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북새통이 한참이던 중 누군가가 고무보트를 가지고 왔다.
몇 사람이 고무보트를 타고 건너갔다.
현장에 도착해보니 참상이 말이 아니다.
산림 계장 네 집 주위에는 집 뒤에 있는 산에서 내려와 담장 옆을 지나 마당 가로 흐르는 개울 있는데 산사태는 집 뒤 개울가 있는 산비탈이 호우로 물을 많이 먹어 붕괴되면서 일어난 것 같다.
본래 물이 흐르던 물줄기는 사태 난 흙더미로 막히고 집 안쪽으로 새로운 물길이 생겼다.
산비탈이 붕괴되며 일어난 산사태가 집을 덮쳐서 산을 등지고 있던 안방은 뒷벽이 넘어져 방으로 흙이 밀려 들어오고 집이 기울면서 벽들이 무너져 내려 거의 반파되어 있었고 살림은 여기저기 흩어져 물에 젖어 쓰레기처럼 되어 널려있었다.
물길은 집 뒤뜰을 거쳐 안마당으로 나 버렸고 앞마당에는 산사태로 밀린 흙과 나뭇등걸들이 쌓여있고 가재도구와 옷가지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흙더미와 나뭇등걸을 헤지고 안사람과 딸아이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간 산림 계장은 방바닥에 주저앉자 처와 딸의 이름을 부르며 다시 통곡한다.
방에서는 아내와 딸아이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을 부르며 집 주위를 찾아도, 혹시 산사태를 피하느라고 산으로 피해 올라갔다 정신을 잃지 않았나? 해서 뒷산을 헤집고 다니며 찾아도 집사람과 딸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한 동안을 정신없이 미친 사람처럼 집사람과 딸아이를 찾아 헤매던 산림 계장은 마침내 지쳐 쓰러지며 목 놓아 울음을 터트렸다.
같이 온 동료들이 그러는 산림 계장을 위로하지만, 산림 계장에게는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하고 너무나 애통해하는 산림 계장으로 눈을 붉히는 동료도 적지 않다.
산림 계장의 집사람과 딸아이를 찾아 주위를 한참을 더 들러보던 사람들도 포기하고 산림 계장을 위로하며 그를 데리고 그곳을 떠나려고 한다.
산림 계장을 혼자 그곳에 남겨두면 처자를 잃은 슬픔에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림 계장은 ‘이렇게는 못 간다, 우리 식구들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하고 하며 발버둥을 친다.
그러는 그를 여러 사람이 들다시피 하여 강제로 고무보트에 태워 그곳을 떠나 마을로 들어왔다.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엄마와 딸애가 어디를 갔는지 이상하다며 여러 가지 추측을 한다.
그 추측 중에 이런 추측이 있다.
밤중에 산사태로 집이 무너지려고 하자 처음엔 놀라고 당황하여 밖으로 뛰어나온 모녀가 뛰어나온 후에 집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있어 아직 무너지지 않은 집에서 얼마간의 살림이라도 건지려고 물건을 꺼내려 엄마가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동안 물 천지가 된 마당 가에서 서성이던 딸아이가 발을 잘못 디뎌 마당 가로 흐르는 개울에 빠진 것을 보고 그 애를 구하려다 엄마도 개울에 빠져 변을 당한 모양이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개울가에 사람이 미끄러진 것 같은 자국을 보았다고 했다.
그러나 산림 계장은 물론 누구도 그런 추측을 믿지 않았다.
그렇게 산사태가 나고 집이 반파될 정도가 되었으면 ‘왜 형식에게 전화하여 알지 않았을까?’ 하고 누가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비가 개면 혹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안사람과 딸아이를 잃고 집까지 무너져 버린 슬픔에 잠겨있던 산림 계장이지만 지금 마을이 생긴 이래로 처음 일어난 큰 홍수 피해로 공직에 있는 자기의 도움을 바라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래서 자기의 슬픔은 잠시 잊고 몸과 마음이 지쳤을 테니 좀 쉬라는 면장의 말을 할 일 없이 가만히 있으면 슬프고 괴로운 생각만 하게 된다며 면장의 말을 뒤로하고 복구사업으로 마을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오늘 오후 자기 집을 치운다는 말을 듣고 왔다가 가족사진을 보니 다시 설움이 복받쳐 이렇게 울고 있다고 말한다,
말을 마친 산림 계장의 두 볼에는 빗줄기 같은 눈물이 다시 흐른다.
어쩔 수 없는 천재로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집도 없어진 산림 계장의 마음이 어떨까?
그것을 헤아려보는 재걸의 가슴도 찢어지는 것 같고 마음에 한없는 슬픔이 찬다.
그때 고개를 든 재걸의 눈물에 젖은 눈에 들어온 것이, 서쪽 하늘에 새 발만큼 남은 태양이 만든 붉은 노을이다.
가슴 아픈 사람을 너무나도 슬프게 만들던
그래서 지금 산등성이에서 보는 새 발만큼 남은 해가 만든 노을이 그때를 생각나게 한 것인가 보다.
십여 일 동안의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재걸은 되도록 산림 계장과 동행을 하며 그의 일을 도왔고 그를 위로했다.
