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러시아에서 일한 곳은 상뜨 뻬쩨르부르그(St. Petersburg)였다.
한때는 제정 러시아 수도였고 소련 시절에는 레닌그라드로 불렸다가 소련 해체 이후에 본래 이름을 찾은 아름다운 도시다.
막 도착한 러시아의 겨울은 추웠다. 당시 내가 머물 때 한겨울 최저 기온이 보통 영하 20도에서 30도 사이였다.
나는 러시아 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했다. 한국인이라곤 사장과 나뿐이고 나머지 직원은 러시아인과 고려인이라 부르는 동포들이다.
한국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은 통역도 겸할 수 있어서 우대를 받았다. 러시아에 와서 나는 오직 일만 했다.
일주일에 하루만 휴식일이고 주 6일 근무를 했는데 그럼에도 때론 야근을 자원해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날 퇴근해서 집에 오면 밤 11시쯤이었다.
피곤하긴 했어도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는 일념이 강했기에 그리 힘든 줄은 몰랐다.
오직 일을 할 때만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기에 더 일에 매달렸을 것이다. 딸과 아내가 생각날 때는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사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다.
딸 생각에 눈물이 주르르 흐를 때도 있었지만 어떻게든 견디겠다며 입술을 깨물었다.
타고난 체력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부모한테서 물려 받은 거라곤 가난 뿐이었지만 비교적 강한 체력을 물려받은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무슨 복인지 내가 일하고부터 회사 영업 실적이 늘기 시작했다. 내 능력보다는 시기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한테 제안을 했다. 일년에 한 번 있는 2주 휴가를 두 번으로 나눠서 갔으면 한다고 했다.
대신 한 번 휴가에 2주가 아닌 1주일이고 항공료 부담도 내가 하겠다고 했다. 내 요구가 그리 무리한 것은 아니라 생각했던지 사장은 흔쾌히 허락을 했다.
나는 근로 계약서에 현지 숙소와 휴가 때 왕복 항공료를 제공 받기로 했었다.
사장은 내가 가족과 오래 떨어져 있다가 고독병에 걸리면 오히려 자기한테 손해라면서 내가 부담하겠다는 휴가 항공료까지 전액 회사에서 제공하겠다고 했다.
사장의 배려로 나는 러시아로 떠난 지 5개월 만에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일주일라고는 해도 오고 가는데 걸리는 하루씩을 빼면 5일이라고 봐야 한다.
엄니한테 들러 인사하고 하룻밤 자지도 않고 바로 돌아왔다. 엄니는 서운했겠지만 딸과 지낼 생각에 엄니는 뒷전이었다.
몇 달 안 본 사이에 딸 아이는 훌쩍 자란 느낌이었다. 이런 것을 폭풍 성장이라고 하던가?
딸을 무등에 태워서 공원 나들이도 하면서 가족과 지내다 보니 5일이 금방 지나가 버렸다.
러시아로 복귀하는 날, 처음 떠날 때와는 달리 몇 달 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지는 않았다.
러시아에 살면서 나는 이 나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공산권의 맹주였던 소련 시절 우리와는 적대국 관계였기에 처음엔 경계심이 많았다.
그러나 러시아 사람들과 교류하고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러시아 남자들이 술도 많이 마시고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마음씨를 갖고 있었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러시아 여자들도 심성이 고왔다. 특히 러시아인들의 예술 사랑은 대단했다.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나는 러시아에서 발레를 처음 봤다. 단어로만 접했던 발레를 우리 돈 5천 원도 안 되는 가격에 실컷 감상했다.
쥐꼬리 만한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인들도 발레와 오페라 등 예술을 즐겼다. 연금으로 사는 노인들은 빵과 우유, 양배추 수프 정도의 조악한 식사를 할지라도 예술 사랑을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에 관한 추억 이야기는 다음에 쓸 기회가 있을지 몰라 여기서 멈춘다.
러시아에서 일하는 동안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다. 나의 보스이자 인생 스승이기도 한 사장님 덕분이다.
박OO 사장님은 남들이 중국이나 동남아로 눈길을 돌릴 때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한 전략가였다.
그는 나에게 많은 배려를 했다. 휴가도 1년에 두 번씩 보내줘서 외로울 시간을 없게 만들었고 실적에 따른 성과금을 정직하게 지불했다.
