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피어 봄을 부르는 꽃이 있다. 꽃의 이름은 동백과 매화다. 새빨간 색과 연분홍색, 큼지막한 꽃 덩어리와 여리디여린 작은 꽃잎, 송이째 툭 떨어져 자신을 알리는 꽃과 은은한 향으로 자신을 넌지시 내비치는 꽃. 당신은 어떤 꽃을 보러 가고 싶은가. 여행작가 여섯 명이 즐거운 선택을 도와주러 두 발 벗고 나섰다. 이제 당신이 봄꽃을 마중 나갈 차례다.
겨울과 봄을 잇는 꽃, 동백꽃과 매화
겨울과 봄을 잇는 꽃, 동백꽃과 매화
동백꽃 길을 걷겠다는 동백파
이수린 (여행기자)ㅣ 짧은 다리로 남들보다 두 배는 빨리 걸어야 하는 여행기자. 여행문화월간지 <TS매거진>, 한국장애인재단 <드림카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현재 서울신문 여행 지면에 기고 중이다.
이수린 여행작가의 거제 지심도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핀 동백꽃 보러가세요.”
이수린 여행작가의 동백꽃 사랑은 꼬꼬마일 때부터 시작됐다. “어릴 때 저희 집 마당에 동백나무가 있었어요.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어느 날 아침, 아빠가 동백나무에 꽃이 폈다고 일러주시면 쪼르르 달려가 그 앞에 한참을 앉아 있곤 했어요.”
그녀가 추천하는 동백 여행지는 경남 거제시의 작은 섬, 지심도다. 흔한 동백 여행지이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 한려해상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피는 동백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고 힘주어 말한다.
‘동백섬’이라 불리는 지심도의 동백꽃
동백 군집도로 따지면 지심도를 따라올 곳이 없다. 해안선 길이가 3.5km인 작은 섬에서 전체 수목의 60%가 동백나무다. 동백이 빽빽이 들어차서 하늘이 보이지 않는 숲길도 여러 번 지난다. 섬을 둘러보는 데는 두어 시간이면 넉넉하지만 동백터널에서 사진을 찍느라, 길섶에 떨어진 동백꽃을 줍느라 자꾸만 걸음이 느려진다. 동백하우스펜션에서 방향지시석으로 향하는 탐방로는 동백과 바다의 어울림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그뿐 아니다. 지심도는 부지런한 여행자도, 늦게 떠난 여행자도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 동백은 12월부터 이듬해 3월 말까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하기 때문. 꽃구경하기 가장 좋은 때는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다.
동백꽃이 떨어져 붉은 양탄자가 깔린 듯한 탐방로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동백꽃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지심도
이병유ㅣ우리나라 역사를 사랑하는 여행작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문화탐방>, 조선왕릉가이드북 <王에게 가다>, <경복궁만화가이드북> 등을 냈다.
이병유 여행작가의 백련사 동백나무 숲 “백련사 고요함 속에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같은 사람에게 매번 반하기는 어려워도 같은 꽃에 매번 반하기는 쉽다. 이병유 여행작가는 겨울마다 동백에 반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동백을 편애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동백꽃 특유의 강렬함과 시끄러움이 좋다, 겨울부터 늦봄까지 피고 지는 동백나무의 생명력을 존경한다, 땅에 떨어져도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한다.
동백 마니아의 추천 여행지는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151호). 백련사 앞 5.2ha 면적에 동백나무 1500여 그루가 울울창창한 숲을 이루는 곳이다. 꽃은 겨우내 피다 3월에 만개한다.
백련사 앞에는 1500여 그루가 넘는 동백나무가 숲을 이룬다.
이곳을 권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고요함이다. 꽃을 보는 건지 사람 구경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번잡스러운 여행지와는 다르다. 동백나무 아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툭, 툭, 툭 동백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숲에서 동백과 나, 둘만의 시간을 가져보면 이 붉은 꽃 덩어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걸요.” 동박새의 지저귐, 부도 주위에 선혈처럼 떨어진 동백꽃도 동백나무 숲을 빛내는 훌륭한 조연들이다. 둘째, 이야기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1km 남짓한 오솔길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길은 선생이 머나먼 땅 강진까지 오게 된 사연,
다산초당에서 대학자이자 스승으로 거듭난 이야기, 유배지에서 사귄 절친한 벗 혜장선사와의 인연 등을 켜켜이 품고 있다.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머리 위에 얹어본다.
김애진ㅣ 사진과 문화예술교육기획을 오가는 여행작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매일경제 씨티라이프, 여성신문, 한국관광공사 및 전국지자체에 글과 사진을 기고했다. <우리동네 슈퍼!마켓!>, <지금은 홍대 스타일>, <여행의달인 춘천>(공저)을 냈다.
김애진 여행작가의 오동도 “동백꽃 피고 지는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어요.”
여행작가는 오감을 열어 여행지를 취재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김애진 여행작가가 망설임 없이 동백을 택한 것도 오감 중 청각, 소리 때문이다. 겨울에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다가 훈기가 돌면 화르르 번지고, 어느 날 송이째 ‘툭’ 떨어지는 것이 동백꽃의 매력이라고. 동백꽃이 피고 지는 소리로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는 그녀에게 여수 오동도는 동백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섬이다. 이 무렵이면 아직 남은 겨울과 곧 시작될 봄의 풍경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섬이지만 방파제로 연결된 오동도
오동도는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자라는 동백섬이다. 오동도 동백은 1월부터 꽃이 펴 3월이면
온 섬을 붉게 물들인다. 입구에서 동백열차를 타거나 768m의 방파제를 따라 걸어 섬으로 들어서면 동백꽃이 주렁주렁 매달린 동백나무 숲에 이른다. 숲속 산책로는 2.5km 길이다. 길은 황톳길과 데크길로 나뉜다. “오동도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가 특별한 건 나무 데크 길 덕분이에요. 묵직한 동백꽃이 데크에 송두리째 떨어지면 기분 좋은 울림을 내거든요. 꼭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쿵쾅대는 심장 소리 같지 않나요?”
