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출신 소설가 톨스토이 작품 <안나 카레니나>에 이런 문장이 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처음엔 이 문장이 무얼 말하는지가 금방 이해되지 않았다.
이 소설은 남편이 바람을 피워 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겉으로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큼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집이다.
방이 수십 개나 되는 대저택에서 하인도 여러 명을 부리며 사는 상류층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내는 바람난 남편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집을 나간 남편은 며칠씩 안 들어온다.
하인들은 농땡이를 피우거나 딴짓을 하고, 돌봄을 받아야 할 아이들은 집안에 엉망으로 방치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저 괄호 속 문장을 내 방식 대로 이렇게 해석했다.
모든 가정이 겉으로는 별일 없이 사는 것처럼 비슷비슷하게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 보면 저마다의 각가지 사연이 숨겨져 있다.
고로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앞뒤처럼 한몸이며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행복과 불행은 한끗 차이다.
한편 이런 생각도 한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아니 지금까지 행복했던 적이 있었던가.
어릴 때 겪은 지독한 가난, 아버지 없이 자라야 했던 유년의 추억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이 교복을 입고 학교를 다닐 때 나는 기름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공장을 다녔다.
행복이나 불행이란 단어가 그때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직 살아남기 위해 허겁지겁 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기에 앞서 늘 희망이란 단어를 앞세웠다.
어떤 불행도 희망 앞에서는 꼼짝을 못했다. 내 삶이 비교적 행복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다.
쫄딱 망해서 살 길을 찾아 영국으로 떠났던 2002년 12월에도, 지금 내 딸에 관해 쓰고 있는 2026년 4월 12일에도 마찬가지다.
무사히 도착한 영국 런던은 처음 간 도시라서 낯설었지만 나는 새 직장에 금방 적응을 했다.
아내와 딸을 가능한 빨리 데려오기 위해 취업비자를 서둘렀으나 심사가 자꾸 늦춰지는 바람에 9개월이 다 되어서야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다행히 딸 아이는 오자마자 바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영국은 새학기가 9월에 시작된다.
중학교 영어에 머물러 있던 나에 비해 아내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기에 적응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딸도 활달한 편이라서 학교생활에 별 문제가 없었다.
아내는 처음 한국과 아예 단절된 생활을 했다. 런던에서도 일체 한국 교민들과 접촉을 하지 않았다.
영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서라고는 했지만 워낙 한국에 질려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말이다.
아내는 딸에게 집안에서도 한국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그 문제로 아내와 가끔 의견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아내의 뜻은 완강했다.
최종 합의하기를 집에서 나와는 한국어로 말을 해도 되는 쪽으로 결정이 났다.
딸 아이는 밥을 먹을 때도 지 엄마한테는 오직 영어로만 대화를 했다. 그래서일까. 아내가 없을 때는 신이 나서 한국말로 내게 수다를 늘어놓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다가도 지 엄마가 들어오면 한국말을 뚝 그쳤다. 나와는 한국말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아내는 아이한테 엄격한 편이었다. 그래서 딸 아이는 엄마보다는 나한테 어리광을 부렸다.
아내는 내가 무조건 오냐오냐 하니까 아이 버릇이 나빠진다고 했지만 나는 딸에게 큰소리 한 번 내는 일이 없었다.
아내 또한 딸을 끔찍이 사랑했음을 나는 안다.
언젠가는 마당에서 노는 딸에게 말을 안 듣는다며 아내가 큰소리로 야단을 쳤던가 보다. 퇴근해서 집에 오는데 이웃집 여자가 말했다.
당신 아내가 아이를 학대한다. 다음에 또 그러면 경찰에 신고를 하겠단다.
내 말을 전해들은 아내는 훈육 차원임을 이웃집에 설명하려 했지만 나는 말렸다. 영국은 우리와 문화가 많이 다르니 앞으로 조심하자고 했다.
영국의 주택 구조는 대부분 담이 없다. 옆집과도 낮은 벽돌 화단이나 나무 울타리로 경계를 삼을 뿐이다. 이후 아내가 딸 아이에게 큰소리 내는 일은 사라졌다.
