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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준대표님의 카톡에서]
🍏🍏내미소는 나의 명함이다🍏🍏
미소는...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나의 미소는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서먹한 얼음을 깨트리고
폭풍우를 잠재우는 힘을 갖고 있다.
나는 이 미소를 끊임없이 활용한다.
나는 늘 제일 먼저 미소 짓는 사람이 되겠다.
내가 그런 선량한 태도를 보여주면
다른 사람도 그것을 따라하게 된다.
어떤 현자는 말했다.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노래부르는 것이 아니라
노래부를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내가 미소 짓기를 선택할 때
나는 내 감정의 주인이 된다.
낙담, 절망, 좌절, 공포는
내 미소 앞에서 다 사라져 버린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과거에 나는 어떤 우울한 상황을 만나면
크게 낙담하다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신선한 바람이
공기 중의 연기를 말끔히 걷어가듯이
감사하는 마음은 절망의 구름을 순식간에 없애버린다.
나는 남과 비교하지 않겠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감사하는 마음에는
절망의 씨앗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하느님은 나에게 많은 선물을 주셨다.
나는 이 선물을 늘 고마운 마음으로 기억하겠다.
과거에 나는 아주 여러 번 거지의 기도를 올렸다.
늘 더 내려달라고 요구했을 뿐
감사하는 마음을 바치지 못했다.
나는 탐욕스럽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존경할 줄 모르는
그런 아이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
나는 내 시력, 내 청력, 내 호흡
이 모들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만약 내 인생에서
이것 이상의 축복이 찾아든다면
나는 그 풍성함의 기적에 깊은 감사를 드릴 것이다.
나는 매일 매일을 웃음으로 맞이할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
미소로 맞이할 것이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의 소유자이다.
오늘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을 선택하겠다.
-앤디 앤드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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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사랑해요
이 글을 읽고 많이 울었습니다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방송되어
우리나라를 온통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편지를 낭독하는 진행자는 물론
그외 방송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로 인하여 잠시동안
방송중단 사태까지 있었던글 입니다
나를 철들게 한
나의 할머니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마저 아버지가 남기신 빚을 갚기 위해
서울로 떠나신 후 다섯 살이던 저와
세 살이던 남동생은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손에 맡겨 졌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기억나는 어린 시절이 있겠지요.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할머니 손에 맡겨지고 1년이 지난 여섯 살의 봄입니다.
불행히도 제가 기억하고 있는
가장 어린시절은
지금까지도 제 가슴속에 아픈 추억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날
도시생활을 하고 있던 친척들이
저와 제 동생 문제로 할머니 댁을 찾았습니다.
너무 어렸기때문에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할머니와 친척들간에 언성을 높이는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말씀만 반복하셨고
친척들은 사는게 힘들어서 도와줄 수 없다는 말만 거듭했습니다.
큰아버지는 저와
제 동생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새 신을 신겨주며
좋은 곳에 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울먹이시던 할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아버지는 저희 남매 손을 이끌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친척들 누구하나 따라나오는 사람이 없었지만 할머니는 다르셨습니다.
버선발로 뛰쳐나와 저희 남매를 끌어안고 우셨습니다.
안 된다.
절대 못 보낸다.
고아원에도 아들없는 집에도 나는 못 보낸다
죽은 내 아들 불쌍해서 이것들
못 보낸다.
니들 헌티 10원 한푼 도와달라구
안 헐라니까
보내지 마라.
그냥 내가 키우게 놔둬라.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목 놓아 우셨
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제 남동생도 없었겠지요.
할머니의 눈물이
지금의 저희 남매를 있게 해준 것입니다.
고아원에 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아들 없는 집에 보내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 남매는 할머니께 평생 갚아도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인데
그게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철이 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할머니는 친척들께 약속하신대로
10원 한 푼 받지 않고 저희 남매를 기르셨습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시며 받아오신 품삯으로 생활을 꾸려가셨습니다.
할머니가 저희 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을 하셔야 했는지,
스스로 얼마나 억척스러워 지셔야 했는지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습니다.
