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대기에 쓰이는 사진및 인물은 사실과 관계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 난이도 베하/베하 , 세이브로드 플레이X , 치트X, 중국패기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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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6월 11일 << 콘월 민족주의자 데이비드 하인스 >>
콘월주(州)출신의 저명한 작가이자, 민족주의자인 데이비드 하인스 ( 1778 ~ 1822 )는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을 계기로 콘월또한 자유로운 독립할수있다는 희망에 뜻이맞는
콘월의 지식인들과 대학생 30명을 모와 콘웰주 청사 앞에서 청원문을 낭독하며,
콘월독립에 대한 연설을 하였고 주(州)청사앞에는 짧은시간만에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날은 별다른 과격행위가 없는 평화로운 집회이었지만 이날 출동한 군대는 이집회를
불법집회했고 간주하고 해산명령했다. 데이비드 하인스는 해산을 명령하는 군대에게
독립청원은 정당한 권리라 외치며 연설을 강행하였는데 몇분후 군대는 데이비드 하인스를
포함한 지식인과 대학생들 그리고 그의 연설에 동조하는 수많은 군중들에게까지 강경진압을 시작했다.
군대의 강경진압에 시민들은 격렬하게 대항하여 충돌이 일어나 데이비드 하인스을 포함한 지식인및 대학생 12명이 사망하고 35명이 크고작게 다쳤으며 50명은 체포되어 연행되었다. (이날은 훗날 6.11 사태 라고 불린다.)
체포된이들중에 집회를 주도한사람들은 국가반역혐의로 2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수감된다.
(1836년 자치령독립때 모두 석방됨)
<강경진압에 대항하는 데이비드 하인스와 시민들>
<6.11사태 당시 데이비드 하인스가 들고나온 삼색기>
<데이비드 하인스 ( 1778 ~ 1822 )>
1823년 << 콘월 독립위원회 출범 >>
콘월의 민족주의자 데이비드 하인스가 촉매가 된 6.11 사태 이후
대영제국정부는 콘월주(州)에 모든 정치행위를 금지하고 사상가들을 탄압했다.
이를계기로 정당한 모든 권리와 이익이 위협을 받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콘웰의 민족주의가 대두됨에따라
콘웰(州)출신의 민족주의성향 자본가, 지식인, 장교, 시민/노동자/농민 대표들이 모여
콘웰의 독립을 위한 독립위원회를 선포하고 제1차 독립회의(콘월의회의 시초)를
시작으로 실질적 독립을 위한 행동을 준비한다.
<콘월 제 1차 독립회의>
1824년 ~ 1835년 << 독립항쟁기 >>
1828년 부터 1835년까지 콘월주(州)의 시민들이 독립투쟁을 벌인다.
이와중에 대영제국의 경찰과 군대의 강경진압이 이뤄지고 콘월 독립위원회를 반정부단체로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도 콘월의 독립의 불씨를 잠재우기에는 힘들었고
해가 바뀔수록 독립투쟁의 규모와 관심도 점점 커져갔다.
<콘월 독립전쟁때 시민군의 모습>
1835년 8월 << 대영제국의 고민 >>
10년이 지나도록 대영제국의 군대의 강경진압에도 콘월의 독립열기가 식지않고 점점 높아지자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또한 독립투쟁을 할줄 모른다는 위기감이 대영제국 정부를 흔들기 시작하였다.
<영국의회 모습>
1836년 1월 << 반쪽짜리 독립 >>
지속적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콘월독립위원회와 콘월주(州)의
시민들의 투쟁으로 사태가 심각해지자 영국정부는 결국 타협안을 제시한다.
콘월은 완전한 독립이 아닌, 자치를 보장한다는 내용으로 외교권과 국방권은
대영제국에게있으며 콘월은 대영제국의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대영제국의 군주를 섬기며 또한 대영제국의 정치체제를 수용한다는
조건으로 수준의 높은 자치권을 대영제국의 정부가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콘월의 독립을 주도적으로 이끈 민족당내에 강경파처럼 미국 경우처럼
무장투쟁으로 완전한 자주독립을 추구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생존을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한 온건파의 의견이 최종적으로 채택되어
외교권, 국방권을 제외한 모든권한을 가진 자치정부를 수립한다.
