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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내 딸아! ( 32회 )
서울 댁은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이젠 눈만 감으면 또렷이 나타나는 아기로 인해서 잠은 아예 멀리 달아나 버리고 아기의 모습만이
또렷하게 떠오르고 있다.
엄마라고 따라오려고 하는 아기의 모습이다.
자신 또한 아기에게 다가가려고 해도 몸이 움직이질 않고 있다.
서로 애타게 바라보며 엄마를 부르고 있는 아기다.
“아가!”
그러나 서울 댁은 그 아기가 누구인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있다.
자기에게 꿈에서나마 엄마라고 부르는 아기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서울 댁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생각을 해 보려고 하지만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
내가 누군가?
그 아기는 누구란 말인가?“
머리가 심하게 아파온다.
그대로 문을 열고 캄캄한 밖을 향해서 나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이미 모든 길이 익숙해져 있는 서울 댁이다.
무서울 것도 겁날 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며 바다로 향한다.
어둠에 묻혀 있는 바다는 파도소리가 요란한 것으로 보아 바람이 많이 불고 있음을 알게 한다.
서울 댁은 바다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
내가 누군지 말해 줘요.
엄마가 어디 있는지 알려줘!“
그러나 되돌아오는 것은 파도소리 뿐이다.
철썩 철썩!
바위를 때리고 떠나고 다시 와서 바위에 부딪치면서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다.
서울 댁은 어둠에 묻혀 있는 바다를 마주 보며 소리를 질러보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철썩이는
파도소리뿐이다.
서울 댁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는다.
차라리 예전처럼 아무런 꿈도 아무런 기억도 되살아나지 않는다면 편안한 마
음이 될 수 있지만 이제는 간간히 토막처럼 떠오르는 기억들과 꿈에 나타나는 엄마와 아기로 인해서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엄마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지만 아기의 모습을 너무나 또렷하고 선명하다.
서로가 닿으려고 애를 써도 가까이 다가가지지 않는다.
손을 잡으려 해도 조금이라도 다가가서 만져보려고 해도 몸이 꼼짝을 하지 않고 움직일 수조차 없다.
아무리 아기에게 다가가 보려고 해도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아기 또한 다가오려는 몸짓을 하고 있지만 다가오지를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무엇을 표현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서울 댁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저 망연히 어둠에 묻힌 바다를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고 날이 훤하게 밝을 때까지도 주저앉은 채로 바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먼동이 트이면서 날이 환하게 밝아오고 사람들의 움직임들이 느껴지지만 서울 댁은 그래도 움직이지도 않고 있다.
영우엄마는 그런 서울 댁을 찾으러 나온다.
요즘 매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힘들어 하는 서울 댁을 알고 있는 영우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자 바로 서울 댁을 찾아간 것이다.
서울 댁이 집에 없는 것을 보자 바로 바닷가로 찾아 나선 영우엄마다.
“여그 은제 나왔노?”
“아주머니!”
서울 댁은 영우엄마를 보자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어여 들어가자.
온 몸이 싸늘하게 차갑다.
이러다 니 정말 큰일 안 나겠나?“
영우엄마는 서울 댁을 데리고 집으로 향한다.
이제는 제법 기온이 많이 내려간 가을이다.
육지 같지 않고 더욱 차가운 기온이 몸을 으슬으슬하게 하고 있는 바닷가다.
서울 댁은 비로소 추위에 몸을 떤다.
“이러다 정말 큰일 치루지 않겠나?
서울 댁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데이.
죽으믄 니 한을 어데서 풀 거이가?“
영우엄마는 서울 댁을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서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에 불을 보며 불 조절을 한다.
연탄을 때고 살아가는 섬이다.
한때는 많은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었던 섬이라서 지금까지도 이곳으로 연탄을 배달해주고 있어서 나무보다는 연탄으로 보온도 하고 취사도 하는 곳이다.
영우엄마는 불 위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을 끓인다.
아무것도 넣지 않는 맹물을 끓인다.
추위에 속까지 덜덜 떠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맹물을 끓여서 먹이는 것이 다른 어떤 약보다도 좋다는 것을 안다.
그것을 백비탕이라고 한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는 영우엄마다.
영우엄마는 뜨거운 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간다.
서울 댁은 덜덜 떨고 있다.
“춥제?
여어 이것을 마셔봐라.
덜덜 떨리는 속이 가라앉을 거이다.“
서울 댁은 영우엄마가 주는 뜨거운 물을 후후 불어가면서 마신다.
