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을 것이다. 전환점은 나와 상관 없이 생긴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자기 집안에서 일어났을 때도 생긴다.
IMF 사태로 한국사회는 엄청난 변환점이 되었고, 코로나19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아내의 죽음이었다. 그동안 연속극과 영화에서나 봤던 장면이 나한테 벌어진 것이다.
아내의 죽음은 딸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기에 딸 인생에서도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아내 장례식을 치르고 딸한테 말한 적이 있다.
"우리 딸, 엄마가 너무 일찍 떠나서 어쩌냐?"
딸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빠 괜찮아, 나 한국에서 유치원 다닐 때 친구 있잖아? 걔네 엄마 아빠는 중학교 때 이혼했어."
"지금 우리반의 한 친구는 초등학교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새엄마와 살아."
"그런 얘들보다 그래도 나는 낫잖아."
그럼에도 아내의 빈자리는 금방 드러났다. 어느 날 식탁에서 둘이 밥을 먹고 있는데 딸이 엄마의 빈 의자를 보더니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딸의 울음에 나도 그만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꾹 참고 딸 아이를 다독였다. 그날 식탁에서 아내 의자를 치웠다.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할 딸을 위해서라도 집안 곳곳에서 아내의 흔적을 없애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딸 아이는 이듬해에 무난히 대학에 합격했다. 영국이 한국처럼 치열한 학력 경쟁은 없다. 그러나 공부를 잘해만이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은 분명 있다.
어느 대 나왔다고 자랑을 하고 싶지만 넘어간다. 딸의 사생활 보호와 정보노출로 인해 행여 그 아이한테 불편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나야 어떤 사생활이든 노출이 된들 잃을 게 별로 없지만 내 딸만은 안전했으면 한다.
딸 아이가 대학을 다닐 때 영국에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가 있었다. 결과는 EU 탈퇴 찬성, 유럽의 강대국 영국은 이렇게 유럽연합에서 떨어져 나왔다.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EU에 잔류하는 쪽이 더 많았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찬성표가 더 많이 나온 것이다.
신문 머릿기사에 '대체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제목이 붙을 만큼 영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주가지수와 파운드화 환율은 폭락을 했고 사회는 어수선했다.
이후 나는 영국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딸 아이가 대학 졸업을 얼마 앞두고 독립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딸에게 고백을 했다.
"아빠는 외로워서 영국에서 못 살겠어.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우리 딸 생각은 어때?"
딸은 마치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망설임 없이 말했다.
"아빠, 잘 생각했어."
"안 그래도 엄마가 병상에서 했던 말이 있어."
"아빠는 절대로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래."
아내가 죽기 전에 딸에게 그렇게 말했었나 보다. 자기 죽은 후에 아빠가 재혼을 하겠다고 하거든 축하해 주라고,,
하긴 내게도 아내는 이런 말을 했다.
"나 죽거든 가능한 빨리 재혼해,"
"나한테 너무 미안해 할 것두 없어."
나는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떠날 준비를 했다. 20년 장기 상환으로 살던 집을 처분했고 얼마 있는 예금까지 찾은 후 전재산을 3등분 했다.
딸, 나, 그리고 처갓집,,
딸 아이가 자기는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이것이 내 유산이라 생각하라고 했다. 이제 딸이 독립을 하면 아빠 품에서 떠나는 셈인데 이것밖에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그동안 내가 딸을 돌봤던 게 아니라 내가 딸한테 의지하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딸 아이는 졸업 후에 취업을 했고 나는 16년의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바로 사실혼 관계로 시작했다. 딸과 화상통화를 하다가 나는 이 사실을 알렸다.
"아빠가 얼마전에 좋은 사람을 만났어."
내 말을 들은 딸은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바로 눈물을 흘렸다. 아빠가 좋은 여자를 만났으니 이제 곧 엄마를 잊을까 봐서 그런다고 했다.
"걱정 하지 마, 아빠는 엄마 안 잊어."
딸 아이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자기는 죽은 엄마한테 너무 미안해서 재혼한 새 엄마한테는 엄마라 부르지를 못하겠단다.
나는 괜찮다면서 딸 아이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딸은 성격이 비교적 활달한 편이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후 남자 친구도 몇 명 사귀었다.
물론 그 전에 친구로 지낸 남친이 있기는 했다. 내가 영국에 살 때 일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었는데 자연스럽게 남친이 일본인이었다.
집에도 놀러 오고 함께 도서관에도 다니면서 친하게 지내는 듯하더니 언젠가 조용했다. 내가 요즘 그 일본 남친 안 만나냐고 했더니 딸이 대번에 그랬다.
