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창작강의 - (441) 시 쓰기 상상 테마 4 - ④ 골목, 터널, 구멍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
시 쓰기 상상 테마 4
네이버블로그/ 상상테마33 - 골목, 터널, 구멍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④ 골목, 터널, 구멍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 골목, 터널, 구멍 이미지를 상상에 적용할 때
골목과 터널과 구멍은 전부 시작, 과정, 끝이라는 경로를 품고 있다.
골목은 집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귀소본능, 이탈 심리 등의 정서를 제공하고,
터널은 통과해야 하는 강박관념을 제공한다.
또한 구멍은 안이 궁금하게 만드는 물음표를 제공한다.
안쪽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과정은 더욱 흥미롭다.
골목의 경우를 먼저 살펴보자.
골목엔 오래된 풍경들이 살고 있다.
낡은 세탁소나 작은 슈퍼를 지나면 설치한 지 오래된 가로등이 좁은 골목을 비춘다.
점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풍경의 호흡은 가빠진다.
개 짖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끼어들고 삭아 내리는 담벼락 너머로 나뭇가지나 풀들이 말을 걸어온다.
가파른 지점을 통과할 땐 독특한 냄새까지 따라붙는다.
가난의 냄새라고나 할까.
그렇게 골목 속엔 잡다한 현상과 사물들이 과정을 구성하고 있다.
터널의 과정은 단조로운 편이다.
그런데도 파격적이거나 파국적인 이미지를 품고 있다.
사고가 나면 어마어마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불안하다.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
폭설이라도 내린 날이면 잔뜩 긴장하면서 통과해야 한다.
이렇게 터널의 과정 속엔 단조로움을 뛰어넘는 예기치 못한 ‘사건’이 내재되어 있다.
구멍 하고 발음하면 각자만의 구멍이 떠오르고 안쪽도 상상된다.
직간접적인 경험 맥락에 따라 수많은 구멍 속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니 구멍 속 과정은 각자만의 몫으로 남는다.
끝은 열려 있거나 닫혀 있거나 둘 중의 하나다.
열려 있으면 출구가 되지만 닫혀 있으면 막막함이 된다.
열려있는 경우보다 닫혀있는 경우가 더욱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무언가와 마주칠 것만 같고 이야기 하나가 불쑥 끼어들 것만 같다.
시를 쓸 땐 이런 속성을 충분히 인식한 후 골목과 터널과 구멍에 대한 상상을 낯설게 펼쳐야 한다.
예상치 못한 존재가 살거나 숨어있게 만드는 방법이 가장 쉽다.
예를 들어 ‘이 골목엔 고독들이 잔뜩 모여 산다’
‘전설에서 빠져나온 이야기가 터널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구멍은 소화력이 좋다. 구멍은 구멍을 먹고 길어진다’
‘그리움이라는 구멍 속으로 사라진 나의 1년’과 같은 상상을 펼쳐야 한다.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존재 안에 살고 있는 골목과 터널과 구멍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기억 속 골목은 점점 폭이 좁아졌지만 아버지 기억 속 구멍은 점점 넓어졌다’
‘누가 슬픔 속에 터널을 뚫어놓았나? 눈물이 줄줄 세고 있다’
‘구멍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결혼하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와 같은 문장으로 상상을 펼치면 된다.
필자의 시를 바탕으로 그것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귀가
골이 심하게 패인 집과 집 사이를 걷는다
우거진 적막을 사람들은 골목이라 부른다
지금은 골목의 내면을 연출하기 좋은 때 적당한 지점에서 술 취한 당신이 나타난다
뒤축이 한쪽으로만 닳아진 구두 소리가 들린다
집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삐걱거리는 철문의 녹슨 질문과
형광등 뒷목에 얹힌 먼지의 대답과
우울에 대한 침대의 소견을 듣는 일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만든 골목과 계약 중이니
귀가가 늦은 당신을 위해 어둠은 폐활량을 키운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후다닥 뛰쳐나갈 고독이란 짐승이 빈방을 사육하고 있다
당신은 방의 우울한 목젖을 보기 위해 귀가한다
삭아 내린 담벼락 위 깨진 유리 사이에서 푸른곰팡이가 꽃을 밀어 올리고 있다
달을 향해 날린 포자는 어느 별을 향해 가고 있는 걸까
당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여전히 집이라는 온기가 발견된다
―『서민생존헌장』, 천년의시작, 2015.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귀가」는 낡은 골목 이미지를 반영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심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바로 공간과 배경에 해당하는 골목과 집이다.