자치정부를 수립하였지만 대영제국은 콘월자치령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였고,
콘월의 주요인물들을 비밀리에 감시하였다.
<콘월지도부와 대영제국의 지도부는 콘월 자치령독립에 합의했다>
<콘월 민족당이 집권했다>
<자치령으로 독립당시 예산상황>
1838년 << 불안정한 미래 >>
자치권을 인정받아 반독립했지만 자주적인 권한이 없는 콘월은 다른나라와
무역협정은 물론 친선교류도 금지되어 해를 거듭할수록 대영제국의 영향력이 강화되고있었다.
무엇보다 큰문제는 주(州)의 핵심산업인 통조림 제조산업을 가동시킬 원자재들이 대영제국이외에는
반입이 허용되지않아서 대영제국 수출입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콘월의 경제에 큰피해를 주고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모여 친영(英) 세력들이 형성되어 다시금
대영제국의 하나의 주(州)로 돌아가자는 반동주의적 행동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대영제국은 그동안 콘웰주(州)에 심어둔 여러 첩보망들로부터 이러한 정보들을 입수하여 그들을 지원하곤했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콘월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여당인 민족당내에서는 힘들게 얻은 자유가 다시 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고 완전한 독립을 위해 대영제국과 종속관계를 끊어야한다는 강경파의 주장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콘월의 주생산품은 통조림이었다>
1838년~1840년 << 콘월공화군 CRA(Cornish Republican Army) 창설 >>
지속적으로 대영제국의 위협과 불신이 감지되자, 콘월의 지도자는 강경파의
군대창설 주장을 받아들여 비밀리에 수행하도록 지시하였다.
계획은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불안한 치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아래 자경단 모집하여 실질적으로 군대조직으로 만들었고,
군수품과 식량을 대영제국의 감시를 피해 비축해두며 앞으로 다가올
대영제국과의 일전을 준비하도록 만반의 준비를 가춰놓고있었다.
<콘월 공화국군 모습>
<45%나 되는 많은수의 자치민들이 군사훈련을 받았다>
<징병예정인 콘월 공화국군>
1839년 10월 2일 < 대영제국-청제국 전쟁>
대영제국과 청제국이 아편무역이 말미암이 되어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그것은 콘월과 대영제국의 전쟁의 시간은 점점 가까워졌다는것을 의미했다.
<아편전쟁이 개시된 당시 모습>
1840년 12월 19일 << 1840년 콘월-대영제국 전쟁 >>
1840년 12월 19일 콘월이 대영제국에게 선전포고하며 전쟁이 시작되었다.
선전포고한 전쟁의 명분에 대해서는 대영제국과 청제국의 전쟁에 콘월의 국민을 강제로 징집한다는것에
1836년에 맺은 연합법 위반에 대한 항거라는게 명분이라고 내외에 알려졌지만
실상은 대영제국에게 완전히 자주적인 독립을 할려는 콘월의 오랜준비의 결과였다.
<콘월의 대영제국 선전포고>
1840년~1842년 << 콘월-대영제국 전쟁기 >>
<콘월 작전계획도 1호>
<계획처럼 순조롭게 런던을 점령하였지만 왕가는 이미 도망간후였다.>
<대영제국 친위대를 각개격파하여 포위섬멸했다>
<런던 탈환을 위해 입스위치에 상륙한 대영제국군>
<빠른 기동전술로 입스위치,케임브릿지의 대영제국군을 격파했다>
<콘월의 수도를 공격한 대영제국군과 잔당처리를 위한 작전계획 2호>
<대영제국의 인도식민지군이 대규모로 상륙했다. 이를 섬멸할 작전계획 3호>
<브리튼섬에서 모든 적군을 섬멸하였다.>
<스코틀랜드 지역을 빠르게 점령하는 콘월 공화국군>
<웨일즈의 카디프에 대영제국의 마지막 대규모 상륙군이 상륙했다.>
<카디프 상륙군을 섬멸하고 브리튼섬의 모든 지역을 점령했다. 남은것은 협상뿐이다.>
1842년 10월 12일 << 런던조약 >>
콘월에게 브리튼섬의 모든 지배권뺏긴 대영제국은 대대적인 탈환작전이 모두 실패하자, 결국 협상테이블에 앉게되었다.