"응, 넘 시시해서 요즘 안 만나."
나는 은근히 가능하면 내 딸이 한국인 짝을 만났으면 했으나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죽은 아내도 그랬지만 딸도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내는 집에서도 한국어로 대화를 하지 않을 만큼 한국과 거리를 뒀다.
딸 아이는 이전까지 한국에 딱 두 번을 다녀갔다.
한 번은 할머니(내 엄니) 장례식 때였고, 한 번은 처갓집에 일이 생겨서 아내와 함께 다니러 간 게 전부다.
아내가 한국을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았듯이 딸도 그랬다. 워낙 일찍 한국을 떠났기에 한국에 친구가 없기도 했다.
이후 딸 아이는 스리랑카 남자를 사귀는 것 같더니 얼마 후에 헤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내 딸의 남자 취향이 아시아 쪽이 아닌 듯했다.
딸이 대학에 들어간 이후부터 성인이란 생각으로 나는 일체 아이의 사생활에 참견을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자란 딸의 정서와 사고방식 또한 서양식이다.
요즘 내 딸은 사랑에 빠졌다. 작년 말에 모처럼 아빠를 보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다 갔는데 그때 슬쩍 남자 친구에 대해 비치기는 했다.
그러더니 이후 통화에서 요즘 좋은 남자가 생겼다는 고백을 했다.
나는 대번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폴란드 남자란다. 폴리쉬? 순간 나는 목소리를 높혔다가 바로 딸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동안 함께 찍은 사진도 여럿 보여줬고, 얼마전에는 남자 친구 나라인 폴란드에 여행을 가서 남친 부모님을 만나고 오기도 했단다.
대학 때부터 학부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였다가 애인으로 발전한 것이다. 딸은 이 남자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은 결혼식을 하기에 앞서 혼인신고만 하고 함께 사는 커플도 많지만 아이를 갖기 전에 결혼식부터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 딸은 얼마전에 서른 번째 생일이 지났다. 나한테만 영원히 애기일 뿐 이제는 완전히 어른이라 해도 될 나이인 것이다.
2주 전이다. 딸과 화상 통화를 하는데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처음 보는 딸의 남자 친구다.
인사를 나눈 후 나는 바로 한국식 호구조사에 들어갔다.
나이는 딸보다 한 살 위인 1995년 생, 스무 살 때 영국으로 유학을 와서 공부를 마친 후 런던에 있는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부모는 폴란드에 살고 엄마는 유치원 교사로 있고, 아버지는 큰아버지와 함께 수제 구두점을 운영하는 제화공이란다.
아빠는 1971년 생,,(젊군). 엄마는 1975년 생이란다. 엥? 그럼 몇 살 때 아들을 낳은 거야? 어쨌거나 나는 싫든 좋든 내 딸의 남자 친구한테 정을 붙여야 한다.
동유럽 특유의 덩치에다가 털이 많은 것이 좀 둔해 보이긴 했으나 눈동자가 맑아서 심성은 착해 보였다.
올 가을쯤이나 아니면 연말에 인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 오겠단다.
나는 폴란드에 가본 적도 없고 아는 거라곤 쇼팽과 시인 쉼보르스카 뿐인데 딸을 위해서 폴란드 공부를 좀 하기로 했다.
예전에 내 딸은 결혼을 하면 아이를 둘 이상 낳고 싶다고 했었다. 내가 요 며칠 딸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조만간 한 가정의 엄마로 살게 되겠지만 어디서든 자기 인생 즐겁게 살다가 이따금 이 아비를 기억해 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나는 내 딸이 자랑스럽다.
# 뱀발
그동안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막상 쓰고 보니 기억 속에는 있는데 글로는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뒤죽박죽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마치 무당의 신내림 의식처럼 술술 나온 덕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첫댓글 한편의 소설을 읽듯...
아껴가며 잘 보았습니다.
멋들어진 감사의 답글을 올려야하는데
필력이 부족하여 죄송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와우~ 도마소리님,,
이런 댓글이야 말로 진심이 담긴 멋진 글입니다. 부족한 제 글을 열심히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날그날 써서 올리느라 제대로 다듬지를 못해서 어수선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이것 또한 저의 한계려니 하면서 지나갑니다.
도마소리님도 건강과 평안을 빕니다.
가끔 글 쓰시면서 목구멍에 뭔가 콱 막힌듯한 갑갑함도 있으셨으리라 여깁니다
이렇게 글을 쓰시면서
그 막혀있는것은 다 내려가셨을 터이니
이제 다 내려 놓으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모카님께서 제 심정을 족집게처럼 짚어 내셨습니다.
