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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무청 시래기 문하 정영인
강원도 양구 펀치 볼에서 무청 시래기 한 상자를 샀다. 무청을 말린 것이 ‘시래기’이다. 예전에는 시래기는 가난한 서민들의 도토리, 메밀묵처럼 중요한 먹거리였다. 지금은 시래기가 건강식으로 둔갑을 하고 있다. 펀치 볼에서는 아예 시래기 전용 무우 종자를 심어 무청으로 시래길를 말려 전문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시래기용 종자는 뿌리는 볼품이 없고 무청만이 무성하다. 펀치 볼에서 무청 말리는 것을 보면 마치 황태 덕장과 비슷하다. 황태가 추운 덕장에서 얼었다 녹았다를 수십 번하듯 시래기도 무청이 삼동을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여 꼬들꼬들하게 말라간다. 된바람에 명태가 얼었다 녹았다 하여 푸슬푸슬하게 부드러운 황태가 그러하듯이……., 마치 바위가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여 모래로 바수어지듯이 말이다. 시골에서는 싱싱한 무청을 굴비두름처럼 엮어 처마 밑에 매 달았다. 그 앞에는 고드름이 동태처럼 매달려 있었다. 무청은 삼동 겨우내 된바람 맞아가며 얼었다 녹았다 되풀이 하였다. 질긴 무청도 바윗돌 부서지듯이 푸석푸석해졌다. 하기야 무청은 얼음이 박혀, 낮에는 녹고 밤에는 얼고, 동상이 박히며 짓물러갔다. 그렇게 시난고난 겨울을 난 것이 시래기이다. 하찮은 시래기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김장에 깍두기를 담그니 실한 무청이 생겼다.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무청으로 시래기 말리기가 어렵다. 또 얼었다 녹았다 하지 않은 시래기는 잘 삶아지지 않고 질기다. 무청김치를 담갔다. 소금에 간을 세게 절여 파뿌리와 고추씨만 넣었다. 찬 곳에다 쳐 박아 두었다. 한참 지난 후에 먹으니 시원하고 개운한 무청 백김치가 되었다. 한 겨울에 먹는 동치미처럼…. 군고구마와 먹으니 아주 제격이다. 궁합이 잘 맞는 음식인 것 같다. 집사람은 이번 설에 시래기 떡갈비를 사 왔다. 이 또한 색다른 맛이 있었다.
하기야 무청 시래기도 배 주리던 서민의 먹거리였다. 느루 먹기 위해서 해 먹던 시래기밥, 시래기죽, 시래기국이나 시래기나물 등.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섬유질이 많아서 건강식으로 시래기 추어탕, 시래기 고등어찜, 우리 곁의 건강식으로 되 집어 가고 있다. 시래기는 고드름이 커 가는 처마 밑에서 온갖 찬바람을 맞아가며 자신의 몸을 들볶아야 했다. 달밤에는 황태 덕장의 동태처럼 얼었다가 낮에는 해토머리하듯 햇볕에 녹으니 덕장의 황태처럼 얼었다 녹았다 겨우내 반복하면 어느 새 과메기처럼 꼬들꼬들해졌다. 가녀란 몸에는 얼음이 박혀 추운 엄동설한 바람에 몸은 사시나무 떨 듯 떨었을 것이다.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찮은 무청이 시래기가 되기까지 숱한 고난의 세월을 견디어 내야 한다. 시래기 한 점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보이지 않은 수많은 바깥 도움이 있어야 한다. 마치 명검(名劍)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담금질과 두드림이 있어야 하듯이……. 이즘 우리나라 세태는 일 안하고 거져 먹으려 한다. 초등학생은 부모에게 건물 한 채 상속을 받아 세 놓아 먹고 사는 것이 소원이고, 고등학생은 한 10억 생기면 한 3년 감옥살이해도 좋다고 한다. 국가는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끝 간 데 없는 목표에 국민은 세금으로 도취해 가고 있다. 일 안하고 돈을 버는 데 이력이 나고 있다. 정읍시에서는 동학 후손에게 월 10만원의 수당을 준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혹시 임진왜란, 병자호란 후손도 수당을 받을지 모르겠다. 그 지자체는 자립도가 형편없을 것이다. 국민의 알토란같은 세금으로 포퓰리즘 생색을 내고 있다. 이러다간 남미의 베네수엘라 꼴이 안 되라는 법은 없다. 하찮은 무청 시래기도 숱한 된 고생을 해야 시래기가 되는데…….
한국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힘 안 들이고 떼만 쓰면 이루어지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자식에 대한 과잉보호는 결국 부모가 되어서도 철 없는 어른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들을 봄, 가을로만 키우려고 한다. 그 덥고 그 추운 겨울을 비켜서 키우려고 한다. 사계절로 키우지 않는다. 비실비실한 나무로 키우고 있다. 나는 현직 교사 시절, 우리 반 엄마들에게 아이들을 ‘겨울나무’처럼 키우라고 당부했다. 겨울다운 겨울을 지낸 나무만이 겨울나무란다. 대학생 아들 수강신청도 엄마가 해주고, 봉사활동은 아버지가 해주고……. 스펙도 가짜로 부모가 해주는 세상이다. 그러니 공무원 길이 최상·최고의 길이 되고 있다. 일본 아이들은 겨울에 반바지 입혀 체육을 한다. 러시아 엄마들은 하루에 한 번씩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추운 경루 밖을 햇볕 쬐며 다닌다. 한국의 엄마들은 두툼한 오리털 점퍼에 바람 한 점 안 들어오는 유모차에 태우고 다닌다. 콩나무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콩나물로 키운다.
‘인생사(人生事), 원래 생로병사(生老病死)에 희로애락(喜怒哀樂), 생사고락(生死苦樂)이 아니던가? 이 세 가지 사자성어를 피해갈 자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린 자라도. 하찮은 무청 시래기를 우습게 보지 말라. 우거지보다 더 고난을 견딘 산물이다. 시래기 한 꼭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바깥의 도움이 필요했던 지를 ……. |
첫댓글 즐겨먹고 있지요..^무 청을 말리면 영양가가 10배 up 된다는 시래기..
네, 브이멘님, 저도 무청을 무지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