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9년 영의정 신숙주, 좌의정 권람, 우의정 한명회에서 좌의정 권람이 병으로 인하여 정승들이 교체된다.
영의정에는 그대로 신숙주, 좌의정에는 한명회, 우의정에 새로이 구치관이 등용된다.
서거정의 「필원잡기筆苑雜記」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공(신숙주)이 영상일 때 구치관이 새로 우상이 되었더니, 세조가 두 정승을 급히 내전에 불러서 이르기를,
"내 오늘 경들에게 물음이 있을 테니, 능히 대답한다면 그만이지만 대답하지 못하면 벌을 사양하지 못할지니라."
하매 둘이 모두 절하여 사례하였다.
세조가 "신 정승." 하고부르매
숙주가 대답하였더니
세조가 이르기를,
"내가 새로 된 신新정승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못했도다."
하고는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리고
또 “구 정승.." 하고 불렀더니
구치관이 대답한즉, 세조가 이르기를,
“난 옛(舊) 정승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못하였네."
하고는 역시 커다란 잔으로 벌주를 내렸다.
그러고는 또 “구 정승." 하고 불렀더니
숙주가 곧 대답하매, 세조가 이르기를,
"이번엔 성을 불렀는데 경이 대답을 잘못하는구려."
하고는 벌주를 주고 또 “신 정승." 하고 부르매
구치관이 대답하였더니,
“성을 불렀는데 경이 잘못 대답하였소."
하고는 벌주를 내렸다.
이번에는 "신 정승." 하고 부르니 신구가 모두
대답하지 않고, "구 정승." 하고 불렀으나 신구가 모두 대답하지 않았다.
세조가 이르기를,
"임금이 불렀어도 신하가 대답이 없음은 예가 아니니라."
하고는 역시 벌주를 내렸다.
이렇게 종일토록 벌주를 마셔서 심히 취하매, 세조가 크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