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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아름다운 강변길 1
부산 구포역에서 열차를 타면 곧장 낙동강을 안고 달리게 된다. 그 철길, 물금, 원동을 지나 삼랑진에 이르는 차창 밖으로 낙동강변을 밟을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부선은 완행으로 덜커덩거리며 달려야 한다. 깊으면 깊은 대로 퍼런 물살로, 얕으면 얕은 대로 모래톱으로, 휘돌아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의 연인이 되어 가슴 적실 일이다. 누구나 시인이 될 일이다.
모든 길은 강으로 통한다. 강을 따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피고 진다. 산굽이가 휘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강변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강가와 만났을 때 비로소 풍경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꽃도 사람도 새들도 느낌표로 다시 태어난다.
오늘은 굽이쳐 흐르는 강의 가슴을 더 가까이 읽어내려 갈 것이다. 봄의 행락객으로서 원동 매화를 보러 가는 길, 기왕이면 삼랑진까지 올라가 원동으로 되돌아 내려오기로 한다. 꿍심 때문이다. 다리를 보기 위해서다. 대운하라는 대재앙이 인구에 회자된 이래 나의 여행길은 옛 나루터 자리, 곧 다리를 건너는 일이 되었다.
위 사진의 왼쪽, 김해 상동면을 따라 올라가 삼랑진교를 건너 만어사, 작원관지, 양수발전소, 천태사, 원동 영포매실마을, 순매실을 거쳐 사진의 오른 쪽 물금으로 빠져나오는 낙동강 길은 부산에서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하루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는 봄나들이로서 으뜸이라 할만하다.
꽃보다 앞서는 또 하나의 다리 생각
부산에서 삼랑진으로 가려면 김해 생림 쪽으로 58번 국도를 타고 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문득 또 하나의 다리에 생각이 미쳤다. 대운하와 관련하여서다.
부산 나들목에서 남양산을 거쳐 신대구부산 고속도로로 접어들기 전에 만나는 양산낙동강교, 이 다리는 부산 교통의 심장부다. 전국 그 어디를 오고가든 이곳을 지나야 물류가 숨을 쉰다. 이곳으로 차를 올리면 삼랑진도 바로 코앞이다.
국도를 달리는 것이 여행의 참맛이지만 오늘만은 예외다. 고속도로로 올려 이 다리를 먼저 조망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침 들머리에 자리 잡은 고속도로관리공단 직원휴게소에서 맞은 편 물금의 풍광을 함께 조망할 수 있었다. 갯버들인가? 사망의 지름길 대운하가 들어선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강가의 물오른 연둣빛이 '이명박의 사람들' 눈에도 들어왔으면 좋겠다. 강을 강답게 하는 것들 말이다.
아니면, 자연의 가치를 바로 볼 수 있는 재주가 없다면, 현실이라도 바로 짚었으면 한다. 대운하는 물류가 아니라 망국의 지름길로 가고 있다. 양산낙동강교 하나만 놓고 봐도 그렇다.
가까이 가 보겠다. 이 다리 밑으로 바지선이 지나간다는 것이다.
다리 간격과 높이 모두 상상에 맡기겠다. 어차피 대운하는 주먹구구요 허구의 산물이기에 바지선이 통통배로 바뀌면 그만이다. 대운하의 전도사들은 타고난 변신의 귀재들 아닌가? 물류는 뒷전이고 낙후한 지역개발을 위해서라며 또 말을 돌릴 것이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수법이다. 그 완결판이 전액 민자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재주를 보여주겠단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기업은 손해 보는 장사를 하게 된다. 대한민국 기업이 언제부터 시장원리를 포기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앞으로는 제발 노무현을 좌파라고 부르지 않기를 바란다. 시장주의자 노무현이 좌파라면 이명박은 극좌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시장경제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은 나랏돈이 하나도 안 들어간다는 그것이 오히려 함정이다. 난개발을 막을 길이 없다. 이면거래가 없다면 특혜 특전으로 손실을 보존해 줄 것이다. 그 부담은 결국 '없는 놈'이 안게 된다. 몇 푼 보상으로 토지를 수용 당하고 고향을 등지는 것으로 마감한다. 단언한다. 강을 빙자하여 온갖 교언영색이 난무하지만, 땅 투기꾼이라면 몰라도 일반 국민에게는 속 빈 강정일 따름이다.