월급도 오르고, 초과 근무로 수당도 받고, 거의 연봉과 맞먹는 보너스까지, 통장에 들어오는 액수를 보면 나는 행복했다.
박사장은 내가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면 항상 100달러나 200달러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항공료를 전액 직장에서 제공하는 터라 나는 사양을 했지만 딸 아이 과자나 사 가라면서 기어코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나는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러시아에서 딱 2년을 근무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을 모았다.
나 같은 공돌이 출신 노동자가 러시아에서 2년 동안 2억에 가까운 돈을 번 것이다. 죽어라 일을 했다해도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금액이다.
계약 기간 2년을 채울 무렵, 박사장님은 계속 일을 하자면서 설득했다. 나는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거절했다.
박사장은 1년 만이라도 더 근무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나는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돈 모을 생각이라면 더 있고 싶지만 가족과 함께 살고 싶었다.
마지막 휴가 때 친구를 만나 함께 사업 구상도 계획하고 있었다. 마침 한국도 IMF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막 입국한 후임자에게 인계를 하고 나는 희망을 가득 안은 채 러시아와 작별을 했다.
매정하게 떠나는 내게 서운할 법도 하건만 박사장님은 공항까지 배웅을 하면서 200 달러가 든 봉투를 기어이 내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지금도 나는 이 분이 내 생애에서 만난 사람 중 맨 앞에 있는 분이다. 항상 고마운 마음을 담고 산다.
나는 2년 만에 건강하게 돌아왔다. 나를 보자 반가워 죽겠다는 표정의 딸 아이 얼굴에 뽀뽀를 하며 다짐했다.
이제는 결코 네 곁을 떠나지 않을 테다. 아빠가 러시아에서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운 내 딸아,,
첫댓글 대단한 정신력으로 그 외로움을 견뎌 이겨내셨군요
좋은 기회를 잘 잡으신 덕분에
따님도 교육잘받고 잘 컷을거 같아요
와우~ 모카님께서 첫 댓글을 주셨군요.
귀한 댓글에 바로 답을 드려야 하는데 밥벌이를 하다보니 퇴근 시간인 이제서야 답을 하네요.
러시아에서 먼저 일하기로 했던 누군가가 포기하는 바람에 꿩 대신 닭으로 제가 이런 동아줄 잡는 행운을 누렸답니다.ㅎ
모카님의 관심 감사합니다.
상뜨 뻬쩨르부르그, 꼭 가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에르미타시 박물관이 있는 곳, 러시아의 역사와 예술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곳,
퇴직 후 여행 버킷 리스트에 있는데..
뇌혈관 때문에 장시간 비행이 이젠 두려워서(주치의는 가능하다 했지만) 갈똥 말똥 하여라, 가 됐습니다. ^^
과연 현덕님 다우신 유능함과 성실함으로 2년을 알차게 근무하셨군요.
그 사장님이 현덕님께 귀인인 것도 맞지만,
현덕님이 그 사장님께 귀인이신 것도 맞습니다. ^^
글로벌 인재이고 자상한 아빠이신 현덕님의 다음 글 기다립니다.
이런 시리즈 넘 좋잖아요. ㅎㅎ
달항아리님께서 뻬쩨르부르그 도시의 매력을 아시는 분이라니 더 반갑습니다.
달님이 언급하신 에르미타쉬 박물관을 저도 자주 갔던 곳이랍니다. 살면서 그렇게 방대한 예술품이 소장된 곳을 처음 봤지요.
봐도 봐도 끝이 없는 작품들었습니다.
이 박물관 덕분에 제가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 도시에서 2년 머물면서 마치 예술대학 2년 코스를 나온 기분이랄까요.
달항아리님은 웬만하면 당분간 장거리 해외여행은 자제하시는 게 좋겠다는 제 생각입니다.
비행기 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겠는지요.
제주행 비행기는 그리 높지 않게 날던데 제가 러시아 오고 갈 때면 기압 차이로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비행 고도가 엄청 높더군요.
