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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예술가
❁ ‘예썰의 전당’이 주목한 첫 번째 주인공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 조각가, 요리사, 발명가, 천문학자 등 분야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프로 NN잡러 다 빈치에 대한 다채로운 ‘썰’들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미소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부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다빈치의 도전정신부터 미술, 음악, 사회 등 다양한 각도에서 르네상스를 바라보고 분야를 아우른 진정한 르네상스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도전정신에 대해 알아본다.
"나는 걱정 속에서도 웃을 줄 알고
고통 속에서도 힘을 찾고
반성을 통해 용기를 얻는, 그런 사람을 사랑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 KBS1 <예썰의 전당> [1회] 위대한 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다시보기
✺ KBS1 공영방송 50주년 대기획 다큐 인사이트
[인간 신세계로부터 - 1부 모나리자] 질병과 전쟁 그리고 기후 위기로 도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한때 화가였으나 이제는 폐허를 떠돌며 그림을 수집하는 노인 서준(안석환)이 있다. 인간이 언제부터 웃는 인간을 그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먼 옛날 또 다른 팬데믹을 이겨낸 인간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며 쟁취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발견한다. 이때 곧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인간들의 모습은 향후 새로운 르네상스를 만들어나갈 우리로 하여금 희망을 엿보게 한다.
❁ 예썰 하나. 유명해서 유명해진 ‘모나리자’? 신비로운 미소에 담긴 흥미로운 이야기!
프랑스에서 사라진 ‘모나리자’가 2년 뒤 이탈리아에서 나타났다. ‘모나리자’는 도난사건의 주인공으로 대서특필되며 더욱 유명해졌고, 이제는 그 신비로운 미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 미소가 사실은 가짜 미소? 미소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부수고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 다빈치의 도전정신부터 우리가 아는 ‘루브르 모나리자’가 진품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까지! 익숙한 ‘모나리자’를 새롭게 바라본다.
❁ 예썰 둘. 생생한 인간의 감정을 그리다! ‘최후의 만찬’ 탄생비화.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현대기술로 재현
르네상스 시대, 산에게서 인간으로.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1564-1638),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 1562-1563년
피테르 브뢰헬(Pieter Bruegel, 1564-1638),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 1562-1563년
"지갑을 잘 열었다...!"
-매력적인 인간 레오나르도 다빈치
레오나르도 다빈치, '광야에서 기도하는 성 제롬', 1480년
산드로 보타첼리, '비너스의 탄생', 1485년경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디테일한 묘사로 관람객을 압도하는 불후의 명작 ‘최후의 만찬’. 명작의 탄생 배경에는 캐스팅 디렉터처럼 오랫동안 모델을 찾아다녔던 다 빈치의 노력, 그리고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수많은 예술가와 작품이 탄생한 예술 부흥기 르네상스! 신에서 인간으로 시선이 바뀐 르네상스에는 무엇이 달라졌을까. 미술, 음악, 사회 등 다양한 각도에서 르네상스를 바라본다.
❁ 예썰 셋. 오늘은 천재 화가, 내일은 발명왕? 진정한 르네상스맨 다 빈치의 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비밀의 필기법은 쉽게 읽지 못하게 좌우 반전으로 쓴 거울 필기법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많은 도전이 기록 된 ‘다 빈치 노트’. 빌게이츠가 노트 72페이지를 3천만 달러, 한화로 약 376억 원(2022년 4월 기준)에 구매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학문적, 경제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이 노트는 내용부터 심상치 않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헬리콥터, 말의 두개골로 만든 악기, 대량 살상무기까지. 다 빈치의 상상은 어디까지인가. 요식업까지 도전했던 다 빈치의 레시피를 직접 맛보며, 분야를 아우른 진정한 르네상스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도전정신에 대해 알아본다.
✵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미술가, 과학자, 사상가이자 과학적 탐구정신을 바탕으로 회화 양식에 변혁을 일으킨 위대한 예술가이다.
미술, 조각, 건축, 토목, 수학, 과학, 음악 등 전 분야에 걸쳐 천재성을 발휘하며 ‘르네상스적 천재’라는 하나의 개념이 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미술이 그에 이르러 완성되었다고 평해지는 이 위대한 예술가는 과학적 탐구정신을 토대로 한 정밀한 관찰과 체계적인 연구로 회화 양식에 변혁을 일으켰음은 물론, 공학 분야의 기기들, 건축 설계,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원근법, 기체역학 등 각종 발명품과 기법, 이론을 창안했다.