그러는 재걸을 산림 계장이 많이 고마워했다.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올 때에도 재걸은 봉사원들과 함께 산림 계장을 위로하며 저녁을 먹었다.
그때 무척 쓸쓸해 하고 울적했던 산림 계장의 얼굴에 얼음골 주지 스님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떠올랐다.
재걸은 오랜만에 만난 산림 계장 아니 주지 스님과 이야기가 하고 싶어졌다.
산림 계장이 어떻게 스님이 되었는지도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다.
같이 온 동료에게 현장조사에서 몇 군데 살필 곳이 있어 남아서 좀 더 조사해 보고 갈 테니 먼저 가서 계장에게 현재 상황을 보고하라며 갑자기 태도가 변한 재걸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동료를 보내고 얼음골로 다시 내려갔다.
얼음골로 내려와 산사로 들어간 재걸은 곧바로 주지 스님을 찾았다.
다시 돌아온 재걸을 보고 깜짝 놀라던 주지 스님은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재걸의 손을 잡는다.
“시주님도 생각이 나신 모양이군요.”
“네! 산에 올라 서쪽으로 지는 해를 보고 생각났습니다. 그때 개울가 둑에 앉아서 이야기할 때도 그렇게 서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지 않아요?”
“그랬었나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잊으신 모양이군요. 그런데 스님은 저를 알아보신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처음에는 몰라보았는데 시주님이 식사하며 자꾸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나도 시주님을 주시하다가 생각이 났어요.”
“그럼, 말씀을 하시죠.”
“별로 아름다운 과거도 아니고, 시주님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아서---”
“스님이 되셔서도 과거를 잊지 못하시나 봅니다.”
하는 재걸의 농에
“스님은 사람이 아닌가요?”
하고 받고는
“어쨌든 잘 오셨습니다. 오늘 저녁 우리 잊었던 속세의 정을 나누어 봅시다.”
재걸의 손을 잡으며 가족 친지가 찾아온 것같이 주지 스님은 반가워하였다.
그렇게 재걸을 맞이한 주지 스님은 불목하니에게 스님들 몰래 불목하니가 마시려고 만들어 놓은 곡차를 가져오라고 부탁하고 적당한 것으로 안주도 만들어 보라고 했다.
“스님은 제가 곡차를 만들어 먹는 것을 어떻게 아셨어요?”
주지 스님에 말에 당황해하며 묻는 불목하니에게
“내가 모르는 체했지, 나도 예전에는 곡차를 잘 먹던 사람인데 아무리 몰래 곡차를 만든다고 해도 곡차 뜨는 냄새를 모르겠어요?
“그럼 그동안 알고도 모르는 체하신 거예요?”
“그래요. 한겨울에 그런 낙도 없으면 이곳에서 보내기 힘들 것 같아 모른 체했어요. 그리고 작은 스님과 가끔 대작하는 것도 알지요.”
“스님 참 어지간하십니다. 그렇게 아시면서 모른 체하시다니. 그런데 주지 스님도 곡차를 드시게요?”
“오늘은 사바에서 참으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셨으니 승려가 된 후 처음으로 곡차를 마시고 탈속하여야겠습니다. 어서 곡차나 가져오세요.”
이렇게 하여 술상을 앞에 놓고 주지 스님과 재걸은 마주 앉았다.
술을 시작하며 처음에는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수인사가 다시 오가고 난 다음 두 사람은 수해 때 그 비참한 과거의 일이 생각나 침울하게 술만 마신다. 주지 스님은 재걸을 만나서 마음속 저 밑에 꼭꼭 숨겨 두었던 그때 생각이 더욱 가슴에 사무치는지 가끔 한숨을 쉬며 눈시울도 붉힌다.
그런 주지 스님을 보며 재걸은 아무리 도가 높은 스님이라도 슬픈 과거를 쉽게 잊지는 못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술이 몇 순배 돌고 난 다음
“ 도를 닦는 중이라는 사람이 옛날 사바의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참 한심하죠?”
하고 주지 스님이 먼저 말한다.
“아닙니다. 과거도 과거 나름이죠. 스님의 경우는---”
“세상에서 나만 한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모두 잊어야죠. 한 절의 주지 스님인 주제를 생각해서라도.”
“그렇게 하시어야겠지요. 이제는 흘러간 먼 과거니까.”
“좋은 말씀 하셨어요. 흘러간 과거에 집착한다는 것은 사바에서도 바보짓이죠.”
그리고 또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런데 어떻게 형사가 됐어요?”
하고 이번에도 주지 스님이 먼저 물었다.
그래서 재걸은 간단히 형사가 된 내력을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경찰시험을 보아 경찰이 되어 춘천에서 경찰 일을 하다가 6년 전에 강력계 형사가 되고 공무원 순환보직 관계로 2년 전 영암경찰서로 오게 되어 지금은 경찰서 형사과 강력계에 근무한다고 그리곤 면사무소 산림 계장이던 분이 어떻게 승려가 됐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승려가 된 사연을 좀처럼 말하려 하지 않는다.
재걸이 몇 번 동기를 묻자 한참을 말없이 술만 마시던 주지 스님이 깊은 한숨을 쉬고는 이렇게 된 이상 할 수 없다며 입을 열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재걸은 다시 한번 경악했다.
주지 스님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감!
구리천리향님
무혈님
늘 해주시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