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평년보다 추운 날씨는 털모자와 두꺼운 잠바를 입었다. 유난히 많이 내린 눈은 하얀색 겨울 풍경을 즐기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공원의 소나무 가지가 찢기고 서호천변 뿌리째 뽑혀 아예 베어버린 나무들을 많이 보았다. 봄을 기다렸는데 개구리가 잠을 깬다는 경칩이 지난 달력은 3월 중순으로 접어든다.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더니 서호천 냇물 소리는 더욱 맑은 소리를 내고 수양버들가지 봉오리에도 연두색이 보인다. 겨울방학했던 학생들은 개학하여 학교 앞이 시끌시끌하다. 학교 앞 사거리에 아이들은 왁자지껄하니 신호등도 즐거운지 밝은 얼굴이다. 사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이 찾아오나 보다. 모든 만물이 새로워 보인다.
북수원독서동아리 스마트폰 카톡 소리가 울린다. 봄맞이 나물 캐러 가자는 문자였다. "이번 주 금요일 냉이 캐기 좋은 날씨예요. 부삽이나 호미, 봉투, 장갑을 준비하세요. 장소는 황구지천 옆 밭둑입니다." 동아리는 북수원도서관 삼층에서 십여 명이 함께 책을 읽고 독후감에 대하여 토론을 했었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는 매주 지정된 한 권의 책을 읽어야 했다. 한 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일 년간 참석하다가 자진 하차하였다. 인연을 끝내기에 아쉬워 야외행사에는 참석하기로 하고 단체 카톡을 유지하고 있었다. 냉이 캐러 가자는 문자를 보게 된 것도 이 행운이다.
오랜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냉이 캐러 가자고 신청을 하였다. 냉이 밭은 황구지천 옆 농지였다. 논과 밭이 어우러져 있어 어렸을 때 고향 풍경 같았다. 논에는 벼 이삭을 잘라간 뿌리가 줄을 맞추어져 있어 그림을 그려진 듯하였고, 옆의 밭은 지난해 김장거리인 무를 심었는지 퇴색된 무와 잎들이 남아 있었다. 이른 봄이지만 파란 풀잎들이 나풀거린다. 독서 회원들은 여러 가지 바쁜 일로 다섯 명만 참석하였다. 일단 자리를 펴고 밭둑에 앉았다. 작업도구를 내놓는다. 호미, 부삽, 비닐봉지 등 오늘을 위하여 철물점에서 구입하기도 하였단다. 나는 집안을 샅샅이 뒤졌으나 호미, 부삽 등이 없었다. 칼과 숟가락을 가방에 넣어 왔더니 모두 웃는다.
풀밭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십 대 중반의 여자들은 호미를 들고 냉이가 어떤 풀이냐고 묻는다. 심어진 냉이를 한 번도 보지를 못했단다.
고향이 농촌으로 논밭에서 많이 일을 했었다. 보리밭 풀을 뽑으며 냉이도 많이 캤었다. 그러나 놀이 삼아 냉이를 캐러 가지는 않았다. 잡초로서 뽑았을 뿐이다. 중학생 때이니까 냉이 밭에 가본 지도 육십여 년 전이다. 밭둑을 보니 모두 풀로 보였다. 오늘은 냉이 캐기 선생님이 되어야 했다. 모두 준비한 호미, 부삽, 봉지를 들고 밭둑으로 들어갔다. 옛날 생각을 하며 자세히 보니 냉이가 보였다. 아직 이른 봄이라 그런지 작았다. 냉이가 많은 곳으로 옮기고 싶었다. 이곳은 냉이를 캤다는 어느 할머니의 소개로 왔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도 없단다. 나의 설명을 들은 회원들도 냉이를 찾아 앉았다. 좀 있으니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ㅂᆢ니 재미있나 보다. 나물을 캐던 한 사람은 냉이를 코에 대고 봄의 냄새가 난다고 한다. 또 한쪽에서는 "여기 많이 있어요. 오늘 저녁 된장국 끓여 먹을 거예요." 즐거운 분위기이다. 시간이 흐르니까 말도 없이 열심히 손만 움직이고 있었다. 저쪽 도로에서 몇 사람의 여자들이 냉이밭으로 들어오더니 앉아서 작업을 한다. 또 다른 팀이 합류한 것이다. 이곳이 냉이밭으로 소문이 나기는 했나 보다.
한동안 앉아서 냉이 캐는 일을 하였더니 다리가 아프다. 옆에 있는 종이를 깔고 쉬었다. 맑은 하늘에는 구름 몇 점이 떠가고 있었다. 어머니와 보리밭을 매며 냉이를 잡초라 하여 캐냈던 옛날 생각이 났다. 둘이서 하던 작업은 힘이 들었다. 어머니의 반도 안 되는 작업량을 땀을 흘리며 호미로 땅을 파고 있었다. 어머니의 이마에도 땀이 흘렀건만 내가 더 힘든 것 같았다. 김을 매는 고랑은 왜 이리 긴지 작업량이 멀리만 보였다.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지 사십 년이 넘었다. 이제야 힘들다 투정 부렸던 그때의 나를 생각해 보니 한심하기만 하다.
냉이가 들어있는 노란 비닐봉지는 반도 안 찼다. 시간을 보니 거의 정오가 되어간다. 멀리서 냉이를 캐던 사람이 비닐봉지를 높이 들며 "이제 그만하고 점심 먹으러 갑시다." 소리친다. 그녀의 비닐봉지는 거의 찬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어서며 그만하자고 한다. 캔 냉이 비닐봉지를 모두 한자리에 진열하였다. 내 실적이 제일 저조하였다. 이른 봄 냉이 작업을 하였다는 것이 대단하였다고 느꼈는지 모두 기분이 좋은 표정이다. 오늘 저녁 냉이 된장국 끓여 먹자고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도 한다. 주변에 있는 남도 가정식 백반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 고등어조림과 흰쌀밥으로 밥을 먹었다. 오늘 저녁 밥상은 냉이된장국과 나물무침이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탁이 될 것이라고 즐거워한다. 봄을 맞는 냉이 캐기 따뜻한 하루였다.
첫댓글 대단 하십니다!!
여인네들과 데이트 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