그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새 옷 한 벌없이 남의 옷만 얻어
입는 것이
불만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용품을 넉넉하게
쓰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고
마음 놓고 과자
한번 사 먹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고
소풍에 돈 한푼 가져갈 수 없는 것이 불만이 었고
운동회 때 할머니랑 함께 달리는 것이 불만이었고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는 이유만으로 동네에서나 학교에서나 불쌍한 아이 취급받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배부르게 먹이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지
새 옷 한벌 사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얼마나 아렸을지,
남의 집으로 옷을 얻으러 다니며
할머니가 얼마나 고개를 숙이셨을지
넉넉하게 학용품을 사 주지 못하는
할머니 마음이 어땠을지
소풍간다고 김밥 한번 싸주지 못하고
용돈 한 푼 주지 못하는그 마음이
어땠을지
다른 아이들은 운동회 때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나이 드신 당신 몸으로 해 주시느라 얼마나 진땀을 빼셨을지
어디서나 애비 에미 없다고 손가락
질 받는 손자들을 보며 얼마나 가슴
을 쓸어 내리셨을지
그때는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그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더 불쌍하게 보여서
뭐 하나 더 얻으려고 애쓰는 할머니의
모습이 싫고 창피할 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저희 남매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사셨습니다.
당신의 체면이나 얼굴을 모두 버리시고 오로지 저희 남매를 위해 사셨습니다.
앉았다 하면 신세 한탄이 먼저 나오고
불쌍한 손자들 얘기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훔치시기 바빴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과자 한 봉지라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이발소에서 공짜로 머리를 자를 수도 있었고 새 연필
한 자루라도 얻어
쓸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철없는 남매를 기르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누구보다 억척스럽고 강하셨지만
또 누구보다 여리고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남의 집으로 일을 다니셨던 할머니가
새참으로 나온 빵과 우유를 드시지 않고
집으로 가져오셔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신 거였습니다.
남들 다 새참 먹을 때 같이 드시지
왜 이걸 냉장고에 넣어 놓으셨냐고,
유통기한 다 지나서 먹지도 못하는데
왜 그러셨냐고
화를 내면
니덜이 목구멍에 걸려서 넘어가야 말이지 니덜 오먼
줄라고 냉장고에다
느 놨는디
날짜 지나서 못 먹으먼 워쩐다냐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한번도 할머니를 가엾다고 안쓰럽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제가 냉장고에 가득하던
빵과 우유를 내다 버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데
할머니가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제가 철이 들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자취하는 제게 김치와 쌀을 갖다 주시겠다고 올라오신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터미널에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참을 두리번거린 후에 찾아낸
할머니는 반갑게 제 손을 잡으시며
아침 7시 차 타구 나왔더만 10시두
안돼 도착허더라.
한 3시간은 이러구 서 있은 모양이여.
기다리다 배고파서 나 먼저 짜장면 한그릇 먹었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또다시 가슴
한 구석이 아렸고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할머니께
화를 냈습니다.
그러게 내가 아침 드시고 천천히 출발하시라고
안 했어 할머니
때문에 속상해 죽겄네.
할머니는 화가 난 손녀딸의 눈치를 살피시며 들고 오신 가방 지퍼를 여셨습니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큰 가방 속에는
김치통 두 개가 들어 있었고 가방안은 김치통에서 흘러나온
빨간 김치국물로 한가득이었습니다.
내가 할머니 때문에 미치겠네.
김치만 비닐봉지에 꼭 싸서 가져
오셔야지
가방에다 김치통을 통째로 넣어오면
국물이 안 넘친데?
할머니는 금세 얼굴이 붉어
지셨습니다.
이를 워쩌까.
국물이 다 새서
못 들고 가겄다.
내가 언능 수퍼가서 봉다리 얻어 올팅께 지달려라?
할머니는 터미널
안 슈퍼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얻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김치통을 봉지 안에 넣어 주시며 말씀
하셨습니다.
가시네덜이 지덜언 짐치 안 먹구 사나
노인네가 버스안에서 김치 냄새 좀 풍겼기로서니
그렇기 코를 막구 무안을 줘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차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받으며 안절부절
하셨을 할머니 모습이 떠올
랐습니다.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할머니는 김치 전해줬으니 그만
가 봐야겠다시며
들고 오신 가방 안쪽 작은 지퍼를 열고
꼬깃 꼬깃 접은
1만 원 짜리 두 장을
제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1만원짜리는
빨갛게 물들어서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던 저는
얼른 매표소로 뛰어가 할머니 차표를 끊어다
드리고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
습니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안에서
얼마나 소리내어 울었는지 모릅니다.