대신 제가 나중에 러시아에 관한 글을 쓸 테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해외여행 자제하랬다고 버킷리스트 보면서
달님이 넘 서운해 하실려나?^^
눈과 입에 착 붙는 단어인 귀인이란 말 달항아리님 덕에 오랜만에 보네요. 달님도 저한테는 귀인이랍니다.ㅎ
@유현덕 ㅎㅎ 1도 안 서운하지요, 당연히^^
자상하신 현덕님, 올려주실 글로 간접 경험, 대리 만족하겠습니다. ^^
지나온 삶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고마운 딸 얘기
다음회가 기다려집니다
영심님 안녕하세요.
부족한 제 글을 읽고 관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날그날 써야 해서 매일 올리기는 힘들겠지만 다음편은 계속 이어집니다. 편안한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게 외국에서의 2년여 생활이 그리고 프랑스에서도 살았다고 들었는데 현덕님 생의 길이 좁은 우물안 저와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쓰시는 글에서 사유가 깊고 넓은 것도 다 나라 밖 생존의 경험에서 기인하군요 말이 2년이지 딸에 대한 그리움을 어찌 견디셨는지 진한 부성애를 엿봅니다.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넵~ 운선님,,
계획에 없던 러시아 취업으로 저의 외국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운선님 말씀처럼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난 것은 맞습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것을 책에서만 봤는데 실제 경험해 보니 바깥 세상에서 할 일이 참 많더라구요.
오직 살아 남기 위해 발버둥을 친 세월이었지만 그런 경험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습니다.
러시아 있을 때는 2년이 참 길다 생각했었는데 한국 돌아와서 보니 금방이었네요.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참 열심히 살아오셨네요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러시아대륙을
달려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덕님의 글을 보고 러시아 생활을 간접체험합니다
우왓~ 그산님께서 흔적을 남기셨네요.
시베리아 열차를 언급하시니 귀가 솔깃합니다. 제 글로 그산님이 러시아 간접체험을 조금이라도 하셨다니 다행이구요.
저도 블라디보스톡과 이르크추크까지는 가 봤는데 시베리라 횡단열차 완주 여행은 못했답니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더군요.
가고 싶은 곳이 많을 때는 시간이 없고, 시간이 많을 때는 돈이 없다고,,^^
지금 저도 비슷합니다.ㅎ
기다리던
현덕님의 딸傳 2를 읽다가
기억에 진하게 남아있는
'상뜨 뻬쩰부르그'란 도시를
소환해보네요~
뇌리에 박혀있는 소련 이미지와 달리
러시아 모스크바, 상뜨 뻬쩰부르그는
예술의 도시답게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게 보였어요.
현덕님의 젊은 시절
그야말로 외유내강 스타일..
참~잘 살아 오셨습니다.
마스카라님 반갑습니다.
뻬쩨르부르그가 진하게 남아 있으시다니 더욱 동질감이 느껴지네요. 저는 이 도시를 너무나 사랑했고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답니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이지요.
맞습니다. 저도 소련이란 이미지 때문에 처음엔 무섭고 긴장되고 했는데 살아 보니 모스끄바도 뻬쩨르불그도 예술혼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꽃도 자세히 들여다 봐야 더 예쁘단 말이 있듯이 도시도 그런 모양입니다. 공감해 주신 마스카라님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은인이셨네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ㅎ 파란여우님께서 제대로 보셨습니다.
사장과 종업원으로 만났지만 형제처럼 느껴질 만큼 서로 마음을 나누며 지냈지요. 저는 박사장님한테 준 게 별로 없는 반면 받은 것이 많아서 늘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파란여우님 평화로운 저녁 되시기 바랍니다.
열심히 성실히 하셨고
그 뛰어난 능력 인정받으시고ᆢ
두둑히 챙겨주신 사장님도 멋지시고
사랑하는 따님이 힘의 원천이었네예
러시아 하면 털모자에
춥다는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마음은 따스하구나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다려집니다
ㅎ 둥근해라는 닉처럼 댓글 읽는 제 마음을 환해지게 만드는 햇살 같은 따뜻한 댓글을 주셨습니다.
제가 뛰어난 능력이었다기보다 일할 때와 시기가 딱 맞아떨어진 영향이 큽니다. 마침 물 들어왔을 때 제가 운좋게 일을 시작했던 거지요.