그렇게 반 정도의 물을 마시고 나니 비로소 떨리던 몸이 조금씩 진정이 되어간다.
“어떻드나?
조금씩 개안치?”
“네!
이젠 좀 살 것 같습니다.“
”이자 됐다.
한 숨 푹 자그라.
내사 영우아배 아침을 주고 다시 올끼다.“
”고맙습니다.“
”서울 댁아!
아무런 생각도 하덜 말고 푹 자그라!“
영우엄마는 이불을 다독여주고 나서 자신의 집으로 간다.
식전 댓바람부터 서울 댁이 궁금해서 나와서는 오래 있었다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집으로 간다.
“식전부터 어딜 댕겨와?”
영우아빠는 말없이 나간 아내가 돌아오자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는 듯이 묻는다.
“서울 댁이 참말로 저러다 큰 일 안나것소?”
“와?
또 식전부터 바닷가에 나가 있었노?“
”아마 그런 모양이오.
온 전신이 얼어서 덜덜 떨고 안 있소.
저러다 사람이 상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오.“
”그라니 우짜것노?
아무도 읎으니 노상 붙어 있을 수도 읎덜 안 것나?“
영우엄마는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한다.
이대로는 사람이 상하지 싶은 생각을 하며 아침을 준비한다.
아침을 먹고 대충 치우고 나서 서울 댁을 위해서 죽을 쑨다.
밥보다는 뜨거운 죽을 먹이는 것이 좋겠다 싶은 생각을 한 것이다.
영우엄마는 식지 않도록 싸서 가지고 서울 댁 집으로 간다.
서울 댁은 영우엄마가 들어오는 기척에 잠이 깬다.
“좀 잤나?”
“네!
한숨 푹 잔 것 같습니다.“
”오야, 잘 된 거이다.
이자 일나서 이거를 좀 먹어봐라.“
”뭘 그렇게 가져 오셨어요?
제가 해 먹으면 되는 것인데요.“
”서울 댁아!
우리 함께 서울을 가보자.“
”네?
서울이라니요?“
”이대로는 아무래도 사람 상하지 싶다.
내캉 서울을 댕겨오자.
내도 손자가 보고 잡아서 그러지 않아도 아들 집에 댕겨 올 생각을 안 하나.
그라니 내캉 서울을 댕겨오자.“
”.........................“
서울 댁은 잠시 생각을 한다.
서울!
그리운 곳인 것도 같고 가고픈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지 않것나?”
“언제요?”
“아무래도 영우아배 먹을 것을 준비해 놓아야 하니까 내일 가자.
누가 아능가?
자네가 살았던 곳이믄 뭔가가 생각이 나는 것도 있것제.
찬찬히 생각나는 거이 있능가 보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능가 보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네!
그럼 아주머니를 따라서 가 보겠습니다.“
서울 댁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낀다.
서울을 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가 정말 서울 사람인가?
과연 서울에서 난 무엇을 느끼고 생각이 날 것인가?“
서울 댁은 하루 종일 그 생각으로 아무것도 하지를 못하고 있다.
서울은 과연 자신에게 무엇을 생각나게 할 것인가?
서울 댁은 따로 특별하게 준비할 것이 없다.
내일 통영에 나가 돈을 찾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우엄마는 며칠을 집을 비울 생각을 하며 남편이 혼자서라도 밥을 챙겨먹을 수 있도록 준비를 한다.
그녀들은 다음날 배를 타고 육지로 나간다.
은행에 잠시 들려 돈을 인출하고 나서 바로 버스터미널로 간다.
다행히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서울 행 버스에 오를 수 있다.
“기분이 어떻노?”
영우엄마는 서울 댁을 보며 묻는다.
“아직은........그러나 가슴이 심하게 떨리는 것이 가라앉지 않고 있어요.”
“달리 생각하덜 말고 그냥 바람을 쏘이러 간다는 생각을 하그라.
마음을 차분하게 해야 생각이 나도 날 거이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서울 댁은 그렇게 모든 것을 보살펴주고 챙겨주는 영우엄마가 있어 편안한 마음이 되어간다.
언제부터인가 영우엄마를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서울 댁이다.
무엇을 하든 영우엄마가 곁에 있으면 편안한 마음이 되고 일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나곤 한다.
차가 출발을 하자 서울로 간다는 생각을 하며 영우엄마의 손을 꼭 잡는다.
영우엄마 역시 그런 서울 댁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함께 손을 잡아준다.
