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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26일 금요일
[(홍)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스테파노 성인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이 뽑은 부제다. 식탁 봉사를 위한 일곱 봉사자 가운데 하나로 뽑힌 스테파노 성인은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는 일뿐만 아니라,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면서 진리를 증언하는 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또한 유다인들과 벌인 논쟁에서도 지혜로운 언변으로 그들을 물리쳤다. 유다인들은 스테파노 성인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그가 하느님을 모독하였다는 거짓 소문을 퍼뜨렸다. 결국 그는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함으로써 교회의 첫 순교자가 되었다.
말씀의 초대
스테파노는 하느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평화를 맛보지만, 그를 죽이려는 자들은 화를 참지 못하며 평화를 잃어버린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앞으로 미움과 박해를 받게 되겠지만, 끝까지 견디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는 것이 보입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0; 7,54-59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7,54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마음에 화가 치밀어 그에게 이를 갈았다.
55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
56 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 그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 일제히 스테파노에게 달려들어,
58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
59 사람들이 돌을 던질 때에 스테파노는,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이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교회의 전례는 구원자의 탄생을 장엄하게 거행한 바로 다음 날 그분을 믿고 섬겼던 한 제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지상의 영광이나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스테파노 성인의 순교는 모든 시대에 빛나는 증언으로 가득 차게 될 그리스도교 박해 역사의 첫 장입니다. 그렇게 스테파노 성인의 축일은 성탄 팔일 축제의 첫 부분부터 말씀의 육화가, 하느님의 사랑이 역사 속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임을 상기시키면서 성탄의 의미에 깊이를 더해 줍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성인은 스승을 신뢰하며 그분께 온전히 자신을 맡깁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사도 7,59). 육화하신 말씀의 탄생과 첫 순교자의 죽음은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증언입니다. 스테파노 성인이 피를 흘리면서까지 증언한 것은 바로 그 아드님의 길을 기꺼이 따름으로써 얻게 되는 아버지에 대한 조건 없는 신뢰입니다.
육화에서 중요한 몫을 하신 성령께서는 이제 스테파노 성인 안에 충만히 머무르시면서 제자를 스승과 온전히 일치시키십니다. 따라서 성인은 교회 역사에서 시간적으로 첫 번째 순교자일 뿐만 아니라, 참된 제자직을 가려내고 그리스도교인들이 본받을 수 있는 본보기로도 첫 번째입니다.
오늘 구유를 경배하면서 거기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께 배웁시다. 아기는 구유, 곧 짐승의 밥그릇에 누워 있는 모습만으로도 제자가 스승을 진정으로 따르는 길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깨우쳐 줍니다. 또한 피로써 그리스도를 증언하려면 믿음과 용기만이 아니라 자신의 박해자들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참된 제자직의 결정적 요소는 끝까지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우리도 스테파노처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며 그분과 일치할 수 있기를!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언젠가 하느님께서 이 땅에 육화강생하신 축복에 대한 주제로 강의를 한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극진한 사랑과 호의, 한없는 자기 낮춤에 대한 인간 측의 호응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하느님을 향한 발돋움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 결핍투성이요 죄인인 우리지만 하느님께서 공유해주신 충만함과 완전성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느님화, 신화(神化)될 수 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화될 수 있다.”
