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두산 심정수(25)가 인터넷을 통해 세 살배기 아들을 둔 아빠라는 사실을 전격적으로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인기탤런트 윤다훈이 열 살 난 딸을 뒀음을 고백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였다.
숱한 마음고생 끝에 아들의 존재를 밝힌 심정수에게 윤다훈처럼 팬들의 격 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공인이기에 앞서 한 인간이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심정수가 겪어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들어봤다.
■이제야 진짜 아빠가 됐다
심정수는 두번 아빠가 됐다.종훈이 말고 또다른 애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종훈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세상을 깨운 97년 3월 2일에 한번,그리고 팬들 에게 종훈이의 존재를 훌훌 털어놓은 지금이 두번째다.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힘들었다.무엇보다 아들에게 무척 미안했다. 언젠가는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회가 왔다.”
남 얘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그는 혼자 속앓이를 해왔다.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타라는 위치 가 그에게도 역시 족쇄였다.
요즘 심정수의 표정은 참으로 홀가분한 느낌을 준다.과거에도 밝고 낙천적 이었지만 아들에게 진 빚(?)을 갚아서일까.그의 웃음소리가 더욱 유쾌하게 들린다.
■야구하기가 힘들었다
그의 결혼생활은 예상대로 불운했다.남들처럼 주위의 축복 속에 성대한 결 혼식을 올리지도 못했고 그저 혼인신고만으로 부부의 연을 대신했다.그에게 지난 97년은 온통 잿빛 추억으로 가득하다.
두산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95년 늦가을에 만난 아내와는 98년 초 헤어 졌다.종훈이가 태어나기 전 결혼식을 올리려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뜻을 이 루지 못했다.종훈이가 태어나면서 부모님도 어렵사리 현실을 인정해주셨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 이다.애를 낳고 아내도 결별을 요구했고 결국 종훈이의 첫돌을 일주일 남기 고 남남이 됐다.(심정수의 요청으로 전처의 신상은 밝히지 않습니다.) 그는 “야구장에 나가기가 힘들 정도였다”며 힘겹게 그때를 회상했다.아 빠가 된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이혼 문제로 1년 가깝게 고통을 겪었기 때 문이다.가정적으로 불행을 겪던 그 해 그는 시범경기 도중 오른쪽 어깨를 다 쳐 야구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사나이의 길을 포기했다
지난 겨울 국내프로야구계를 떠들썩하게 한 선수협의회 때의 일이다.그는 김동주 이경필 정수근 등 팀 동료들과 더불어 열정적으로 선수협 활동에 동 참했다.죽어라 동계훈련에 매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삭막한 거리로 뛰쳐나와 목청 높여 열악한 프로야구의 실상을 호소하는 그를 부모님은 결코 용납치 않으셨다.구단도 선수협 탈퇴를 집요하게 종용했다.
심정수의 고집 또한 완강했다.‘나 홀로 잘 살아보겠다’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사나이가 한번 옳다고 생각한,그래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꼭 해내 야 하는 그런 일이었다.수많은 동지가 선수협을 차례로 떠났지만 그는 오래 도록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달쯤 지났을까.어느날 갑자기 심정수가 선수협을 등졌다.그때까 지 선수협을 지키던 동료들은 깜짝 놀랐다.배신감을 느낄 법했다.그러나 잠 시 후 그들은 고개를 떨궜다.심정수의 가슴아픈 사연 때문이었다.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들에게 부모님이 최후통첩을 했다.“끝내 선 수협을 탈퇴하지 않으면 종훈이를 고아원에 보내겠다.”
3년 넘게 가엾은 손자를 애지중지 돌보던 부모님이었다.사나이 심정수도 더 어쩔 수 없는 순간이었다.
■헬멧에 담은 부정(父情)
심정수의 헬멧은 무겁다.헬멧의 무게를 말하는 게 아니다.그의 헬멧 속에 는 종훈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종훈이의 얼굴이 담긴 조그만 스티커 사진 두장이 붙어 있다.아들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밝히 지 못하던 때에도 그의 헬멧 속에서는 종훈이가 항상 웃고 있었다.
지난 4월 초 LG-두산의 제1회 서울라이벌전(친선경기)이 펼쳐지던 잠실구 장에서였다.당시 기자는 두산 덕아웃에서 선수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무심코 돌아가던 눈길이 웬 귀여운 아이 사진 앞에서 멈췄다. “누구 애가 이렇게 예쁘게 생겼죠?” 곁에 있던 동료 이종민이 “정수 아들이에요 ”하고 대답했다.그의 헬멧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값진 물건이었다.
■종훈아!씩씩하게 자라다오
그에게 가장 즐거운 때는 종훈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다.이전엔 동료들과 어울려 술도 어지간히 마셨지만 요즘엔 잠실경기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간다.어쩌다 친구들과 만나도 종훈이가 잠들기 전에 귀가한다.종훈이는 그의 인생을 지탱하는 구심점이다.
“이혼 후 허탈했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했다.그 리고 종훈이를 위해 야구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론내렸다.”
확실히 그는 달라졌다.지난 94년 두산에 입단한 심정수는 21개의 홈런을 쳐낸 95년을 제외하고는 97년까지 그저 평범한 성적을 거뒀다.98년부터 심기 일전한 덕분에 타율과 홈런이 동반상승했다.
그는 앞으로도 종훈이를 사고의 중심에 놓고 모든 일을 헤쳐나가겠다며 입 술을 지그시 깨물었다.하늘이 준 선물 종훈이에게 당당하고 믿음직스러운 아 빠가 될 것을 매일매일 다짐하면서….종훈이가 닮고 싶어하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