감히 대운하 따위 감언이설로 물길을 막을 일이 아니다. 한반도를 수장시킬 일이 아니다.
스스로 강이 되어 강의 마음으로 강을 읽지 못하는 한, 강과 하나가 되어 갈대로 해오라기로 춤추지 않는 한, 아무리 현란하게 드리볼을 해도 대운하의 종말은 결국 자살골이다. 강을 무덤 속, 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생김부터가 그렇다.
양산낙동강교, 이 다리 하나만으로도 대운하는 대책 없는 삽질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철거가 불가피하다면 물류혁명이 아니라 물류대란이 불 보듯 뻔하다. 자꾸 머릿속에서 말이 헛돈다. 어떻게 소 뒷걸음질로 국토를 농단하며 생명의 근원까지 함부로 파헤친단 말인가? 강은 곧 한반도의 과거 문화유산일 뿐 아니라 자라나고 생성하는 미래 아닌가? '오래된 미래' 아닌가?
하기야, 바로 눈앞에서 서민을 걸고 사기도박이 벌어지는데도 막지를 못했다. 10년 내내 엄청난 부를 축재한 사람들이 잃어버린 10년이란 없다.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서민경제란 그 어느 나라 사전에도 없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을 간결하게 압축하면 돈 놓고 돈 먹기다.
금융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돈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라면 제발 꿈 깰 일이다. 대운하, 돈 안 된다. 한미FTA, 돈 안 된다. 이 모두 양극화의 지름길일 뿐이다.
이 좋은 날, 너무 엇길로 샌 것 같다. 뒤집어지는 허파를 뒤로 삼랑진으로 향하며 괜히 애꿎은 가속페달만 밟아댄다. 마침 맞은 편 강 너머로 원동 매실마을이 눈에 들어오기에 저리로 가는 것이라고 일러둔다. 산허리가 박상을 튀긴 듯 온통 하얗게 부풀어져 있다.
표정관리가 안 된 것을 괜한 말머리로 돌린다. 참 맛있는 풍경이다. 그쵸?
이곳을 어찌 눈으로만 밟으랴
오늘의 첫 행선지 삼랑진교. 이 다리를 그냥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빠져나가는 길, 그래서 워키토키를 든 아저씨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리 양쪽에서 차량통제를 하는 그런 진풍경으로만 기억했다면 이제라도 추억 하나 더할 일이다. 다리 아래로 내려가 볼 일이다.
누가 써 붙였는지, 일명 '레마겐의 철교'라고 선명하게 유혹하는 이곳에서 가장 먼저 폭파해야 할 것은 강의 역사를 짓밟는 오만한 발상과 무관심이다.
어쩌면 이렇게 모래언덕 위에서 조망하는 풍경은 마지막일지 모른다. 대운하가 들어서면 강가의 풍광은 잠수한다. 모래밭과 함께, 쉬어갈 곳 없는 새들도 잠수한다. 사라진다.
바지선을 띄우기 위해 수심이 깊어지는 만큼 근심도 깊어지며, 마침내 죽음에 이르른다. 본류 뿐만 아니라 지류도 죽는다. 그 런데 어떻게 주변 경관이 수려한 농촌 지역이 살아 남으며, 무슨 향토의 문화역사 유적지와 연계될 터미널을 만든단 말인가? 실물이 없는데 말이다.
이명박의 전도사들은 말한다. 대신 천국이 들어선다고 한다. 세월이 아니고선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작품 대신, 조악한 개발지상주의자들이 급조하는 천국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런데 저 멀리 뒤로 보이는 낙동대교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명박의 바지선은 어떻게 저 수많은 교각 사이를 헤집고 들어올까?