처음엔 이왕 쓸 거 매일 일기쓰듯이 한 편씩 올려볼 요량이었는데 자꾸 가슴에 얹힌 게 내려가질 않아 진전이 없었답니다.
몇 줄 쓰다 막혀서 다음날 잇기도 하면서 마무리를 할 수 있었네요. 실큰 울고 나서 코 한번 팽 풀면 개운한 것처럼 저도 그런 기분입니다.
모카님도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귀한 글.
한 줄 한 줄 잘 읽었어요.
지나온 삶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은데 진솔한 글에 감동받았어요.
따님도 유현덕님도
이제부턴 꽃길만 걸으실거에요.
ㅎ 베리꽃님도 향기를 품고 오셨네요.
쓰다가 막힐 때나 쓰고 나서 진이 빠질 때면 그냥 네플릭스에서 재밌는 영화나 한편 보는 게 낫지 뭐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쓰고 나니 후련한 기분이 듭니다. 딸 이야기를 쓴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한 거였음도 알았습니다.
베리꽃님의 고운 날들을 빕니다.
한편의 대하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현덕님도 새가정을 이루었고 따님도 멋진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으니 결과가 좋은것 같습니다
60년생인 제동생이 공무원시절 폴란드에 두차례에 걸쳐 6년간
국비유학을 하고 돌아온후 폴란드가 너무 좋다며 공무원도 사표내고
20년전 폴란드로 돌아가 결혼도 안하고자연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뿐인 제딸은 결혼을 안한다고 하며 서울에서 홀로 직장생활하고
있답니다
그산님의 따스한 심성이 느껴지는 댓글 잘 읽었습니다. 딸의 현재와 연계를 시키다 보니 저의 재혼 이야기까지 꺼낼 수밖에 없었네요.
60년생 아우님의 폴란드 정착이 인상적입니다. 제가 외국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잠시 관광을 하는 것과 정착해서 사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압니다.
20년전에 떠났다면 지금쯤은 그곳 사람이 다 되었을 듯싶네요. 이래저래 연결이 되는 사람 관계를 보면 지구촌이 그리 넓지만은 않은가 봅니다.
그산님, 공감 가는 댓글 고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혼을 하셨군요.
이거 또한 잘한일입니다.
저는 오늘 힘든시간을
잘 견디고 앞으로 꽃길만
걸었음 합니다.
사실 꽃길이든 가시밭길이든
마음먹기 나름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희망에
가슴 설레는 날입니다.^^
네, 파란여우님 저 재혼했습니다.^^
아내가 죽기 전 저한테 했던 말이 있습니다.
"당신은 혼자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저는 정말 혼자는 못 살겠더라구요. 어쩌면 이런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였기에 가능한 빨리 재혼하라고 했던가 봅니다.
때론 제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싶어 아내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그래도 그 사람의 행복 몫까지 살다가 가겠다며 타협하곤 한답니다.
파란여우님도 꽃길만 걸으시길요.ㅎ
이제 편안한 일상을
누리고 있는 현덕아우의 삶을
많이 응원합니다..
폴란드 사위 보실 것도 미리 축하드리고..ㅎ
동유럽 여행할 때
잠시 들러본 폴란드..
헝가리와 함께
예상 밖으로 편안하고 느낌이
참 좋더라구요..
한 평생 살아가면서
만나는 인연들...
아내건
딸이건
친구들이건..
내 생이 끝날 때까지
마음에 새겨지는 것이라면
참 귀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파란만장하기도 한
그간의 삶이지만
이제 따뜻한 마음으로
읽혀지니 고맙기만 합니다..
내내 평안합시다..ㅎ
언제나 요석 누이의 댓글을 읽고 나면 제 마음이 따뜻해져 온답니다.
그것은 세상 풍파를 잘 녹여내면서 살아온 요석님의 인생에 온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겁니다.
폴란드를 가보셨나 봅니다.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동유럽 정서가 우리와 비슷하단 말도 있던데 저는 가보지를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
폴란드 사위는 제가 좀 길을 더 들여서 제 딸한테 충성 맹세를 제대로 하도록 만들 생각입니다.ㅎ
요석 누이의 귀한 댓글 감사합니다.
요석님의 평온한 일상을 빕니다.
현덕님의 글을 읽는 동안
내 형제의 아픔처럼 다가와
마음이 넘 아리고 저려와서 댓글을
쓸 수가 없었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이 날 듯!
잘 이겨내신 현덕님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인간승리!