할머니가 젖은 가방에서 꺼내 주셨던 빨간 김치
국물이 뚝뚝 떨어지던
1만원짜리 두 장을 손에 꼭 쥐고
사람들이 가득한 버스 안에서
그렇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무역회사에 취직한 저는 돈을 벌게 되었고 이제 할머니를 호강시켜 드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할머니가 아프시다고 하면
약재시장에 가서 좋다는 약재를
사다 보내 드리고
할머니 생신이 다가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식사라도 하시라고 용돈도 보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면 할머니와
장으로 구경도 나가고 명절에는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도 사드
렸습니다.
처음 할머니를 모시고 레스토랑에
가서 돈가스를
먹던 날
할머니는 돈가스
한 접시에 음료로 나온 사이다 한잔까지 쭉 비우신 뒤 말씀하셨습니다.
양두 얼마 안 되는 것이 참말로 맛나다?
이런 것이먼
몇 접시라두 먹겄다.
저는 할머니의
그 말에 또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까짓 돈가스가 얼마나 한다고
이제서야 사드리게 됐을까.
가슴이 아파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제가 먹던 접시를 할머니 앞에 내어 드렸습니다.
그날 하얗게 서리 내린 할머니 머리를
내려다보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앞으로는 맛있는 것은 무엇이든
사 드리리라.
남들 먹는 거 맛있다고 하는 거
한번씩은 다 맛보여 드리리라.
좋은 옷도 입혀 드리고
멋진 구경도 맘껏 시켜 드리리라.
언젠가 할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손녀딸 좋은 사람 만나 시집가고
이쁜 새끼 낳아 사는 거 보고 죽으먼
내가 소원이 없을 것인디.
저는 할머니의 소원대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고
다음달이면 돌을 맞는 예쁜 딸아이도 낳았습니다.
할머니는 올해로 팔순이 되셨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우리 남매를 길러
내셨던 할머니는
이제 정말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허리도 구부러지셨고
검은 머리가 한가닥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너무 늙으셔서
예전처럼 맛있는 문주를 부쳐 주시지도 못하고,
개떡을 쪄 주지도 못하고 누룽지에
설탕을 뿌려 주시지도 못합니다.
뜨거운 밥에 올려 먹던 할머니의 얼짠지가 그렇게 맛있었는데,
이제는 그때 그 맛을 내시지도 못합니다.
같이 봄나물을 뜯으러 다닐 수도
도토리를 따러 다닐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할머니를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 하면
낡고 닳아 헤진 고무신 한 짝이 떠오릅니다.
헌 고무신처럼
평생을 마음껏 가지지 못하고
지지리 고생만 하시며 살아오신 할머니
이제 할머니가
제 곁에 함께하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언제일지 모를 그날까지
제가 할머니의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요?
꽃으로 태어났으나
들풀로 사셔야 했던 그분의 인생,
이제부터라도 화사한 꽃으로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걸
가르쳐 주신 할머니
이제 저는 할머니의 사랑과 고생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만큼 철이 들었습니다.
눈부시게 화창한 봄날 우리 할머니 손을 잡고 꽃길을
걸어 보고 싶습니다
오래 전 눈물나게 아름다웠던 유년의
풍경들을 떠올리며
웃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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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란 후라이
우리 엄마의 눈은 한쪽 뿐이다.
내가 6살 시절에는 그저 아무렇지 않게 어머니를 사랑했다.
나는 사격 올림픽 3관왕인 권진호이다.
내가 이런 큰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뺑소니 교통사고이었지만
결국 범인은 잡지 못하였다.
그후 어머니는 나를 낳고
열심히 일을 하셨다.
내가 집에서 티비를 볼 때 어머니는 나물을 팔러 시장으로 나가시곤 하셨다.
내가 중학생이 되던 날
어머니가 내 입학식에 오셨지만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한쪽 눈 없는 애꾸장애인이
내 어머니라는 것이 너무 창피해
얼굴을 옷 속에 파묻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나를 알아본 듯
나에게 오셔서"진호야!"하며
나의 이름을 크게 부르셨다.
입학하는 애들의 눈들이 어머니에게 시선이 몰렸기에 나는 창피해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나는 늦게까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에 들어갔다.
어머니는 그때 도
나물을 다듬고 계셨다.
"그래! 우리 아들 왔어?
벌써 중학생이 됬네~
우리 멋쟁이 아들~!"
나는 순간 쌍소리가 나왔다.
"썅~ 중학생? 놀고있네,
나 엄마 때문에 왕따되게 생겼어!