영국에 아파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있더라도 한국과는 달리 대부분의 아파트가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공공주택이다.
살고 있는 집으로 차별을 받지는 않지만 영국에서는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소득 수준이 낮겠구나라고 짐작하는 정도다.
어릴 때 와서 그랬는지 딸 아이의 영어는 빠르게 늘었다. 공부도 상위권에 있을 정도로 곧잘 했다.
우리 가족의 영국 생활도 비교적 순탄했다. 중간에 내 취업비자 연장이 거부되는 바람에 법정까지 가야만 했던 것을 빼면 말이다.
나는 이민국을 상대로 항소를 했고 6개월의 긴 법정 싸움 끝에 승소를 해서 직장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영국 생활 5년 만에 무사히 영주권을 받았고 이후 나는 영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바로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시민이 되었다.
한국은 이중 국적을 허용하지 않기에 영국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국적을 포기해야만 한다.
이후 아내한테도 딸한테도 우리 가족의 영국생활은 특별한 일 없이 아주 순조로왔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어느 날 몸에 이상을 느낀 아내가 병원에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지만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지금도 내가 가장 듣기 불편한 말이 있는데 바로 전조증상을 몰랐느냐는 물음이다. 아내가 스스로 죽기 위해 이상 증세를 무시하고 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내가 딸傳 도입부에서 언급했던 뇌졸중으로 투병중인 58년 개띠 선배도 똑같은 말을 했다. 그도 전조증상이 있었을 텐데라는 물음이 가장 싫다고 했다.
그 선배도 전조증상은 없었고 심지어 6개월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사람이다. 누구보다도 가장 살고 싶은 사람은 환자 본인이다.
어쨌든 전조증상도 없이 아내의 병은 한 번의 수술과 수차례의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나빠졌다. 결국 더 이상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받는다.
나는 지금도 아내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했던 기간 동안 의사의 처방과 치료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 노트를 가지고 있다.
아픈 아내를 보기 위해 장인 장모가 두 번째 다녀 간 며칠 후 처형한테서 연락이 오기를 아내와 이혼을 요구했다
용하다는 점쟁이 말로는 내가 마누라 잡아 먹을 팔자라서 지금이라도 이혼을 하면 아내가 살 수 있다고 했단다.
딸을 살리고 싶은 부모 마음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나는 고민 끝에 아내한테 이혼을 해주겠다고 말했다.
첫댓글 유현덕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누구못지않게
고생했다고
생각했는데,
님은 더 하신것 같습니다.
아내의 암
청천벽력이었네요.
신미주님, 댓글 주셨군요.
저도 어디선가 신미주 선생님이 엄청 고생햐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딸에 관한 글임에도 아내 이야기를 빼먹고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가 제 딸을 저보다 훨씬 더 사랑했으니까요.
지금도 제 딸은 지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폭풍눈물부터 흘린답니다. 그래서 가능한 아내 얘길 꺼내지 않지요.
평온한 일요일밤 되세요.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암이고 우리 모두 에비 장애자 임당
살아 있기에 우린 고뇌 한다고 했든가예
인생사 희로애락의 글에 머물어 봅니더~~
병간호 무척 많이 고생 하셨을 것 같습니더~~~
와우~ 하늘과호수님께서 인생에 관해 완전 정곡을 찌르는 댓글을 주셨습니다. 님의 말씀처럼 모두가 예비 장애인이면서 예비환자란 것에 공감하네요.
아내의 고통에 비하면 저의 간병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감당하기 힘을 만큼 모든 것이 무너져내렸는데 그래도 산 사람은 살아지데요.
공감이 가는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저의 남편도 5월에 종합검진 받고 이상없음 이었는데
7월에 췌장암 말기 진단 받았었죠
전조증상 이래봐야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있을법한 증상이라....
이제 정말 단란하고 행복한 삶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암 이라니 안타깝네요
모카님!