다 빈치는 1452년 4월 15일 피렌체 근교의 빈치에서 공증인 세르 피에로와 농민 여성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집에서 풍족한 유년기를 보냈으며 다양한 학문을 공부했는데, 특히 수학, 음악,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사생아라는 출생의 한계로 아버지와 같은 전문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1462년경(혹은 1460년) 피렌체로 가서 아버지의 친구인 안드레아 베로키오에게 도제 수업을 받았다.
당시 베로키오의 공방에서는 보티첼리,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페루지노 등 쟁쟁한 인물들이 도제 수업을 받고 있었다. 다 빈치는 1472년경 화가 길드에 등록된 독립장인 자격을 얻었으나 1476년경까지 베로키오의 그림 속 인물이나 풍경의 사실적인 세부 묘사를 맡는 한편, 공방에서 사용하는 기계 장비 등을 설계했다. 〈수태고지〉, 〈지네브라 데 벤치의 초상〉, 〈카네이션을 든 성모〉 등이 이 시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1482년, 다 빈치는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초청으로 밀라노로 향했다. 그 바람에 산 도나토 아 스코페토 수도원에 그리던 제단화 〈동방박사의 경배〉는 미완으로 남았다.
다 빈치는 18년간 밀라노에 머물면서 화가, 조각가, 건축가, 군사 기술자, 도시 계획, 공식 행사 기획, 축제 무대 설계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했다. 그가 도착했던 당시 밀라노는 베네치아와 전쟁 중이었고, 그는 스포르차 궁의 군사 기술 담당이자 건축가로 임명되어 석궁, 방화화살, 대포 등 다양한 무기를 설계하는 한편, 요새 건축 및 도시 계획 설계를 하는 등 기술자로서 최대의 능력을 발휘했다. 또한 궁정 화가로서 루도비코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의 청동 기마상을 제작하는 데 힘을 기울였고, 1483년에는 산 프란체스코 그란데 성당 신자회의 의뢰로 〈암굴의 성모〉를 그렸다.
1485년경 밀라노에 전염병이 창궐하자 그는 스포르차 궁 사람들과 함께 몇 달간 파비아로 피신했는데, 이때 파치오 카르다노를 알게 되어 수학, 기하학, 생리학 등에 대한 지식을 넓혔다. 또한 시계 장치, 기중기, 활차(滑車) 같은 기계를 고안하는 등 토목공학에 있어서도 진일보한 성취를 이루었다.
1480년대 말부터 다 빈치는 인체 해부에 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는 베로키오의 도제 시절부터 신체와 두개골 구조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두뇌와 신체 구조를 파악하여 인간의 인식과 행동, 상상, 기억 등의 정신 활동, 궁극적으로 영혼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그의 기록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회화론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대상의 비례를 정밀하게 따지고, 꼼꼼히 관찰하여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묘사해야 한다는 ‘예술-과학’ 이론을 정립했으며, 인체 비례, 눈동자, 태아 등에 관련된 수많은 드로잉과 글을 남겼다.
또한 다 빈치는 일평생 비행 기구를 만드는 데 특별한 관심을 가졌는데, 소년 시절부터 갖가지 날개를 만들어 달고 비행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는 궁의 축제나 연극 도구로 날개 달린 기계 장치들을 설계했으며, 이를 군사용으로 활용할 도안을 그리기도 했다. 1494년에는 공기역학과 기계 장치에 대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정교한 글라이더 모형을 제작하여 시험 비행을 시도했다.
1495년경부터 다 빈치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 빈치의 최고작이자 서양 미술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구성, 빛, 원근법에 대한 그의 통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통적인 프레스코화 방식이 아닌 마른 회반죽 위에 템페라로 그리는 실험적인 방식을 택했고, 모든 인물의 배치와 동작, 크기는 고도의 계산 아래 이루어져 있다. 예수와 열두 제자가 식사를 하는 동안 제자들이 예수에게 누가 배신할 것인지 묻는 장면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다 빈치는 상징물을 사용하여 각 인물을 드러내는 대신 인물들의 반응을 통해 그가 누구인지 알게 했다.
