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것을 깨닫느냐?(행8:26-40)
갈등
1. 사도행전 이야기(내러티브) 14번째 시간입니다. 사도행전 6-8장은 사도들이 아닌 다른 일군들의 복음 전도 이야기입니다. 스데반과 빌립의 놀라운 복음 전도 이야기가 이어졌어요. 하나님께서는 직분에 상관없이 때를 따라 각 사람을 불러서 멋지게 사용하십니다. 스데반과 빌립처럼요. 지난 주일에 빌립의 사마리아 전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서 전도 활동을 한 후 26절,“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주의 사자는 천사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천사를 빌립에게 보냈습니다.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요. 내시의 이름이 간다게 아닙니다. 여왕의 이름이 간다게입니다. 성경을 정확히 읽지 않고 대충 읽으면 이런 실수를 합니다.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내시의 이름을 간다게로 알고 있어요. 마치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조카로 알고 있는 것처럼요.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삼촌의 딸, 즉 사촌 동생이었습니다. 에스더의 부모가 일찍 죽고,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딸처럼 키웠습니다.(에2:7) 간다게 여왕의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예배하러 왔다가 에디오피아로 귀국하는 여정에 있었습니다.
2. 이 거리가 현대 비행거리로 2500km(비행기로 3시간 이상), 육상 거리로는 4,400km(자동차로 62시간)나 됩니다. 엄청 먼 거리입니다. 솔로몬 시대에 에디오피아 여왕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후 첫 모습입니다. 이 내시가 광야-사막 길을 마차를 타고 가고 있었어요. 성령께서는 그가 어디 있는지 정확히 아셨고, 빌립을 그에게로 보내셨습니다.(지도를 보여주세요!) 당시 전화가 있던 것도 아니고 신기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일을 하십니다. 이 내시에게 복음 전도를 마친 후에는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갔다고 합니다.(공간 이동) 이런 신비한 기적은 아무 때나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때, 이렇게도 하십니다. 이때 간다게의 내시는 수레를 타고 가면서 성경 이사야를 읽고 있었어요. 성령께서 빌립에게, 내시가 타고 있는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셨지만, 이후 내시를 만나는 일은 빌립의 몫이었습니다. 복음 전도를 한다고 모든 과정이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이 있어요. 빌립이 수레 가까이 갈 때 내시가 이사야의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빌립은 내시에게 다가가,“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습니다.(30절) 이때 내시는 하필이면 성경을 읽고 있었나요? 성령께서 이때 빌립을 내시에게로 이끄신 의미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3. 빌립의 말을 들은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느냐고 대답했습니다. 내시는 빌립에게 성경 해석을 부탁하려고 수레 위로 올라오라고 청했습니다. 내시가 읽었던 이사야 말씀은 32-33절,“읽는 성경 구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그가 도살자에게로 가는 양과 같이 끌려갔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이 조용함과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이사야53:7 이하의 말씀입니다. 내시는 이 말씀이 누구를 예언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이사야 선지자였는지 다른 이를 말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말했어요. 빌립이 복음을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적기였습니다. 빌립이 이사야의 예언을 어디부터 어디까지 설명했는지는 모릅니다. 사도행전은 빌립이 내시에게 성경을 해석해주었고, 이어서 세례를 받았다고만 전해줍니다. 이사야의 예언은 그리스도의 고난 예고 이야기입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린 양이 되시어 희생제물이 되신 이야기의 배경과 복음의 전반을 전했습니다.
4. 내시가 빌립이 전하는 복음 이야기를 듣다가 수레 밖을 보니 물이 보였습니다. 물을 보자마자 내시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36절,“길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으냐.”빌립은 베드로가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했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이야기하고 세례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2: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초대 교회의 케리그마-복음 메시지 선포가 대개 이렇게 전개되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을 선포한 후 결단을 촉구했어요. 결단의 내용은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성령의 임재는 죄 사함 후에 선물로 주어진다고 선언했습니다. 복음의 적용이 되는 순서가 이렇습니다. 내시가 빌립의 케리그마 선포를 듣고 지체하지 않고 세례를 받은 것은 놀랍습니다. 전도가 이렇게 쉬우면 좋겠어요. 내시의 세례 이야기가 전해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실마리
5. 사도행전이란 말은 본래 없었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것이라 누가복음과 연결해 초대 교회에서 읽혀졌어요. 당시은 인쇄술이 발견되기 전이라 필사한 사본을 돌려보면서요. 2세기에 이레니우스에 의해서 처음으로 사도행전이란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의 내용을 보면 사도들의 행전이 아니라, 성령님의 행전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이것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28장까지 계속됩니다. 2-5장까지 베드로 이야기나 6-7장의 스데반 이야기, 그리고 8장의 빌립 이야기 모두 성령행전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줍니다.
오늘 본문은 시작부터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해서(26절) 주의 영이 빌립을 다시 이끌어 간 이야기로 마쳐요.(39절) 베드로와 스데반이 그랬듯이 빌립도 성령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필요에 따라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올 때, 그 기회를 놓치지 말고 빌립과 같이 쓰임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 쓰임 받기가 어려워요. 성령님께 한 번 순종하면 다음 기회가 또 옵니다. 제 삶의 이야기도 그래요. 이번 가을에는 미얀마(버마) 양곤 신학대학에서 초대를 받았습니다. 아시아에서 인도네시아 3개 신학대학과 태국 치앙마이에 이어서 또 한 군데가 늘었어요.