남편분 완쾌 하셨쥬
모카님 간병 하시느라 욕 많이 봤심더
가까이 있는 선배 지금 췌장암 2기 수술 후
황암 치료중 임당
전현 몸에 이상 못 느겼다네예
건강검진 받으러 가서 알게 됐답니더
답답한 일 임당
전조증상이라도 있었음 빨리 조치를 했을 덴데예~~~
어쩌면 제 아내와 비슷한 케이스 같기도 합니다. 아내도 1년 전 건강검진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너무 충격이었지요.
더구나 항암 치료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그렇게 끈질기게 번지는 암세포가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습니다.
제 아내도 굳이 전조증상을 꼽자면 소화불량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젊었을 때부터 가끔 있었던 증상이었지요.
큰 병에 걸리고도 무사히 빠져나오는 사람도 있던데 불쌍한 제 아내는 그런 행운도 비켜갔습니다.
모카님, 평온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현덕아우의 글을
아끼며 남기다가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며
찬찬히 음미합니다..
한 때 세상의 짐을
홀로 지고 사는 양
탄식을 하던 때도
있었는데
처자식 두고
홀로 타국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힘이 들었을까 생각하니
내가 겪은 어려움들은
세월 속에 삭아
흔적이 옅어진 것 같네요..
그런데
모처럼의 단란함에
안도하려 했더니
아내가 나쁜 병이 생겼다 하니
심장이 꿍 내려앉네요..ㅠ
귀하고 예쁜 딸이 있기에 견디어 온 나날...
이젠 평안만 가득하길
바래봅니다..
반가운 요석 누이 잘 지내시지요?
오늘 제 글이 다소 어두운 이야기였음에도 이리 댓글을 주셨네요. 저부터 이런 글에 댓글 달기가 막막할 것 같거든요.
아내의 투병을 보면서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건지를 알았습니다.
제 마음 속에 하나님도 부처님도 모시고 있지 않지만 운명에 순응해야만 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함도 깨달았구요.
용기를 내게 만드는 요석님의 댓글에서 따스한 온기가 느껴져 참 좋습니다. 건강하고 평화로운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사모님이 너무나 젊은 나이에 나쁜 병을 앓게 되셨군요
지난글에서 사모님얘기를 읽어서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참 어려운 과정을 거쳐 잘살아오셨습니다
인간의 운명은 미리 알수 없기에 사는날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그산님 안녕하세요.
산님 말씀처럼 제 아내는 너무 일찍 떠났습니다. 그래서 제 가슴에 품고 사는 네 명의 여자 중에 가장 마음을 아리게 하는 사람이지요.
감사한 마음으로 산다는 그산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질병이든 죽음이든 순서도 예고도 없는 것이 인생사라지만 티끌에 불과하다는 우주적으로 보면 공평하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산님의 건강한 날들을 빕니다.
대문을 열어보면 누구나 애환과 슬픔이 있노라는 말에 공감이 갑니다.
유현덕님 마음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따님도 물론이겠구요.
저도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만 유현덕님 글을 읽으며 그 당시 아픈 심정이 제 가슴으로 와닿아 마음이 저려옵니다.
누군들 사연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지요. 수피님 인생 또한 소설 책 한 권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사연이 있을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워낙 밑바닥 생활을 했기에 웬만한 것에는 놀래지를 않는데 아내의 암진단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지요.
하물며 제 딸 아이는 오죽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딸의 심정을 헤아려 봅니다. 공감해 주신 수피님 감사합니다.
편안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한편의 소설 아니 허구의 소설보다 더 빠져드는 삶의 수기입니다 삶은 각본없는 드라마 연극이라고 너무도 절실한 ... 뭐라 말할 수없어요
현덕님 모습 다시 떠올려 봅니다 아 이런 분이셨나 하는, 살아 내셔서 감사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의 지난 삶이 마치 영화 같을 때가 있긴 합니다. 내가 산 것이 아니라 누가 대신 사는 삶을 한몸처럼 지켜보고 있는 느낌?
아니면 제 뒤에셔 누군가 나를 조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하기도 하네요.
저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데 제 뒤에 있는 사람은 자기 각본 대로 살게하고 싶은 모양입니다. 이런 일 다신 겪고 싶지는 않지만 닥친들 어쩌겠는지요.