'오래된 미래' 속으로
그렇다. 눈에 걸리면 철거하면 그만이다. 이 경전선 철교처럼 새 다리에 밀린 헌 다리는 무대 뒤로 퇴장하면 된다. 그럴까? 과연 그럴까? 새 것만이 능사일까?
내가 보기엔 아니다. 천 번 만 번 아니다. 라인강을 떠받치던 레마겐의 철교는 2차 대전 당시 무너져 내려 양쪽 교각만이 시커멓게 남아 있지만, 지금도 전쟁기념관으로서 보존되고 있다.
마찬가지다. 이 오래된 다리엔 분명 삶의 애환이 있다. 관련 자료를 발굴하여 이곳 일대를 삼랑진의 관광명소로 만드는 것이 오히려 지자제다운 발상이 된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교량이 이렇게 연이어 나란히 만들어진 곳도 없다. 더군다나 기찻길은 아련한 추억의 보루 같은 곳이다. 삼랑진의 명물 딸기축제와 연계하여 이곳 경전선 교량을 통과하는 입장료를 받고 딸기 한 바구니를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걸어서든, 레일 자전거로든, 낙동강을 조망하는 눈맛도 기가 막힐 것이다.
지자제마다 천편일률적으로 강변을 잠식하여 유채꽃 축제를 벌이는 것과 대비해보면 이런 발칙한 상상력 하나 쯤 나와도 될 것 같다. 강변은 임시 눈요깃감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고의 세월로 피고 지는 것이다. 착각 속에 빠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삼랑진 철교의 역사다.
바로 곁에는 낙동강에서 유일하게 낙동강이라는 이름으로 옛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낙동강역'이 자리하고 있다.
새로 만들고 있는 철교와 옛 철교, 이들이 사이좋게 나란히 꿈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소리는 아직도 내 귀를 울린다.
아쉬움을 뒤로 삼랑진교를 건너 가장 먼저 길을 잡아야 할 곳이 만어사. 이곳에 가면 부처의 설법을 듣기 위해 뭍으로 올라온 물고기들이 바위로 변했다는 돌무디가 널려 있다. 그 바위를 두드리면 쨍그랑~ 풍경 소리, 해탈의 종소리가 울린다. 그래서 종석(鐘石)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슬산의 암괴류 못지않은 신비감이 도처에서 묻어난다. 그러나 오늘은 종석보다 먼저 샛노란 생강나무꽃이 봄의 서곡을 울린다. 두드리지 않아도 봄은 온다며 가슴 그만 태우라 한다.
참고로, 정상까지 산허리를 제법 감아 돌아가야 하는 아득한 곳이지만 절 마당까지 차량이 진입하므로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을 모셔가도 걱정 없다는 것을 일러둔다.
그 맛
만어사를 내려올 즈음이면 점심이 궁금해진다. 바로 아래 산닭집 주인아저씨는 닭보다 나무를 더 즐겨 판다. 솟대와 장승이 곳곳에 널려있다. 매화나 동백보다 먼저 봄을 전하는 복수초 사이로 그를 영락없이 빼다박은 인심, 그리고 갓 피어난 남근, 사람들 발길을 잡지 않을 수 없다.
후식으로, 복 많이 받고 오래 살라는 뜻이 담긴 복수초를 한 점 얻어온 것이 진짜 별미로 남았다.
옆길로 1분만 밟으면 400년을 만난다.
작원관지는 잠시 들러보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명색이 조선의 관문이었다. 작원진 나루를 드나드는 사람과 화물을 검색하던 교통의 요지로서, 그 연원은 임진왜란 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밀양부사 박진이 배수의 진을 친 곳으로서 400여년이 흐른 지금,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매화를 보기 위해 나선 길, 본론으로 접어들기 전에 곳곳에 잠복한 서론 만으로도 입이 벌어진다. 생각지도 않은 산수유꽃이 그랬다. 봄의 상징들을 줄지어 만나는 기쁨 때문에 그만 딸기밭 사진을 놓쳐 버렸다. 삼랑진에서 딸기를 사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라는 것만 첨언한다.