콘월은 대영제국에게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사우스햄튼지역의 할양, 종속관계 파기, 향후 5년간 불가침조약,
콘월의 주요산업에 침투해있는 영국자본을 콘월의 국유화등 10개조를 요구하였다.
대영제국과의 첫번째 협상에서는 결렬되었지만 결국 두번째 협상에서 대영제국이 5개조를 수용하여
런던조약을 조인시킨다. 이를계기로 대영제국내에 반콘월성향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조약문을 제시하는 콘월정부>
<조약에 조인한 대영제국 정부>
<콘월과 대영제국의 런던조약 체결 당시 모습>
1843년 7월 15일 << 콘월공화국 >>
자유와 평화를 얻는데 많은 피를 흘린 콘월은 더이상 대영제국의 꼭두각시가 아니기에
대영제국의 군주를 국가원수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급진적인 민주제를 수립한다.
콘월은 급진적인 사회개혁으로 콘월의 사회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모든 콘월의 국민들은 열광했고 꿈에 젖었다.
<자유로운 민주국가를 만든 콘월공화국>
<새롭게 개정한 콘월공화국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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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 자유를 지키는것이 얻는것보다 어렵다 >>
하지만 깨지지않을것 같던 콘월공화국의 달콤한 꿈의 평화는 12년이라는 짧은 시간밖에 가지 못한다.
성숙하지 못했던 민주체제는 계급간에 분열을 만들게 되었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대영제국의 군대가 침공해왔다.
콘월공화국 군대는 필사의 저항을 했지만 대영제국의 강력한 군대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빠르게 각지방을 뺏기다가 결국 수도를 함락당하고 대통령궁에 유니온잭이 다시금 계양됨에 따라 종말을 고했다.
그후 콘월에서의 지독한 숙청이 이뤄지고 다시금 콘월은 대영제국의 주(州)로 병합되지만
1902년 연합법 수정으로 콘월과 웨일즈 또한 정식으로 대영제국의 일원이 되면서 화해의 길을 가게된다.
<정식으로 대영제국의 일원이된 콘월>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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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은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독립시킨후 괴뢰국으로 삼고 대영제국 해체작업 할려고 했는데,
짬짬히 하는 시간도 별로없어서 너무 오래걸릴꺼같아서 단편으로 정리했습니다.
연대기 봐주신분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첫댓글 뭔가 잘 짜여져서 아쉽군요.
나중에 기회되면 분량이 많은 연대기 도전해봐야겠네요..
중국패기 안 쓰고 빅토플레이하기 힘들던데...
파산 안 하나여..?
기술개발해서 타국에 돈받고 파는걸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Romanus Petrus// 파산안될때도 있던데 파산안되면 부채이자 때문에 오히려 게임오버입니다. 대도록 적자안나게 하는게 중요하죠;
하긴 저도 우크라이나 플레이를 그렇게 하긴 했죠. 러시아로 독립시켜주니 관계가 +180이라서 기술거래가 쉽게쉽게 되었습니다.
넵.. 기술개발해서 잘팔면 정말 돈모으기 쉬운거같아요. 외교점이야 아무나라 전쟁걸어놓고 있으면 외교점쉽게 모을수있고 .. ^^
근데 이거 인접국이랑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인접국과의 관계도는 랜덤이벤트로 언제든지 작살날 수 있는 거니... ㅜㅜ 관계도 180일 땐 잘 받아주던 거래가 -40이 되니 씨알도 안 먹힘.. ㅋㅋ
정말 아깝네요. 이런 걸작이 한화로 끝이라니.
감사합니다!! 더 노력해서 좋은작품 내도록 열심히하겠습니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