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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요 5장 19절 ~ 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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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에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진실로 진실로”라는 구절들이 나오는 내용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지난 시간 말씀을 요약하면, 믿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행위와 말씀을 듣고 이해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진리되신 예수님의 실체를 발견한고, 예수님의 말씀에 거하고, 예수님의 제자(증인)로 살아가며, 예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참 된 자유(믿음, 의, 소망)를 누리며 사는 것이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겉보기 믿음, 지적 동의, 일시적 반응에 머물기만 하는 유대인들에게 “진리(예수님)를 알지니 진리(예수님)가 너희를 자유롭게(구원 받는 확고한 믿음,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아가는 의, 땅의 것을 버리고 위의 것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으로 사는 것) 하리라”는 말씀이 지닌 의미들을 잘 깨닫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을 함께 듣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진실로 진실로”는 또 어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려는지 갈망하고 간구하는 마음으로 본문을 보겠습니다. 19, 20절을 읽어 드립니다.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아멘.
이 말씀은 누구에게 하신 것일까요?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안식일에 예루살렘의 양문 곁의 베데스다 연못 가에서 서른 여덟 해 동안 앉아 있던 장애인 거지를 향하여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는 말씀 한 마디로 정상인처럼 걷게 만드시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고통 받는 장애인이 고쳐진 것을 칭찬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식에 일을 행하였다고 박해를 가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라고 하셨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말하며 하나님과 동등되게 말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본문도 지난 시간의 8장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비난하고,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아들로서 어떤 권한과 권세가 있는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것을 아들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말씀 만으로 모든 것을 행하시시는 분이신데, 나 역시 38년이나 앉아만 있었던 장애인을 말씀 한 마디로 일어나게 했다는 것이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능력이 내게서 나타날 수 없고, 그러한 기적의 능력이 일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버지로부터 위임 받은 아들만이 가지고 있는 권세와 권한이라고 말씀 하신 겁니다. 즉, 사람을 죽이시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만이 가지는 권세와 권한이 아들인 내게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다고 선포 하신 겁니다.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이 세상에 그 어떤 권세와 권한이 출중한 사람일지라도 도저히 장애인을 말 한마디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엄청난 기적의 사건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기적이 그들에게 생생히 목격되고 증언 되었음에도 그 권세가 하나님 만이 가지는 권세이며, 그 권세가 예수라는 청년으로부터 일어났다는 것을 목격 했음에도 정작 그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심도 두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권세와 권한을 행사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 그들에게는 더 큰 문제라는 생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뭇 가지만 바라보는 상태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유대인들이 겉보기에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자신들이 진리의 실체를 모르고 진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히려 분노했던 경우나 비슷한 상황입니다.
예수님은 추가로 말씀 하시기를,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일을 행하여서 앞으로 너희들을 더욱 놀라게 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큰 일은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통치와 심판자의 권세와 권한을 행사하시겠다는 선포이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원대한 구속사의 계획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들에게 설명한 것은 그들 중에 단 한 사람이라도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듣게 하시려는 긍휼을 베푸시는 마음이셨고, 또한 들을 귀가 없는 자들은 바깥 어두운데로 쫓겨나 슬피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모세 시대에 홍해 바다의 기적을 본 적도 없고, 에수님 시대에 눈먼 자가 눈을 뜨는 기적을 본적도 없고, 성령을 받은 후에 베드로와 같이 걷지 못하는 장애인을 말씀으로 일으켜 새운 기적을 행사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영역에서, 내 믿음과 신앙생활의 환경에서 아버지는 어디 계시며, 아들의 권세와 권한은 어떤 식으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내게 아무런 기적의 사건도 일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아들의 권세가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아들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이나 관심이 없이 살아간다면 무늬만 다를 뿐이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이나 우리들이나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상이 아버지로부터 위임 받은 아들의 권세와 권한 아래에서 매일 같이 기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감동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삶의 환경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 가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라는 말씀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해답은 19절 후반부에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라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모든 것을 행하시는 역사를 태초부터 지금까지 보아 오셨고 그 역사에 실제적으로 동참하셨습니다. 늘 보고 배운 것이 전지전능한 역사였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아들 되신 예수님은 아버지가 말씀으로 하시는 모든 일을 너무나도 쉽고 동일하게 해 내실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요? 우리 역시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살아갑니다. 요한 복음 1장 12절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아들,딸)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관심을 가지고 전부 다 보고 배워야 되겠다는 열심의 마음이 솟아나야 합니다. 자녀가 된 권세를 마음껏 행사하며 예수님처럼 기적과 능력을 행사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기적만 행하며 살아가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에이, 나는 사람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이신데 내가 어떻게 큰 기적을 일으켜요 라고 말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적을 행사하려고 도전조차 하지 않거나, 나는 그런 일을 행할 능력자가 아니라고 자포자기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헛되게 버리는 것이며, 율법만 생각했던 유대인들과 동일한 사고 방식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 18)고 하셨습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녔다고 확신하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가 이런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요 14:12)라고 하셨습니다.
