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의 아버지는 야빠였드래요 야빠 중에서도 박철순의 불사조 투혼에 감동먹어서 영원한 OB를 외치는 곰빠였드래요 그래서 지금도 곰빠래요
어린이 통기타는 아빠랑 맨날 티비에서 야구중계를 봤드래요 그러고 가끔 잠실야구장도 갔었고 거기서 아버지가 오비베어스 쟈켓도 사줬드래요 그러다가 보는 거 만으론 성에 안찼는지 갑자기 야구를 하겠다고 나댔드래요 부모님 말에 의하면 그 때 다섯살이었대요
야구배우는 통기타 어린이는 헛스윙만 해대면서도 웃었고 바운드볼을 던지면서도 환호 했대요 그러니까 사실 뭣도 모르고 걍 폼만 잡는 거였드래요
얼마 안되서, 그러니 여전히 다섯살이었을 때 종합운동장 바로 코앞에 있는 잠실 7동 우성아파트로 이사를 했대요 그리고 꿈밭유치원 이란데를 들어갔대요 당시 꿈밭 유치원은 남자와 여자로 나뉘었고 남자는 다시 곰빠와 엘빠로 나눠져 있었드래요
어린이 통기타는 엘지모자가 좀더 멋있어보인다는 단순유치뽕짝하기 그지없는 이유로 엘빠쪽에 삘 꽂혔대요 근데 그러면서도 눈치는 있어서 아버지 눈치 슬슬보며 대충 중립 유지했드래요
94년 어린이 통기타는 아주국민학교(당시는 국민학교 -_-)에 입학했대요 아주국민학교도 세력판도가 꿈밭유치원과 똑같았대요 다만 이제부턴 애들이 자기네 응원하는 팀 쟈켓과 모자를 학교에 갖고 와서 자랑하기 시작했대요 그리고 그 해 엘지가 우승했드래요 그 땐 우승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우승하면 최고의 팀이라길래 중립 집어던지고 그때부터 엘빠했드래요 그리고 유지현 포지션이 뭔지도 모르면서 신인왕이 뭔지도 모르면서 신인왕이 좋은거란 소리만 듣고 유지현 왕팬이 되었드래요 그리고 그때부터 아빠 눈치도 안보고 엘지가 뭔 삽질해도 엘지만 좋아했대요
95년... 엄마를 졸라서 엘지 어린이 회원이 되었드래요 당시엔 어린이회원 야구장 입장료가 500원이었대요 그래서 친구들과 또 우리를 이끌던 친구의 형들과 천원 한장 달랑달랑 들고 가서 500원은 표사고 500원은 모아서 과자와 음료수사서 야구장에서 잘 놀았대요 초딩들이 겁도 없이 재밌게 잘놀았대요 그런 식으로 96년도 흘러갔대요
97년 이젠 야구가 뭔지 하나도 모르던 시절은 가고 뭐가 뭔지 조금씩 알게 되었대요 그래서 그해 엘지가 한국시리즈에서 졌을때 어린이 통기타는 엉엉울어버렸대요
98년엔 이사를 다시 갔드래요 근데 그래도 교횐 계속 그쪽으로 다녔드래요 그래서 일요일이면 이젠 천원짜리 세장을 달랑달랑 들고서 천원은 헌금내고 2천원은 야구장에서 썻대요 . . . 친구와 친구의 형들만 믿고 겂도없이 천원짜리 한장 달랑 들고 야구장으로 향하던 어린이 통기타는 어느새 이젠 야구장 가려면 최소 만원은 써야 되는 사람으로 자라나서 고딩을 졸업하고 재수생이 되었대요
그 사이에
엘지는 한번도 우승을 못하고
삽질도 많이 하고
호쾌한 타격을 보여주던 캐넌은
다른 팀에서 뛰고 있고
연습생 신화로
어린이 통기타의 가슴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어준
서용빈선수는 벤치신세고
갈기머리 휘날리던 삼손도
170대의 작은 키가 한없이 커보이던 노송도
그리고...통기타가 젤루 좋아하던
유지현도
그라운드를 떠났대요
근데 그래도 이렇게 자라나도 혹은 세상에 찌들었어도 통기타가 닥치고 무적LG 외치는 엘빠라는 건 변함이 없대요 그리고 엘빠이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야구인을 사랑하는 야구팬이라는 건 변함이 없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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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글솜씨가 좋으시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왠지 감동이에요^^
잘봤어요...글을 잘쓰시네여 ^_^
아버지가 두산팬인거 빼고 저랑 비슷하네여~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