왜 학교오고 난리야,쪽팔리게~
다음 부터는 오지마! 알았어?"
마음에 없던 소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왜 그랬을까?
진짜 왜 그랬을까?.
내가 정말 미워졌다.
나는 그냥 다 잊자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그러나 어머니께 불쑥 한 말이
너무나 미안해 잠이 안왔다.
갑자기 방문이 열렸다.
나는 바로 자는 척을 했다.
엄마가 나에게 가까이 오더니 나의 볼을 만지면서 울고 계셨다.
싫지 않았고 어머니의 체온이 따뚯함을 느꼈다.
어머니의 온기에 의해 나의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다음 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이 제일 먼저
엄마에 관해 물었다.
"야! 어제 그 아줌마 니 엄마냐?
니 엄마 장애인이야?"
처음엔 선빵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놈은 잘 나가는 초등 1짱이여서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나는 또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하였다.
"아, 그분? 내 엄마 친구셔~
우리 엄마랑 엄청 친해서
우리 집에서 사는데
아주 쪽팔려서 말이지
내가 지 아들인지 아나봐~
아~ 진짜~"
친구는 그 말을 듣더니 말했다.
"아 그래? 씁! 난 또 뭐라고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다행히 중 1 시절은 공부도 안하고
양아치처럼 지냈지만
중 2부터 고등학교 생각하며
공부를 열심히 하였고
그렇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사격반에 들어갔다.
내 시력은 2.0, 2.0.
사실 그보다 좀 더 높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시력엔 자부심이 있었다.
너무 시력이 좋아서였을까?
내 사격솜씨는 '일취월장'이였다.
결국 나는 엄청난 사격실력에 올림픽 대표 리스트까지 끼게 되었다.
그런후 이상하게 한쪽 눈이 잘 보이지 않더니
결국 한쪽 눈이 실명되었다.
나는 절망했다.
세상 모든 걸 잃은 것 같았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했다.
그때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어떤 사람이 '안구 기증'을
해준다는 게 아닌가?
그렇게 나는 수술을 받았다.
정말 행복하였다.
다시 나의 한 쪽 눈이 보인다는 것에 만족하였다.
나는 눈시술 후 오랜만에 어머니를 찾아뵈러 집으로 갔다.
방안에 도시락과 편지가 써있었다.
편지를 펴보았다.
아~~"안돼!
엄마 왜 그랬어~"
편지의 내용을 본 나는
거의 미칠 것 같았다.
---------------------------
* 사랑하는 아들아!
이 편지를 읽게 되면 초등학교 때 싸주던 도시락을 먹고 있겠지?
오늘은 계란도 입혔다.
정말 맛있을거야! 내 아들~
엄마의 한 쪽 눈 보기에 괜찮니?
이상하지 않아? 우리 아들...
엄마는 너 합숙소에 들어가고 나서
머리가 많이 아파 병원에서 진찰했더니
내가 뇌종양이라고 하더구나~.
엄마는 절망했었다.
다시는 우리 아들 못 보고
죽을 거 같아서~
그래서 남은 한쪽 눈마저
너한테 기부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물을 팔아 모아둔 돈 네 통장으로 모두 보냈는데 들어 갔는지
내심 걱정되는구나.
이제 엄마가 여지껏 숨겨둔 사실을 말해도 되겠지?
네가 태어났을 때
한 쪽 눈이 없었단다.
왜였는지 몰라도 한쪽 눈이 없더구나!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한 쪽 눈을 너에게 주었어~.
너는 엄마처럼 살면 안되니까~.
더 잘 살아야 하니까 말이야!
그래서 엄마는 주저하지 않고
너에게 눈을 줬단다.
우리 아들 중학교 입학 하던 날~.
우리 아들이 얼마나 커 보이던지~.
큰 키로 멋지게 서 있어서 엄마는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싶었지만
네가 그만 도망갔었지.
엄마는 서운했지만
정말 미안했단다.
이런 외꾸눈 엄마가 돼서 말이야.
우리 아들이 집에 들어오면 돈까스 해 줄라고 돈까스 사 왔었는데 네가 오지 않아
해주지도 못하고선 너무 슬퍼서
그냥 울기만 했었다~.
우리 아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그리고 고등학교 때
집 나간다고 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니?
결국 나갔지만 정말 네가 보고 싶었어.
계속 우리 아들 사진보면서 울고 그랬어~.