자녀로서 권세를 가진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셨던 기적들을 거뜬히 행할 수 있고,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언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얼마든지 더 큰 일을 행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말씀을 들었으니, 에이,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요 라는 말은 쑥 들어갔을 겁니다. 우리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와 권한을 믿는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기적을 일으키는 큰 역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을 지라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아버지가 무엇을 행하는지 먼저 보고, 배우는 일부터 시작 해야 합니다. 그 보고 배움이 습득이 되고 믿음으로 자라났을 때에야 비로서 권세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약하고 큰 일을 행할 능력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 안에는 전지전능하신 성령님이 와 계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를 바라보고,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가 행하시는 일들을 목격하고, 성령을 통하여 아버지가 내려 주시는 권세를 믿음으로 받을 때, 우리는 거침 없이 권세를 선포하는 능력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권세 있는 자녀가 되어보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의 뜻입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권세있는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아니하고,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우기에 집중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며, 순종의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00교회 모든 성도는 나는 하나님의 자녀요 권세를 받은 자이며, 거룩한 성령을 모시고 사는 자임을 한시도 잊지 마십시오, 항상 성령의 능력을 구하시고 마음껏 권세를 사용하셔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담대하게 증언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아들 딸들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진실로 진실로”가 세 번 나오는데 두 번째 부분을 보겠습니다.
21~ 24절을 읽어 드립니다.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4절에 나오는 “진실로 진실로”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진 구절로, 부활절이나 장례식에서 자주 인용하는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위임된 아버지의 권한이 심판이라는 가장 강력한 권한에 까지 이르러 있다는 것을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더 큰 일을 보여 주어 너희들을 놀라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하신 후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다 맡기셨다고 말씀 합니다. 즉, 아들이 심판자로서 영생과 영벌을 판단하는 권세와 권한을 가졌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습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눈 앞에서 말하고 있는 청년이 자신들을 심판하게 될 심판자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모두 그 자리에서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부들부들 떨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 자신이 심판자라는 사실을 스스로 밝히셨는데도 유대인들은 무지하고, 무감각하여 예수님이 곧 심판자라는 사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없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계속해서 말씀 하시기를, 심판자가 된 아들을 진실로 진실로 믿는 자는 영생을 얻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의 구원이요, 믿지 않으면 멸망의 사망 뿐임을 선포하시고, 그 믿음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고, 그 심판의 권세자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토록 심판자로서의 권세와 권한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신 것은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 경고하고, 그들에게 최후의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21절 후반부에 보시면, 예수님은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원하는 자들을 살리겠다는 것은, 원하지 않는 자는 심판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살릴자와 심판 받을자를 판정하실 분은 예수님 뿐이며, 그 판정의 기준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로 결정됩니다. .
