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수도가 없었던 어린 시절은 샘터에서 물지게를 지고
정지의 물두멍에 물을 부어 생활 용수로 사용하였습니다.
물지게의 추억을 가진 세대는
우물의 뚜레박과 마중물의 정서를 가졌습니다.
물지게를 대신한 우물의 뚜레박과 펌프의 마중물의 역사는
오늘날의 수도라는 문명의 이기를 낳았습니다.
우물은 마을 공동 시설이지만
펌프는 집집마다 우물을 대신하는 그 시절 문명의 이기였습니다.
펌프의 혁명은 물지게를 내려놓게 하였고
마을의 공동 우물은 뚜레박의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펌프의 물을 뽑아 올리려면.....
한바가지의 마중이 절대 필요하였습니다.
마중물이 없으면
펌프의 물을 끌어 올릴 수 없습니다.
마중물의 소중함은
물의 씨앗이라는 절대 함수를 낳았습니다.
이제 마중물은 사라졌지만
마중물의 가치는 정의와 자유의 씨가 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보수의 가치가 된 마중물은
시장경제와 자유 통일의 보수적 가치를 가진 애국 국민의 씨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보수의 가치가 죽어가는 사막화 현상은 독재 정치를 타도하는 민주화 운동의 가라지가 거짓 열매를 맺어
알곡을 대신하는 쭉정이와 깜부기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각성된 애국 국민은 노오란 리본에 깃든 시체팔이의 정신,
그 좌파의 감성팔이라는 거짓 선동의 대명사인 것을 애국의 투혼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또한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요셉의 환난 그 실상이 된
거룩한 그루터기의 마중물, 곧 요셉의 남은 자는 메시야 구원의 지표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환난이라는 아모스의 신탁은 성경에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 말씀이지만
요셉의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을 이루는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디안의 날이라는 이사야서의 상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신 요셉의 환난이요,
그 남은 자의 그루터기는 훗날 해변의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는 메시야의 길을 열었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사9:1-7)
이사야 선지자의 놀라운 영감적 통찰은
기드온의 때 미디안의 날과 같이 된 요셉의 환난과 환상의 골짜기로 폐허가 된 이스라엘의 그 남은 자의 구원에 관한
다윗의 열쇠를 가진 메시야를 계시하였습니다.
그 보존된 정의와 공의의 씨앗은 여호와의 열심으로 말미암아
종말론적인 다윗의 장막을 일으키는 메시야의 정사를 예수의 하나님 나라로 성취하였습니다.
하늘이여 위로부터 공의를 뿌리며 구름이여 의를 부을지어다
땅이여 열려서 구원을 싹트게 하고 공의도 함께 움돋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가 이 일을 창조하였느니라는 명령은
땅 끝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는 말씀을 받들어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말씀을 이루었습니다.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모든 땅 끝까지도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충만하였습니다.
이사야서의 역동적인 구원의 동선은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는
창조적 구속의 명령으로 메시야의 나라가 임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신탁을 받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영원한 구원을 이루는 하나님의 경륜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시야서의 깊은 뜻을 깨닫고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계시적 복음 선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도의 직분에 충성된 하나님 나라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계시된 복음의 비밀을 알리는 사도의 직분은이단과 사이비와 같은
종교적 탐욕의 굴레를 찾아 볼 수 없는 복음의 청정지대요, 신본주의의 이상을 열었습니다.
신본주의 복음의 표상이 된 사도 바울은나를 본받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묵상하며여로보암의 길을 답습하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조처럼
온갖 거짓과 불의와 불법으로 만연한 적폐의 굴레가 된 야바위 정치를 처연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바람 앞의 등불이 된 조국의 현실은 부엉이 바위와 뇌숭숭 탁이라는 광우병의 저주로 말미암은
참담한 "닭그네 그 쌍년과 문죄인 그 개섹키"라는 극한 대립과 갈등의 굴레가 되었습니다.
영호남의 지역 갈등보다 세대간의 갈등보다 더 깊은 골을 만든 촛불과 태극기의 첨예한 갈등과 대립은
우리 시대 미디안의 날과 요셉의 환난과 환상의 골짜기가 되었습니다.
불법 탄핵과 부정 선거가 만들어 낸 적색 광풍의 야바위 정치는
햇볕정책의 그늘 아래 경제 파탄과 안보의 위기로 북한과 함께 유엔의 제제를 받는 고립과
은둔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적화의 길로 가는 적화지대의 조국 대한민국의 운명은
시장 경제와 자유 통일이라는 정의와 법치가 살아있는 민주주의의 보수적 가치를 버리고
한번도 가지 않은 사회주의 노선이라는 낯선 길을 치달리고 있습니다.
야바위의 놀이터가 된 대한민국을 일깨우는 각성된 보수의 씨알은
정의와 자유의 아이콘이 태극기의 물결은 절차탁마의 결기를 다졌습니다.
마중물이 된 보수의 씨앗은 자유와 정의와 법치가 살아있는 자유 대한민국의 실상이요,
요셉의 환난으로 말미암은 남은 자의 그루터기, 그 거룩한 마중물이 된 말씀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메시야 사역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실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