산책로를 따라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낙화한 오동도 동백꽃
매화 향에 취하겠다는 매화파
박상준ㅣ 가수 하림이 아니냐고 종종 오해받는 여행작가. 여행주간지 <프라이데이>와 영화주간지 <씨네버스> 취재기자로 일했다. 저서로 <서울 이런 곳 와보셨나요?>, <오! 멋진 서울>, <한눈에 쏙 제주도 올레길>, <엄마, 우리 여행 가자> 등이 있다.
박상준 여행작가의 금둔사 “금둔사 납월매는 겨울에 꽃을 피우는 설중매”
“저는 매화에 한 표 던집니다.” 박상준 여행작가는 조용하게 단언한다. 매화의 강하지 않은 색과
숨어 있는 향기가 서두르는 법 없이 만물을 깨우는 봄과 닮았다는 것이 이유다. 작가가 봄을 맞으러 가는 곳은 순천 금둔사다. “순천은 매화의 고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중 금둔사 납월매를 권합니다. 설중매, 눈 속에 피는 매화라서 1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아름답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섣달(양력 1월)을 ‘납월’이라 부른다. 그러니 납월매는 겨울에 꽃을 피우는 매화다. 운이 좋다면 꽃잎에 눈이 내려앉은 모습도 볼 수 있겠다.
절집을 수놓은 금둔사 매화
아담한 경내에 홍매화, 청매화 등 한국 토종 매화만 100여 그루가 있다.
금둔사는 큰 사찰은 아니지만 경내의 소박함이 매화의 기품과 어울린다. 급한 걸음으로 돌아보면 순식간이지만 느린 걸음으로 매화의 정취를 느끼다 보면 하세월이다. 금둔사에서 선암사가 멀지 않다. 선암사 매화는 ‘선암매’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고혹적이다. 금둔사 납월매를 놓쳤다면 뒤이어 필
선암사 선암매를 보러 가도 좋겠다.
은은한 매화 향이 금둔사를 채운다.
오주환ㅣ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를 만나고, 세상을 느끼기 위해 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 여행을 통해 사람들이 어렵고 재미없어하는 이 땅의 역사와 문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글 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주환 여행작가의 순매원 “봄햇살 아래 매화비를 맞으러 가요.”
‘매화 비 맞으며 봄을 맞는다….’ 상상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지지 않는가. 오주환 여행작가는 매화 비 맞으며 걷고 싶어 봄을 기다린다. 2월 중순, 산정에 이는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남도 땅 양산 순매원에는 봄기운이 생동한다. 한 달만 있으면 매화가 절정을 이룰 터다.
순매원의 매력은 매화, 강, 기차가 어우러진 특별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 대한민국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는 그는 낙동강의 유장한 물길과 새하얀 매화, 그 사이를 질주하는 기차를 한 앵글에 담을 수 있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고 말한다. 원동역 뒤로 이어진 길을 5분 남짓 올라가 마주한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매화, 낙동강, 기차가 어우러진 풍경
순매원의 매화나무 사이로 난 조붓한 오솔길을 걷는 즐거움도 크다. 홍매화, 백매화가 앞다퉈 피는 풍경은 천상의 화원인 양 아름답다. “강바람이 실어 나른 매화 향이 코끝에 닿아 온몸에 번질 때면 동양화 속에 들어간 느낌마저 들어요. 봄바람에 꽃비 세례를 맞는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하지요.” 매화를 좇아 여행하는 것을 ‘탐매여행’이라 부르는 이유다.
홍매화와 백매화가 활짝 핀 순매원
매화를 사진에 담는 여행객
정은주ㅣ역마살이 껴도 제대로 꼈다. 제주에서 사는 여행작가. 우연한 기회에 여행기자가 되고, 여행기자에서 여행작가로 발돋움했다. 한국관광공사에 글과 사진을 기고했으며, 저서로 <주말여행의 모든 곳>이 있다.
정은주 여행작가의 노리매공원·한림공원·휴애리 자연생활공원 “축제도, 매화도 마음에 드는 걸 골라서 즐겨요.”
정은주 여행작가는 매화를 아낀다. ‘추운 겨울을 뚫고 피는 꽃’이라는 매화의 흔한 수식어가 그녀에게는 애틋하다. 따사로운 햇볕이 좋아 제주도로 터전을 옮긴 제주도민이기에 겨울과 타협하지 않는 매화가 대견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추천 여행지 제주도의 노리매공원, 한림공원, 휴애리 자연생활공원. 세 곳 중 하나만 꼽아달라고 하자 고개를 젓는다. “셋 중 동선상 가까운 곳에 가면 돼요. 이맘때 매화축제를 연다는 건 매화가 한창이라는 뜻 아니겠어요? 색색의 매화에 둘러싸이기에 제주도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예요.”
노리매공원의 매화와 고택
노리매공원은 2월 1일부터 3월 1일까지 노리매 매화축제를 연다. 예쁜 포토존이 곳곳에 있어 사진을 잔뜩 남길 수 있는 것이 매력. 노리매 스탬프투어, 보물찾기, 먹거리 장터 등 다채로운 행사도 마련된다. 한림공원의 매화축제는 2월 29일까지다. 매화와 수선화가 어울려 피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에서 화산송이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매화 향에 취해도 좋다. 축제기간인 2월 7일부터 3월 8일에는 동물 먹이 주기, 감귤 따기, 승마 등 체험행사가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