6. 성령께서 빌립을 불러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된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극적입니다. 내시가 광야-사막에서 수레를 타고 귀국하는 여정에 있었는데 빌립이 그를 찾아냈어요. 오늘처럼 휴대(위성)전화나 GPS 네비게이션이 없던 시대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아니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성령께서 빌립을 재촉해서 내시에게 파송하셨습니다. 선교학에서는 20세기 이후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어요. 선교는 하나님이 하신다는 고백입니다. 당연한 말이죠.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빌립이 내시를 만나기까지는 신비적인 면이 있었는데, 내시를 만나자마자 상황은 성경 이야기로 전환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이때 내시가 읽은 성경이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언한 이사야 53장 말씀이었어요. 어떤 각본이 있어서 진행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성령께서 빌립을 적시에 내시에게로 인도하셨습니다. 전도는 아무 때나 해서 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이 열려야 가능해요. 내시는 이 말씀을 읽으며 정말 궁금했어요. 이 말씀이 누구를 예언한 것이지?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빌립이 나타났습니다. 빌립이 이 말씀을 풀어주며 내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7. 빌립의 역할은 내시에게 성경을 풀어주고 세례를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전도는 성경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성경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걸려요. 성경 이야기를 나누며, 전도 대상자가 궁금한 것을 풀어주기 원한다면 그 사람은 익은 열매입니다. 전도에 있어서 덜 익은 열매가 있어요. 덜 익은 열매를 추수하려면 절대 되지 않습니다. 억지로 추수하면 상처만 남습니다. 성경을 풀어달라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열려있다는 증거입니다. 빌립이 적시타를 날렸어요. 내시가 성경을 읽는 것을 듣고,“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물었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말하도록 감동해주셨습니다.
벧전3: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빌립은 준비된 일군이었습니다. 내시는 성경 말씀이 정말 궁금했고, 그것이 풀렸을 때 그는 세례받기를 조금도 꺼리지 않았습니다. 수레 밖으로 물이 보이자 그는 내가 지금 이곳에서 세례를 받겠다고 선언했어요. 자발적인 결단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익은 열매가 된 내시를 구원하려고 빌립을 이렇게 보내서 추수하게 하셨습니다. 신천지 교회서 추수꾼이라는 말을 써서 전도를 추수라고 하면 마음에 걸릴 수 있어요. 그럴 것 없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성경의 용어를 이단이 쓴다고 우리가 빼앗길 것 없습니다. 다락방도 마찬가지고요.
복음 제시
8. 복음 전도에서 제일 중요한 메시지는,‘그리스도가 누구신가?’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도 그랬습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이시고, 이 사실을 믿는다면 전도가 이뤄져요. 이사야 53장은 이 점에서 보배로운 예언이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사람들이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어요.(2절) 예수님 사진이라고 그린 것들을 보면 백인이고 미남입니다. 다 가짜입니다. 주님은 백인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았고요(아시안), 이사야 예언과도 맞지 않아요.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셨습니다.(3절)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는데, 사람들은 마치 주님이 문제가 있어 징벌을 받는 것으로 착각했습니다.(4-5절) 이사야의 예언 하나하나가 어쩌면 정확하였어요. 6절,“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오늘 본문은 고난 가운데도 침묵하셨고 불공정한 재판을 받으신 예언만을 전합니다.(7-8절) 복음의 핵심은 6절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그리스도에게 담당시키셨어요.(죄의 책 비유-전도폭발 전문 가운데)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심으로요. 내시는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다가 빌립이 전해준 복음을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기대
9.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3장을 아예 읽지 못하게도 합니다.(예수님을 말하는 것으로 알기에 금서로) 사도행전 말씀을 함께 읽으며 나아갈 때, 오늘부터 우리 각자가 기대감을 갖고 주일예배에 오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대감은 성령께서 오늘 빌립과 같이 나도 사용해 달라는 기대감이에요. 성경은 옛날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사도 시대까지만 역사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은사중지론자들입니다. 성경을 이렇게 이해하면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초대 교회 사도들을 통해서 교회를 세워가셨듯이, 오늘 우리를 통해서도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2010년, 15년 전에, 제가 사도행전 강해를 하면서 기대감을 가졌어요. 그때 사도행전을 설교하는 동안(약 2년 정도 수요예배 때) 반드시 사도행전에서 역사하신 성령님을 경험하기를 사모하고 기다렸습니다.(단지 과거 성경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나와 교회가 경험하는) 사도행전을 절반 즈음 강해할 때(1년 정도 지나), 성령께서 실제 저와 교회에 임하셨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시작되어 2016년 10월 31일 교회 개척에 순종할 수 있었고, 건축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금년에 다시 사도행전 설교를 주일에 하면서 다시 기대감을 갖습니다. 교회 개척을 하고 건축한 교회를 성령께서 세워가시옵소서. 어떤 형태인지는 좀 더 보아야 합니다. 대략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양하며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