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서 하회, 하회에서 전주까지
아침 여섯시 30 분 대구행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다.
진안 장수를 지나 덕유산 터널을 통과하여 함양에 닿고
88고속도로를 달려 대구에 도착한 것이 아홉시 15분,
그 사이 나는 작은 배낭에 넣어온 세권의 책을 이리저리 읽었다.
도착 시간이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다.
9시 35분 안동행 버스를 기다리고, 차는 다시 중앙고속도에 접어든다.
칠곡. 군위 의성을 거쳐 남안동 Ic에서 내려
낙동강을 바라바며 달려 안동에 닿은 시간이 열한시,
안동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하회행 좌석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정확히 열한시 20분에 떠나고 요금은 1650원이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조금 빠르다. 열두시 3분에 하회도착
경북도 공무원교육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자 금세 도착한단다.
‘안동 간 고등어’에 ‘안동 찜닭’이 함께 나온 점심을 먹고서
하회탈 공연 전수관 시원한 마루위에서
신규 임용된 공무원 54명에게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스물다섯 아직도 소녀 같은 여자들도 있지만 마흔이 다 된 남자들도 있다.
15년, 그 사이, 저마다 다른 저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서려 있을까?
병산서원에서 하회까지 걸어온 피로가 밀려오는지 더러는 조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눈매들이 초롱초롱하다.
한 시간 강연을 마치고 담당자의 차에 실려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이 두시 58분 다행이 대전가는 버스가 3시 10분이다.
구미 김천, 추풍령을 지나 대전 터미널에 도착한 시간 5시 27분
가까스로 5시 30분 차에 실려 전주에 도착한 것이 7시 3분 걸어서 집에 오니 7시 15분
서서히 어둠이 내리는 시간이었고 한 시간 강연을 위해서 나는 열한시 30분을
떠났다가 돌아온 것이다.
벌써 몇 번째인가? 아직도 몇 번을 이 행로를 오고가야 하는데,
멀다고 느껴지지 않고 질리지도 않는 것은
그 사이 내가 길들여져서 그런 것인가? 모를 일이다.
다만 자동차도 내 집처럼 여기고 그 안에서 책을 읽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마치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며 감상하듯
바라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 시간을 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임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시간이 아직 허락하니, 이 진지한 놀이를 배워라.
그러고 나서 삶의 연회에서 헤어지는 때를 배워라.
강하고 선량한 왕관이나 지혜는 텅 빈 사치일 뿐이니,“
그리피우스의 <우리들의 초상>에 실린 글이다.
2009년 5월 20일 전주에서 하회를 오고간 그 시간 속에
비어 있는 듯, 차 있는 듯
나에게 다가왔던 것들
그게 현재 나의 초상이리라.
나여! 언제 돌아갈 것인가?
기축년 오월 스무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