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초 만에 세 번 바뀐 옆자리와 법치 오염시키는 용비어천가
10월 23일, 서울고등법원 앞에서는 정치권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는 한 편의 촌극이 펼쳐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항소심 무죄 선고 직후, 마이크와 취재진의 카메라가 켜지자 유력 정치인의 옆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인물들의 눈치 싸움과 몸싸움이 그대로 카메라에 잡혔다.
특히 오 시장의 바로 옆 프레임 황금구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단 4초 남짓한 장면은 실소조차 짓기 힘든 씁쓸함을 남겼다.
처음 그 자리를 선점하고 있던 것은 윤상현 의원이었다. 하지만 뒤에서 나타난 장진영 당협위원장이 윤 의원의 어깨에 손을 대며 옆으로 밀어냈고, 윤 의원은 왼쪽으로 밀려났다. 장 위원장이 밀어낸 빈 공간을 향해 나서는 찰나, 뒤쪽에서 강요식 전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이 순식간에 사람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와 자리를 차지해 버렸다.
윤상현에서 장진영으로, 그리고 강요식으로. 불과 4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동안 주인공 옆자리의 주인은 ‘선점자 → 밀어낸 자 → 새치기한 자’로 세 번이나 바뀌었다.
어깨를 밀쳐내고, 비집고 들어와 마침내 주인공 바로 곁을 차지한 이들의 모습은 정치인의 생리라는 미사여구로 포장하기엔 너무나 조잡한 장면이었다. 시청자들의 눈에 민망하게 포착된 이 해프닝은 한국 정치의 서글픈 자화상이자, 스스로의 정책적 자산과 실력 대신 유력자의 후광에 의존하려는 기생적 정치 문화의 가련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카메라 프레임 안의 4초, 정치적 무임승차가 만든 병폐
정치권에서 유력 인사 옆자리의 효용성이 크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단 4초의 화면이나 사진 한 장으로 지역구 주민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유력자와의 친분을 포장하기에 이보다 효율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적인 정체성이 부족한 정치인이 유력자의 후광에 얹혀가려는 행위는 명백한 정치적 무임승차(Free-riding)다. 이러한 인물들이 유력자와의 친분이나 카메라 노출을 바탕으로 정치적 자산을 획득하고 공천까지 바라보는 구조가 정착된다면, 국민을 위해 일할 정책 능력과 의정 역량을 검증할 기회는 완전히 박탈된다. 국민에게 잘 보이는 수평적 서비스 대신 유력자에게 잘 보이는 수직적 충성이 승리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유력자 옆자리 경쟁이 한국 정치를 퇴보시키는 진짜 이유다.
스스로 병풍임을 자인한 정치적 굴욕
과거 정치역사를 돌아보라. 정치적으로 대성하고 국민의 진정한 존경을 받은 정치적 거목 가운데, 유력자의 카메라 프레임 구석 자리를 탐하며 세를 과시하던 이가 있었는가? 진정 실력 있는 정치인은 타인의 후광에 기대어 신분을 상승시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파벌이나 유력자의 병풍이 되는 듯한 이미지를 스스로 극도로 경계한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메시지가 없기에 남의 현장에 얹혀가려 하는 것이다. 스스로 메시지를 던지는 자가 리더이고, 리더의 배경이 되려는 자는 부속물에 불과하다. 순식간의 눈치 싸움 끝에 오 시장 옆자리를 차지했다고 환호할지 모르나,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독자 자립할 수 없는 정치인이자 한낱 정치적 병풍에 불과함을 전국에 생중계한 굴욕적인 순간일 뿐이다.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와 진영 이간질의 씁쓸함
더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은 이 사안을 바라보는 거물 언론인의 시각이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번 판결을 두고 "판사가 사실과 법리의 힘으로 나라를 구한 사례", "교과서에 올려야 할 판결"이라는 극단적 수사도 모자라, "천만 서울을 세계적 대도시로 만든 종합 행정의 달인"이라며 오 시장을 향해 민망할 정도의 용비어천가를 쏟아냈다.
지식인이자 사회 지도층 언론인이라면, 그저 치열한 법정 공방 끝에 사법적 리스크를 덜게 된 당사자에게 건네는 담담한 덕담 한마디로 족했을 일이다. 사법부의 객관적 증거주의 판단을 존중하는 절제를 버린 채 낯 뜨거운 정치적 찬사를 보태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헛웃음과 환멸만을 안겨주었다.
더 큰 문제는 사법부의 판결을 정쟁과 갈라치기의 도구로 악용하는 태도다. 조 대표는 "오세훈 무죄 선고로 정통 보수는 살고 장동혁 당권파는 치명상을 입었다"라며 무죄 선고를 당내 파벌 싸움의 승패로 치환해 버렸다. 법원의 판결마저 보수 내부를 편 가르고 이간질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이 과연 보수를 살리는 길인가? 지도층 인사라는 사람이 굳이 판사의 판결을 진영 내 이간질과 파벌 싸움으로 끌어들여 정치화하는 행태는 반대편 진영으로 하여금 사법부를 정치 판사로 규정하게 만들고 사법 신뢰를 뿌리째 흔들 위험한 선동이다.
국민이 보고 싶은 것은 자립의 정치다
법원 밖에서 벌어진 저급한 자리 싸움과, 이를 기다렸다는 듯 정치적 자산으로 환치하려 낯 뜨거운 수식어와 이간질을 던지는 언론인의 시각은 국민들에게 깊은 환멸만을 안겨주었다.
카메라 프레임 안의 단 4초를 위해 정치적 자존감을 파는 행태로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법관을 정치적 전리품으로 소비하고 진영 이간질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거창한 용비어천가 역시 법치주의를 파괴할 뿐이다. 정치인들이 서야 할 곳은 유력자의 옆자리가 아니라 국민의 삶 한가운데다. 남의 후광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실력과 철학으로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는 정치인, 그리고 법치주의를 정쟁과 분열의 도구로 오염시키지 않는 성숙한 언론관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