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싫어하는 영어 단어가 holiday입니다.
holiday는 holy(거룩한)와 day(날)의 합성입니다.
본래 글자 그대로 하면 ‘거룩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공휴일을 holiday라고 합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거룩한 날’이 ‘노는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딱 그 격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노는 날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성경만 읽어도 송구스런 날이고, 스물네 시간 주님만 생각해도 뭔가 허전한 날입니다.
애인 생일날 애인 생각하는 것처럼 적어도 그 날 하루만큼은 주님 생각으로 가득 차야 하는 날입니다.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북새통이 되어버린 것은 요즘의 일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는 호적을 하느라고 전부 난리였습니다.
교통 여건도 별로 안 좋은 그 옛날에 모든 사람들이 각기 고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온 나라가 엉망이었습니다.
어쩌면 요즘 백화점이나 유흥가가 소란스러운 것보다 그때가 더 복잡했을 것입니다.
그런 형편이니 여관에 묵을 곳이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떤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 학교에서 “빈 방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성극을 준비했습니다.
요셉이 만삭인 마리아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날이 저물었습니다.
묵을 곳을 찾아 여관 문을 두드렸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빈 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보세요, 지금 제 아내가 아이를 낳으려고 합니다. 아무 방이나 좋으니까 무조건 방 좀 주십시오.”
아무리 사정을 해도 여관 주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아이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예수님이 태어나야 하는데 방이 없으면 어떻게 해?”
알고 봤더니 성극을 보다가 흥분한 웬 초등학교 어린아이가 고함을 지른 것이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성극은 갑자기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분노할 만도 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셔야 하는데 매정하게 방이 없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어린 마음에 얼마나 답답했으면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그러면 이때 여관 주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십시다.
그 여관 주인은 걸인의 구걸을 박대한 사람이 아니라 찾아온 손님을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손님을 받으면 그것이 곧 돈인데, 설마 방이 있으면서 없다고 했겠습니까?
모든 방이 이미 만원이었고 아마 자기네 식구가 쓰던 방도 자기들이 잘 방 하나만 남겨 놓고는 손님들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그러니 방을 구하지 못한 요셉과 마리아만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방이 없어서 손님을 받지 못하는 여관 주인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없는 방을 내놓으라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분명히 방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이 지나도록 교회 학교에서 성극을 할 때마다 단골로 욕을 먹습니다.
예수님을 박대하느라고 일부러 방이 없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지간하면 방을 만들어서 받고 싶은데도 정말로 그럴 여건이 안 되었던 여관 주인이 어쩌면 바로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중에 일부러 예수님을 구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지간하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도저히 여건이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놀면서 예수를 안 믿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예수를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기왕이면 제대로 믿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핑계가 아니라 현실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성경을 읽으려고 하면 항상 그렇습니다.
빈둥거리면서 안 읽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살아가는 일이 그만큼 바쁩니다.
도무지 짬이 안 납니다.
그러니 요셉과 마리아를 거부한 여관 주인이야말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