성경에 기록된 대로 누구든지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성령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다고 보증해 주시면 영생이요, 보증하지 않으면 영벌로 판정 받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와, 의와, 심판과 멸망에 대해서 말할 때 심판자 되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현상이 나타나야 정상입니다. 또한 두려움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기쁨도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러한 말씀 앞에서 두려워 하기는 커녕 오히려 분노하는 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믿음이 있는자요, 아들을 아는 자들이며 믿는 자들이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말씀을 들을 때, 감격하는 기쁨과 동시에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야하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어떠신가요?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야 영생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 이름을 무수히 부르며 살아가고 있는 것(예배, 기도, 봉사 등의 행위) 만으로 충분히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기준에서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계시나요? 요한 일서 5장에서 아는 것이란 온 세상의 악한 자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속한 것(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하고 구별되게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안에(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되는 것)있는 것이라고 간단 명료하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평소 생각과 말과 행동 중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지니고 세상의 기준보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시하며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최선을 다하신다면 여러분은 틀림 없이 하나님을 아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단 한 순간도 하나님이 의식되어본 적이 없다면 나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평소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면서 예수님을 의식하며,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지니고, 십자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 답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보다 내 눈의 들보를 먼저 생각하며, 불의와 거짓에는 그 어떤 것도 단호하게 거부하며, 어떤 부당하고 무리하게 느껴지는 말씀을 주실지라도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눈물 흘리며 묵묵히 받아들이고 감당하려는 사람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나를 제자로 부르시고 함께 가자고 동행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일상에서 의식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이 은혜의 말씀은, 너희들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로 알고 있느냐, 알고자 노력하고 싶으냐 라고 물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다 옮겨졌으니, 확정 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발 뻗고 잘자라는 말씀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자를 기만하지 말고, 심판으로 영벌에 처해지는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물론 현재 시점에서 그리스도를 잘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있지 아니하고 영생을 약속하시는 은혜의 말씀인 것도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은 과연 이 말씀을 제대로 들었을까요? 예수님이 말씀 하신 대로 원하는 자들이 그들 안에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듣고 깨달았을 겁니다.
심판에 대해서 말씀 하신 예수님은 오늘 마지막 진실로 진실로를 들려 주십니다. 우리 함께 25절을 읽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오늘 설교 제목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저는 이 구절을 몇 번씩이나 소래내서 반복하며 읽으면서 “아멘”이라는 대답을 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말씀 하시는 분에 대한 저의 조그마한 믿음의 반응이고,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겠다는 저의 조그마한 순종의 반응이고, 음성을 듣는자는 살아니라는 말씀에 대한 저의 조그마한 소망의 반응을 “아멘, 아멘, 아멘”으로 대답해 보았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말씀 하시는데도 마음 닫고, 귀 닫고, 입 닫고, 눈 닫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고 부활 영생으로 다시 살아나는 순간을 맞이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심판과 영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심판자의 권한과 권세를 무시하는 자는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속에 포함 되어 있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수 많은 설교 말씀이 선포되었는데도 안 듣겠다고 마음과 귀를 막아버린다면 어쩌겠습니까? 수 많은 기도의 시간에 말씀하시는데도 순종으로 이끄시는 음성이 한 번도 들린 적이 없다고 말하면 어쩌겠습니까? 수 많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깨닫게 하시는 음성을 한 번도 들어본적이 없다면 어쩌겠습니까? 수 많은 찬양을 부를 때에 거룩하고 구별되게 살아가라는 감동 주시는 음성이 한 번도 없었다는데 어쩌겠습니까?
물론 여기서 예배도 안드리고, 기도 안하고, 성경책 열어 보지도 않고, 찬양 부르려는 마음도 없는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들려지지도 않고 들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성령 받았고, 믿음 안에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구원자라고 여기고 살아가고 있다면,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는 이 말씀이 큰 울림으로 마음과 양심과 귀와 온 몸에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말씀이 영생과 생명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역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이 성령의 감동 주심으로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 새로운 각오와 결단으로 작동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사모하는 자로, 들려지는 자로, 듣는 자로, 듣고 들리는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로 변화되어 나아가시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진실로 보고 배우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는 분이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이 진실로 진실로 말씀 앞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는 믿음 하나만으로 영생과 부활과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다시 살아날 그 날을 향해 전진해 나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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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 믿음의 주인이시며, 심판자이시며,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들의 믿음을 강하고 담대하게 지켜 주셔서 아들의 음성만을 듣고, 따라가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잠 4:27).
감사합니다.
그는 훈계를 받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죽겠고 심히 미련함으로 말미암아 혼미하게 되느니라(잠 5:23).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