잘 살아오셨고,
시와 문학 그림 예술을 사랑하시니
더욱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사진으로 본 선한 인상이 마음에 남습니다
어디에 있든 현덕님과 현덕님 가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와우~ 고마운 김지원님이시네요.
지원님이 제 글의 숨어 있는 독자임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김지원님이 비록 댓글은 달지 않으시더라도 제 글은 분명 읽으실 걸로 생각한답니다.
비록 숨어 있는 독자일지라도 제 글을 읽고 작은 재미와 글맛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저는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김지원님은 한번도 뵙지를 못했지만 오래전에 알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김지원님을 저도 응원한답니다. 평온한 밤 되시기 바랍니다.
글에 진정성이 있어 저는 오래전부터 유현덕님 글 애독자가 되었습니다.
따님을 향한 애틋함, 돌아가신 부인에 대한 회한에 몰입하며 글을 읽었습니다.
부녀 간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귀하게 생각됩니다.
유현덕님 그리고 따님 곁에 늘 건강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
ㅎ 수피님이 제 글의 오랜 독자임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언제나 진심이 담긴 댓글 주심에도 감사한 마음이구요.
딸과 죽은 아내는 내 마음 속에 담겨 있어서 제가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관계랍니다. 제가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것도 제 딸이 있기 때문이지요.
수피님도 항상 평화로운 날들이기를 빕니다.
수고많이 하셨어요
딸아이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하십니까요!
94년생인 울 딸 파리 유학때가 생각나네요
따님과 유현덕님의 미래는 좋은일만 가득하세요^~
요요님도 오셨군요.ㅎ
맞습니다. 딸 아이야 말로 제가 사는 이유랍니다. 때론 아빠를 웃게 하고 때론 울게도 하지만 눈물조차 기뻐서 나오는 것이니 감사하며 산답니다.
94년생 따님이시면 제 딸과도 비슷한 연배네요. 요요님도 항상 좋은 날 되셨으면 합니다. 평온한 밤 되시구요.
이제는 불행 끝, 행복 시작이기를 바랍니다.
아니, 이미 많이 행복하시다고 했네요.
따님도 좋은 짝 만났으니
곧 결실을 맺을 것이고,
남은 인생 즐겁고 행복하기만 하셔요.
리진님 말씀처럼 제 딸이 좋은 짝을 만난 것 같긴 합니다. 본문에는 털이 많아 미련하고 둔해 보인다고 했으나 그건 약간의 질투심에 쓰다보니 나온 저의 오바였구요.
화상통화로만 접촉을 했지만 순박하고 착해 보이는 인상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다 연인으로 발전한 것이니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리진님의 응원 감사합니다.
제게 폴란드는, 마리아 쉬클로도프스카? 라는 퀴리 부인의 기나긴 결혼 전 이름으로 기억되는 나라입니다.
러시아일 때도 소련일 때도 폴란드에게 큰 위협이었던 강대국에게 꿋꿋이 대항한 나라,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바웬사의 나라.
그 나라 출신의 수재인(따님과 같은 대학 출신이니) 젊은이를 사위 삼게 되셨군요.
총명하고 속 깊은 따님, 충분히 자랑하실 만합니다.
현덕님 부부의 삶의 훈장인 따님, 앞으로의 빛날 미래도 응원합니다.
재혼 잘하셨지요. 행복하셔야 합니다.
진솔한 고백을 뛰어난 필력으로 써내려가신 현덕님의 감동적인 글에 독자들도 감정이입하여 가슴이 찡했던 며칠이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유현덕님이 제 글벗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
와우~ 달항아리님의 폴란드 상식이 저보다 윗길입니다. 폴란드는 딸 때문에 생긴 관심이지만 저는 이 나라를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이제부터 폴란드 공부를 할 생각이네요. 영국에 오래 살았으면서도 저는 동유럽을 가볼 생각을 못했답니다.
글구, 달항아리님 댓글에서 또 공부를 합니다. 제 딸이 우리 부부의 훈장이란 말에 무릎을 쳤거든요.
아~ 나는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나중 기회를 봐서 우리 딸한테 이 문구를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네요.^^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안다고 저는 미래 사위의 아버지가 마음에 든답니다. 구두 신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얼마나 정성을 다해 신발을 만들겠는지요.
제 딸이 부자로 살기보다 서로 배려하고 마음을 나누는 평온한 가정이면 충분합니다.
달님의 따듯한 댓글 고맘습니다.
따님은 따님대로
현덕님은 현덕님대로
각자에게 맞는 행복을 누리고 있는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ㅎ 뱃등님께서도 댓글을 주셨군요.
품안의 자식이란 말도 있지만 제 딸은 독립심이 강했던 편이라 잘 살것으로 믿습니다.