글이 길어질까 봐서 본문에서는 빠졌지만 러시아 살면서 좋은 러시아인 여럿 만났습니다.
나중 기회 되면 쓸지도 모르겠네요. 둥근해님 건강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한겨울, 러시아의 숲 속에 자작나무들도 추위를
견디기 위해 볕을 향해 돌아선다는데
그 혹독한 추위가 부려놓은 일터에서
추위가 주는 구속마저도 이방인으로 느낄수
없게 치열하게 사셨군요.
참 장하세요.
상뜨 뻬쩨르부르그
젊은 도시, 어쩌면 현덕님과 가장 잘 맞는
엘리시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족 그리고 어린 딸
그 에워싸는 그리움
절망과 희망을 현실적으로 녹이던 끝에
2년 이라는 달달한 열매는 얼마나 더
뜨겁고 치열하게 제련 되어야 했을까요.
러시아는 문학과 예술적으로 달란트가
참 많은 나라로 여행에서의 설레임을 갖곤합니다
현덕님의 긴 호흡
세련된 감각의 재단으로 쓰신 글
탄탄한 직조만큼이나 박제된
수려한 흐름의 교감과 소통에 저를
돌아 봅니다.
얕고 엉성한 넋두리를 쏟아 내고 싶을때
저를 가다듬어 나가보려고요ㅎㅎ
헤알님을 오랜만에 봅니다.
여전히 정성 가득한 댓글에서 헤알님의 활자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한겨울의 러시아가 바깥 날씨는 추었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있어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따냐, 까쨔, 세르게이, 사샤, 막심 등, 그때 알았던 사람들 이름이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너무나 선명하게 남아 있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자작나무는 한국 이름이 훨씬 정감있게 들립니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나서 자작나무라 부른다고 하더군요.
자작나무가 새가 둥지를 틀고 머물기에는 애매하지만 바람이 머물다 가기에는 적당한 나무이기도 합니다.
깊고도 장엄한 러시아 예술은 그런 혹독한 자연과 함께 했던 사람들 가슴 속에서 용암처럼 뿜어져 나온 결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헤알님의 관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내와 따님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살아오신 유현덕님
사나이라고 섣불리 울지도 못하고 그 광경이 눈에 아른거리네요
금의환향하신 그 모습에 안도를 합니다
고마우신 박사장님의 덕분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외국을 나가고 이리저리 떠돌면 역마살이 끼어서 그렇다는 소리가 있는데
제가 그 역마살이 끼었습니다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ㅎ
유현덕님의 애원에 하늘이 무심하지 않고 도와 주었네요
지금까지 잘 살아오신 유현덕님
아프지만 않으시면 됩니다
가리나무님 잘 지내시지요?
일본에서 오래 사신다는 것만 알고 있지 가리나무님의 역마살까지는 잘 몰랐습니다.ㅎ
역마살은 세상 보는 눈을 다양하게 만들기에 좋은 살입니다.
러시아에 살 때 저는 일만 하느라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예술혼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거기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공교롭게 운때가 맞은 것도 있었습니다. 박사장님은 제가 지금도 가슴에 품고 사는 분이지요.
가리나무님의 외국생활이 평온하기를 빕니다.
항상 건강하시구요.
사장님도 직원도
도움이 되고
좋은사람 좋은인연이었네요
겨울이면 아주추운나라인데
가족과 떨어져
아내와 어린딸
많이 그립고 보고싶었을 생각하니 맘이 아려지네요...
열심히 살아오셨으니
이렇게 글도 쓰시고 추억을 먹고 산다는 건가봐요
항상건강 하시고
좋은나날 되세요~^^
문선이님 다녀 가셨군요.
댓글 주셨는데 하루 뒤에야 답글을 다네요.
제 사는 것이 이렇답니다.ㅎ
아내와는 연애 기간 동안 잠깐씩 떨어져 지낸 적이 있었으나 딸과는 처음이라 아주 힘들었지요.
기러기 아빠들은 몇 년씩 떨어져서 산다는데 저는 못하겠더라구요. 좀더 일하자는 사장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랍니다.
살면서 악연을 만나기도 했지만 제가 러시아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공감해주신 문선이님 건강하세요.