네 시간이 넘은 시간이 소요가 되는 거리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밖을 바라보며 언제 저런 풍경들을 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차창너머로 오는 풍경들에 마음을 빼앗겨 본다.
들녘에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참으로 풍요로운 풍경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허지만 서울 댁은 그저 생소하고 신기한 모습들뿐이다.
휴게소에서 영우엄마는 간단한 간식을 구입한다.
잠시 휴게소의 모든 것들을 둘러보던 서울 댁은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한다.
뭔가가 또 다시 집힐 듯 안개 속처럼 희미해진다.
“자, 차에 올라가자.”
영우엄마는 서울 댁의 손을 잡고 다시 차에 오른다.
“묵자.
여행을 하믄서는 이런 것도 묵어보믄 참말로 맛있다.“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서울 댁에게 준다.
서울 댁은 말없이 받아먹고는 다시 차창을 내다본다.
참으로 낯 설은 것들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행이라는 것 자체가 서울 댁에게는 낮선 환경이고 처음 겪는 일로 자신의 과거 속에서도 없었던 일만 같다.
차는 다시 출발을 한다.
이제 서울과 점점 더 가까워지면서 더욱 긴장을 하는 서울 댁이다.
“와?
서울이 가까워지니까 두렵나?”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아서.............“
“그래!
그러나 긴장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그라.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거이 있음 참말로 좋은 거이 아인가?“
”...........................“
서울 댁은 점점 표정이 굳어져 간다.
무엇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자꾸만 가슴이 뛰고 숨이 가빠온다.
버스는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멈춘다.
서울엘 도착한 것이다.
서울 댁은 영우엄마를 따라 조심스럽게 버스에서 내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모든 것이 생각처럼 낯설고 생소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 어디로 갈까?”
“............................”
“어디고 생각나는 곳이 읎는가?”
“생각나는 곳이 아무 곳도 없습니다.”
“그라믄 일단 어디 가서 점심이라도 묵자.
점심때가 지났으니 배가 많이 고프다.“
영우엄마는 근처의 식당을 둘러본다.
그리고는 적당한 곳을 찾아서 서울 댁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뭘 시킬까?”
서울 댁은 메뉴판을 둘러보다 김밥과 우동을 주문한다.
영우엄마 역시 같은 것으로 주문을 한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음식을 먹으면서 서울 댁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뭔가를 생각하려 애를 쓴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영우엄마는 다시 서울 댁을 데리고 음식점을 나와 지하철로 간다.
“어디를 갈까?
서울에서 생각나는 거이 있음 말해 봐!“
“...........................”
“그냥 아무전철이나 탈까?”
서울 댁은 지하철의 노선도를 들여다본다.
허지만 그 어느 곳도 가 보겠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그라믄 강남 터미널 지하에 가서 쇼핑을 해 보자.
혹시라도 그곳에 가 본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능거 아인가?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 그곳으로 가 보자.“
영우엄마는 혼자 결정을 하고 서울 댁의 손을 잡고 지하철로 들어간다.
남부터미널에서는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야 하는 곳이다.
의외로 서울 댁은 지하철 노선을 제대로 찾아 출구로 향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지하철을 이용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강남 터미널 지하쇼핑상가엔 수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기기 위해서 모여든다.
영우엄마도 가끔 서울 아들집에 오면 며느리와 함께 이곳을 이용하기도 한다.
쇼핑을 하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시간을 즐기기에도 아주 좋은 곳이다.
그녀들은 쇼핑을 즐기기보다는 적당한 곳에 앉아서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마치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는 듯 서울 댁은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그렇게 사람들을 살피곤 한다.
영우엄마는 그런 서울 댁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가만히 서울 댁을 바라보며 서울 댁의 표정을 놓치지 않고 있다.
몇 시간을 그렇게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지만 서울 댁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다.
이제 시간은 저녁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보아도 변할 것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며느리에게 전화를 해 둔 영우엄마는 시간을 본다.
더 이상 지체를 하면 공연히 자신들 때문에 아들과 며느리가 기다릴 생각을 하면서 그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다.
“서울 댁아!
오늘을 그만 드가자.“
서울 댁은 비로소 현실로 돌아온다.
무엇을 하며 있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신도 모르게 수많은 인파에 묻혀서 함께 다니고 있었던 기분이다.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아주머니가 공연한 고생을 하십니다.“
서울 댁은 비로소 영우엄마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생각해 낸다.
첫댓글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