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러니까 욕(辱)을 얻어 먹는다 !!
“원코리아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가 경험한 짤막한 이야기다.
개발의 물결이 한참이던 중국 훈춘(琿春)을 지방을 떠나
러시아 연해주 크라스키노(Kraskino 城址)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하룻밤 자기 위해 원정대가 묵을 제일 큰 호텔을 정하였는데
우리나라 동네 모텔 수준이었다.
공산품이 귀해서 인지 객실 세면장에는 얇은 면수건 두 장과 새끼손톱만 한
비누만 놓여 있었다.
자전거 원정대 대원들은 짐을 풀고 식당에 몰려들었다.
모두 입은 옷 그대로 패딩 점퍼 차림이었다.
몇몇 대원들은 패딩을 벗어서 의자 뒤에 걸었다.
메뉴판을 들춰보며 여종업원을 불러 주문하려고 했다.
한국에서 평소 하던 것처럼 한 것이다.
그런데 여관급정도되는 호텔의 여종업원이 음식주문에는 대답을 않고
이렇게 말했다.
“식탁에는 패딩 점퍼 차림으로 앉을 수 없습니다.
옷을 의자에 거는 것도 안됩니다.
백팩(backpack)도 의자에 걸수 없습니다.
입구에 있는 클로크룸(cloakroom)에 맡기거나
객실(客室)에 벗어놓고 와야 합니다”
달리 생각하면 한국과 다른 식탁 매너로 인한 “해프닝(happening)”이라고
넘어가도 된다.
하지만 우리는 객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오면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러시아의 이 작고 궁벽(窮僻)한 마을에도 유럽 문명의 품격(品格)이
살아있구나.
물질적으로 넘쳐나진 않지만 이들은 스스로 존엄을 지키고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여기서 우리의 밑천이 드러나는구나.
좀 먹고 살만하다고 천지를 분간 못하고 깨춤 치듯 사는 우리가
바깥세상에서 우리가 대접받을 만한지를 평가하는 기준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문제는 돈과 경제만으로는 결코 이런 가치를 구매(購買)할 수가 없는 데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말한
Poverty In The Midst Of Plenty
“풍요속의 빈곤”
이란 말처럼 최저생계비를 지원받으면서 여전히 어려운 사람들이 있지만
밥 못 먹어 굶어 죽는 시절은 지났다.
단군 이래 5천년중 최대의 풍요(豐饒)를 누린다는 말까지 한다.
그럼에도 우리 삶의 품격(品格)은 전혀 올라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진 것
같다.
국민 개개인의 행복관(幸福觀)도---
제일 낮은 국민 개개인에서 제일 높은 대통령까지
오직 돈의 가치(價値)만 있고 다른 가치(價値)들은 거의 사라졌다.
대통령을 지낸 사람도 “국민 너희들은 씨불이라 나는 나대로 산다”는식으로
오직 돈의 가치에 매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에 사람다움을 증명해줬던
수양(修養).청빈(請賓).절제(節制).인품(人品) 도량(度量).헌신(獻身).
존엄(尊嚴).고상(高尙)함 같은 말들은 사망(死亡)된지 오래다.
글이 길면 잔소리가 되지만 한지만 더--
겨울에 일본을 여행 갔다 온 사람의 글이다.
일본 아키타현의 가쿠노다테(角館)로 지난겨울 휴가를 갔다.
여러 가지 본 것이 있지만 눈(雪) 이야기다
건물 지붕마다 60㎝ 이상 눈이 쌓여 있었다.
거기다가 밤사이에 또 폭설이 내렸다
새벽녘 잠에 깨어 여관에서 빌려주는 장화를 신고서 산책을 나갔다.
아직 어둠은 덜 걷혔다.
그런데 부산한 움직임들이 있었다.
주민들이 집과 가게 앞의 도로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는 게 아닌가.
맨홀 뚜껑을 열어 그 둘레에 얼어붙은 눈까지도 털어냈다.
내게는 낯설었지만 일본을 자주 왕래하거나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흔한
일상적 광경이었을지 모른다.
한국에서는 관공서의 제설차나 해야 할 일이었다.
필자는 2충 아파트이기 때문에 눈이 오면 내 집 앞은 운동 삼아 꼭 쓴다.
청소부가 쓸 것인데--
이상한 눈으로 보는 이웃 사람도 있다.
자기 집 앞의 눈 치우는 법과 제도를 아무리 만든다 해도
우리에게 과연 먹혀들까.
필자는 일본외자도입법인 회사에서 입사에서 정년퇴직하였다.
그 당시에 필자가 서툴 지만 일본어를 했기 때문에 업무상으로 일본사람을
자주 만났다.
우리가 일본을 역사로 인해 욕할 수는 있지만
일본을 따라갈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우리는 법과 제도만 만들고 세금을 퍼붓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걸로
여긴다.
사회적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랬다.
그리고 꼭 거기서 끝났다.
그런 뒤 똑같은 사건은 반복된다.
법과 제도만 떠들지 그 속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몫에 대한 입은 없다.
공동체를 위해 국민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관리로서 시민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행동과 도덕윤리를 말한 사람도 없었다.
5.18도 세월호사건도 이태원사건도 전부 남의 탓이다.
오직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위해 요구하고 투쟁하는 것만 있을 뿐이다.
눈에 띄게 요 5,6년 사이에 우리는 집단과 진영(陣營) 논리에 너무 쉽게 편입되고,
상식과 사실보다는 이념과 선동 구호에 우르르 몰려가고 염색되었다.
국가의 장래에 대한 가치를 깊이 성찰하는 국민은 점차 줄어드는 것 같다.
사람이 앉을 자리에 자기 보따리를 앉히고도 아무 생각이 없는 국민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