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의 밥상, 그 작은 우주의 감동
정부희의 『곤충의 밥상』은 가만히 앉아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작은 우주’와의 대화를 촘촘히 기록한 책이다. 길앞잡이, 가시노린재, 도토리거위벌레, 대왕박각시, 장구애비…. 지구상의 곤충은 알려진 것만 해도 100만 종 정도일 만큼 그 이름도 모양새도 다양하다. 그만큼 먹이 역시 다양하다. 풀과 나무, 버섯, 똥이나 다른 동물의 시체까지도 그들의 밥상에 오른다.
풀, 나무, 버섯, 똥과 시체, 곤충. 지은이가 5가지 밥상으로 곤충들을 분류한 것은 “자연의 먹이망은 무수히 많은 생명들이 자연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선택한 다양한 생존 전략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식물을 먹이로 삼는 곤충은 전체의 약 30%. 곤충들 대부분은 평생 동안 특정 식물만을 찾아 먹는데, 거기에 다시 잎살만 먹는 곤충, 즙만 먹는 곤충, 썩은 나무만 먹는 곤충, 꽃가루나 꿀을 먹는 곤충 등 제각기 좋아하는 부위만을 먹는다고 한다. 그때그때 입맛에 따라 중식, 일식, 한식 등을 찾아 먹는 사람들에 비해, 특정 부위만으로 밥상을 차리는 곤충들은 지독한 편식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모든 곤충들이 모든 식물을 닥치는 대로 먹는다면 세상의 식물들은 멸종하고 그것을 먹는 곤충 또한 지구상에서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애벌레와 어른벌레의 먹이가 같고 다름에 따라 알 낳는 장소가 달라지기도 하고, 충분한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때를 알아내어 알 낳는 시기를 조절하기도 한다. 먹이 경쟁을 피해 식물을 먹던 곤충의 일부는 육식곤충으로 진화했고, 육지에 살던 곤충 중 일부는 물속에서 먹이를 찾아 먹는 수서곤충으로 바뀌기도 하는가 하면, 아예 애벌레 스스로 먹이를 해결하는 곤충도 볼 수 있다. 공동 육아를 하며 애벌레에게 먹이를 날라다 주기도 하고, 먹이 집을 만들어 애벌레가 그 집에서 먹이를 해결하도록 한다. 이렇게 먹고, 저렇게 먹고, 먼저 먹고 나중에 먹고…. 자연의 밥상을 둘러싼 곤충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놀랍도록 매혹적인 세계를 발견하게 된다.
키가 큰 참나무에 달린 도토리에 알을 낳은 도토리거위벌레는 도토리가 달린 가지를 땅에 떨어뜨린다. 도토리 속을 파먹고 자란 애벌레가 땅속으로 들어가 번데기가 되기 때문이다. 왕벼룩잎벌레는 만지기만 해도 가려움증을 일으키는 옻나무만 먹는다. 독성에 적응하지 못한 다른 곤충과 먹이 경쟁을 피하고 천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다.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는 애기뿔소똥구리의 애벌레에게 똥은 ‘식당이자 침실이자 화장실’이다. 사람에게는 역겨운 동물의 시체 썩는 냄새는 검정파리류나 송장벌레류에게는 오히려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다.
추운 이른 봄 곤충들은 왜 앉은부채꽃을 찾는가? 갖춘탈바꿈을 하는 곤충들이 안갖춘탈바꿈을 하는 곤충들보다 수적으로 왜 우세한가? 왜 수많은 곤충들이 둥지를 짓고 사나? 왕파리매는 왜 날면서 먹이를 낚아채나? 어떤 곤충이 자기 몸길이보다 10배나 긴 똥을 싸는 이유는? 『곤충의 밥상은』은 읽으면 읽을수록 계속 궁금해지는 책이다.
놀라운 일이다. 『곤충의 밥상』을 펼쳐 작은 곤충의 삶을 읽는 사람의 마음은 점점 따뜻함으로 가득 찬다. 이 책은 단순한 ‘곤충기’가 아니다. 신비로움 그 자체다. 이 책의 지은이는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아니 보여주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게 해준다.
“바쁜 일상에 잠시 쉼표를 찍고 숲길이나 들길을 걸어봅니다. 뜀박질하면 나 자신만 보이고, 뛰다가 걸으면 나무와 숲이 보이고, 걷다가 서면 자연의 대합창 소리가 들리고, 서 있다가 앉으면 작은 우주가 보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쓰러진 나무, 두꺼비 곁에 앉으면 작은 우주가 들려주는 소곤거림에 벅찬 감동이 밀려옵니다.”
숲 속이나 풀숲 어디선가 지금도 쪼그리고 앉아 있는 지은이가 보인다. 그는 뛰는 숨을 가만히 고르면서 그 감동적인 우주 안에 한 개체로서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낙영_화요 열린 강좌 진행자, 삼인출판사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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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강좌│
대한불교진흥원에서는 매월 1회 ‘문화’를 통해 ‘삶’을 읽는 기획프로그램인 <화요 열린 강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자 및 다양한 전문가의 강좌를 통해 우리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결핍’과 ‘과잉’을 지양하고, 지향해야 할 가치를 실현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에게 작은 빛이나마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곤충의 식생활에서 생태적 삶을 배우다
- 우리가 모르는 곤충들의 진짜 속 이야기
대상서적 및 저자
- 6월 22일(화) 저녁 7시 : 정부희(곤충학박사)의 『곤충의 밥상』, 상상의숲 刊
- 정부희
이화여자대학교 영어교육과 졸업하고, 성신여대 생물학과에서 곤충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국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자연에 눈뜨기 시작한 저자는 우리 식물(특히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되어 식물을 공부했다. 또한 아무도 연구하지 않는 한국의 버섯과 버섯살이 곤충들을 모두 정리할 원대한 꿈을 갖고「한국산 거저리과의 분류 및 균식성 거저리의 생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응용곤충학회, 한국곤충학회, 한국균학회, 한국생태학회의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 활동 및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 장소 : 마포 다보빌딩(BBS) 3층 다보원
- 회비 : 무료
* 회비를 받지 않는 대신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3,000원 이내를 십시일반으로 보시함에 넣으면 이를 모으고 여기에 대한불교진흥원이 보태서 그 전부를 불우이웃 등에게 보낼 계획입니다.
<화요 열린 강좌>는 (재)대한불교진흥원(이사장 민병천)에서 주최하고 월간 『불교문화』와 BBS불교방송이 후원합니다.
문의 및 신청 : 02-719-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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