그랬더니 몇몇 분들이 그 무슨 얼토당토 않은 괘변이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며 따졌습니다. 그 순간, 내가 이단을 선포한 것인가? 하는 걱정도 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수많은 성인성녀들이 온 생애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니, 마음이 안심이 됩니다. 아시시 프란치스코 성인 같은 경우 얼마나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큰 영적 진보와 자기 이탈을 이뤄냈는데, 후세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제2의 그리스도라고 칭합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 돈보스코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70평생 가난한 청소년들을 위해 쌓아 올린 수많은 업적과 덕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갈곳없어 울부짖던 토리노 뒷골목 아이들은 돈보스코에게서 자비하신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고 행복해했습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시는 스테파노 순교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이지만, 신화와 그리스도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그는 주님의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열정으로 활활 불타올랐습니다. 주님께서 그의 내면과 영혼, 삶 전체를 주관하고 지배하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지상에 살면서도 이미 천상적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스테파노였기에, 살기등등한 적대자들의 협박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이렇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사도 7,56)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 바로 다음 날 순교자 스테파노의 축일을 경축합니다. 위대한 탄생과 위대한 죽음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언젠가 반드시 우리 죽을 것입니다. 그때 우리 역시 스테파노처럼 죽음을 통해 하느님을 증거하며 그분과 하나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증거를 통해 우리 모두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게 다시 태어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달라스에 겨울비가 제법 많이 내렸습니다. 밤사이 천둥과 번개도 심했습니다. 피정 중이던 부주임 신부님이 목요일에 돌아오려 했지만, 악천후로 비행기가 결항하였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날 미사는 제가 대신하면 되었지만, 금요일부터 시작되는 학생 피정이 걱정되었습니다. 본당 미사도 있고, 학생들과 함께하기에는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금요일 늦게 오는 비행기를 찾았고, 계획대로 학생 피정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며 잠언의 말씀, “계획은 사람이 세우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라는 구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 풀렸다고 자만할 것도 없고, 잘 풀리지 않는다고 낙심할 것도 없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쉼표를 찍은 곳을 마침표로 만들지 마십시오. 그렇습니다. 삶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성탄의 기쁨이 이어지는 오늘,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를 기념합니다. 교회가 성탄 바로 다음 날 스테파노를 기억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바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이유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께서 모든 권위와 능력을 내려놓고 사람이 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가난한 자리인 마구간에서 태어나셨고, “나는 머리 둘 곳조차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철저한 무소유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도 지팡이조차 들고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성탄의 영성이며, 제자다운 삶의 모습입니다. 스테파노는 이 길을 가장 먼저 삶으로 증거한 첫 순교자였습니다. 말구유의 아기 예수님은 아무 힘도 없고, 군대도 없고, 무기도 없지만 오직 사랑 하나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사랑은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스테파노는 그 사랑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보여 준 인물이었습니다. 첫째, 스테파노는 성탄의 빛을 기억한 사람이었습니다. 성탄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잊지 않으셨다는 ‘기억의 축제’입니다. 스테파노는 그 기억을 마음 중심에 두었기에 돌을 맞는 상황에서도 두려움보다 빛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둘째, 스테파노는 성탄의 진실을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전한 첫 메시지 “두려워하지 마라”처럼 스테파노의 말은 진실을 밝히고 위로를 전하는 말이었습니다. 셋째, 스테파노는 성탄의 마음으로 용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주님,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말구유에서 시작된 용서는 십자가를 지나 스테파노에게 이어졌고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넷째, 스테파노는 성탄의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폭력과 분노를 바라보지 않고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다”라는 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성탄의 시선이란 가난 뒤의 풍요를 보고, 눈물 뒤의 희망을 보고, 어둠 속에서 태어나는 빛을 보는 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테파노를 단순히 첫 순교자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성탄의 빛이 인간의 삶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스테파노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성탄을 맞이한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말은 어떤 빛을 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은 사랑과 용서를 선택하고 있습니까?” 성탄은 단순한 기쁨의 계절이 아니라 ‘빛을 선택하는 계절’입니다. 스테파노처럼 하느님의 기억을 품고, 성탄의 진실로 위로하며, 성탄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성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삶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오늘 우리는 스테파노를 통해 신앙인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배웁니다. 그 길은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입니다. 스테파노는 죽음의 순간에 “제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순교란 목숨을 잃는 것만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을 선택하고, 끝까지 사랑을 선택하는 용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자비로우신 아기 예수님, 성탄의 기쁨 속에서 첫 순교자 스테파노가 보여 준 믿음과 용기를 우리 마음에 새기게 하소서. 계획이 흔들릴 때도 하느님께서 이끄심을 믿고, 어려움 속에서도 용서와 사랑을 선택하며, 어둠 속에서도 하늘의 빛을 바라보는 눈을 주소서. 성탄의 기억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성탄의 진실을 말하게 하시며, 성탄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성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끝까지 견디는 이에게 주시는 구원의 약속을 굳게 믿으며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때문에 겪을지라도 끝까지>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마태 10,18)
믿음
때문에
불신
겪을지라도
끝까지 믿음
희망
때문에
절망
겪을지라도
끝까지 희망
사랑
때문에
미움
겪을지라도
끝까지 사랑
온유
때문에
모욕
겪을지라도
끝까지 온유
포용
때문에
배척
겪을지라도
끝가지 포용
섬김
때문에
억압
겪을지라도
끝까지 섬김
살림
때문에
죽임
겪을지라도
끝까지 살림
오늘의 성인
성 스테파노(Stephen)
신분 : 순교자, 부제
활동연도 : +35년경
같은이름 : 스더, 스테파누스, 스테판
그리스어에 능숙한 유대인으로서 아마도 유대 나라 밖에서 태어난 듯하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또는 스테파노)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하였다. 또한 그는 키레네(Cyrene)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Moyses)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자 의회 의원들은 성 스테파누스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성 스테파누스를 장사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415년 8월 3일 루키아누스(Lucianus) 신부가 예루살렘에서 15km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Kafr Gamala)에서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를 발견하였는데, 이 유해는 에스파냐의 메노르카(Menorca), 아프리카의 히포(Hippo)와 예루살렘, 시온(Sion),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거쳐 로마(Roma) 등으로 나누어져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성 스테파누스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공경은 세계 각 곳으로 퍼져 나갔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누스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하였다.