그래도 또 살아야겠지요.
원글 댓글 다 읽어보았습니다.
타국에서 맞이한 뜻밖의 시련에
가슴이 저려오네요.
젊어서 암이 발병하면
예후가 좋지 않다고 하던데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일을 마주하셨군요.
저는 큰아이 초1때 조직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정말 괴로웠던 생각이 납니다.
내 새끼들 못 키워놓고 죽으면
내 강아지들 불쌍해서 어떻게 눈을
감을까 생각하니 어찌나 마음이 무겁던지요.
다행히 좋은결과가 나왔지만요.
유현덕님의 억장이 무너지는 그 심정
어쩌면 좋을까요ㅠ
아하~ 제라님 오셨군요.
때론 원문에서 다 못한 이야기를 답글에다가 보충하기도 합니다. 제 글이 항상 길어서 줄이다 보면 꼭 들어가야 했을 것이 빠질 때도 있으니까요.
암튼 제라님도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있었나 봅니다. 내 새끼들 못 키워놓고 죽으면 불쌍해서 어찌 눈을 감을까 하셨다는 대목에서 깊은 모정을 느낍니다.
제 딸은 비교적 건강한 편이라서 병원 갈 일이 많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저는 갈수록 누가 아프다는 말을 들으면 가슴부터 철렁한답니다.
모쪼록 제라님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평화로운 밤 되시구요.
따님이 아빠 닮아 영특하군요.
영국에 가서 취업도 하시고 무엇보다 일부러도 보내는 자녀 유학을 시킬 수 있게 되셨고 따님이 영국 시민권도 땄으니 잘 되었네요.
제 둘째 딸도 우리나라 국비 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석사 유학을 영국에서 했어요.
사모님의 암 발병은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픕니다.
인간이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고통 중 가장 큰 것이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합니다.
현덕님도 따님도 타국에서 너무 큰 고통을 겪으셨네요.
현덕님이 솔직하게 올려주시는 삶의 이야기가 정말 진한 감동을 줍니다.
이 방의 방제가 왜 삶의 이야기인지를 알려주십니다.
현덕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모든 역경을 이기고 우뚝 서심이존경스럽습니다.
아, 저도 작년에 겪었던 뇌동맥류 파열에 의한 지주막하 출혈, 아무런 전조 증상이 없었습니다.
그 병의 특징이 전조 증상 없음입니다.
그러고보니 다수의 중병들이 전조 증상이 없네요.
오늘 이 글을 쓰느라고 진이 다 빠졌는데 달항아리님의 정성 가득한 댓글에서 에너지 보충이 충분히 되고도 남습니다.
특히 저는 죽은 아내 이야기를 쓸 때 감정 소모가 너무 크거든요.
제 친구들도 저의 케이스를 전화위복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제가 영국에 정착한 다음 다리를 놔서 한 친구 가족도 영국에 올 수 있었지요.
그 친구는 두 자식들 영어유학을 위해 호주, 캐나다 등으로 이민을 알아보다가 불발되고 영국에 정착해서 지금 잘 살고 있답니다.
자식들이 비교적 늦게 이민을 왔지만 지금은 잘 적응을 해서 영어를 아주 잘 한다고 하네요.^^
달님의 따님도 국비 유학생이셨다니 공부를 잘했나 봅니다. 이리저리 연결을 하면 때론 지구촌이 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늘 제 글에 공감과 함께 힘이 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시기 바랍니다.
현덕님 고생한 이야기를 누가 동시대 사람 ~
친구 얘기라고 상상이나 할수 있을까요?
유년시절의 삶
그리고 🇬🇧 🇷🇺 외국에서의 견디기 힘든 고생스러움
그리고 사업실패
또 먼저 떠나보낸 아내 얘기까지~
눈물 겹네요
앞으로의 날들은 행복으로만 가득 채워지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와우~
반가운 별마당 친구님이네요.ㅎ
유년 시절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기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지만 엄니 품을 떠난 열네 살 이후부터는 스스로 개척할 수가 있었답니다.