그러던 어느날 머리가 아프더구나.
그래서 뇌종양 말기란 걸 알고나서
너에게 마지막 남은 눈을 준거란다.
아들아 울지 말아라.
우리는 언제나
같은 곳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할테니~
우리 아들하고 같이 있으려니까 따뜻하구나!
도시락 맛있게 먹고 힘차게 사는 거다!
우리 아들!
- 아들을 너무 사랑하는 엄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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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왜.... 도대체 왜!
이런 것도 모르고 엄마를 창피해 했든
못난 자식한테!
엄마 정말 미안해~.
나 엄마가 못다 해 준 달걀 후라이
많이 먹고 열심히 훈련할게~.
그리고 엄마 눈을 통해 꼭 금메달 딸거야,
엄마 꼭 지켜봐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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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아들 목에 걸려있는
이 반짝이는 금메달 보여요?
드디어 엄마와 내 꿈이 실현됐어요.
하늘 나라에서나마 칭찬해 주세요.
그리고 다음 생에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계란후라이 꼭 해주세요. 알았죠?
먼 하늘에 두 눈이 먼 어머니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 올림픽 사격 3관왕
권진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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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은
비행기의 일등석이다.
그러한 퍼스트클래스 승객들만의 행동과 습관을
지켜본 한 스튜디어스가 책을 펴냈다.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일등석 사람들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
항상 메모하는 습관이 있고 모두 자신만의 필기구를 지니고 다녔다.
메모는 최강의 성공 도구이다.
기록하는 행위는 상대에게 신뢰를 주고
아이디어를 동결 건조 시켜 보존해 준다.
2. 일등석 사람들은 전기와 역사책을 읽는다.
유독 1등석에서는 신문을 가져달라는 요청이 드물다.
그들은 지독한 활자의 중독자들이나 베스트 셀러가 아닌 잘 알려지지 않은 투박하고 묵직한 책을 읽는다.
3. 일등석 사람들은 자세가 다르다.
퍼스트클래스의 승객은 일단 자세가 바르다.
그리고 시선의 각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자세가 좋은 사람은 범접지 못할 당당한 분위기를 풍긴다.
행동거지가 당당한 사람은 정면을 바라 보기 때문에 시선의 각도도 자연히 높아진다.
4. 일등석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주는 '톱니바퀴' 기술의 전문가다.
퍼스트클래스의 승객은 정말 흥미진진 하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래서 어떻게 됐지요."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하면서 상대방의 말을 이끌어 낸다.
5. 일등석 사람들은 승무원에게 고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바쁜 중에 미안 하지만' 과 같이
항상 완충어구를 덧붙이며 말을 건다.
6. 일등석 사람들은 주변 환경을 내편으로 만든다.
퍼스트클래스에 동승한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승객에게 인사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인 인맥 형성 방법이다.
7. 그들은 아내를 극진히 모신다.
그 이유는 높은 지위에 올라도 개의치 않고 솔직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존재가 아내이기 때문이다.
퍼스트클래스는 비행기 좌석의 3%이고 부유층 구성비도 3%이다.
성공한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면 누구나
언젠가는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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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기 전에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라!
이제는 늦기 전에 인생을 되돌아 봐라.
되게 오래 살 것처럼 행동하면 어리석다.
걷지도 못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인생을 후회하지 말고,
몸이 허락하는 한
가보고 싶은 곳에. 여행하라.
가난하건 부자건,
권력이 있건 없건 모든 사람은 생로병사 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옛 동창, 옛 동료, 옛 친구들 만나라.
그 회동의 관심은
단지 모여서 먹는데 있는 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다는 데 있다.
돈? 은행에 있는 돈은 내 돈이 아닐 수 있다.
돈은 쓸 때에 비로소 돈이다.
늙어가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잘 대접하는 것이다.
사고 싶은 것 있으면 꼭 사고, 즐길거리 있으면 즐겨라.
혹시 병들더라도
겁먹거나 걱정하지 마라.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오는 것 아닌가.
몸은 의사에게 맡기고 목숨은 하늘에 맡기고
마음은 스스로 책임 져야 한다.
나이 들어 쓰는 돈은
절대로 낭비가 아니다.
아껴야 할 것은?
노년의 시간이고,
노년의 생각이고,
노년의 건강이다.
자신을 최고로 여기고, 자신을 대접하며 살아라.
이제 살 날이 머지 않았다.
옮긴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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