성 디오니시오 (Dionysius)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192/200-267/268
같은이름 : 데니스, 디오시씨오드니, 디오니시우스
그리스 사람으로 인정되는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가 259년 7월 22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을 때에 그는 로마의 사제로 봉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교황선거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하여 거의 1년이나 지나 채택 되었던 선거였다.
260년경에 성 디오니시우스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주교인 디오니시우스의 저서 가운데서 술어를 고치라는 중요한 교서를 발표하였다.
이 교서는 하나의 천주성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삼위일체에 교리에 관한 것이므로 지극히 중요하였다.
또한 그는 고트족의 침입으로 황폐해진 카피도키아(Cappadocia) 교회에 거액의 복구 자금을 보내어 그리스도인 포로들의 몸값으로도 사용케 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 갈리에누스 황제의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그전의 박해로 쓰러질 듯한 교회를 가장 성공적으로 재건한분으로 손꼽힌다.
그는 박해 시대에 순교자로 기록되지 않은 첫 번째 교황 으로 로마에서 서거하였다.
성 조시모 (Zosimus)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418년
같은이름 : 소시모, 조시무스, 조씨모, 조씨무스
그리스계 사제인 아브라함의 아들로 태어난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는 417년 3월 18일에 교황 성 인노켄티우스
1세(lnnocentius I, 7월 28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축성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로 분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를 강력히 반대하였다.
옛날에는 소시모라고 불렀다.
성녀 빈첸시아 (Vincentia)
신분 : 설립자
활동연도 : 1847~1890/1896
같은 이름 : 빈첸시아
성녀 빈첸시아 마리아 로페즈이 비쿠냐(Vincentia Maria Lopez y Vicuna)는 에스파냐 나바라(Navarra)의 카스칸테(Cascante)의 어느 유명한 변호사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가 어릴 태부터 부친으로 부터 신앙교육을 받은것이 그녀의 일생을 좌우했다.
생의 전환점은 그녀가 교육받으러 마드리드(Madrid)에 갔을 때 고아와 하녀들의 집을 세웠던 인자한 숙모와의 만남이었다.
19세 때 그녀는 독신서원을 발하고 수도성소를 인식했으며 소녀들의 교육사업에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부모의 협력은 얻지 못했는데, 그동안에 앓은 중병이 부모를 각성시키는 계기가 되어 다시 마드리드의 숙모 에울롤리아(Eulolia) 에게 보내졌다.
여기서 예수회 이달고 신부의 협조로 하녀들의 집 운영자들이 수도공동체를 형성케 되었고, 1876년에는 빈첸시아와 다른 2명이 수도복을 입었다.
그 후 성소자가 많아서 여러 곳에 새 공동체를 세울 수 있었고, 1888년에는 근로 여성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원죄 없으신 성모 수녀회' 설립을 찬미하는 칙서를 교황 레오 13세로부터 받았다.
성녀 빈첸시아 원장은 교육기간을 통한 재정 안정을 꾀하지 않고 구걸하는 방법을 채택했고 또 자신의 수녀들이 교육 대상자 보다 더욱 가난하게 살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1890년 또는 1896년 12월 26일 마드리드에서 선종하였다.
성녀 빈첸시아는 1950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복된 후 1975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성녀의 축일은 1월 18일에서 12월 26일로 변경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