신기한 것은 러시아도 영국도 원래는 계획에 없던 일인데 나의 실패로 인해 열린 돌파구였다는 거지요. 제 삶이 누군가 짜놓은 각본대로 살아지는 게 아닌가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실패가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공감해주신 별마당님 감사합니다.
세상에나 ~이런 큰 액운까지 겹치다니요
정말 어떻게 살아내셨습니까~~ㅠ
어떤 상황에서도 불행보다 희망을 가졌다지만
참으로 가혹합니다
누군가 조종하는 인생이라면ㅠ
처형한테 들은 그 아픈말
오죽 답답하니 한 소리지만
그 상처 또한 얼마나 컸을지요
장하십니다
저는 상상조차 안되는 고생을 ㅠ
ㅎ 정아님, 오셨군요.
살다 보니 그런 일도 생겼고, 운명이겠거니 하면서 받아들이니까 또 살아지데요.
그때는 감당하기가 힘들었지만 나중 다른 사람들 사연에서 저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시련을 준다는 말도 있던데 저한테도 그랬지 싶네요. 저보다 딸 아이가 훨씬 힘들었을 텐데 잘 이겨낸 것이 대견하기도 합니다.
정아님, 평온한 날들 되세요.
전조증상을 묻는분들이 하도 많아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 증상이 없어 그냥 둘러대기도 했지요. 참 영국에서 자리잡을만 하니 파란이 또 생기다니 ㅡ인생이란거 참 그렇나봐요. 저도 지금 살만해지니 수술하고 투병중이네요.
아~ 늘평화님도 전조증상 없이 아팠던 모양입니다. 예전에 평화님의 귀한 손주가 몸이 약해서 걱정하는 것은 봤으나 수술을 하셨다는 것은 지금 알았네요.
제가 카페를 자주 들어오지를 못하는 데다 모든 글을 읽지를 않아 그렇답니다. 그래도 늘평화님이 고비를 잘 넘기신 것 가타서 댜행입니다.
아픈 것 무난히 물리치실 것으로 보고 응원합니다. 늘평화님의 평화로운 날들을 빕니다.
삶의 이야기가 이런 거로구나!
할 만큼
또박또닥 써내려간 활자 하나 하나가
마치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썼던 어린 날의 일기장을 보는 듯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겪은 만큼만
이해하게 되어있다고 하지만
진짜
잘 버텨내셨어요ㆍ
그리고 아픈 글 쓰시느라
에너지소모가 많이 되었을터인데
수고 많으셨습니다 ㆍ
저도 지난 주에
서울대형병원에서
엠알아이 찍어 놓고 낼 모레
결과 보러가는 날이라서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마음이 무겁긴 합니다만
이 바람도 그냥 스쳐지나가리봐요
윤슬님의 댓글 또한 따뜻한 봄볕이 비치는 마루에서 누군가에게 진심 어린 편지를 쓰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까치도 처마밑의 제비까지 윤슬님의 댓글을 훔쳐보고는 공감할 듯합니다.
윤슬님도 검진 결과를 기다리고 있나 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런 경우 윤슬님처럼 조마조마 두근거리는 마음이라고 하더군요.
모쪼록 별일 없기를 바라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봄날 되셨으면 합니다. 진정성 가득한 댓글 고맙습니다.
저는 유현덕님 글을 보면 추천부터 합니다
어제 댓글을 적으려는데 마음이 너무 무거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망설이다가 오늘 아침이 되었습니다
저도 아픈 경험과 눈으로 확인된 이런저런 일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신은 넘을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는다
일본어로는 神様は乗り越えられる試練しか与えない
(가미사마와고에라레나이시렌와아다에나이)
힘들 때마다 이 말을 새겼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사
이것도 정해진 운명이려니 하고
잘 버텨왔습니다
인연이란 정해진 것이구나~
아내와의 인연도 거기까지였나 싶습니다
예쁜 따님을 남겨주신 아내
지금 잘 살아주시니 하늘나라에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와우~ 가리나무님께서 제게 아주 힘이나는 댓글을 주셨습니다. 제 글에 댓글 달기를 망설였을 가리나무님 심정을 이해하지요.