현덕님 심성과 성실함을
사장님이 알아보신거죠
그런 사람을 알아본 사장님도 리더로써 성공할 분이구요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낼 힘은 예나 지금이나 가족사랑입니다
더 욕심내지않고 가족품으로 돌아온 결단~!!
저도 늘 가족이 최우선입니다
그 힘듦속에서도 러시아를 느끼고
예술의 혼을 느끼며
나를 깨우고 일으키는 대단하신 현덕님이세요
정아님이 저의 보스였던 박사장님을 제대로 보셨습니다. 그분도 한국에서 많은 상처를 받은 분인에 러시아에서 완전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답니다.
함께 일하면서 그분의 뛰어난 사업수완에 여러번 감탄을 했지요. 그럼에도 겸손하고 교양있고, 영업이익을 종업원에게도 나눠주는 인간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최고라는 정아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서로 아옹다옹 티격태격했을지라도 마지막에 비빌 언덕은 그래도 가족이겠지요.
오늘 출근길에 보니 이번 비로 꽃들이 죄다 졌더군요. 가는 봄도 가는 세월도 정아님과는 순하게 잘 지낼 것으로 봅니다.
저도 이제 점심 먹으러 갑니다.ㅎ
3부가 시급합니다.
얼른 올려 주세요^^
ㅎㅎ 제라님 까꿍~~ ㅋㅋ
네, 정말 시급하지요? ^^
앗! 제라님이시네요
이따 퇴근한 후에 써보도록 할게요.
넘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ㅎ
진정한 사업가셨던 박사장님은 혜안을 지니신 분이셨었군요.
유현덕님같은 귀한 인재를 잘 키운(?)좋은 분이셨네요. ^^*
수피님 댓글을 이제서야 찾았습니다. 수피님 말씀처럼 박사장님은 혜안을 가진 유능한 사업가였습니다.
그런 사람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진짜 이후로 이분보다 좋은 분을 보지 못했답니다. 언제나 관심 보내주시는 수피님 감사하네요.ㅎ
러시아에서.2년간
2억원
대단하십니다 .
따님생각에
더 있으라는것도
거절하고
귀국했네요.
신미주님 여기까지 찾아 주셨군요.
정확하게는 2억에서 쬐끔 빠지는 금액을 모았습니다. 초과수당에 보너스에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전부 모았기 때문이지요.
돈만 생각했으면 좀더 머물렀을 테지만 저는 가족이 더 중요했습니다. 평온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유현덕 잘 하셨습니다 .
가족이 최고지요.
잘 읽었습니다
저의 두 번 째 여행지가 러시아였기에
러시아의 검푸른 바다가 눈에
선합니다ㆍ
20여년 전에
연봉 1억이었다니 알만합니다
다 쓸어져간 우리농장 가격이
그 정도였으니까
여기에도 윤슬님 댓글이 있군요.
러시아를 여행하셨다니 여행의 맛을 아는 분입니다. 보통 유럽 여행은 프랑스, 이태리, 스페인, 스위스 등을 떠올리지만 저는 러시아를 봐야 진정한 유럽을 본 것이라 생각하지요.
누군가는 러시아가 유럽이냐고 반문하기도 하나 러시아 정체성을 유럽에 속하면서 묘한 매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죽어라 일해서 그렇지 본봉은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장을 만난 덕에 그런 돈을 모을 수 있었지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6.04.11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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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행운이셨네요.
저는 코로나 이전에 두번의 북유럽(발틱해)크루즈 여행시 쎙 페테스부르그에 1박 2일 정박했었지요. 발틱해 크루즈 여행의 진수라고 생각되더군요. (그 다음이 스톡홀름 이라고 생각 )
아무튼, 그 찬란한 문화유적들, 역사적 볼거리들은 정말 대단하고 훌륭하더라구요.
지금에야 댓글을 봤습니다.
솔모롱이님께 발틱해란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절로 나네요. 발틱해에 접한 도시들이 아름답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코펜하겐, 탈린, 헬싱키,,
저는 그곳에서 배를 타본 적은 없지만 크루즈선이 뻬쩨르부그르에 정박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스톡홀름과 뻬쩨르 등, 북유럽 항구를 도셨다면 아름다운 도시는 전부 여행한 셈이네요. 산모롱이님 덕분에 옛 추억을 돌아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언제나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