국 프로레슬링 1세대로 활약하며 1960년대~70년대 중반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박치기 왕'으로 불렸다.
국내 씨름판을 주름잡다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역도산에게 계속 편지를 써 1957년 도쿄의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였다.
역도산에게서 호랑이를 때려잡는 사나이라는 뜻의 '오오키 긴타로'라는 이름을 받고 특기로 박치기를 연마했다.
일본 현지에서 '원폭 박치기'로 불릴 만큼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그의 박치기는 서양의 거구 레슬러도 한 번에 쓰러질 정도였다.
김일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1963년 미국 원정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제23대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챔피언 등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 30여 년간 3,000여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
은퇴 후 사업을 하다가 1987년부터 레슬링 후유증과 고혈압으로 쓰러져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후배 양성과 프로레슬링 재건에 힘썼다.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으며 사후인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되었다.
2009년 9월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에 김일기념체육관과 기념관, 야외공원 등이 조성되었으며,
매년 그를 추모하는 박치기 대회와 프로레슬링 대회 등이 열리고 있다.
김일은 16세의 어린 나이에 6척 장신으로 성인들을 제치고 황소를 타는 등 호남의 씨름판을 휘어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