되레 딸이 제 걱정을 자주 하면서 위로를 하네요. 그래선지 저는 빈둥지증후군 같은 것을 경험할 일은 없답니다.
눈물의 항까치를 준비하고 처음부터 잘 읽었습니다
이제 사요나라군요
따님이 유현덕님을 닮았는지 아주 영특하고 활달하네요
어디에 내놓아도 잘 헤쳐나갈 것 같아요
무엇보다 지금 편안하게 잘 살고 계시니
축복할 일이네요
가리니무님,,
제가 봐도 딸 아이의 독립심은 대단합니다. 닮은 것은 저보다 지 엄마 쪽인데 성격이 밝고 낙천적이라서 과묵한 남친과도 궁합이 잘 맞을 걸로 보이데요.
화상으로만 대화를 했기에 다 알 수는 없겠으나 딸의 남친이 무척 진중한 성격으로 여겨졌답니다.
제 딸도 남친이 황소 같은 사람이라고,,
가리나무님, 항상 평안하시길요.
너무~~ 잘읽었습니다 좀 더 쓰려나 기대 했는데 섭섭합니다 다음 장편 또 기다려도 될까요 ㅎㅎ 수고 많으셨습니다.
운선님의 촉은 대단합니다.
1편부터 읽어본 분은 알겠지만 원래는 8편 정도까지 생각하고 구상을 했는데 쓰기가 넘 힘들어서 빨리 마무리를 했답니다.
한참 위의 선배이신 운선님한테는 죄송한 말이지만 저도 늙었나 봐요.ㅎ 이제는 날마다 글을 쓰는 것이 너무 힘에 부치니 말이죠.
누구는 AI 도움을 받곤 한다지만 저는 기계치라서 아예 그런 것을 모르고 살지요.
심지어 맟춤법이나 띄어쓰기 오류를 시정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던데 그런 거 또한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완전 아날로그랍니다.
앞으로도 쓰고 싶은 것은 아주 많은나 기회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전, 아줌마전, 친구전, 심지어 꼰대전까지,ㅎㅎ
운선님의 평온한 봄날을 빕니다.
@유현덕 아줌마뎐 ㅎㅎ 친구뎐 둘 중에 해주세요 남자전은 괜히 오지랍 떠는 인간들에게 씹히는 수가 ㅎㅎ
@운선
그런가요?
남자뎐이 그렇다면, 꼰대뎐도 패쑤해야겠네요.
맷집 좋은 운선님께서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 의미를 알고 있답니다. 늘 안전거리에 주의하겠습니다.
댓글 수 늘린다 할까봐 제가 웬만해선 대댓글에는 답을 잘 안하는데 행여 운선님이 걱정하실까 봐서 달았네요.ㅎ
그렇게나 원망 쏟아낸 처가댁까지 유산을 챙기셨다니
현덕님 마음크기는 얼마나 클지요
그런분을 알아보시고
다시 인연된 분도 축복입니다
재혼이 쉽지 않던데~
이제 마음 안정되게 자리 잡으셨으니
앞으로의 길에는 평온만 있으시길요
잘 읽었습니다🌿🌿
정아님, 제가 영국 떠나면서 재산 처분한 거 뻔히 아는데 처갓집 몫이 없으면 둘째 처형한테 또 머리채 잡힐까 봐서,,ㅎ
웃자고 하는 소리구요. 아내가 고생하다 떠났는데 3등분의 1은 지분이 있다고 생각했답니다.
저는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면 생활비를 벌 수 있기에 처갓집에 좀더 챙겨줘도 될 텐데 사람 욕심은 또 그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눈 딱 감고 3등분,,
정아님 말씀 대로 재혼이 쉽지 않지요. 그래도 맺어질 인연이면 저처럼 성공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편안한 저녁 되세요.
어제 여행중에
마지막까지 모두
너무도 잘읽었습니다
따님도 아빠도
각자의 삶을
잘살고 있으니
넘 기뻐요
저희집도 두딸이
어린나이에
엄마땜에 놀라고
맘고생을 해서
일찍 철이 들어버렸지요...
수고하셨습니다
좋은나날 되세요~~^^
문선이님, 여행중이셨던가 봅니다.
제 글에 댓글 달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댓글을 주셨네요. 딸 아이가 제 품을 떠났으니 이제는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찍 철이든 문선이님 따님들처럼 제 딸도 어릴 때 겪은 곡절 때문인지 철이 좀 빨리 들었지 싶네요.
힘든 고비 넘기면서 자식들을 잘 길러낸 문선이님을 응원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기 바랍니다.