골목엔 ‘낡음’을 품은 것들의 분위기와 현상들이 있다.
그런 골목의 제 요소들을 활용해 귀가하는 ‘당신’의 심리상태를 암시하려고 했다.
혼자 사는 ‘당신’이 누추한 집에 가까워진다는 것은 집과 방이 가진 기다림과 고독을 만나는 일이다.
‘당신’은 “삐걱거리는 철문의 녹슨 질문과 형광등 뒷목에 얹힌 먼지의 대답과
우울에 대한 침대의 소견을” 매일 듣는다.
그래서 “방의 우울한 목젖을” 보는 일은 슬프다.
골목을 그만 벗어나고픈 마음이 자리한다.
그러나 “집이라는 온기”가 있어 ‘당신’은 무너지지 않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온다.
이 시의 장점은 골목이라는 공간과 거기에 서린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읽어낸 후
혼자 사는 ‘당신’의 심리 상태를 적절하게 반영한 점이다.
흔한 골목과 흔한 귀가 이미지임에도 불구하고 서정성과 감각성이 잘 묻어나서 많이 읽힌 작품 중 하나다.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이 시의 객관적 상관물은 골목과 집이다.
적막이 우거진 늦은 밤의 골목은 “내면을 연출하기 좋은 때”라는 분위기를 제공한다.
‘술 취한 당신’이 가진 ‘내면’이란 다름 아닌 고독한 자의 본성이다.
고독한 자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어둠은 폐활량”을 키우며 ‘당신’의 심리 상태를 북돋운다.
집은 고독의 실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스위치를 올리는 순간 후다닥 뛰쳐나갈 고독이란 짐승이 빈방을 사육하”면서 ‘당신’을 기다린다.
그 고독의 원인은 당연히 ‘당신’의 결핍이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 만든 고독을 만나기 위해 혼자 끝없이 귀가하는 셈이다.
<3단계>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골목+집+고독’이 어우러지게 하려고 필자는 눈을 감고 상상적 체험을 했다.
누추한 삶을 사는 자의 고독을 더욱 부각하기 위해 골목을
“삭아 내린 담벼락”과 ‘깨진 유리’가 있는 낡은 골목으로 설정했고,
고독한 삶이 오래 지속되고 있음을 암시하기 위해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 만든 골목과 계약 중이니”라는 구절을 첨가했다.
이런 상상적 체험과 설정으로 인해 ‘오래된 골목+낡은 집+고독한 자의 방’이라는
구조와 분위기가 탄생하게 됐다.
※ 또 다른 예문 (예문 내용의 기재는 생략함 – 옮긴이)
· 정용화의 ‘터널이라는 계절’ (《시작》 2011년 봄호)
· 김명은의 ‘터널’ (《시와 표현》 2017년 11월호)
· 안영미의 ‘터널링’ (《열린시학》 2019년 가을호)
<직접 써 보세요>
* 아래에서 제시한 예시 구절이나 문장처럼 골목, 터널, 구멍과 관련된 구절과 문장을 만든 다음,
그 문장을 바탕으로 한 편의 시를 창작하시오.
반드시 시 쓰기 3단계를 채워 넣은 다음 쓰시오.
- 예시 구절이나 문장:
‘이 골목엔 고독들이 잔뜩 모여 산다’ ‘전설에서 빠져나온 이야기가 터널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구멍은 소화력이 좋다. 구멍은 구멍을 먹고 길어진다’
‘그리움이라는 구멍 속으로 사라진 나의 1년’
‘어머니의 기억 속 골목은 점점 폭이 좁아졌지만 아버지기억 속 구멍은 점점 넓어졌다’
‘누가 슬픔 속에 터널을 뚫어놓았나? 눈물이 줄줄 새고 있다’
‘구멍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이 결혼하면 어떤 아이가 태어날까’ 등.
| 시 쓰기 3단계 적용 |
1단계 스스로 점검하기 (메시지 분명히 하기 + 내 시만의 장점 찾기) |
|
2단계 객관적 상관물(현상) 찾기 + 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
|
3단계 확장하기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
|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하린, 더푸른출판사, 2021)’에서 옮겨 적음. (2023. 4.22. 화룡이) >
[출처] 시창작강의 - (441) 시 쓰기 상상 테마 4 - ④ 골목, 터널, 구멍 이미지로 상상하며 시 쓰기/ 중앙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하린|작성자 화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