그래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댓글 남기셨네요.
제가 일어를 잘 몰라서 남기신 문구를 완전히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한문 일곱 자만으로 대충 무슨 뜻임을 짐작합니다.
그래도 가라니무님께 이 문장으로 잘 버텨내셨다니 다행입니다.
인연이란 정해진 것이구나 인연이 거기까지였나란 대목에서 아내 생각으로 그만 코끝이 찡해오네요.
늘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는 아픈 추억이 있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더군요. 저를 자꾸 착하게 살도록 만들어 주니까요.
가리나무님 고맙습니다.
글을 읽어내리는데
눈물이나네요..
아내분 병 진단과
어린딸
투병생활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전조증상은 있었어도
잘못느끼지요
느낄때는 이미 많이
진행되어 있구요
그시절만 해도
몸이 아파도
가볍게 생각하구요
제가 42세에
위암 수술 했어요
큰딸중3
작은딸초6
위암 초기인데도
3분의2
위절제 받았지요
혹시라도 엄마가
이세상에 없더라도
굳굳하게 살아가도록
나름 준비를 하고
뒷바라지 했지요
완쾌되고 가족이 각자
잘들살아가고 있어요
글을읽다보니
지난날이 생각나
눈물짓게 되네요..
건강잘챙기시고
즐겁게 살아요
좋은하루되세요~~^^
문선이님께서도 아픈 경험이 있으셨나 봅니다. 가슴이 철렁했을 당시 심정과 수술실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늘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뭐든 겪은 후에 더 공감을 하는 것처럼 제가 아내의 투병을 지켜봤기에 그런 상황에 놓은 분들 심정을 알게되었지요.
42세에 위암수술을 하셨다면 다소 이른 나이였습니다. 하긴 요즘 30대 암 환자도 여럿 있는 걸 보면 꼭 암이란 것이 노년에만 오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무사히 넘기고 잘 지내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모쪼록 앞으로도 건강하셔서 문선이님의 인생 후반전이 편안하기를 빕니다.
제가 요즘 무릎관절이
안 좋아 병원다니고있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댄스
대신 영어수업을 다니고
있어요.
그럼에도 관절이 나빠
죽기야 하겠나~~
이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견디고 있네요.
사람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 생겨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것
같아요.
울둘째 언니도 인생이
고달프지만 정말 긍정의
힘으로 버티고 있어요.
십년전에 길랭바레증후군
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기적적으로 완치 되
혼자힘으로 남매키우면서
집도 장만하고 살만하니
또 그병이 재발 했어요.
이번엔 나이가 있으니
더 심하게 왔어요.
재발될 확률이 낮은 병인데도
불구하고 재발이 됐어요.
이번에도 무사히 이겨
내리라 믿고 있어요.
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요.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감사한 마음으로
잘 읽고있어요.^^
파란여우님 댓글에서 이심전심이란 것을 느낍니다. 아파 봐야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오듯이 세상살이도 인생살이도 다 그런 모양입니다.
무릎이 아프면서도 긍정적으로 사신다니 아주 현명한 방법입니다. 그래서 긍정의 힘이란 말도 생겼겠지요.
길랭바레증후군이란 것을 지금 처음 알았습니다. 비록 휘귀병이 재발했다고는 하지만 이전에 극복하셨듯이 둘째 언니가 이번에도 잘 이겨내셨으면 합니다.
아픈 사람끼리 통하는 것이 가장 진심에 가깝다던데 파란여우님 댓글에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참 아우님 삶이 파란만장 합니다
그때의 모습들이 상상되어 지나가네요
저도 그렇지만 지존이 선배님 인생 또한 파란만장 못지 않을 테지요.
그래도 긍정적으로 사시니 다행으로 여깁니다. 오늘 날씨가 완전 눈이 부시도록 좋네요.