1499년, 프랑스군의 밀라노 점령으로 루도비코 일 모로가 몰락하자 다 빈치는 밀라노를 떠나 여기저기를 떠돌다 피렌체로 돌아왔다. 1500년경부터 그는 산투시마 아눈치아타 성당의 주문으로 〈성 안나와 성모자〉에 착수했다. 새끼 양을 안고 있는 아기 예수와 몸을 굽혀 예수를 안으려는 성모 마리아, 그들 뒤에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를 묘사한 이 그림은 피라미드형 구도와 스푸마토 기법, 공기 원근법과 부드러운 빛의 사용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한편, 극도의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이 그림이 걸리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무리지어 이 그림을 보러 왔다. 이런 모습은 이틀 동안 이어졌으며, 모든 사람들이 경의를 표했다.”라고 기록했다.
1503년, 다 빈치는 피렌체 공화정부로부터 〈앙기아리 전투〉를 의뢰받았는데,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의 〈카시나의 전투〉와 한 쌍을 이루어 베키오 궁전을 장식하기로 되어 있었다. 여러 이유로 두 사람이 피렌체를 떠나면서 르네상스 최고 천재들의 대결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습작만이 전한다(다만 〈앙기아리 전투〉는 2012년 베키오 궁의 벽화 뒤에서 그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시기 다 빈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될 〈모나리자〉에 착수했다.
1506년, 다 빈치는 샤를 당부아즈의 초청으로 밀라노에 갔다. 이 시기에 〈암굴의 성모〉 두 번째 버전을 제작하고, 〈잔 자코모 트리불치오의 기마상〉 구상 소묘 등을 그렸으며, 해부학과 식물학, 공학, 물리학 등을 더욱 심도 있게 연구했다. 인체 각 부위에 대한 정교한 해부 연구에 착수한 다 빈치는 심장 혈류의 이동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유리관 끝에 인공심장 판막을 씌우고 실험했으며, 사체를 부검하여 인체 각 부위의 근육 계통 및 심장과 폐 해부도 등을 정밀하게 그림으로 남겼다. 그런 한편 미완성이었던 〈성 안나와 성모자〉를 완성하는 데 주력했다.
다 빈치는 1513년에 잠시 피렌체로 돌아왔지만 곧바로 교황 레오 10세의 동생 줄리아노 메디치의 후원을 받아 로마로 떠났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라는 걸출한 천재 예술가들이 활동하던 로마에서 다 빈치는 예술가보다는 과학자로 대우받았고, 이곳에서 과학과 기술 연구에 전념했다.
1516년, 줄리아노 메디치가 세상을 뜨자 다 빈치는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가 앙부아즈의 클루 성에 머물렀다. 이때 그의 짐 속에는 〈모나리자〉, 〈성 안나와 성모자〉, 〈세례 요한〉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프랑수아 1세는 다 빈치를 회화, 건축, 조각, 기계공학 등 전 분야에 있어 위대한 장인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라고 일컬으며 특히 아꼈다. 다 빈치는 이곳에서 무대용 기계 장치 제작, 운하 설계, 궁궐 정원 조경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또한 미완성이었던 〈세례 요한〉을 완성했다.
1519년, 다 빈치는 뇌졸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했고, 그해 5월 2일 클루 성에서 세상을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앙기아리 전투’, 종이에 검정 초크, 펜, 잉크, 45×64cm , 1503~1505년, 루브르 박물관
✵ 조용필의 ‘모나리자’
내 모든 것 다 주어도
그 마음을 잡을 수는 없는 걸까
미소가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돌아서야 하는 걸까
눈물이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추억만을 간직한 채
떠나기는 너무나 아쉬워
끊임없이 속삭이며 그대곁에
머물지만 이토록 아쉬워, 오-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수가 없나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수가 없나
그대는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다 돌아서야 하는 걸까
눈물이 없는 그대는 모나리자
추억만을 간직한 채
떠나기는 너무나 아쉬워
끊임없이 속삭이며
그대곁에 머물지만 이토록 아쉬워
오-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수가 없나
나의 모나리자 모나리자 그런 표정은 싫어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수가 없나
그대는 모나리자 모나리자 나를 슬프게 하네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KBS1 <예썰의 전당> [1회] 위대한 도전, 레오나르도 다빈치, Daum·Naver 지식백과/ 글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