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된 형제들, 시몬과 유다
에페 2,19-22; 루카 6,12-19 /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2022.10.28.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제자 가운데에서 소명기사가 알려진 경우는 어부 출신으로 형제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요한 1,40), 야고보와 요한(마르 1,19-20)과, 필립보와 그의 친구로서 나타나엘이라고 기록된 바르톨로메오(요한 1,43-51) 그리고 세리 출신 마태오(마태 9,9) 정도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가 기리는 시몬과 유다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로 알려진 또 다른 야고보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형제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마르 6,3; 마태 13,55). 물론 이 유다는 이스카리옷 유다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동명이인(同名異人)입니다.
이 세 사람말고도 복음서에는 ‘예수의 형제들’이 언급되는데, 이들은 친척지간입니다. 우선 ‘형제’라는 말은, 당시 쓰이던 아람어의 표현인데 대가족 제도를 반영하여 친척 형제들을 두루 포함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람어에는 ‘사촌’이라는 말이 따로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행전에는 여러 곳에서 사도나 신자들에게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도 1,15-16; 9,17; 13,26).
그렇지만 대가족 제도에서 집안 어른을 모시는 관습은 매우 엄격했기에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예수마저 출가하자 친척 형제들이 홀몸이 되신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고약한 소문이 들려왔을 때 그 친척 형제들이 예수님을 말려보려고 자신들이 평소에 모시고 지내던 마리아를 모시고 왔습니다(루카 8,19). 이때 느닷없는 ‘형제들’의 방문을 받으시고 상황을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야말로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루카 8,21). 혈연으로 인한 가족이기주의의 폐단을 넘어 개방적인 동지적 혈연을 지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시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다가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소년 예수를 사흘 동안 잃어버리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세 사람의 가족이 겪은 이야기만 나오지 다른 식구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친동생이 있었다면 언급이 되었었겠지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그 친척 형제들은 그분에 대한 믿음은 물론 의리도 없었기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맡겨 드릴 친동기간이 없었기에 그나마 가장 아끼시던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만약 야고보, 시몬, 유다 등이 친형제들이었다면 이들에게 어머니를 맡겨드렸겠지요. 더불어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들 예수님을 낳아 기르느라고 평생 동정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는 친동생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데 비해, 또 다른 형제들인 야고보와 시몬과 유다는 그분의 열두 제자에 포함될 정도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음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것은, 혈연관계에서 같은 신앙을 지니는 일이 과연 그토록 어려운가 하는 문제입니다. 쉽지 않지만 진정성이 통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혈연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에서 신앙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겠습니다.
시몬과 유다에서 보듯이 초대교회의 역사에서처럼,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신앙은 혈연을 매개로 퍼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가문은 약전, 약종, 약용을 배출한 나주 정씨 집안입니다. 최초의 신앙인인 포천 선비 이벽은 정씨 삼형제의 이복 형인 약현의 처남이어서 사돈지간이었고 최초의 영세자인 한양 선비 이승훈은 정씨 형제들의 매부로서 사돈지간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살던 이 정씨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벽은 당시 학문적 명성과 인품이 널리 알려졌으며 자신의 집안과도 가까웠던 양근 선비 권철신을 찾아가 열흘 동안이나 설득한 끝에 그의 동생인 권일신과 그 문하 선비들을 주어사와 천진암 강학회에서 만나서는, 실학에 관심을 두던 그들에게 천주학을 가르치고 끝내 천주교 신앙 공동체에 합류시켰습니다.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 충청 내포 출신 이존창은 김대건과 최양업의 조상들을 입교시켰고, 호남 전주에 살던 유항검은 자신의 아들 유중철과 이순이를 동정부부로 혼인시켰는데, 이순이는 권씨 형제들로부터 학문과 신앙을 배웠던 이윤하의 딸입니다. 권철신과 일신은 이윤하의 처남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혈연은 신앙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신앙은 혈연을 하느님 안에서의 형제라는 영적 종친 관계로 승화시켜주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백 년에 걸친 박해 속에서도 교우촌을 이루어 견디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같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 더욱더 뜻을 합쳐서 동지처럼 하느님의 가족으로 나서는 일이야말로 복음화의 첩경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 사도는 혈연을 계기로 신앙적 형제로 맺어졌다가 복음적 사제관계로까지 승화시킨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