옷부터 벗으라 하네
삼랑진 양수 발전처 가는 길은 그야말로 산모롱이 돌고 돌아 가는 길이다. 20리 벚꽃길, 이런 화려한 봄의 수사보다는 안태호을 거쳐 정상의 천태호에 이르는 동안 만나는 산골의 맛이 일품이다. 저녁이면 아직도 밥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오를 것 같은 곳이다.
하루만 더 허락한다면 이곳에서 묵객으로 촛불을 켜도 좋을 것 같다. 생긴 대로, 돌담으로 쌓은 연분이 어디 가랴. 삼랑진은 안태 마을에 이르러 비로소 옷을 벗는다. 천태산 정상에서 낙동강을 조망하기에 앞서 안태에서 먼저 옷을 벗으시라 권한다.
역시 우리나라의 참봄은 진달래가 연다. 그래서 참꽃이다. 천태사 일주문보다 곁가지에 잠시 넋을 빼앗기는 사이, 봄나들이 나갔던 대가족이 올망쫄망 길을 건넌다. 천태산이 바로 여기요, 어서 따라오라 한다.
하하하~
그러나 더 이상 꽃구경을 미룰 수가 없다. 오늘의 여정에 맞추어 부지런히 산허리를 감아 돈다.
그런데 복병을 만났다. 서지 않을 수가 없다. 무슨 찻집 같았는데 길가 마당에 대범하게 여근을 노출시켰다. 그 것도 방점을 찍어 말이다. 차 안이 떠들석 웃고 난리다.
잠시 차를 내려 디카에 담는데 뒷통수가 간지럽다. 딸애다. 생전 사진을 찍지 않던 애가 핸드폰을 들이대고 있다. 장삿속으로 보거나 미학적으로 보거나 의표를 찌르는 그것만으로도 여근 만세다.
그 집 마당에 홍매화는 더욱 붉었고, 매화는 가지런하게 빗질을 한 듯, 유난히 정갈하게 수줍음을 타고 있었다.
매화 향기보다 더 진한 그리움으로
드디어 꽃나들이 목적지. 배내골 입구에서 영포매실마을은 불과 5분 거리. 그러나 삶은 지나온 길 자체가 목적지인 것을. 여행도 마찬가지다. 원동은 눈길 닿는 곳곳이 매화나무다.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사실은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첩첩 골골이던 배내골을 고속도로처럼 뻥 뚫린 4차선 포장도로로 내달릴 줄은 정말 몰랐다. 배내골은 숨은 맛이 있어야 비로소 그 비경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그런데 편리한 쪽으로 너무 밀어 붙였다. 직선이 곡선을 지배했다.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쉬움이 더했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서둘러 영포를 벗어나 마지막 목적지로 향한다. 그래도 한 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두 번 가도 좋다.
낙동강 매화 향기는 기차를 타고.
매화와 함께 원동역을 드나드는 기차를 조망할 수 있는 이곳 낙동강 도로변이 오늘의 종착역이다.
낙동강을 따라 다투어 자리잡은 매실 농원. 그 가운데 순매실 농원은 무료로 점심을 제공한다. 물론 그 안에는 알아서 매실로 만든 제품을 사라는 뜻이 담겨 있다. 얼마든지 구사해도 좋은 마케팅이다. 그러나 "매실이 너무 좋아서"라는 주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더 좋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또 하나 있다. 매화가 너무 좋아 나선 길, 오늘만은 원동이 아니라 낙동강 매화다. 낙동강이 아니면 기차는 달리지 않는다. 낙동강이 아니면 매화는 향기를 실어보내지 못한다. 그런데 대운하가 무엇을 가로막는가?
대운하는 반드시 막을 일이다.
뒤늦게 4월에 3월을 마감한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화급한 주제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밝힌다.
모든 길은 강으로 통한다. 강을 따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피고 진다. 산굽이가 휘돌아가는 길목에 서 있는 강변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강가와 만났을 때 비로소 풍경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꽃도 사람도 새들도 느낌표로 다시 태어난다.
발끝을 적시는 것이 어찌 강물 뿐이랴. 강가에 서 있는 것들에게 한없이 겸손해질 일이다. |
첫댓글 언제나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