항상 평온한 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명문대 나와서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가방끈 긴 엘리트들의 모습도
참 아름답지만
유현덕님 살아온 인생도 들꽃처럼 너무
향기롭습니다
저도 첫아이인 딸을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시켜서도 옆에 끼고살면서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지만 지금은 종교적 갈등으로
다소 마음이 멀어져서 가슴 아픕니다
글 잘 읽었어요
늘 좋은날되세요^^
ㅎ 명문대 나온 가방끈 긴 분들의 모습은 귀티가 날 테지만 저 같은 사람 모습은 싼티가 나니 금방 구분이 가능합니다.
옆에 끼고 살고 있을 정도로 따님을 사랑하신다니 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네요.
저는 종교가 없어서 딸과의 종교 갈등은 없답니다. 저는 모든 종교인을 존중하지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까지,,
부족한 글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하네요.
몸부림님도 항상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ㅎ
이보다 더 진솔한 글이 있을까 싶게도
치열하게 살아온 유현덕님의 삶에
깊게 공감하며 잘 읽고 있습니다 ^^~
요요님도 오셨네요.ㅎ
오직 살아 남기 위해서 허겁지겁 살았을 뿐인데 밖에서 보기에는 치열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 모양입니다.
저는 금방 바닥이 드러나는 사람이랍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에 품고 살았던 희망이란 밑천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요요님의 일상을 응원합니다.
부인 이야기에 사십 중반에 하늘나라 간 여동생이 생각나서 마음이 한없이 먹먹해집니다.
지금 사는 이 동네에 오게 된 동기도 언니를 옆에 두어 살펴 주려 했는데, 건강한 동생이 갑자기 암으로 4년가량 투병하다가 갔지요.
아직 어린 두 아들을 내색 안 하고 호주 보내놓고 고통 속에서도 무던히 살아내려 했으나 하늘이 데려가시더군요.
나와는 다르게 재주도 많고 주어진 많은 달란트로 선한 일을 많이 한 동생이 그리 빨리 가는 것이 너무나 아깝고, 언니로서 안타까웠어요.
부인을 먼저 보내고 어린 딸을 홀로 돌봐야 했던 그 아픔과 슬픔을 무어라 위로가 될까요.
하지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인생이 아니니 하늘의 뜻에 맡길밖에요.
힘든 일은 다 지나갔고
이젠 행복해질 일만 남았겠죠.
리진님 여동생 사연이 제 가슴에 시리게 다가옵니다. 사십 중반이면 너무 일찍 떠났네요. 재주 많은 동생을 먼저 떠나 보낸 리진님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어떤 영화에서도 나왔는데 왜 착한 일 많이 한 사람을 하늘이 먼저 데려가냐며 처절하게 오열하는 남편을 보았습니다.
저도 그 영화를 보며 지난 날의 장면과 겹치면서 눈물이 쏟아져 난감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리진님 동생 분 사례처럼 대부분의 암은 서서히 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오는 모양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연이 언젠가는 헤어지는 것이 세상이치이지만 혈육과의 이른 이별 만큼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있을까요.
모쪼록 리진님의 마음이 평화롭길 빕니다.
가슴이 무너져내렸을것같아요
한창 엄마품에서 사랑먹으며 자라야 할 어린딸....슬퍼요ㅠㅜ
저희 엄마도 아프셔서
제가 어릴때 엄마를 하늘나라 떠나보내고 엄마없이 컸네요
넘 젊은나이 아내분 떠나보내고 어린딸과의 영국생활 ....
어떤 힘든일들도 꿋꿋하게 잘 이겨내셨을거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하~ 둥근해님도 어릴 때 엄마와 이별을 하셨나 봅니다. 세상에는 슬픈 사연이 참 많지만 엄마와 일찍 이별한 슬픔도 그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저는 엄니가 88세까지 살다 가셔서 복이 많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아버지 없이 자랐기에 둥근해님의 슬픔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답니다.
행복한 날들 되셨으면 합니다.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이혼도하고..
한국판 러브스토리이군요
ㅎ 뱃등님,,
사랑했기 때문에 결혼한 것은 맞는데 사랑했기 때문에 이혼한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그래서 러브스토리는 아직 미완성입니다.
뱃등님의 관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