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은혜의 선물!
주일날, 하 집사님이 찬양하는 자리에 섰다.
주중 황금 시간에 틈을 냈다.
곡 선정, 연습, 예배 준비에 임하며 기도로 나아갔다.
특송 가사처럼 하나님 은혜였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황혼 녘을 순항하는 작은 돛단배 같은 어머니의 삶이 역풍을 만났다.
서서히 건강이 무너져 내렸다.
잔잔한 감동을 이어간 행복 시계가 멈췄다.
폐 질환의 시작은 나침반 없이 어두운 망망대해를 헤쳐 가야 했다.
난파선이 되었다.
선한 자가 고난 당하는 꼬이고 뒤틀린 현장,
그래도 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예배에 임했다.
늘 기다리며 영혼의 밀도를 높였다.
한량없고 끝없는 은혜, 감당할 수 없는 은혜였다.
고통 가운데 받은 은혜가 컸다.
‘이제 괜찮아졌어! 괜찮아!’ 손사래를 치매 차를 탔다.
각 사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는 늘 새롭고 날마다 달랐다.
마르지 않은 샘물 자체였다.
그 은혜 잊지 않으면 절대 엉뚱한 곳으로 빠지지 않는다.
예배 마치고 약선 명가로 갔다.
하 집사님이 생일상을 차렸다.
식탁에서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축하 송을 불렀다.
약재를 넉넉히 넣은 토종닭 능이 백숙이 끓었다.
냄새가 좋아 구미가 당겼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어설픈 삼계탕보다 나았다.
확실한 보신 위해 죽까지 챙겨 먹었다.
식욕 왕성한 장로님이 숟가락을 놓고 뭉그적거렸다.
사이다 한잔 마시고 ‘한속 든다’며 밖으로 나갔다.
병색이 짙고 핼쑥한 얼굴에 햇살이 비쳤다.
걱정이 앞섰다.
발에 난 부종은 천신만고 끝에 잡혔다.
문제는 속이었다.
천하장사요, 통뼈 건강 체질로 무거운 일평생 할 줄 알았다.
그런 장로님도 순간 스러졌다.
열흘 전, 입맛 잃고 기력이 약해 예배 시간,
서서 대표 기도도 간신히 마쳤다.
월요일, 이른 아침 전화였다.
‘목사님, 시간 있으세요.
혈뇨가 나오고 열이 올라 병원 가야겠어요.’
‘어머니 대학 병원 기관지 내시경 검사 첫 진료라 먼저 다녀올게요.’
일주일 전, 예약 진료 받을 때 마음이 한발 앞섰다.
전화 연락, 트렁크 휠체어, 주차 전쟁, 접수, 시디 등재,
진료 의뢰서 제출, 대기, 의사 면담, 채혈,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
폐 기능 검사, 향후 검사 예약, 수납, 약 처방..
식사 나눔으로 이어갔다.
이번에는 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모셔 훨씬 수월했다.
여동생은 분명 어머니의 엄마였다.
바쁜 걸음에 접수 거듭하며 병원비를 치렀다.
영수증이 다섯 장,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검사실 앞에서 주의 사항에 귀를 기울였다.
어머니가 서명하고 공복 상태로 침대에 누우셨다.
기계음과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길지 않은 시간에 회복실을 통해 나오셨다.
조직을 떼어낸 자리 출혈로 부작용 일어날 경우 대처법을 들었다.
엑스레이 촬영실로 모셨다.
잘 마친 조직 검사라 3일분 처방전을 받아 약을 탔다.
식사는 4시간 후 가능했다.
결과는 교수님 출장 후로 잡혀 초조하게 기다렸다.
어머니 입맛이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38 킬로그램까지 내려가 기력이 쇠했다.
3년간 폐 섬유화 지연 약을 복용 중이라 악성 종양일 가능성이 높았다.
고령에 쉽지 않을 치료가 걱정이었다.
고보건 교수 면담 시 컴퓨터 화면 봤다.
염증 가능성을 짚었지만 기우일뿐이었다.
좋은 의사는 환자의 몸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돕는 자였다.
급한 마음에 장로님께 전화하고 모시러 갔다.
입원할 짐을 들고 왔다.
열이 높은데 한속이 들었다.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서 비상벨을 눌렀다.
의사가 문을 열고 증상을 물었다.
‘열이 있고 혈뇨가 나와서요?’
38.2도 확인하고 독감, 코로나 검사 후 엑스레이 촬영실로 갔다.
경기 난 아이가 엄마 품에서 자지러지게 울어 안타까웠다.
접수 후 B4번 격리실에서 처방을 받았다.
침대 등을 편하게 올렸다.
간호사가 채혈 후 영양제 놓고 나가며 검사 위해 물도 마시지 말란다.
남자 간호사가 소변 줄을 끼웠다.
장로님께서 약한 모습 드러내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간병하러 온 분이 계서 일어섰다.
새벽 기도 후 전화로 진료 상태를 묻고 날마다 기도해 드렸다.
콩팥과 간 기능이 약해 염증 수치가 높았다.
요로 감염으로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먹먹한 상태로 아침 운동을 마쳤다.
전대 앞 본죽 집에 쪼그리고 앉았다.
문이 열리자 단 호박죽을 시켜 병원으로 갔다.
간병하신 분에게 전달하고 돌아왔다.
장로님께 감사의 전화를 받았다.
사랑과 함께 드시고 빠른 쾌유를 부탁드렸다.
이튿날 요플레와 롤 케이크를 들고 찾았다.
‘매점에서 살 수 있다’지만 힘을 보태고 싶었다.
‘반찬 간이 안 맞아 죽어도 밥을 못 먹겠다’는 말이 목에 걸렸다.
난 복 있는 사람이다. 그날 밤 어머니의 전화였다.
왜 그런지 모르게 기력이 없단다.
낮에 토란대 세 단 할머니들과 벗겨 ‘굼 터놓았다’는데 뜻밖이었다.
전대 응급실로 모셨다.
기관지 내시경 후 심리적인 충격이란 말을 의료진에 전했다.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기본 검사하고 수액 맞으며 하룻밤을 세웠다.
결국 의사와 속 깊은 말을 나눴다.
화순 전대병원 예약 날을 잡고 나섰다.
하늘이 노랬다.
거금도 회의 가는 날,
화순 이양에서 산허리 두른 솜사탕 안개가 장관을 이뤘다.
소록도 앞 해무 걷힌 바다의 푸름이 하늘을 담아냈다.
하나님 위로의 선물이었다.
버거운 내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다.
서둘러 돌아와 극상품 추석 사과 상자를 어른들 중심으로 돌렸다.
밤 9시였다.
다 은혜로운 선물로 여기셨다.
2023. 9. 9 서당골 생명샘 발행인 광주신광교회 이상래 목사 010 4793 0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